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찬양강해

613장 사랑의 주 하나님

늘찬양 2011. 5. 8. 08:52

613장 사랑의 주 하나님

잠 14:32,2011.05.08.늘찬양교회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예수님, 위로의 성령님, 삼위일체 주님 품에 먼저 안긴 성도들 을 바라보며 주께 찬양 하오니 그의 의를 힘입어 소망 중에 살게 하소서의 추모찬양으로 작사자는 충남 출생, 한신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신학석사, 독일 튀빙겐 에베하르드칼스 대학교 대학원 신학 박사, 한신대 신학부 부교수 역임하고, 경동교회 당회

장 박종화(朴宗和;1945~ )목사가 작시하였으며, 찬송 곡은 평북 비현 출생, 한양대 음대 작곡과 및 동대학과 음악학과 졸업, 미국 매네스음악대학원 디플로마과정수료, 서울시립교향

악단 연구지휘자 역임, 현 한양대 박영근(朴英根,1947~ )교수가 2005년 작곡하였습니다.

1절 사랑의 주 하나님 우리 삶을 주관하시니

말씀으로 우리에게 영원천국 알게 하소서

이 세상사는 동안 주의 나라 바라며

그의 의를 힘입어 소망 중에 살게 하소서

1절, 사랑의 주 하나님 말씀으로 주관하사 영원천국 알게 하소서.

옛날에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배가 그만 큰 풍랑을 만나게 되어 무인도에 도착하게 되

었습니다. 배에는 그들이 몇 달 동안 살 수 있는 양식이 있었고, 무인도 섬도 대단히 비옥

해서 농사짓기에 적합해 그 땅에 씨앗을 뿌리면 몇 달 후에 수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씨앗을 뿌리기 위해 땅을 파다가 섬 전체가 금덩이가 그대로 묻혀있는 땅임을 발견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농사짓는 것도 잊고 금을 캐느라 동분서주했습니다. 몇 달 후

금덩이는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양식이 바닥났습니다. 겨울이 찾아와서 씨앗을 뿌릴 수도 없었습니다. 황금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당장 먹을 식량은 고갈되어 엄동설한에 다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장의 물질에 눈이 어두워 장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단 몇

달도 내다보지 못하여 죽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예화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말씀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가 1절이 외치고 있는 중요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영원천국 있음을 알게 해 달라”

는 내용입니다. 인생들이 깨달아야 진짜 중요한 숙제는 당장 먹고 살 이 땅의 문제가 아니

라 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 심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다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 하나님께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5:1-2) 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천국의 비밀을 알려 주셨으므로 이 땅

을사는 동안 천국을 준비하는 자는 지혜롭고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천국”(찬송가 1절)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 천국에 대한 제일 중요한 증언은 성경 말씀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 말씀이 천국의 말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2) 사도 바울도 살아서 천국 삼층천을 체험하고 천국을 증언하였습니다. 스데반도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천국을 보며 담대히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도 친히 천국을 증거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

라”(요 14:2-3) 죽음을 앞둔 예수님은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어야만 하는 당위

성을 제시하기 위하여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 '처소를 예비함'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천국은 다분히 현세와는 다른 공간적 개념으로, 초림과 재림 사이에 주님에 의해서 준비되어지는 '어떤 장소'를 밝히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그가 거할 자리

를 마련한 이후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예비 된 처소로 영접한다는 내용이 주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영속적으로 친교를 나누는 행위가 이루어지게 됨을 밝히고 있습

니다.

3) 천국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본 비유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부분 (19-

26절)은 죽음 이후에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교만하였던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

으며,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 외로움과 육체적 고통을 당하였지만 천국에서 쉼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역전 인생의 모습과 두 번째 부분(27-31절)은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지옥의 고통이 아무리 크고 무섭다할지라도 살아생전 천국과 지옥의 한계를 알고 주님의 복음을 받아드리지 아니하면 부자와 같은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 입

니다. 여기에 죽은 자가 되살아나 이 일들을 말하여도 강퍅한 자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곧 이 땅의 삶을 마칩니다. 그 후에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지금이라도 예수 믿어 천국을 준비하시기 바랍니

다.

