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목회자료

[스크랩] <어린이주일>에 관한 자료들[종합]

늘찬양 2008. 5. 3. 12:54

<어린이주일>에 관한 자료들

 

 

*** 어린이의 낱말뜻 ***

 

1. 히브리어

옐레드 - 소년, 아이, 자식, 아들, 새끼, 아기, 자녀

아빌 - 어린아이, 아이

올렐,올랄 - 젖먹이, 아이, 어린아이, 자녀, 소아

 

2. 헬라어

네에피오스 - 어린아이, 아이

파이디온 - 아이, 아기, 어린아이

테크논 - 자식, 자손, 아들, 소자, 아이, 새끼, 자녀

 

 

 

1. 구약과 신약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다른 문화권에서와 같이 자

녀, 특히 아들을 몹시 원했다(창15:2, 30:1, 삼상1:11,20, 시

127:3, 128:3, 눅1:7,28).

2.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으로, 속전을

지불해야 만 했다(민3:40-51).

3. 어린 아이는 때때로 특별한 봉사를 위하여 하나님께 헌신 되었

다 (삿13:2-7, 삼상1:11, 눅1:13-17,76-79).

4. 어린 아이의 훈련은 체벌을 동반한 엄격한 것이었다(잠22:15,

23:13, 29:15).

5. 아이에게도 본받을 것이 많다(잠20:11).

6.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복종과 존경이 명령되었다(출

21:17, 엡6:1-3, 골3:20, 딤전3:4,12, 딛1:6).

7. 어린 아이를 향한 애정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죽은 아들에 대

한 다윗의 사랑(삼하12:15-23)에서, 그리고 엘리야

(왕상17:17-24), 엘리사(왕하4:18-37), 예수(마9:23-26, 막

5:35-43, 눅8:49-56)가 어린 아이의 생명을 살려준 기록에서 극

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8. 어린 아이에 대한 예수의 사랑과 관심은 공관복음서에 많이 언

급되었다 (마18:1-14, 19:13-15, 막9:35-37, 10:13-16, 눅9:46-48,

18:13-17).

9. 예수는 어린 아이의 놀이를 알고 계셨다(마11:16).

10.성경에는 모세(출2:1-10), 사무엘(삼상1:20-3:19), 예수(눅

2:7-40), 디모데(딤후1:5, 3:14,15) 등의 어린 시절이 아름답게 그

려져 있다.

 

 

*** 명 언 ***

 

인명:익명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선도하지 않는다.

 

 

인명:루더 버뱅크

 

만일 우리가 식물보다 우리의 후세대에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오늘날우리는 잡초의 정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인명:격언

 

1 년 재미는 벼농사요, 10년 재미는 나무 가꾸는 것이요, 평생

재미는사람 농사이다.

 

 

 

*** 예 화 ***

 

5살부터 10살까지의 아이를 결정적으로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

접하도록인도하는 것은 가장 쉬운 것이다. 나는 구원 전도대가 한

일을 기뻐한다.

이것을 통해서 파산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상한 남자와 여자로 변

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크리스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

니다. 가장 만족스러운 크리스찬이란 아이 시절에 그리스도를 영접

한 크리스찬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은 21살 이전에 거듭

난 자들이다. 당신의 교회가 어떤 것을 하건 간에 이들에 대한 의

무를 충분히 완수해야 할 것이다.

토레이

 

 

제목:우리는 용감하리라

 

로마시의 안녕과 복리를 깊이 우려하는 로마의 한 노인이 꿈 속

에서 로마시민으로 이뤄진 대군이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 맨 앞에

는 역전의 용장으로보이는 노인들이 `우리는 용감했었다'라고 새겨

진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것을 본 그 노인은 "암, 그렇고 말고. 그

러나 저들은 늙었고 백발이 되었으니로마의 장래를 어찌 저들에게

질머지게 할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우리는 진정 용감하

도다'라고 쓰여진 깃발을 든 조금 젊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자 노인

은 다시 "저들은 곧 늙을 것이니 로마를 저들에게 맡길 수는없지"

라고 생각했다. 뒤이어 많은 무리의 소년들이 `우리는 용감하리라'

고외치며 힘있게 그들의 뒤를 따라 행진하는 것을 본 노인의 마음

은 매우 기뻤다. 로마의 장래 안녕과 복리는 확약될 수 있다고 만

족해 했다.

 

 

 

제목:오빌 라이드 선교사

 

어느 날 저녁 멕시코 과달라쟈라에 있는 선교본부에 죠세 곤잘레

스라는13세의 소년이 걸어 들어왔다. 저녁예배가 끝날 무렵 그는

앞으로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그 소년과 상담한 오빌

라이드 선교사는 그가아버지를 잃고 갈 곳이 없어서 제빵공장 화덕

을 온돌삼아 자는 소년임을 알았다. 그 선교사는 아내가 세상을 떠

났고 두 살난 아들은 미국으로 보냈으므로 그 소년을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여 같이 기거하며 학교를 보냈다. 선교사는 소년을 의과

대학에 보내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의사가되게 했다.

라이드 선교사가 양육한 많은 소년들은 의사, 변호사, 목사, 기

술자, 교사 등이 되어 모두 각각의 일터에서 일하며 그리스도를 증

거하는산 증인들이 되었다. 라이드 목사는 그의 시에서 "한 소년이

란 얼마나 귀한가? 누구의 손에 붙잡혔는가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거나 파멸의 폭탄이 될수도 있다. 마귀와 죄가 열심히 그들을 부

르고 있는데 교회는 그들을 부르고 있는가? 썩을 것에는 투자하면

서 소생하는 생명을 위하여서는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는가?" 라고

했다.

 

 

제목:청소년 전도

 

윌버트 챠프만(Wilbert Chapman) 박사가 4,500명이 모인 집회에

서 얻은통계이다. 400명은 10살 이전에, 600명은 10-14살 사이에,

600명은 14-16살사이에, 1,000명은 16-20살 사이에 예수를 영접하

였고 겨우 24명 만이 36세이후에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흥미를

느낀 챠프만 박사는 더 광범위하게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통계를 얻

었다. 25세 이후에는 천명에 겨우 한 명,35세 이후에는 5만 명에

겨우 한 명, 45세 이후에는 20만 명에 겨우 한 명,55세 이후에는

30만 명에 겨우 한 명, 75세 이후에는 70만 명에 겨우 한 명꼴로

예수를 영접했다는 것이다. 위대한 전도자들의 생애를 조사해 보면

어린 시절에 회심을 하고 큰 일꾼이 된 경우가 많다.

 

 

제목:유아 성장의 세가지 요건

 

말씀:눅2:40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이 어린이 주일을 꽃주일이라고도 한

다. 어린이는 인생의 꽃과 같다는 표현이다. 이 귀한 어린이가 잘

자라기를 기도하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자라실 때의 모습을

통하여 유아 성장의 세가지 요건을 찾아 보자.

 

1. 건강하게 자라셨다.

"아기가자라며 강하여지고" 라고 표현된 말씀은 건강하게 자라셨

다는의미이다. 성도들 가정의 어린이들, 그리고 온 세상의 어린이

 

 

들도 예수님같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하자.

유아의 건강은 1차적으로 부모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죄값으로 기형아를 출산케 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는 믿음

으로 출산하고 양육해야 한다.

 

2. 지혜가 충족하셨다.

예수님은 지혜있게 자라셨다. 오늘의 어린이들도 지혜롭게 자라

야 한다.체격과 지혜가 정비례로 자라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하나

님의 말씀은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

여 훈계를 받게 한다"(잠1:3)고 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는 선

한 지혜가 충족하게 되기를 노력하며 양육하자.

 

3.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는 표현은 믿음 안에서 성장

하셨다는의미이다. 사무엘 처럼 하나님의 축복으로 잉태되고(삼상

1:9-20), 믿음 안에서 자라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 안에서

자라지 않으면 마귀의 자녀가 된다. 여기서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님은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셨다. 오늘날의

어린이들도 주님의 품에 안겨야 한다. 주님의 축복을 받으며 자라

야 한다.

 

 

제목:주님의 어린이 영접

 

본문:막10:13-16

 

예수님 계신 곳에 부모들이 자기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왔다. 예

수께서만져 주시면 복을 받아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께 오는 것은

예수님을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그 부모들을 꾸짖었다. 이를

본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행동을 분히 여기셨으니 그 이유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제자들의 태도가 옳지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1. 어린 아이들을 영접했다.

