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찬양 2023. 5. 20. 23:29

왜곡의 치유

삼상 1:12-18. 8:3, 2023.05.21.늘찬양교회

 

 

왜곡은 사실과 달리 그릇되게 하거나 진실과 다르게 함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역사 왜곡은 왜곡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억지 주장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타협과 진실과 정의를 심각하게 왜곡한 채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술주정으로 여긴 엘리 제사장의 왜곡의 모습을 보면서 잘못된 왜곡의 출발점은 무엇이며, 왜곡을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 권위와 권위의식

 

권위(權威)'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권위'라는 말은 능력, 보통 자신이 맡은 지위나 직책 때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정당함과 공정함을 지칭합니다.

 

반면 권위의식(權威意識)이란, ‘자신이 다른 사람을 통솔하거나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나 판단을 말합니다. 권위의식과 달리, 권위는 어떤 일에 대해 우월한 능력을 타인에게 인정받아 스스로의 판단을 멀리하고 타인이 자신의 주권을 위임하는 것이 권위입니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면, 권위주의가 되고 스스로 권위를 이용하여 타인을 겁박하면 권위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권위 있는 사람은 타인의 변화를 끌어낸다면 권위적인 사람은 타인의 변화만을 강요합니다.

 

권위 있는 사람은 민주적이면, 권위적인 사람은 독재적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권위적이 아닌 권위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자신이 권위를 소유한 자인 양 스스로 생각하는 것, 자신만이 권위를 지니고 행사할 수 있다고, 늘 마음으로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권위의식에 마냥 젖어 들면 자연히 교만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엘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 이전의 사사 및 대제사장으로서 정치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총괄하는 최고 통치자이며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신령한 면의 어른입니다. 그리고 성전에 엎드려 기도하는 중에 혹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어려운 문제를 상담하여 위로와 격려를 해 주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리는 성전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을 술 취한 행동으로 본 것입니다.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어라.”(14)

술을 끊어라고 권면을 하는 엘리의 모습에서 심각한 왜곡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통성기도가 아닌 묵상기도를 드린 한나를 술에 취한 여인으로 착각한 것은 엘리 제사상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본문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은 오랫동안 제사장 사역을 감당해 오면서 스스로의 교만과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도 5~10년까지는 개척자의 정신을 가지고 겸손하게 목회하지만 10년이 지나는 동안 교회가 부흥하여 중대형교회로 성장하면 교만해집니다.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권위가 아닌 권위의식으로 열차로 바꾸어 타고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달립니다.

 

권위는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고 늘 상석에 앉으려 하는 사람들은 권위가 아닌, 권위의식이 투철한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노회, 총회에서 갖은 감투를 다 차지하려 하며 주님의 정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 지도자들의 모습이 심히 민망할 따름입니다.

 

권위는 공평하고 공명정대하며, 남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정신과 사랑이 가슴에 늘 충만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권위의식의 소유자는 자신이 갑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영적 권위(섬김, 희생, 영적분별, 사랑, 능력)는 잃어버린 채 알량한 권위의식만 가지고 사역을 지탱하려다 보니 (묵상기도를 술주정으로 보는) 잘못된 왜곡이 나온 것입니다. 목사는 물론 하나님의 사람들은 권위의식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쳐 십자가에 복종시키는 경건의 훈련을 힘써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권위적이나 권위의식을 타파하고 자신의 영성을 지키는 길은, 오직 나를 내려놓고 묵묵히 말씀에 순종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 권위를 잃어버린 이유

 