2절 은혜의 예수님 십자가의 공로의 지해

구원받은 이 영혼을 기쁨으로 받아주소서

이 세상사는 동안 주의 나라 바라며

그의 의를 힘입어 소망 중에 살게 하소서

2절, 은혜의 주 예수님 십자가 의지하고 나가니 기쁨으로 받아주소서.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그런 설교를 싫어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

니다. 흔히, 지옥은 사람들이 죄짓지 말라고 만들어낸 이야기인 줄 압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한 고통의 장소,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불 못이 있습

니다. 흔히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지옥을 만들어 사람을 집어넣을 수 있겠

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천국은 만들어도 지옥은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만든 곳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을 괴롭히고 타락시키는 사탄과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된 곳인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마귀의 거짓말을 믿고 따르다가 그들과 함께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은 어떤 곳인가? 성경에 나타난 지옥에 대한 말씀을 보면 ① "어두운 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마 8:12 벧후 2:4). 지옥은 괴롭고 슬픔이 있는 비극적인 장소

입니다. ② "지옥불" (마 5:22) "불못" (계 20:14),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1:8). "불꽃" 이라 했습니다(눅 16:24).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가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죄를 범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

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 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7).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막 9:49).

지옥은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은 지옥 설교를 하시다가 "여러분의 손가락을 불에다 대고 있어 보라. 잠시 동안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 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온 몸이 불에 들어가 죽지도 않고 영원히 있을 것을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영원히 고통스럽고 참혹한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주님과 영원한 친교가 있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찬송가 2절에서 그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주 예수님! 십자가 공로 의지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천국 기쁨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 공로의 핵심은 ‘대속의 은혜’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범죄 한 것과 우리가 범죄 한 모든 죄 값을 치루기 위하여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으셨으니 그 피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

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

셨도다.“(사 53:6)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그가 흘린 피가 내 죄를 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구원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가는 길이요 자유케 하는 진리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요 14:6)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마음속에 모셔드릴 때 하나

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길로는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누가복음 16장 24-31절에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청원하는 내용

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거기 있는 나사로를 통해서 물 한 방울만 찍어다가 내 혀를 서

늘케 해주십시오. 내가 지금 이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너무나 목이 탑니다. 목마릅니다. 고민하여 죽겠습니다. 물 한 방울만 먹여 주세요. 아브라함이 말하기랄 안 된다. 네가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끼어있어 오고 갈 수가 없게 되었느니라. 그러면 한 가지 더 청원하노니 그 나사로를 우리 아버지 집에 보내서 증거 하게 해주십시

오. 그래서 내 형제들은 나처럼 이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그것도 안 된다.

저 세상에는 모세도 있고 선지자도 있느니라. 즉 목사님도 전도사님도 있고 집사님, 장로님,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나사로를 우리 아버지 집에 보내어 내 오형제에게 전도를 하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

여기서 부자가 밝히고 있는 최대 메시지는 자신이 지옥에 온 이유는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중심에는 물질을 좇느라 영원한 것 주님의 나라 천국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주님의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좇다 왔기 때문에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repentance), 이것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던 사람

이 깨닫고 돌아서서 바른 길로 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이 성경말씀에 비추

어 볼 때 잘못 되었으면 그것을 접고 새로운 길로 가는 것 나의 말과 행실이 성경말씀에 비추어 볼 때 바로 되지 못하였으면 돌이키는 것, 돌아서는 것, 그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천국에는 회개한 자들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이 있는 천국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고 구원받은 주의 백성

들 많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3절 위로의 주 성령님 영생으로 인도하시니

하늘나라 평강으로 풍족하게 채워 주소서

이 세상사는 동안 주의 나라 바라며

그의 의를 힘입어 소망 중에 살게 하소서

3절, 위로의 주 성령님 하늘나라 영생과 평강으로 풍족하게 채워주소서.

사도 요한은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지중해에 있는 밧모 섬으로 2년 동안 유배되어 그 곳에서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곳에서 위로의 주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천상의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영적 세계를 보게 된 것인데, 그 내용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였습니다. 결혼예식은 예수그리스도와 성도가 연합하게 되는 것의 영적모형이었습니다. 더불어 사도 요한은 영감으로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으며, 그 기록한 서신을 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하여 바른 신앙생활, 용기 있는 믿음의 생활을 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계 1:9-11).