이는 예수께서 비록 바쁘시고 피곤하셨지만 어른들을 대하는 것

과 차별없이 시간을 내어 어린이들을 대해 주신 것이다. 일반적으

로 어른들은 자기본위로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어린이는 약자

취급을 당하고 소외되며 구박의 대상이 된다. 이는 어른들의 과오

이다. 어린이는 우선적인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2. 인격자로 대우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이 말씀에는 반드시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어린이의 인격을 높이평가한 것이요, 또

한 가지는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한 것이다.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

와 같이 동등한 기회가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3. 축복하셨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이

는 어린이에게 적합한 축복의 방법이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공으

로 예수께서는이렇게 축복하심으로 어린 심령에 믿음을 심어 주셨

다.

 

어린이들을 영접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축복하는 사회가 복을

받을 것이다.

 

 

제목: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본문:마18:1-7

 

오늘은 5월 첫 주일,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한다.

 

1. 돌이킬 줄 안다(3절)

여기서 "돌이킨다"는 것은 돌아서는 것으로서 "회개한다"는 말씀

이다. 우리가 어린 아이의 마음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순성과

신뢰심이다. 어린아이는 잘못(죄)을 범하면 무서워하고 곧바로 용

서(회개)를 빈다. 본문은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으로서, 천국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돌이킬줄 아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자임을

가리키고 있다.

2. 겸손하다(4절)

회개할 줄 아는 자는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알고 더욱 겸손하

게 된다.어린 아이는 자기를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자기를 낮

춘다. 그것은 힘도없고, 아는 것도 없고, 아직 철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서로 누가 큰 사람인가 하는 교만에 빠

져 있었다. 이때 예수님은 자기를 어린 아이와 같이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자기를 낮추는 자란

어떤 사람일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부족함과허물을 아는

자이고, 다음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신자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받

게된다.

 

3. 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어린 아이 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믿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

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는 귀찮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

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귀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

조하고 계신다.

 

4. 이웃에게 피해(실족)를 주지 않는다(6절)

어린 아이는 어른들처럼 이웃(형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여

기 실족케 한다는 말씀은 넘어지게 한다. 범죄케 한다는 뜻으로서

순진한 신자를유혹하여 그 믿음을 넘어지게 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와같은 순수한 신자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는 것

은 주님으로부터 용납받을 수없는 큰 범죄요, 마침내 남을 실족케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7절)고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종교 심리학자 Spencer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기독교

인이 기독교에 입신한 연령층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천명의 입신자 중 548명은 20세 이전에, 337명이 20세에서

30세 사이에, 96명이 30세에서 40세 사이에, 겨우 15명이 40

세에서 50세 사이에, 그리고 50세 이후의 입교자는 5명의 비

율이다.

어려서 교인이 되도록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이다.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라고 했고, 세례 요한도 "아이가 자라

며 심령이 강하여지며"(누가 1:80)라 하였으니 어린이 시절

에 믿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난 것을 뜻함이라 하겠다. 구

약에 있어서도 사무엘은 엘가나와 한나와의 사이에서 기도로

태어나고 자라났으므로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

니라"(삼상2:21)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분들은 어머니 품

에 안기어 어머니의 젖을 빨 때부터 그 사랑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요사이 사람들은 아이들이 체중이 늘고 키가 자라는

데 치중하지마는 실상은 몸과 지혜가 같이 자라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현모라고 불리울 수 있는 사람

은 아이가 철이 없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여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키우는 것이 지혜의 전달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키워지는 아이는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인격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젖먹이의 입으로 하여금, 주의 대적 즉 원수와 보수자로 잠

잠케 하신다(시8:2). 또 영아가 젖을 사모하는 모습을 순전

하고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다(벧전2:2). 그렇게 함으로써 사탄의 궤계를 소멸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또 아이들의 특징으로서 배워야 할 것

은 악에게 물들지 않는 점이다. 아이들은 원한의 마음을 품

지 않는다. 이따금 욕심과 교만을 부리는 일이 있지마는 다

음 날까지 그 교만과 욕심을 품고 지내지 않는다. 언제나 겸

손해서 자기들이 만들은 조직과 규정에 잘 복종한다. 그래서

잘 단결하며 또한 이익과 손해를 타산하지 않고 정직과 진실

한 태도는 우리 어른들이 배워야 할 점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어서 이러한 어린 아이들의 진실된 인

격과 겸손하게 맡은 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점을 높이 평가

해 주셨다고 보여진다.

 

 

파래야 할 땐 한껏 파랗게 싱싱하세오.

비바람이 짖궂고 어두운 밤이 되풀이 된다해도

아무도 파랗고 싱싱한 소망과 무지개 빛 꿈을

빼앗지를 못한답니다.

파란대로 완전하세오. 그리고 매일매일 힘차게

발돋음하면서 자라나세오.

파랗다는 것은 성장하고 있다는 것,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한 결실을 약속함이니 그날을 향해 한껏 자라세요.

성장에는 아픔이 따르는 것. 결실에 이를 때까지

많은 눈물의 나날이 있겠지만 그래도 자라세요.

파란 그대로.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어린아이의 특성은 순

진성과 감수성과 마음대로 쓰고 그릴 수 있는 백지적 가능성

과 조각가가 깎고 쪼아서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원소재성,

유난성, 개방성, 키우고 자랄수 있는 피교육성 그리고 부모

와 스승을 믿는 신뢰및 의존성이 특성이다.

토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작품속에서 백치의 옷을 입혀 등장

킨 인물은 어린 애기 같고 그의 이미지 속에는 예수같은 인

물이었다. 세상살이에 서툴러 놀림감이 되지만 너무도 순수

한 실존이어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끝까지 믿어주며 용서

해주고 싸매주는 딴 세상에서 온 사람같이 매력있고 사랑받

는 이 사람에게 묻는다. "그대는 백치인가 그리스도인가?"

크리스챤에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나 예수님의 어린이같

은 순수성이 있어야겠다.

 

 

 

 

 

 

도로티 로톨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 가게 된다면 남

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 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

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

려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고마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정

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성경에 나타난 어린이들

 

 

 

신구약 성경에는 허다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어린이들의 모습을 정리하여 오늘의 바람직한 우리 어린이상을 그려보도록 하자.

 

1 . 구 약 에 나 타 난 어 린 이 들

 

히브리 사람들의 가정에서 애기를 분만하게 될 때에는 산파를 부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애기를 낳으면 탯줄을 끊고, 몸을 씻어준 다음에 소금으로 문지르고(수리아에서 지금도) 기저귀에 싼다(겔 6:4). 산모는 아들을 낳았을 때면 7일간, 딸을 낳으면 14일 간의 부정한 기간을 두었고, 아들은 33일, 딸은 67일을 지내야 산모의 피가 깨끗해지는 줄 알았다(레 12:1-5).

아기의 이름은 대개 어머니나(창 4:1, 29:32) 아버지가 지었다(창 5:29, 16:15, 출 2:22). 자녀는 아버지의 계통을 따랐으며 아내가 임신할 수 없을 때에는 그 계집종을 남편에게 주어 그 몸에서 난 아이를 자기네 아이로 삼아 이름을 짓고 키웠다(창 30:1-8). 자녀들은 모두 어머니가 길렀고, 2-3년 동안 젖을 먹였다.

아들을 더 귀중하게 여겼으며 어떤 문서에 보면 아들은 진짜 보물이요, 딸은 가짜 보물이라고 하였고, 맏아들이 젖떨어질 때 큰 잔치를 베풀었다(창 21:

8).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사요(4:1) 자녀를 낳지 못함은 벌로 생각하였다(창 16:4-5, 눅 1:25). 한국에서도 옛날 자식없는 집을 울타리가 없는 집과 같이 여겼고, 마을 사람들은 은연중 멸시했었다. 히브리인 가정의 어린이들은 족장 시대에도 법적인 후사들이었다(창 15:2-3).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어린이들은 부모의 슬하에서 성장되었으므로 그 가족 제도와 전통, 풍습에 따라 그릇에 담기는 물처럼 인격 성장의 형태가 천태 만상일 수밖에 없었다. 스팔타에서는 7-8세의 어린이적부터 무사의 정신으로 키웠고, 헬라는 지식을 위주로 키웠으며, 히브리인은 유목 생활과 더불어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 선민의식 속에 키웠다. 그러나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세상에 갓태어난 어린 아기의 첫 교사는 바로 자기네 엄마요, 아빠였다.

모세가 그처럼 강렬한 민족 의식을 가지고 성장한 원인은 결국 어머니 요게벳의 감화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애굽땅에서 나는 히브리 가정의 아이가 사내라면 당장 엎어 죽이던가, 나일강에 던져버리라는 바로의 엄명과 학대 속에 히브리 민족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내로서 태어난 모세의 운명은 풍전등화격이요, 구사일생의 기적적 생존이었다. 그토록 강인한 아버이의 사랑 없었던들, 또 바로왕의 공주의 손길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없었던들 모세가 어찌 살아남아 있었으랴! 그러나 그 당시 긴박한 상황 속에서 당사자들이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섭리를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저 초조하고 전전긍긍했을 뿐이라고 본다.