삼상 215절에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고기를 내라.”(15) 이러한 요구는 제사장으로서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화목제의 희생 제물은 반드시 여호와의 몫인 기름 부분이 먼저 번제단에서 태워져 여호와께 드려지고 난 다음에(3:3~5,17:6), 제사장은 자신들의 몫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러한 행동을 하였다는 것은 율법의 절차와 규정을 전면 부인하고 무시하는 극악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고 요구하니까?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고 말합니다. 갑질도 보통 갑질이 아닙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지금 당장 내놓으라고 횡포를 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고기를 팔아서 돈으로 바꾸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소의 제사 타락상이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222절에 보면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여기서 말하는 여인은 당시의 성소 규례를 따라 성소 내에서 일정한 직무를 부여받아 헌신하던 여인들을 가르칩니다(38:08). 주로 희생 제사 시에 반드시 수반되는 일 곧 식기 세척 및 그 밖의 음식물 장만 등의 잡다한 일을 하였던 여인들을 가르칩니다. 두 아들은 제사장의 권위의식과 물질로 하나님의 제사를 오염시키고 여인까지 동침하여 타락시키는 온갖 부정과 비리의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런 소문을 엘리 제사장이 듣고도 말로만 주의를 시킬 뿐 어떤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을 컨트롤 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권위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마치 삶은 소대가리소리를 듣고도 아무 소리도 못 하니까? 한국 정부를 우습게 여기고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마음대로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라의 안보와 국력을 지키듯이 자신의 영성을 지키는 일은 나이가 들어서도 믿음이 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하며 해야 할 영적자세입니다. 저에게는 찬송큐티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만일 찬송큐티와 같은 영성훈련이 없었다면 저도 엘리 제사장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은퇴 목사들이 은퇴 후 권위의식만 가지고 교회 일에 참여하여 감나라, 배나라 하지 말고 자신과의 영성훈련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귀한 모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 안일한 영적자세

 

삼상 32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0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엘리가 아무리 육신으로는 쇠하였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요 사사인 것만은 틀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라가 부패하고 외부의 침략이 잦을 때 대제사장으로서, 사사로서 국가의 안위와 자신의 영적 각성과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위해 하나님의 전에 나가 금식하며 밤샘 기도를 해도 시원찮은데 엘리는 늙었다는 핑계로 자기의 처소에 드러누워 있는 것입니다.

 

514SBS 뉴스에서 사회서 고립된 청년이 54만명이나 되며 이들은 삶에 매우 불만족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노인들의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는 시점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립의 문제 또한 5.0%를 넘어섰다고 밝혔습니다.

 

현장에서는 일거리가 넘쳐나고 일할 사람은 없어서 난리인데 힘들고 어려운 일 냄새나는 일은 쪽팔려서 못한다며 방구석에 틀어박혀 타인과의 교류를 끊고 살아가는 것은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불 때 큰 불행이자 큰 손실입니다.

 

청년들의 고립과 엘리 제사장의 영적 방임이 잘못된 자기왜곡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생각에 아이들을 너무 귀하게 키우다 보니 자생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인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환란 없이 성장한 사람은 좋은 믿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고난과 시련의 아픔이 있습니까? 기뻐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더 필요로 하신다는 것이요 앞으로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코, 환경과 나이 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어제도 회사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면접을 보는 상무 이사님도 78세 정도의 나이였으며, 저 또한 만 65세의 나이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쉴 나이임에도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에 평생직장이 노년의 최고 행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이 지금 사람들에게 만사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면 제대로 된 제사장의 본분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뜻과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편하게 침소에 들어가서 잠자고 있습니다. 반면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전에서 기도하며 잠을 자고 있습니다.

 

목사는 말씀으로 선포하며 가르치는 사명자입니다.

마치 자신이 주님을 대신한 권력자로 둔갑하여 성도들의 눈과 마음을 흐리게 하거나 자신에게 맹종하도록 강요해서도 안 되지만 하나님 일에 너무 무관심해서도 안 됩니다. 나름대로 후계자를 키우거나 혼자서도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꾸준히 영성을 관리하고 키우는 일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사실 본문 말씀을 통해 많은 물질을 주면 한나의 위로를 얻을 줄로 알았던엘가나의 모습을 통해 남편들이 외부에서 돈만 벌어오면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는 줄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같은 생각은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왜곡된 생각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나 역시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것에대하여 비교의식, 원망의식, 패배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왜곡이 브닌나와의 비교의식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비교의식으로 인해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여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실수를 범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한 번 점검해 봅시다.

자녀들 교육문제, 직장문제, 결혼문제는 극성을 부리면서 교회생활 신앙생활에는 등한히 하고 자녀들이 탈선의 자리에 있음에도 적당히 넘기고 예사롭게 여기는 모습, 더 나아가 왜곡하면서까지 자기의 허물을 덮으려는 그런 잘못된 모습은 없습니까?

엘리 제사장처럼 영적 눈이 감겨져 있지 않도록 날마다 깨어 기도생활, 믿음생활, 찬양생활에 힘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