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의 기적 -기적강해 12
♣ 예수 부활의 기적 ♣
요 20:1-20,2014.04.20.늘찬양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적 사건입니다. 또 사도 바울의 증거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전파가 헛된 것이요, 신자들의 믿음도 헛된 것이며 또 신앙인들은 거짓 증인이 되어 버릴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사망아래 있게 될 것입니다(고전 15:14-1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완성이요 최고의 보루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의와 진리의 승리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불의와 죄와 비 진리가 영원히 승리하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인류의 최대 소망인 영혼 불멸의 보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2000년 전(前)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 세계가 이를 믿고 따르는 것은 부활의 기적이 확실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세 명의 여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장사지내고 삼일 되던 이른 새벽 곧 안식 후 첫날 주의 날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유대나라의 풍속은 장사지낼 때 향유를 전신에 바르고 수의를 입혀 장례 하는 법인데 예수의 장례는 예대로 갖추지 못하였기에 여인들이 기름을 바르기 위하여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았습니다. 이때 세 명의 여인들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누가 여인들을 대신하여 무덤 앞에 있는 돌을 굴러내 주겠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는 군병들이 예수의 무덤을 큰 돌로 막아놓고 인봉(印封)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서 무덤 문에 놓인 돌을 옮겨 놓았고 무덤의 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세 명의 여인들은 무덤 안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어서 당황하며 슬피 울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몰래 가져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우느냐?”고 질문하였고 여인들은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함이니 이다.”(13절)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의 뒤편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야!”하고 다정하게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서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여인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17절)는 부탁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세 여인은 즉시로 부활의 주님을 간증하고자 단숨에 제자들에게 달려가.... 제자들에게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보았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나를 뵈오리라>하셨다.”(막 16:7)하고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막달라 마리아만이 아니라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또 다른 여인들도 함께 부활의 주님을 목격하였던 고로 이들의 말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전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 여인들의 보고를 듣고서 많은 제자들은 믿지 아니하였지만 수제자 베드로는 즉시 무덤으로 달려가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는 것과 또 예수의 시체를 쌓던 세마포가 한쪽에 개켜져 있는 것을 보고 기이히 여기며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근거는 성서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①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먼저 나타나셨고,(요 20:14-18)
② 베드로에게 나타나 보이셨으며,(고전 15:5)
③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눅 24 :36-37)
④ 가룟 유다와 도마가 빠진 10제자들에게,(요 20:19-23)
⑤ 도마가 있는 열 한 제자들에게,(요 20:26-28)
⑥ 고기 잡으러 나간 몇몇 제자들에게,(요 21:1-23)
⑦ 12사도와 500여 형제에게,(고전 15:6)
⑧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의 수많은 성도들에게,(행 1:3-8)
이렇듯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 수없이 많이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이외에도 부활에 대해서 신약성경에는 204회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땅에 살고 있는 50억 인류가운데 1/3이상이 부활을 믿고 있으며 50억 인류의 대부분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일요일)을 공휴일로 지키고 있으니(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웅변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에 대해서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부활이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 가 문제인 것입니다.
Ⅱ. 세상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느냐? 부활하지 못하였느냐? 에 따라서 세상권세가 더 크냐,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권세가 더 위대하느냐? 가 판가름 납니다. 만일 부활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정죄하고 판결한 빌라도의 권세가 더 크고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로마정부의 권세가 더 위대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예수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살아계신 전능자의 독생자라고요? 그렇다면 어찌 세상권세 하나를 이기지 못했습니까? 어찌하여 빌라도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십자가의 철저한 죽음으로 끝을 맺으셨습니까?"라고......그러나 주님의 생애는 십자가상에서의 처절한 죽음으로 끝을 맺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어 무덤에 묻힌 지 사흘 만에 무덤의 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셨습니다. "빌라도여! 그대는 세상권세가 가장 위대한 줄 알았느뇨? 자네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 그것이 최후의 승리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나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장엄한 부활의 승리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예수께서 세상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비록 세상권세가 일시적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우리 주님의 권세 앞에는 철장에 의해 부스러지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일찍이 시편기자도 우리 주님에 대해 예언하기를 "당신이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시 12:9)고 하였습니다.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한때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 최고의 권세를 자랑하던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했지만 기독교를 박했던 로마제국은 얼마 못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히틀러가 나치당을 조직하여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할 당시에는 히틀러의 권세가 최고인 것 같았지만 결국 패망하여 세상 권세의 나약함이 드러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세력이 기독교에 도전했었지만 오늘날 하나님을 대적하는 붉은 용의 세력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세상 권세나 국가 어떤 개인일지라도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는 마치 부드러운 인간의 이마로 커다란 바위에다 박치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위는 끄덕도 없지만 인간의 이마는 깨어져서 피가 흐릅니다(시 2:1-5).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세상권세를 이기셨으며 주님의 권세가 최고의 권세임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성도들과 교회도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Ⅲ. 죄악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
죄악의 권세는 사나운 파도처럼 강둑과 하천을 휩쓸고 흘려 내려오는 홍수의 세력과 같습니다. 그래서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으며(롬 6:23) 죄를 범한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한사람, 곧 우리의 시조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이 땅에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롬 5:15-17).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세상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죄악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 범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었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
25).