민족과 국가가 재난을 겪을 때에 민감하게 피해를 당하는 층은 언제나 연약한 노인과 아녀자들이다. 서민층이 아닌 왕실의 자녀까지도 그랬다. 유다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한 살박이로 고모 여호세바 등에 업혀 난을 피해 성전 속에 숨어 6년간을 살아야 했던 열왕기(왕하 11장)서의 기록을 보면 언제나 어린이들의 피해상을 엿볼 수가 있다.

사라가 그랬고, 라헬이 그랬듯이 하나도 아들을 낳지 못해 애태우던 여자였다. 그녀가 아들얻기를 기도하면 소원한 바대로 사무엘을 낳아 키우게 되자 젓떨어지면서부터 성막 속에 거하도록 하였다(삼상 1:22). 사무엘은 거기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랐다. 같은 성막 안에 거하던 엘리 선지자와 그 아들들은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면서도 생각과 생활 방식이 서로 달랐다.

한 어린이는 스승과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했고, 두 어린이는 자기네 아버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코웃음치며 귓등으로 받아넘겼다. 사무엘은 자라서 선지자와 제사장, 그리고 겨레를 인도하는 사사(왕과 같은 통치자)를 겸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뚜렷한 상징적 인물이 되는 반면에 스승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삼상 4:17-18).

베들레헴에서 양떼를 몰고 다니며 피리를 불고 언덕에 올라 수금을 뜯으며 노래하는 목동이 바로 이새의 아들 다윗이었다. 서슬푸른 사울왕의 시야를 벗어 나기 어려운데 하나님은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새의 아들들을 만나보라고 하셨다. 그는 그 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물인지 알지도 못하고 가서 늠름한 일곱청년들을 만났고, 맨 나중에 들에서 데려온 홍안 소년 다윗을 보았다. 그 때에 하나님은 바로 이 어린이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하셨다(삼상 16:12).

우리는 보통 사람들을 외모로 밖에 볼 줄 모르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다윗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셨다.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 인간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키 어려운 대목이 수두룩하다. 그 중의 하나가 어린이의 문제이다. 어린이들이 여러 가정에서 자라는데, 어려서부터 조물주를 기억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받들 수 있도록 바탕지어진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되는가 하면, 야심만만한 욕심을 품고 형의 특권마저 침범해서 억척스럽게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는 야곱같은 소년도 있음을 본다. 어디 그뿐인가?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출생하는 이스라엘과 또 그 추방사건, 아딸랴가 세운 몰렉 신상에게 제물로 바쳐져 지글지글 타죽는 수많은 유대국의 어린생명들이며, 늙은 야곱이 애굽에서 마지막으로 축복할 때에 요셉의 맏아들 므낫세보다 그 동생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고 보다 큰 자가 될 것이라고 기도한 것(창 48:17) 등등 왜 하나는 버리시고 하나는 택하시는가?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제 구약의 배경을 정리해 보면 부계의 일부다처 생활이 용인된 대가족 제도 속에, 남존여비의 사상이 철저했고, 거기서 적자와 서자의 색채구별이 선명했으며, 자녀를 온전히 가정의 전속소유물로 여겼다(비상 전시에는 잡아먹을 정도로, 왕하 6:29). 그러나 온갖 시련 속에 어린이들도 선민 의식과 신앙은 살아있어 민족의 얼과 긍지를 샛별처럼 빛냈었다(모세, 요셉, 사무엘, 다윗, 에스더 등등). 히브리 민족사는 실향, 추방, 포로, 불안, 공포, 전쟁, 위로, 희망이 엇갈리는 희로애락의 교향곡 속에 강철 같은 신앙으로 망향가를 부르는 실향민의 대열로 사진 찍혀진다. 이런 대열 속에서 다듬어지는 어린이들이 자라나 오늘의 강인한 이스라엘을 이뤄놓은 것이 아닐까!

 

2 . 신 약 에 나 타 난 어 린 이 들

 

신약 시대의 어린이는 역시 4복음을 중심하고 묘사된 어린이들이 확대되어 우리 눈앞에 어른거린다. 조국의 국권을 상실당하고 신민직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무지한 무리들, 그 군종 속에 수없이 많은 불구자와 병자들, 배고픈 사람들, 얼마나 찌들게 가난했으면 한 벌 옷으로 3대나 내려가며 계속 입었다고 했을까! 유대나라에 파송된 로마 군병들마저 얼마나 궁쪼가 들었기에 사형수의 겉옷을 네 조각으로 나눠가지고 속옷마저 저마다 가지려고 제비를 뽑았을까?(요 19:24).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소년, 병으로 숨졌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간질병으로 귀신에게 시달림받던 소년 등등, 많은 어린이들 중에 벳세다 들녘에서 때묻은 수건에 싸왔던 오병이어를 주님께 아낌없이 바친 이름 모를 어린이를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교회 학교에서 너무나 많이 그 얘기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배홑이불을 감고 신변이 위험해진 정보를 예수님께 알려드리려고 달려 나갔다가 로마 군병에게 붙잡혀 홑이불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밤길을 달아난 다락방집 아들 마가 요한이라는 소년의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막 14:52).

여기에는 헬라 사람과 국제결혼한 유니게의 가정에서 혼혈아로 자란 디모데라는 소년의 이색적인 소개도 있다. 또 신약에서 대표적인 어린이 중의 하나로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 세례 요한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요한도 자녀가 없는 가정에 만득자로 태어났다. 모세는 주위 사정에 할 수 없어 나일강에 내다 버려진 목숨이었으나 요한은 부모의 교육적인 의도로 요단강 기슭 갈대 숲속의 자연 속에서 키워지는 어린이었다. 메뚜기를 잡아먹고 석청을 손가락으로 후벼내어 빨아먹는 야생아, 자연아였따.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청순한 광야의 아들로 자라 주의 길을 예비할 심신 단련을 받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민중과 군인과 세리들의 가슴이 후들후들 떨렸다.

 

3 . 영 원 한 어 린 이 상

 

세계 모든 민족의 영원한 어린이 상으로 나사렛 예수를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가난한 목수네 가정에서 그는 소박하게 자라났다. 나사렛 동네 깊은 우물물도 긷고 톱과 대패질도 배웠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예루살렘으로 서울 나들이를 하며 신기한 구경도 했다. 회당 학교에 다니며 구약성경과 히브리 사람의 쉐마도 외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훗날 어려운 질문을 받았을 때 척척 성경말씀(구약)을 인용해 대답치 않으셨던가!

신약 외경 중 도마복음에는 예수의 유년 시절의 얘기도 실려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유년시절, 소년시절을 그저 단 한 마디로 성경은 멋지게 예수의 어린이상을 피력했다. "예수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는 지식과 지혜를 배워가면서 자라났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잠 1:7)고 하였다. 성경은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준다(잠 1:3).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하게 마련이다. 키가 자라갔다는 것은 신체적 단련과 성장을 뜻한다. 어버이를 도와서 육체적 노동 내지 강건한 몸으로 나사렛의 어엿한 사내 어린이로 커갔다. 하나님과 그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갔다는 것은 바로 덕행(ㅘ)을 뜻함이 아닌가?

예수는 어린 시절 지(ㄽ)와 덕(ㅘ)과 체()의 원만한 교육을 거쳐 인격 선장의 완숙을 이루어간 것이다. 오늘 우리 한국의 어린이들도 지식과 체련에만 너무 기울어지지 말고 잘산다고 겉만 번지르르 해가는 실속없는 허영심에 뜰뜨지 말고 하나님을 우러러 섬기는 신앙과 겨레도 사랑할 줄 아는 덕행이 갖춰진 참다운 어린이의 모습으로 자라가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로마 교회의 화려하게 꾸민 그림과 조각과 천사에 둘러싸인 화려한 예수님만 바라보던 서양 사람들이 십자군 전쟁 때에 유대 나라에까지 와서 실지로 보고 깜짝 놀란 사실이 무엇이었던가?

예수님의 고향집은 가난했고, 소박하고 조촐하게 하나의 낮은 평민으로 자라고 또 두 발로 걸어다니시며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어부들과 농부들과 병자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었다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한국의 참다운 어린이의 모습도 강원도 두메 산골이나 어느 낙도즈음에 가서야 찾아보게 될 날이 와서는 안되겠다.

 

 

아이들의 권리

 

사실 오늘날의 어린이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 사랑은 적게 경험하는 것 같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가정이라 하여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자녀가 받아야 할 권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성경에는 자녀의 권리가 조목별로 나열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자녀에게 몇 가지의 생득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1 . 모 든 어 린 이 는 스 스 로 행 복 하 게

여 기 는 부 모 를 가 져 야 한 다 .