요한 계시록의 핵심은 “미래의 다가올 환난과 핍박이 엄청나지만 우리가 거할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 되어 있으므로 어떤 역경이 다가오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악으로 선을 이기라 그리하면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재림의 그날에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계 21:27, 22:17)는 내용의 격려가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 21장 1-2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위로의 주 성령님께서 사도 요한 외에도 사도 바울에게도 하늘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말하였으며,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는 하늘의 시민권을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하늘에 예비 된 집을 소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고 히브리서 13장 14절에 말하였습니다.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이 사는 세상은 잠시 잠간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며 하늘나라에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을 살면서도 이곳이 영구한 도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늘나라에 완전한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작사자 박종화 목사도 찬송가 3절에서 “위로의 주 성령님 영생으로 인도하시니 하늘나라 평강으로 풍족하게 채워주소서”하며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하며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자격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직무를 보는 청와대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고 신분확인이 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나라의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계시록 21장 27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20).

2.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근거는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찬송가 2절에서도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므로 구원 받은 이 영혼 기쁨으로 받아주소서”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사랑을 맛보지 못하고 부활의 주님을 부인하는 자는 구원함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입니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에 솎아 이단에 넘어가는 자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십사만 사천인의 무리들은 모두 땅에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의 최대 수치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이 사유함을 받게 되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1:18-19).

3. 거룩함으로 옷 입은 영적 신부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예수 믿는 성도라도 현재와 같이 혈기와 정욕과 탐심과 거짓된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곳은 삽시간에 죄악으로 오염되고 이 세상처럼 혼탁한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부같이 정결함으로 단장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있는 동안 우리 자신과 더불어 싸우면서 경건한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아름다운 하늘의 상급이 결정되어 집니다.

아무쪼록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영적 신부인 우리 모두에게 회개함으로 씻어 깨끗함과, 든든히 선 굳건한 믿음과, 사랑의 섬김과 봉사로 가꾸어진 생활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세상을 밝게 하는 성도들,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에서 복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 우리 곁을 떠나서 주님 품에 먼저 안기운

주의 성도 우리 모두 주께 영광찬양 합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 주의 나라 바라며

그의 의를 힘입어 소망 중에 살게 하소서

4절, 성도 함께 찬양할 때 주님 품에 먼저 안긴 성도들도 함께 찬양하리라.

기독교 신앙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찬송’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찬송하는 존재’입니

다. 이사야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

라” 성도의 존재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세와 그의 백성들은 출애굽기 15장 2-5절에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15:2)며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여선지자 미리암은 출애굽기 15장 20-21절에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여호와 닛시,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며 찬양하였으며, 다윗 왕은 사무엘하 22장 2-4절에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고 찬양하였으며, 여호사밧은 성가대를 조직하여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대하 20:14-30), 욥은 극심한 환난과 고난 중에서도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 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욥 1:21)라고 찬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천사들이 찬송했고(눅 2:13), 목자들도 찬송했으며(눅 2:20),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으며(눅 2:28) 사도 바울과 실라는 찬송으로 옥문을 열고 간수장과 그의 가족을 예수 믿게 하는 대 역사를 이루었습니다(행16:19-34).

이렇듯 “우리 곁을 떠나서 주님 품에 먼저 안긴 주의 성도들이 주께 온전히 찬양과 영광을 돌렸듯이 우리들도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찬송가 4절) 주님의 백성들이 되어 합니다. 찬양의 삶! 성도는 이 삶을 위하여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성경에서 찬송의 중요성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종말에 이를수록 성경이 찬송

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 계시록에 이르러서는 찬송은 가히 대폭발이라 할 만

큼 엄청나게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요한 계시록 자체가 재림하실 예수님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찬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계 19:6-8,21:1-2).

장례식과 추도식에서도 우리의 예식은 찬양 받으실 주님 구원과 영광과 능력으로 다시 우리를 부르러 오실 메시야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의 구속 사역과 장차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을 노래하고 또 노래하는 예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

아 주시고, 장차 천국에서 오직 찬송하는 자들로 보좌 앞에 서게 해주실 주님을 찬양하며 남아 있는 이 땅에 후손들에게도 “주의 나라 바라보며 그의 의를 힘입어 소망 중에 살도록”(후렴)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서 찬송이 터져 나오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이 찬송의 깊은 세계에 사로

잡히게 하십시오. 그날이 오기까지 매일 매시간 주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