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찬양 2022. 8. 7. 18:50

절제의 열매

5:22-24.2022.08.14.늘찬양교회

 

아프리카 낙타의 절제는 유명합니다. 낙타는 누구보다 잘 달릴 줄 알지만 달리지 않습니다. 전사를 태우고 달리면 시속 20의 속력을 낼 수 있는 낙타이지만 시속 5의 느린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서 먼 사막을 횡단합니다. 외부에서 침투하는 열기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마음마저 성급하여 내달리면 낙타는 그 열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타는 행동 하나하나를 절제하며 아끼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낙타는 수도자와 같다 할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분수에서 벗어남이 없습니다. 남이 뛴다고 해서 함께 뛰지 않습니다. 항상 담담하고 일정하게 걷습니다. 동일한 보폭으로 주어진 길을 갑니다. 그런 느림과 비움의 방식으로 낙타는 뜨거운 사막에서 승리자가 됩니다.

 

절제의 열매를 마지막으로 꼽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절제의 열매가 마지막에 언급된 것은 절제가 다른 열매를 완성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아홉 가지 열매의 매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절제는 다른 열매들을 담는 바구니와 같습니다. 다른 열매가 꽃이라면 절제는 그 꽃들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성령의 열매가 맺혀도 담을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절제가 없다면 모든 열매가 쏟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 그래서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절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절제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해서 우리는 건강을 잃고, 절제하지 못해서 죄를 범하고, 절제하지 못해서 인생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 내 삶에서 절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그리고 한 가지씩 절제해 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합시다.

 

. 절제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이유

 

첫째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금방 마귀가 틈을 타서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5절에 보면 부부가 같은 방을 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으로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절제의 열매가 풍성하지 못하면 금방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나이와도 상관없고, 신앙의 연륜관도 상관없고, 지위의 정도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노아는 술을 절제하지 못하다 금방 시험에 들었습니다. 하와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여 시험에 들었습니다. 아간은 탐심을 절제하지 못하여 시험에 들었습니다. 다윗은 음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시험에 들었습니다.

 

둘째는 인생살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절제 없이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923-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연습 도중에 버스 뒤를 쫓아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버스 바퀴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먹고 싶고, 자고 싶고, 즐기고 싶은 모든 것을 억제하고 훈련할 때 금메달의 영광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뿐만 아니라 건강도, 사업도, 공부도, 가정생활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어느 분야에서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지도자로 성공하려면 절제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절제함으로 포로생활에서도 성공하였습니다. 요셉은 여인의 유혹에도 절제함으로 성공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딤전 3: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필수 덕목 중 하나는 절제입니다. 절제하지 못하여 넘어진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셋째는 성숙한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성숙한 인격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4-6)고 말씀합니다.

조금 전 절제를 아홉 가지 열매의 매듭이라고도 말씀을 드렸는데 첫 열매인 사랑에 적용해봅시다. 자녀를 귀엽다고 무조건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우면 버릇없는 아이가 되어 미래를 망치게 됩니다. 기쁨의 열매도 절제가 빠지면 실없는 사람이 되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화평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태만이 될 수가 있고, 인내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무감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습니다. 자비의 열매도 양선도 절제가 있어야 도움받는 사람에게 거지 근성을 길러주지 않습니다. 충성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과로로 쓰러질 수 있고, 온유의 열매도 절제가 없으면 게으른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절제가 있어야 신앙인으로 성숙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어떤 부분에 절제를 해야할까요?

 

첫째는 물질의 절제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욕심이 과하면 결국에는 욕심 때문에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미에서 유적을 조사하던 탐사단이 어느 산속에서 광부들이 기거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두막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두 개의 해골과 많은 금을 발견했습니다. 탐사단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두 광부가 많은 금을 모은 채로 죽었을까?’ 그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두 사람은 금을 계속 캐는 욕심 때문에 북쪽에 일찍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들은 적당량의 금을 캤을 때, 빨리 이곳을 떠났어야 했다. 엄청난 눈보라가 몰아칠 때, 식량은 이미 바닥이 났고, 그들이 힘을 다해 캐놓은 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도구일 수는 있지만, 삶의 목표는 아닙니다. 그런데 주위에 보면 물질을 목표로 삼고 물질의 노예가 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도한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승리하여 하늘의 상을 받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절제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이에 더하여 성령의 사람은 물질 사용도 절제해야 합니다. 사치는 죄악입니다. 사치를 자랑하는 것은 푼수입니다. 카드 사용도 절제해야 합니다. 나아가 일하는 것도 절제해야 합니다. 휴식도 절제해야 합니다. 만사가 적절하고 합당해야 합니다.

 

둘째는 말의 절제입니다.

야고보서 36절에 "혀는 불이요 이것은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10절에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라"고 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5일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전주보다 4%포인트 하락한 24%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며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낸 이후입니다. 즉시 사과는 했지만 좀처럼 수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중요하지 않은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지지도는 물론 대통령의 인격에 흠이 잡힙니다. 더구나 남에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내는 말은 철저히 절제되어야 합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이 있습니다. 상처는 좋은 말로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절제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셋째는 행동의 절제입니다.