스스로 불행하게 여기는 부모는 자녀에게 비현실적 목표를 설정해 주는 경향이 있다. 축구에 실패한 아버지나, 학업성적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대선수나 최우등생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이런 경우 아이들로서는 항상 무능감이나 자기 불신감에 빠지게 되고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게 된다.

반면에 자신감있는 부모는 아이들을 하나의 개인으로 인정해 준다. 육상 선수였던 아버지가 예술하는 아들을 격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감이 있는 부모는 자녀의 사랑을 위해 서로 경쟁하려 들지 않으며 정서적으로 자녀에게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십중팔구 실제적 목표를 설정할 것이다.

그들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무엇이 정당한가"를 기준으로 결정할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정립하고 있는 부모는 설사 자녀가 그릇된 선택을 한다고 해도 실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부모는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럴 가치가 있다고 느끼셨기 때문에 당신이 가지신 것 중 최선의 것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럴 가치가 있다고 느끼셨기 때문에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치를 우리에게 부여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 변치 않는 가치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런 경이로운 일을 이해하는 부모는 보다 나은 입장에 서서 자녀에게 자기

 

 

아동복지사업의 현황

 

1 . 어 린 이 단 체 들 과 주 요 사 업 내 용

아동복지를 위한 단체 혹은 어린이를 상대하는 단체로는 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 미혼모와 입양을 위주로 한 기관 외에도 어린이 마을, 시립아동 상담소, 원광아동상담실, 구세군 대한 본영 서부 어린이집, 아동복지 시설연합회, 한국어린이육영회, 펄벅아동재단, 사회사업성심회, 어린 농장 등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아동 단체들의 사업의 중점은 아직도 대부분 빈곤과 결손 가정의 아동들에 대한 시혜의 측면에 머무르고 있다. 화려한 성장의 그늘에서 지금도 1만 3천여명에 이르는 결식 아동들, 집안 살림을 도맡아 꾸려가는 6천 9백여 세대의 소년소녀가장 아동,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아동, 학교생활마저 어려운 아동 등이 주요 대상이다.

그러나 오늘의 어린이들이 당면한 문제들은 이외에도 복잡하고 다양하기만 하다. 산업사회의 구조적 폐해가 경우에 따라 어린이들에게 가장 첨예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좀 특이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을 들여다 보자. 유니세프에서는 다음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유아를 위한 부모 교육사업, 도시 저소득 취업모를 위한 탁아사업, 국민학교 아동의 사고능력 개발사업, 아동학대 및 방임 방지 사업 등이 그것이다.

 

2 . 어 린 이 들 에 게 닥 친 문 제 점 들

그러면 우리 시대의 어린이들이 갖는 문제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얼마 전 맞벌이 부부가 열쇠를 채워놓고 출근한 방안에서 화재로 참변을 당한 어린이들이 있었다. 이밖에도 부모 모두가 직장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가스, 교통사고 등의 위험도 항시 도사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주택가나 변두리 등 놀이공간이 부족하여 행길에서 뛰놀고 있는 어린이들, 번지는 과소비 풍조,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의 공공연한 구걸행위, 무방비 상태로 널려있는 폭력, 섹스물의 비디오, TV프로그램,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는 선정적인 잡지들의 표지나 영화광고, 보기에도 소름끼치는 각종 무기 장난감들, 무지한 부모들에게 심신 모두, 욕심 많은 부모들에게 무리한 과외교습 등으로 학대받는 아이들, 친구나 학교 급우들에게 느끼는 위화감이나 열등감, 환경오염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 심지어 성적에의 중압감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적 추행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단순히 해당 아동들의 부모와 가정만의 책임인가. 아니면 사회와 정책 당국의 책임도 있는 것인가.

아동복지법 제 3조를 보면 ㅐ항에는 모든 국민은 아동을 보호 양육하고 사회생활에 적응되도록 육성할 책임을 진다. 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와 더불어 아동을 건전하게 육성할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다. 아동 복지에 관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3 . 아 동 복 지 사 업 의 장 애 요 인 들

먼저 정책의 부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다른 사회복지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그 동안 빠른 기간 내에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려는 성장 일변도의 정책 수행 과정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책이 미흡하다보니 전문가도 양성되지 못하고 아동복지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활발히 개발하지도 못한 채 이미 도시화, 산업화로 진전된 사회와, 이에 노출되어진 아동들을 맞닦뜨리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일반의 인식부족이다. 아직도 대부분이 아동들에 대한 복지를 가정만의 책임으로 알고 있다. 1차적으로 가정의 책임이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산업사회의 딴 모든 것들이 다 그렇듯 가정의 기능도 사회적 기능으로 전환하고 있다. 사회적 체계와 관련됨이 없이 가정 문제들도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장애요인은 이에 필수적인 재원의 부족이다. 거의 모든 아동 단체들이 재원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으며 후원자 모집으로 비용의 상당부분 혹은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또한 사소한 한가지 사업만 벌이더라도 각종 기업과 연대하여 혹은 매스컴의 후원 등으로 벌이고 있다. 이것은 해당 기업의 홍보나 사회환원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린이 단체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해방후, 혹은 6.25후 각종 외국원조 기관의 지원에 의해 벌이던 사업이 그 규모는 해가 다르게 커져만 가는데 외원은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에 있고 군내 재원은 아직 충당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처하는 어려움의 측면도 있다.

 

4 . 권 리 개 념 으 로 서 의 아 동 복 지

종전에는 아동에 대한 보호나 복지가 단순히 자선적이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머물고 있었다. 또한 복지를 담당하는 기관도 종교단체나 민간단체 위주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처만으로는 복잡다양화해가는 사회 속에서 취약한 입장일 수밖에 없는 아동들이 복지 대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59년 UN 총회는 아동복지에 관한 사회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고, 아동들이 한 인격체로서의 건전한 성장과 발달을 할 수 있도록 하는 10개 원칙의 아동 권리선언을 채택했다.

그 주요한 내용은 아동들이 차별대우를 받지 않고 건강하게 발육성장할 권리, 장애 아동이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 적절하게 보장된 환경에서 양육될 권리, 방임, 학대, 착취, 고용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이다. 이 권리선언은 이후 아동복지에 관한 기본틀이 되어왔으며 각국의 아동복지법제정 및 개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후 30년이 지난 1989년 11월, 이러한 아동의 권리에 대한 사회의 의무와 책임을 보다 폭넓게 부여하는 방향으로 권리선언을 보충하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UN총회에 상정,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협약이 국제법으로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20개 국가의 비준을 얻어야만 한다.

주한 유니세프 대표부에서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의 성격과 내용, 우리 국가가 지지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한 일련의 홍보 활동을 89년 5월부터 TV와 세미나 등을 통하여 벌인바 있다. 그리고 9월 22일에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지지하고 한국 아동의 권리를 국제 협약의 규범에 따라 재정의 하며, 국제협약 승인 후 대한민국 정부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하기 위한 전국대회를 한국종합전시장(KOEX) 국제회의실에서 각계 인사 및 시민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하였다.

 

5 . 아 동 복 지 사 업 활 성 화 를 위 한 대 책

그러면 현 시점에서 아동복지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어떤 대책들이 강구되어야 하는가?

첫째, 정책적 차원에서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제적 대책이 수립되고, 이에 따른 각종 복지시설의 건립과 재원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나 시행상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균형과 조화라는 정책 수행이 속성상 어느 한 분야만 급작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탁아소 문제, 도시의 놀이 공간 확보 문제, 절대 불우아동 문제 등 시급한 사안들로부터 해결하고 단계적으로 대처해 가야 할 것이다.

둘째, 민간 복지단체를 적극 육성한다. 아동복지단체 중에는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당국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복지사업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기존의 혜택말고도 정책적인 고려에서 이들에게 지원에서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 이들이 활동을 활성화시킨 후 상호 유기적인 협조 아래 복지사업을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아동복지 사안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홍보한다. 아동 복지는 이제 그들이 가진 권리이자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모두가 관심을 갖고 후원할 수 있도록 캠페인과 홍보 활동을 벌인다.

넷째, 아동복지 분야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한다. 사회 규모의 확대와 다양화로 아동 문제로 자연히 복잡성과 전문성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이에 맞는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시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며 현 복지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 훈련도 대폭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아동복지 단체와 기업의 유대를 적극 권장한다. 현재의 웬만한 아동 단체들은 기업의 후원없이는 사업을 벌이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는 기업 이윤의 사회환언이라는 의미에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므로 이러한 유대관계가 계속적으로 그리고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당국은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섯째, 아동복지 단체들끼리, 혹은 전문가와의 잦은 만남의 자리를 갖도록 한다. 그리하여 복지 사업의 문제점과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연구 결과나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발표하여 정책에 반영되고 사업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

 

6. 그 들 의 바 른 성 장 에 의 중 요 성 은 아 무 리

강 조 해 도 지 나 치 지 않 는 다 .