덴마크는 국토의 1/3이 해면보다 낮습니다. 원래 바다였으나 바다를 둑으로 막아 그 땅에다 농사를 짓고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둑을 막은 오랜 후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청년 이 억수와 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둑을 거닐다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둑에 구멍이 뚫어져서 바닷물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둔다면 잠시 후엔 코펜하겐 시가 완전히 물바다로 변해버릴 것이 뻔했습니다. 분초를 다투는 초미지급사(焦眉之急事)를 당해 소년은 자기 몸을 희생하여 덴마크의 수많은 생명을 구하리라 결심하고 그 몸으로 구멍을 막았습니다. 시민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하게 잠들었습니다. 이튿날 검은 구름은 걷히고 비와 바람도 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맑은 하늘 아래서 둑을 거닐다가 한 청년의 갸륵한 죽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고귀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덴마크의 많은 생명이 구출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다 물결처럼 밀려오는 죄악의 세력을 멸하고 물리치기 위하여 십자가위에서 죽으셨으며 죄악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도 죄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겐 범죄의 가능성 즉 죄 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저는 죄를 다스릴지라."(창 4:7)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한 인생들에겐 죄 성을 다스릴만한 힘이 없습니다. 즉 죄를 이길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악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심으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이제 죄 성을 다스리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요일 3:8,고전 15:57).
Ⅳ. 사망권세를 이기신 부활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동안 죄의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셨습니다(히 2:15). 아담 이후 오늘날까지 죽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시조 아담도 죽었으며 하나님께 십계명을 직접 받은 모세도 죽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떨어뜨려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처형했던 능력의 종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으며 300년간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죽지 않고 승천했지만 그 외의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신선을 공부하던 노자도 죽었으며, 불사약을 구하던 진시황도 숙초여산(宿草廬山)의 한 움큼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글자를 빼어 버리라"던 나폴레옹도 죽었으며 당시 알려진 세계를 다 정복하고 난 다음 "내가 정복할 땅이 없다"라고 통곡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33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습니다.
누가 죽음을 피할 수 있겠으며 영웅 열사호걸인들 피 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은 인정사정이 없어서 삼대독자도 보아주지 않고 청상과부의 아들도 아끼지 아니합니다. 유망한 청년도 보아주지 않고 갓 결혼한 신랑도 신부도 아끼지 않습니다. 죽음에는 앞뒤 순서가 없고 연극처럼 연기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 저를 벌써 데려가시다니 너무도 억울합니다. 1년만 보아 주십시오!"하고 아무리 울고 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롬 7:24)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고전 15:55)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Ⅴ. 의의 승리를 보여준 부활
주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자들은 불의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외식하는 위선자들이고 시기질투와 남을 죽이려는 마음으로 가득한 자들이며 남을 중상모략하고 양심의 소리를 짓눌러 버리는 자들입니다. 만 일 주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불의가 승리자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최후 승리는 의인이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셨습니다.
수많은 선지사도들의 공통된 질문은 "어찌하여 죄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도모하는 자가 잘 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느냐?"(합 1:13)는 것이었습니다. 의롭고 선하게만 사셨던 예수님마저도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으니 그러한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의가 최후의 승리자임이 역력히 드러났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고난당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디어 믿음으로 승리하십시오. 당신은 반드시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여 년 전에 이스라엘의 한 유대인 의사가 불공대천의 원수인 한 아랍인의 불치의 병을 수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만한 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의사를 현대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자고 아우성쳤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랍인 하나를 살리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 하나를 죽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의사는 예수 십자가의 정신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그런 선한 일을 행했을 것입니다.
십자가 다음에는 부활이 있으며 고난 후에는 승리의 영광이 따르는 것입니다. 부활절에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는 꽃꽂이를 만들어 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아름의 엄두릅 나무와 탱자나무의 가시는 십자가의 고난을 상징하고 아름다운 장미꽃과 백합은 부활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의와 진리는 고난을 겪은 다음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가시에 찔리면서도 백합화처럼 예수님의 향기만 날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을 천군 천사가 인류에게 전파한 사실도 인류역사상 제일 큰 뉴스요, 기적이지만 주님이 무덤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더 큰 기적이며, 뉴스입니다.
이 세상에는 깜짝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탄생과, 부활과, 재림과 같은 큰 뉴스는 없습니다. 다른 소식은 모두가 과거의 역사가 되고 말았지만 주님의 부활 소식은 과거의 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현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쁜 소식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날마다 부활을 체험하는 '안히스테미' '일어나는' 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실패와 좌절과 절망의 그늘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일어나야 합니다. 부활의 기적은 오늘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여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기적의 용기가 201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