향긋한 냄새를 찾아 한 배고픈 파리가 꿀단지에 앉아 꿀을 핥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인 터라 꿀맛에 끌린 파리는, 처음에는 언저리를 돌면서 꿀을 먹다가 드디어 꿀단지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마침내, 꿀단지 속에 빠진 파리는 날개가 꿀투성이가 되어 날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좀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꿀 속에 파묻혀 꼼짝을 못 하는 파리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 어리석은 파리야! 너는 꿀단지 속에 빠질 만큼 욕심이 많았더냐? 욕심이 지나쳤군! 쯪쯪 빈정대는 좀나비 앞에서 파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비는 환히 비치는 등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등불 가까이 가다가 그만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꿀 속에 파묻혀 이 장면을 본 파리가 말했습니다. 너도 어리석은 놈이로구나. 타 죽을 만큼 네놈도 불장난을 좋아하다니! 결국 먹이에 욕심내던 파리도, 불빛을 찾아 헤매던 좀나비도 죽었습니다. (이솝의 우화 파리와 좀나비에서)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에서처럼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성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삼손처럼 사명을 잃고 멸망의 길을 걷고 맙니다.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면 모세처럼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힘을 절제하지 못하면 사울처럼 왕권을 빼앗기고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아간이나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6절에 "혀는 불이요 이것은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절제하지 못하면 그것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중독되어 버립니다.

 

넷째는 시간의 절제입니다.

에베소서 516-17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주의 뜻이 무엇인가?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세월을 아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잘라버리시기 바랍니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바쁘게 사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을 먼저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시간 사용의 최우선순위에 놓는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으로부터 너는 세상에서 내 뜻대로 살지 못했다. 내가 너를 만든 목적대로 너는 살지 못했다. 너는 내가 너를 이 땅에 보내준 목적을 망각하고 살았다.”는 말씀을 듣게 된다면 우리는 그동안 헛된 인생을 산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세월을 낭비하며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세월을 아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어떻게 절제의 열매를

 

첫째 성령님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통제를 받을 때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두 마음이 생깁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원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통제를 받을 때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 행동 등 모든 부분에서 성령님의 통제를 받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사울도 성령 충만을 받을 때는 예언도 하고 절제도 잘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고 악령에 사로잡히니까 월권을 하고, 질투의 화신이 되어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자신이 먼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다윗도 성령 충만할 때는 죽일 기회가 충분한데도 사울을 죽이지 않는 절제력을 발휘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저주받아도 분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받아들이고 절제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자 여인을 보고 음욕이 발동하여 결국 간음하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의 신하까지 죽여 버렸습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 절제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순종함으로 성령 충만함으로 절제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로 자신을 절제시키지 못해도 성령 충만하면 성령님께서 모든 부분에 절제를 시켜 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4:6).

 

둘째는 주님 안에 살아야 합니다.

아담 안에서 자연인은 누구나 제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모든 사람은 세상의 풍조에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에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제의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절제가 나타나야 하는데 나 스스로가 먼저 절제의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령의 열매가 그렇지만 절제의 열매도 절제하려고 애를 쓰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멍에가 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율법적으로 절제하려고 애쓰다 보면 엄청난 멍에가 되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지쳐 쓰러질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자, 율법주의자가 되어 자신이 심판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게 맺는 절제의 열매는 self-control이 아니라 예수님이 통제하는 것입니다. 절제란 내 권능과 능력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과 능력 아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서 예수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주제권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왕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나 감정, 행동의 주제권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느끼고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제의 열매는 풍성하게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라고 말씀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보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얼마든지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힐 수 있습니다.

 

셋째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믿으면 절제의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렇다고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절제의 씨앗이 뿌려진 것입니다. 그대로 버려두면 안 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4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너 자신을 연단하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925절에서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 했습니다.

 

절제를 통해 나타날 결과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힘들게 노동해서 번 돈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흥청망청 술 마시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금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이 행복합니다. 이렇듯 더 좋은 미래를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의 유혹보다 미래의 상급을 보는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었던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입니다. 인생을 길게 봐야 합니다. 그만큼 절제가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실패하면 노후가 부끄러운 인생이 됩니다. 당장의 욕구에 충실하여 절제하지 못하여 축복을 잃어버린 에서가 돼서는 안 됩니다. 인생의 목적을 세우십시오. 사명을 받으십시오... 그런 것도 힘들면 매일 매일 큐티의 삶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적지만 만들어 가십시오!...그러면 여러분이 가는 길이 힘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평탄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절제가 없다면 아이를 망치고 말 것입니다.

·절제가 없는 기쁨은 너무 가볍습니다.

·절제가 없는 화평은 태만이 될 것입니다.

·절제 없는 인내는 무감각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절제 없는 자비나 양선은 의존적 거지 근성을 만들 것입니다.

·절제가 없는 충성은 과로를 가져올 것입니다.

·절제가 없는 온유는 부드러움이 아니라 유약한 인간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절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잘 지키는 지혜입니다. 절제는 이미 우리에게 부어주신 열매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절제는 주신 복을 소중히 지킬 줄 아는 성품입니다.

 

기도문:

거룩하신 주님, 주님을 닮기 원합니다. 나의 삶에 찾아오셔서 거룩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절제를 통해 주님이 주신 축복을 더욱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믿음의 지혜자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