어린이들이 생리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부족됨이 없이 자라는 것은 그 자신의 생 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이들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가진거라고는 인적 자원 뿐인 곳에서는 그들의 바른 성장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며, 가장 생산적인 분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비행 청소년의 증가와 범죄가 날뛰는 사회 풍조에서는 아동들에 대한 관심과 복지가 더욱 절실한 바 있다. 문제 아동이 자라 비행 청소년이 되고 각종 범죄 유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기 때문이다.

경제발전과 산업사회로의 진전에 따라 가정의 역할은 약화되고 많은 기능을 사회에서 떠맡아야만 하게 되었다. 모두가 관심을 갖고 후원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는 밝고 활기찬 사회건설을 위해서나, 이러한 사회를 후손에 물려주어야 할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부모, 사회, 그리고 당국이 다같이 아동들의 복지를 위해 조화 속에서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린이 예배와 설교

 

1 . 어 린 이 예 배

교회의 어린이 교육 분야에서 예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크다. 일주일에 한 두 시간씩 행해지는 교회의 교육시간 중에서 예배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 된다. 어느 교육학자가 얘기 했듯이 예배는 어린이들에게 있어 훌륭한 학습환경이다. 기독교교육의 의도하는 것이 예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예배가 실제적인 교육의 현장 속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배의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습관적, 형식적인 절차로 끝나버리기 일쑤이다. 어린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 조차도 어린이 예배의 행위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해 버린다. 아니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예배를 관리하고 있다. 예배의 질서 확립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이것은 "예배본다"는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예배의 행위에 대해 말할 때 "예배본다", "예배드린다"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처음엔 "예배본다"는 말이 습관처럼 여겨졌으나 차츰 "예배드린다"는 말로 굳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모두 맞는 말은 아니다. 예배는 봐서도 안되고 드려만 져서도 안된다. 예배는 행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의 행위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할 때 "예배한다"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보는 행위는 미신적인 행위에 비교할 수 있다. 무당이 굿을 하고, 푸닥거리고, 상을 차려놓고 보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행위는 구약적인 제사 행위이다.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렸던 구약시대의 제사행위가 곧 드리는 예배였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배의 행위는 달라졌다.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만이 아닌 받는 행위와 더불어 예배의 모든 절차가 진행된다. 찬송과 기도와 헌금을 드리고 말씀과 축복을 받는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아닌 주고 받는 예배가 행해지고 있다.

어린이들의 예배도 이런 올바른 예배행위의 이해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요즘 일부 교회교육의 현장에서는 이런 올바른 예배행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어린이 예배인지 성인예배인지조차도 구별하기가 힘들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듣고 주기도문만 하면 예배의 행위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예배를 인도하는 자나 참여하는 어린이들도 참 예배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젠 어린이 예배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어린이 예배를 통해 어린이들 스스로 신의 실존을 깨닫게 하고 신과의 교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어떤 가정의 두 어린이가 교회학교를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 이야기이다.

"전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제 곁에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 교회의 예배는 참 좋아요." 초등부에 다니는 어린이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유년부에 다니는 어린이의 이야기는 그와 대조를 이뤘다. "전 예배시간이 지긋지긋해요. 설교도 재미가 없고 지루해서 혼이 났어요. 다시는 교회에 다니지 않을 거예요." 이 두가지의 대답을 통해 어린이들이 예배를 통해 느끼는 결과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어린이예배를 훌륭한 학습의 장으로 생갈할 때 학습이 이루어지느냐 이루어지지 않느냐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연의 신비함을 볼 때 경탄을 금치 못한다. 닭이 모이를 쪼아 병아리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볼 때, 꽃이 피는 모습을 볼 때, 해뜨고 지는 모습 등을 볼 때 탄성을 지른다. 어린이의 예배를 통해서도 이런 경이로운 느낌을 받도록 지도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는 예배시간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사와 함께 있는 어린이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어린이 예배의 순서를 연구하고, 예배의 분위기를 조성해 주며, 모두가 참여자가 될 때 어린이 예배는 자연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교회학교의 현장에서 교육의 전반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지도자들로부터 어린이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2 . 어 린 이 설 교

아동 설교이든 장년 설교이든 설교를 맡은 이들의 책임은 무겁다. 어떤 이들은 설교 준비는 하지 않고 성경책 하나만 들고 올라 서서 "주여 믿습니다"하고 생각나는대로 외쳐대며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전한다는 답변으로 회피하는 설교자들도 많다. 특히 아동설교를 맡은 이들은 설교 준비에 소홀하기 쉽다. 어른들이야 무슨 얘기를 하든지 다 알아서 새길 줄 알지만 어린이들의 두뇌는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의 설교를 부탁받으면 성경말씀 한 귀절 읽고 이야기 한 가지 들려주고 이야기에 근거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여서는 곤란하다.

 



어린이주일 교회교육 프로그램

 

 

어린이 주일은 교회학교 연중 행사표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의 하나일것이다. 아마 이 날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지나쳐버릴 교회학교는 하나도 없겠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은 일반 교육 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육 면에서 보다 더 그 의의가 큰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프로그램을 검토하여 참신하고도 기독교 교육적인 방향으로 이것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하려는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결정적인 것은 아니며 개개 교회학교의 실정에 맞추어 취사 선택 혹은 개조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뜻있게 보내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기 위하여서는 우선 하나의 "특수 주일"로서의 이 주일을 대하는 기본적인 원칙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기독교의 정신과 교회의 목적에 일치해야 하며 또한 그것은 조화를 이룬 것이어야 한다. 즉 어떠한 행사를 마련하건 간에 그것은 종교적이며 계시적이며(어린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펼쳐 보이는 방향의 것) 예배하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또한 기독교 교육의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주일의 행사의 목적은 단순히 어린이들에게 즐거움과 오락을 준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의의가 있는 것이다. 즉 기독교의 진리를 가지고 어린이들의 생의 변화까지도 이룰 수 있는 데까지 그 목표가 높아져야 한다. 교회의 교육적인 사명을 높이고 전체교인들로 하여금 기독교 교육의 프로그램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만 맞는 것으로 준비되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는 어린이 주일의 순서가 어린이 위주였으나 참다운 교회 교육적인 면에서 본다면 교회의 전성원인 어린이, 젊은이, 남녀 장년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의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활동 가운데서 어린이의 위치와 중요성이 강조되는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다. 즉 교회가 마련하는 가족적인 분위기 가운데 전체 교우가 참여함으로써 어린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한 식구라는 의식을 개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그 주일의 특성을 십분 살린 것이어야 한다.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것이 어린이 주일에 적중할 리도 없으며 어린이 날에 관한 것이 부활절에 맞아들리 없는 것이다. 어린이도 하나님이 주신 인격성을 구비했다는 점과 이 어린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뜻에 따라 헌신의 서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이 주일의 프로그램들은 한 두 어린이를 중심해서 계획되어서는 안되며 되도록 많은(전체) 어린이가 참가하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즉 그 날 행사의 강조점이 어느 개인에게 주어져서는 안되며 그룹 전체에 미쳐야 한다. 따라서 활동의 형식은 어디까지나 그룹 형식이 좋을 것이다.

어떠한 프로그램이든지 그것이 교회교육적인 것이 될 때 성구를 포함시키는 것이 좋으며 그렇게 관습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특히 그 사용법에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구는 전체 순서 중에서 동떨어진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적을 향한 포괄적인 것으로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주어지는 성구는 각 연령 어린이에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아름답고 단순하고 통일성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조화"는 기독교 종교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 날의 프로그램들은 변화성이 있어야 한다. 같은 해에 행해지는 여러 다른 행사가 천편 일률적이어서는 안되며 또한 같은 행사를 같은 방법으로 미래의 어린이 날에 반복하는 것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 날의 프로그램은 행복한 요소와 즐거운 요소가 담뿍 실려져야 하겠다. 어린이 날에 대한 기독교적인 깊은 메세지를 가져다 준다는 것과 맑고 깨끗한 즐거움을 준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 모순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서로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겠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가정과 교회와의 유대보다 깊고 굳게 하는 방향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이 날의 행사를 통해서 교회에 속한 각 가정은 기독교 교육 특히 어린이의 종교교육에 대한 교회와 가정의 임무를 인식할 수 있으며 교회와 가정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의식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개체교회에서 실시할 수 있는 어린이 주일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자.

