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성서신학

[스크랩] 빌라델비아(Philadelphia)

늘찬양 2007. 7. 31. 18:02
빌라델비아(Philadelphia)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3장 7절)


이 지역은 리디아(Lydia) 왕국 시대에 칼라테부스(Callatebus)라는 이름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 후 B.C. 159~138 페르가뭄(pergamum, 성서의 버가모)의 앗탈로스(Attalus) 2세, 필라델푸스 (Philadelphus)는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지역에 도시를 건립,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라델비아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합성어 로써 '형제애'를 의미한다.

주후 17년과 23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이 도시가 대파 되어 이 도시에는 아무런 고대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이미 마을이 들어서 있어 발굴도 불가능하다. 다만 기독교 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 하나가 파괴된 모습으로 나마 남아있다. 이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져 사도 요한에게 바쳐졌다.

비교적 높은 4개의 도움으로 구성된 이 교회의 벽에는 11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있으나 그나마도 점차 마모되어가고 있어 방문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충성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곳은 사데, 버가모 그리고 라오디게아와 히에라 볼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이들을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 였다. 이곳은 농업과 가죽제품, 직조업이 주요 산업이며 농산물로는 포도를 재배 하였는데 소아시아 내의 300여 교회에서 쓰는 성찬식 포도주를 무료로 공급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

지금도 이 곳에 수십km의 포토밭이 펼쳐져 있다. 또 빌라델비아는 아랍인들의 침략속에서도 끝까지 남아있었던 기독교의 마지막 보루였었다

 

빌라델비아(Philadelphia)

뜻: 형제 우애
리디아(Lydia) 왕국 시대에 칼라테부스(Callatebus)라는 이름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 후 B.C. 159~138 페르가뭄(pergamum, 성서의 버가모)의 앗탈로스(Attalus) 2세, 필라델푸스 (Philadelphus)는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지역에 도시를 건립,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라델비아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합성어 로써 '형제애'를 의미한다.

필라델피아 교회유적지 사데에서 4키로 동쪽의 소아시아 루디아 성읍. 소아시아 고원지대와 서머나 사이의 중요한 산업도시.
B.C 138년 이전에 버가모왕 아탈저스 빌라델 버스가 세운것으로 언제 교회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계록에는 일곱 교회의 하나로 나타난다(계3:7-13).일찌기 순교자가 생겼고 1300년 이후 대감독 구역이 되었다.

주후 17년과 23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이 도시가 대파 되어 이 도시에는 아무런 고대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이미 마을이 들어서 있어 발굴도 불가능하다. 다만 기독교 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 하나가 파괴된 모습으로 나마 남아있다. 이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져 사도 요한에게 바쳐졌다.

일곱 교회중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는 교회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력한 것 같으나 내실이 있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건실한 신앙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쳤으며, 여러 가지 신앙의 시련이 닥쳐와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인내와 성실로써 현실을 잘 극복해 나갔다. 그래서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약속된다. 오늘날도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습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제공)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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