 

1 . 예 배 프 로 그 램

 

1) 어른과 함께 드리는 예배

어린이 교회학교의 예배는 때때로 어른과 함께 드림으로써 그 의의를 깊이 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어린이 주일과 같은 특수 주일 때 가능하며 또 효율적이다. 주일학교의 예배 시간이 아니라 이 날 만큼은 교회의 정식 예배시간에 어른들과 함께 어린이들은 앞 자리에 질서있게 자리잡으며 담임 교사들이 함께 앉는다. 예배의 사회는 원칙적으로 담임 교사들이 함께 앉는다. 예배의 사회는 원칙적으로 담임 목사가 맡으며 일반 예배와 다름없이 도입하고 예배순서의 첫부분에 어린이를 위한 순서가 진행된다. 즉 어린이 중심의 찬송, 목사나 교사가 맡은 아동 설교, 어린이 찬양대의 특별 찬송, 어린이 교회학교 각 부가 준비한 순서들(예 : 성구낭독, 어린이 헌장낭독, 시 낭독 등), 부모대표의 말씀 등이다. 이같은 순서가 지나면 교사는 조용히 어린이들을 이끌고 밖으로 퇴장하며 예배는 어른들만을 계속되게 한다.

2) 어린이들만의 예배

어린이 교회학교만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리는 경우에는 할 수 있는한 모든 순서를 어린이들이 맡아 보도록 계획한다. 이 경우 예배의 주제는 어린이들이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헌신의 순서가 되어야 하며 크리스챤 어린이로서 이웃에의 봉사를 다짐하는 순서가 되어야 한다.

3) 헌신과 입교의 뜻을 가진 예배

어린이 주일 예배는 어린이를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를 받아들이는 순서를 포함하는 것이 좋겠다. 그 형식은 여러 가지 있겠으나 7세가 된 어린이들을 호명하여 꽃을 달아주고 경제적으로 허락이 되는 교회에서는 목사의 서명이 된 성경책을 나누어 주는 것도 그 한 가지이다. 또한 이 날의 프로그램 속에 유아세례를 포함시키는 것도 어느 모로는 의미있는 일이다.

 

2 . 학 습 활 동 프 로 그 램

 

1) 반별 좌담회

초등부는 각 반별로 교회의 어른(교직자나 평신도 중에서)을 초대하여 한 자리에 앉아 그 분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좌담회의 사회를 어린이가 맡도록 사전에 지도하면 더 좋을 것이다.

2) 부별 전시회

각 부별로 학습활동에 관한 전시회를 마련하여 부모나 형제를 초대한다. 이 전시물의 내용은 비단 이미 학습한 가운데서 얻어진 산물만이 아니라 앞으로 학습할 것도 미리 보여 주는 방향으로 한다. 어린이 주일에 대개 학년 초에 있으므로 그 한 해의 학습활동에서 다룰 목표나 문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샘플적인 작품을 준비할 것이다. 이런 계시물은 개인의 작품보다도 공동작품이 더 의의가 있는 것이다.

3) 어린이날 "패전트"

어린날의 의의를 나타낸 패전트(간단한 연극, 무대없이 하는 극)를 준비한다. 이것을 하는 경우에는 등장 인원수가 되도록 적어야 하며 플로트가 너무 복잡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용은 어린이들이 자기들의 생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도록 힘쓴다는 방향으로 이끌어져야 한다. 특히 등장하는 어린이에게 지나친 비중을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3 . 가 정 프 로 그 램

 

1) 부모를 학급에 초대한다.

학습별로 부모님들에게 편지를 내어서 일반 학습 시간이나 특수한 순서(예배, 전시회, 패전트 등)에 초대한다. 초대장을 낸 후에 교사가 한 번 각 가정을 방문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2) 부모님 환영 순서 마련

학급별이나 혹은 전체적으로 부모님을 환영하는 순서를 갖는다. 그 내용으로는 꽃달아 드리기, 간단한 예물(학습시간에 어린이들이 만든 것)드리기, 환영노래잔치 등이 있을 것이다.

3) 어린이 교육을 위한 부모들과의 상담 시간 마련

어린이 주일 한 주일이나 혹은 특정한 시간에 상담 기간을 설정한다.

부모들에게 상담에 관한 안내장을 내고 어린이들의 가정에서의 문제를 교사와 더불어 상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어린이 주일 (The Children's Sunday)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라는 역설적 표현이 있다. 이는 현재의 어린이가 자라서 곧 어른이 될 것이므로 지금 어린이의 마음과 육체가 장차 그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의 영육(靈肉)과 직결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러나 세계 역사에서 거의 예외없이 오랜 세월을 두고 어린이들은 그들이 당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연고로 무시 내지 경지되어 왔다. 이는 모든 인간이 어린이와 장년과 노년기를 거쳐야 되는 것인바, 어린이를 무시하는 것은 결국 인간 스스로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일부를 비하시키는 것과 같다.

  성경은 어린아이에게 신앙 교육을 할 것을 강조한 말씀들(신 6:7; 11:19) 및 어린아이와 같지 않은 자는 천국에 들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마 18:3)등을 통하여 어린이의 고귀함 및 그들에 대한 마땅한 처우를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요약하거니와 어린이들은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인 동시에 그들에게 내일의 역사가 달려 있으므로 올바르게 교육해야 할 대상이다. 동시에 그들은 진지함과 순수함을 갖춘 인격의 주체이기도 하다.

  이에 이를 각성한 몇몇 선각자들에 의하여 세계 각 지역의 교회가 중심이 되어 어린이 주일을 지키어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재고시킨 것은 자랑스런 일이다.  특히 유년 시절의 신앙 교육(信仰敎育)의 감화력은 실로 일평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것이므로 부모와 교회의 교육 담당자들은 어린이 주일을 계기로 이를 거듭 각성하여야 하겠다.

  어린이 주일은 '꽃주일'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1870년 미국의 한 조합 교회에서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꾳,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1. 시기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들의 가능성과 꿈을 존중하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실시되었다. 즉 1856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레오날드 목사가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킨 이래 1868년 미국 감리교회에서 이날을 기념일로 정했으며, 1883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이날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것으로 확산되었다. 오늘날에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6월 둘째주를 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있다.

  이처럼 6월 둘째주가 어린이 주일로 결정된 것은, 일년 중 꽃이 만발한 가장 아름다운 이 시기가 푸르고 아름다운 어린이들의 이미지와 가장 잘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초창기에는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 오다가 1956년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였다. 이는 1946년부터 지켜오던 5월 5일 어린이 날과 근접해 있을 뿐 아니라 어린이 주일의 근본 취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어린이 날의 제정에 대해서는 2. 유래를 참조하라 

 

2. 유래                  

 

  어린이 주일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절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절기로 보편화되게 된 것은 근세에 들어오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어린이가 어떻게 교육되느냐는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물론 교회에서 조차도 이들은 아무 대책없이 방치되고 있었기에, 몇몇 뜻있는 목회자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교회의 특별한 봉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미국 최초의 어린이 주일을 제정한 유니버살리스트(Universalist)제일 교회의 레오날드(G. H Leonald)목사 역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레오날드 목사는 1856년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시키고 어른들에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취지에서, 6월 둘째주를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어린이 주일로 정하고 그날 어린이 주일 행사를 거행했다. 레오날드 목사의 어린이 주일 시행이후 교회들은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그 결과 1868년에는 미국 감리교에서 6월 둘째주를 어린이 주일로 정식으로 승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교단을 달리하는 다른 교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883년 미국의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교파들도 '어린이 주일'안을 결의안으로 통과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린이 주일은 교회 절기의 일부분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음은 물론 어린이라는 호칭조차 없던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우리에게 선행되어야 했던 것은 어린이 주일의 제정보다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대한 바른 인식이었다. 어러한 때에 방정환, 마해송, 윤극영등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린이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색동회는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 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면서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편 초창기 5월 1일이었던 어린이 날이 1927년 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도 인간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내요의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우리 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보다 활발하게 지켜오고 있다. 

 

3. 주요 행사 프로그램                  

 

어린이 주일이 시작된 미국의 경우 각 교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들은 이날 꽃으로 예배당을 장식하고, 꽃다발을 어린이들에게 선물하는등 꽃과 관련된 행사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한다. 이러한 어린이 주일의 행사는 어린이의 마음에 사랑을 심어주고 어린이도 교회의 한 일원임을 인식시키는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는 각 교회에서 시행할 수 있는 어린이 주일 행사 프로그램을 몇가지 소개한다.

 

(1) 어린이 예배

  어린이 예배는 다른 예배와는 달리 사회나 대표 기도, 헌금 기도 등을 교사가 아닌 어린이들이 맡아 하는 예배이다. 이러한 어린이 예배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신들도 교회의 한 지체임을 느끼게 하며, 예배를 단순히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능동적이고 진지한 자세로 임할 수 있게 한다.

  어린이 예배는 1780년 영국의 주일학교에서 처음 실시되었으나, 보다 일반적인 어린이 예배의 실시는 1870년 독일에서 제국 아동 예배 협회가 조직되고 미국 등지에서도 아동 연구가 보다 활발해지면서 부터였다.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어린이 주일에 어린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어린이 예배시 특히 주의할 것은 어린이 예배가 어린이의 재롱 잔치가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임을 인식하여 경건한 가운데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 예배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들만으로 드리는 예배

    주로 주일 학교에서 드리는 어린이 예배의 형식이다. 예배의 진행 순서, 즉 사회, 대표 기도, 헌금 기도 등을 어린이들이 맡아 하도록 하며 교사는 전체적인 흐름만 인도한다. 특히 어린이들이 예배를 드리기 전 진해 순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함으로써 어린이가 하나님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드리는 예배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어린이가 어른과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한다. 평소 철부지로 취급받던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림으로써 비록 작고 어리지만 교회의 한 지체요 일원임을 인식케 하며, 또한 어른들에게도 교회 학교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도록 한다. 이때 사회는 목사가 맡아 일반 예배와 다름없이 진행하되 어린이 찬양대의 특별 찬송, 어린이에 관한 설교, 시낭송등의 특별 순서를 갖는다.

 

(2) 가정 예배

  어린이 주일이나 어린이 날의 가정 예배에는 모든 가족이 참여하되, 특별히 기도와 찬양 등에 어린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어린이에 관한 것들을 위주로 하며 가정 예배의 사회도 자녀가 맡도록 한다.

  가정 예배는 모든 가족이 함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녀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은 되도록 삼가며, 사용할 경우에도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 준다. 어린이들이 가정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이 때 뿐 아니라 평소의 가정 예배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모들은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3) 어린이 시낭송 예배(꽃주일 시낭송)

  어린이 예배의 순서로 시낭송이 있게 된다. 이때에는 부모가 어린이를 위해 지은 시, 어린이가 직접 지은 시, 혹은 어린이에 대한 명시(名詩) 등을 낭송한다. 이때 시대신 어린이에 관련된 성구나 어린이 헌장 낭독을 할 수도 있다.

 

(4) 유아 세례

  어린이 주일 행사로는 유아 세례가 있다. 유아 세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기록에 근거해 볼 때 초대 교회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유아 세례는 어린이를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에서 받아들이는 의식으로 헌신과 입교(入敎)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 아이들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만큼 안전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5) 부모님 초청하기

  평소 부모들은 자녀의 학교 생활에는 많은 관심을 갖지만 자녀의 교회 생활에는 비교적 관심이 적다. 그러므로 어린이 주일을 통해 교회 학교에 자녀를 둔 부모님을 초청하여 부모와 교사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 교회 학교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도를 높인다.

 

(6) 축제의 밤

  일반적으로 어린이 주일에는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위해 장기 자랑, 합창, 무용 등을 준비해 발표한다. 그러나 좀더 색다르게 어른들이 어린이 주일을 축하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참여하는 부모나 교사에게도 일상의 생활을 벗어나 신선함을 맛보며 동심에 젖어들 수 있는 뜻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어린이들의 세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7) 벽지(농, 어촌) 어린이 초청하기

  어린이 주일에는 모든 곳의 어린이가 똑같은 어린이로서의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다. 자칫 소외당하기 쉬운 농어촌 벽지의 어린이들을 초청해 도시의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때 초청된 어린이들의 숙식은 어린이가 있는 가정들이 분담하여 제공하면 경비도 절약되고, 자라난 환경이 다른 어린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통해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8) 불우한 이웃 돕기

  우리 사회에는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불우한 어린이들이 많이 있다. 교회나 가정에서 어린이와 함께 재활원이나 고아원 등을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한다. 또한 이러한 이웃 사랑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9) 풍선 날리기

  이 행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북돋워주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한다.

  방법은 먼저 어린이 수만큼의 도화지와 풍선을 준비한다. 도화지에는 자신의 꿈과 희망,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생활등을 써넣게 하고, 풍선은 불어 실에 도화지를 매단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 푸른 창공에 펼쳐질 수 있도록 어린이 놀이터나 빈터 등 안전하고 넓직한 장소에서 풍선을 날린다. 한편 부모와 교사는 어린이가 도화지에 적어 넣은 사항들이 생활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늘 조언해 주며 평소 생활에도 관심을 갖도록 한다.

 

(10) 기타

  이밖에도 생활 주변이나 성경 역사를 통해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어린이 찾기, 나의 소망, 나의 꿈 발표하기, 우리집 자랑하기 등 교회와, 가정과 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많은 어린이 주일 프로그램이 있다. 

 

4. 관련 성경 자료                  

 

(1) 어린이의 특징

보호를 받아야 함(사 49:15)

가르침이 필요함(잠 22:6)

겸손함(막 10:15)

미숙함(롬 2:20; 히 5:13)

의존적임(살전 2:7)

순전함(벧전 2:2)

 

(2) 어린이의 의무

여호와 말씀을 순종할 것(신 30:2)

훈계를 들을 것(잠 1:8,9)

부모님께 순종할 것(엡 6:1-3; 골 3:20)

노인을 공경할 것(레 19:32)

순전히 행할 것(벧전 2:2)

 

(3) 어린이 교육 목적

영적 성작을 도모함(엡 4:13,15,16)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함(딤후 3:14,15)

주의 진리를 행하게 함(시 86:11)

주의 법에서 떠나지 않게 함(시 119:108)

다른 교훈에 유혹됨이 없게 함(엡 4:14)

천국에의 소망을 심어주기 위함(마 28:20)

지혜를 얻게 함(시 90:12)

학식을 더하게 함(잠 9:9)

허물을 깨닫게 함(욥 6:24)

늙어도 옳은 길을 떠나지 않게 함(잠 22:6)

 

(4) 어린이 교육 방법

자연을 통해 가르침(잠 6:6-11)

단계적을 가르침(사 28:10)

본을 보이면서 가르침(롬 2:21)

비유를 통해 가르침(막 4:2)

노래를 통해 가르침(신 31:19,22)

예배를 통해 가르침(사 2:3)

역사를 통해 가르침(시 78:1-8)

징계를 통해 가르침(딤후 2:25)

실례를 통해 가르침(잠 6:6-11)

교훈을 통해 가르침(사 28:10)

질의 응답을 통해 가르침(눅 2:46)

 

(5) 어린이에게 교육할 내용

과거의 구원 역사(신 4:9)

하나님의 섭리(신 4: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시 34:11)

예수의 사랑(요일 5:2)

인류의 죄(엡 2:1)

성경(딤후 3:14-16)

믿음(왕상 2:1-4)

천국에의 소망(마 28:20)

옳은 길(잠 1:1-4)

진실성(딤전 4:12)

정숙한 마음(잠 5:1,2)

효도(딤전 5:4)

지혜(욥 32:7)

세상의 학문(행 7:22)

 

(6) 어린이의 비유적 표현

겸손한 자(마 18:3,4)

육신에 속한 자(고전 3:1)

미숙한 자(고전 13:11)

확고하지 못한 자(엡 4:14)

 

(7) 어린이의 중요성

하나님의 축복이며 선물임(시 127:3-5)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영원한 생명체임(롬 11:36)

구속의 대상이자, 천국 시민의 그림자임(막 10:13-16)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기초가 됨(마 7:24)  

 

5. 어린이 주일 기념 예배 설교 자료                  

 

   어린이를 이해하신 예수님(막 10:13-16)   

 

  어린이는 어른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로 그들의 행동이 어른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동과 결과만 보고 그들을 꾸짖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설교하시는데 어린이들이 방해가 된다고 하여 그들을 꾸짖어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이해하셨으며 오히려 그들을 불러 앉히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본문 내용을 통해 어린이에 대한 주님의 이해는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① 인생의 기초임을 이해하셨습니다 - 건축에 있어 기초가 중요하듯 인생에 있어서도 그 기초가 되는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기초를 어떻게 다지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는 아이의 인생 전반에 관해 멀리 내다보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② 연약한 시기임을 이해하셨습니다 - 어린 시절은 인생에 있어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시기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부족을 꾸짖기보다 사랑으로 안아 주신 것입니다.

  ③ 그 마음에 있는 신앙을 이해하셨습니다 - 또한 연약하기에 더욱 주님만을 의지하고 그 품에 안기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주님께 나온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는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어린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떤 것입니까? 한 사람의 어린이라도 그들의 영혼을 귀히 여겨 그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심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야곱의 자녀 교육(창 37:1-17)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번째 아들로,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던 사람입니다. 애굽에 팔려가서는 음탕한 여인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신실히 행동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이 모든 어려움을 굳건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요셉을 훌륭히 교육시켰던 아버지 야곱의 공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자녀 교육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 보도록 합시다.

 

  ① 정직하도록 교육했습니다(2절) - 야곱은 하나님의 교훈으로 요셉을 가르쳤으며, 그 말씀 안에서 정직하게 행하도록 요셉을 교육했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았기에 그는 형들의 행동이 부당한 것임을 분별하였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직히 이를 아비에게 고할 수 있었습니다.

  ② 꿈을 키워 주었습니다(5-11절) - 야곱은 요셉이 자신의 꿈 이야기 했을 때 다른 형제를 생각해 요셉을 꾸짖었지만 마음에 그 말을 두고 은연 중에 그의 꿈을 키워 주었습니다.

  ③ 훈련시켰습니다(12-17절) - 그러나 야곱은 요셉이 자신이 기대하고 사랑하는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들이 있는 험한 들로 보내어 그를 강인한 사람으로 훈련시켰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았기에 요셉은 정직하며 큰 꿈을 가진 강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 가정은 자녀에게 어떤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것을 가르치라(신 6:1-9)   

 

  요즘 아이들은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 등 여러 종류의 학원을 다니느라 놀 시간조차 없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이렇게 무리한 교육이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자녀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우리의 자녀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라(1,2,4절) -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② 그의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라(2,6-9절) - 따라서 진정으로 자녀의 행복과 장래를 위한다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자녀의 도리를 알게 하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③ 그가 주신 축복을 가르치라(3절) -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무궁한 축복을 가르쳐 자녀로 하여금 그것을 누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런 중요한 신앙 교육은 소홀히 하면서 세상적인 지식이나 기능 교육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과연 자녀들의 영원한 행복에 도움을 주는 더 중요하고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천국에 들어갈 자(마 18:1-10)   

 

  한 어린 아이를 제자들의 앞에 세우신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의 어떤 점을 보시고 어린 말씀을 하셨을까요.  어린 아이의 특성을 살펴 봄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① 어린이는 순진합니다(벧전 2:2) - 어린이는 외식함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과 감정을 드러냅니다.

  ② 어린이는 겸손합니다(4절) - 또한 어린이는 어른들에 비해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겸손합니다.

  ③ 전적으로 의지합니다(살전 2:7) - 연약한 어린이들은 자신들을 돌보는 부모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의지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처럼 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분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여야 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분야에서 강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함이 인간의 강함보다도 강함을 인정합시다. 크신 하나님께 우리를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6. 어린이 주일특별 자료                  

 

 <기독교 어린이 권리 선언문>

 

  우리는 주 예수께서 어린이를 높여 천국을 상징하시고 어린이를 영접하여 축복하신 본을 받들어 우리는 어린이를 사랑 안에서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그 권리를 선언한다.

  

1. 어린이는 완전한 인격자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린이는 말과 행동과 생활전반에 있어서 어른과 동등한 인권상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2. 어린이는 배울 권리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생활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3. 어린이는 양육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를 위시한 어른들은 그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

4. 어린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과중한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에서 보호하며 위험과 질병과 굶주림에서 보호하고 모든 편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5. 어린이는 평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크고 작은 싸움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되며 압박과 불안감에서 보호하고 그들의 꿈을 해치지 않도록 내적 외적으로 평화를 지켜 주어야 한다.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

  

6. 어린이는 인간으로서 존중하여야 하며 사회의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7. 어린이는 튼튼하게 낳아 가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8.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9.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10. 어린이는 위험한 때에 맨 먼저 구출하여야 한다.

11.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12.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하며 병든 어린이는 치료해 주어야 하고 신체와 정신의 결함이 있는 어린이는 도와주어야 한다. 불량아는 교화하여야 하고 고아와 부랑아는 구호되어야 한다.

13.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여 도의를 존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14. 어린이는 좋은 국민으로서 인류의 자유와 평화와 문화 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자료출처: 갓피플

 

 

그림으로 보는 성서 이야기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며 기다리는 이스라엘 ............................... 동방에 떠오른 신비한 별!

    
 
 
사갸랴에게 나타나 세례요한의 수태를 고지하는 천사................. 세례요한의 출생으로 기뻐하는 엘리자벳!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 수태를 고지하는 천사..........................................마리아를 데려오는 요셉
    
 
 
성령으로 수태함을 알려 요셉을 안심시키는 천사......................................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
    
 
 
성전에서 메시야를 기다렸던 시므온의 기쁨..............메시야를 경배하러 달려오는 동방박사들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동방박사들...헤롯의 핍박을 피해 애굽으로 이사가는 요셉과 마리아
    
 
 
목수인 아버지 요셉을 돕는 소년 예수................성전에서 학자들을 놀라게 한 소년 예수님
    
 
 
회개하라 외치는 세례요한.......................................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는 세례요한
    
 
 
40일을 금식하시며 광야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제자들을 모으시는 예수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예수님.......................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어쫓으시는 예수님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의 샘물을 가르치심
    
 
 
베드로에게 많은 고기를 잡게하심... ....중풍병자를 지붕위로 내리는 사람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산상수훈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솔로몬의 모든 영화가 이 백합화만 못하니라............ 모래위에 지은 집과 바위 위에 지은 집
    
 
 
병든자를 고치시는 예수님.............................................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갈릴리 호수가에서 설교하시는 예수님.....................태풍을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
    
 
 
물 위를 걸어 오신 예수님..............................................변화산 상에서의 예수님과 함께 한 모세와 엘리야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참소하는 유대인들..................................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양의 목자이신 예수님........................예수님께 꾸중을 듣는 마르다
    
 
 
오늘 죽을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부자의 큰소리................................................부자와 나자로의비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수고...............................이방 땅에서 사치와 방탕의 삶을 사는 탕자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탕자........................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나자로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
    
 
 
어린아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
    
 
 
자캐오를 부르시는 예수님.....................................향유로 예수님의 발등을 닦은 여인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을 들어가시는 예수님............................................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심
    
 
 
사람을 칼로 죽이고 달아나는 강도 바라바......................잔치상에 몰려든 가난한자와 저는자와 병든자들
    
 
 
 예수님을 찾아와 거듭남을 질문하는 니고데모..................예수님의 가르침을 못마땅히 여기는 제사장과 서기관들
    
 
 
예수님께 칭찬을 들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리니
    
 
 
등과 기름을 준비한 열처녀의 비유..........................제자들에게 수난을 예고하시는 주님
    
 
 
마지막 성찬식을 거행하시는 예수님..............................닭 울기 전 세번 부인 할 것을 베드로에게 말씀하심
    
 
 
게세마네 동산에서의 피방울 흐르는 기도를 하심................................예수님을 잡으려 오는 로마군병들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후 통곡하는 베드로............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참소하는 유대인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신 예수님.................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무덤 동굴에 장사되신 예수님과 아리마대 요셉....................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 천사를 만난 마리아와 마르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려 급히 동료들을 찾는 제자들..........................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제자들이 모인 곳을 찾아오신 부활의 예수님.................고향에 내려와 있는 제자들을 찾으신 부활의 예수님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시는 예수님..........어린아이 같은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
    
 
 
하루에 3000명을 전도한 베드로................................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
    
 
 
유대인의 박해에 굴하지 않는 사도들.....................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유대인들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빌립...............대제사장의 공문을 받고 다메섹을 향하는 바울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눈이 먼 바울.....................성에서 광주리를 타고 핍박자들을 피해 도망하는 바울
    
 
 
가난한 자들을 돕는 도르가의 선행.............................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나타나 그를 격려하시는 예수님..............우상숭배하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바울의 환상 중에 나타나 전도를 청하는 마게도냐 사람.........................간수장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실라
    
 
 
로마인 벨렉스 총독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 결사대들
    
 
 
아데미 여신의 장사가 훼방받는다고 분노한 에베소 사람들..................바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에베소 성도들
    
 
 
유대왕 아그립바와 베스도 앞에서 복음을 변론하는 바울...로마로 압송중 광풍 유라굴로를 만나 멜리데섬에 표류한 바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는 바울
    
 
 
옥중에서 서신을 쓰는 바울....................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는 디모데
    
 
 
여러 고난과 시련에 직면한 초대 교회들을 근심하는 바울...두루마기 성경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회의 장로들
    
 
 
바울의 서신을 읽는 고린도교회 교인들........고린도 교회 교인들과 작별하는 디도
    
 
 
하느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는 베뢰아 사람들................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밧모섬의 요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3:20).......................'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출처 : 인터넷로고스선교회
글쓴이 : lemalogo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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