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찬양강해

399장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늘찬양 2024. 7. 13. 21:12


399장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찬송가강해)


https://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15624

 

【김영수 목사 찬송가 강해】 399장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 본헤럴드

가사가 물 흐르듯 서술적으로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다.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1-3절), 그 이유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1절), ‘갈길 인도하시며’(2절), ‘언제나 함께하시기’(3절

www.bonhd.net

 

 

399장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41:10)

 

가사가 물 흐르듯 서술적으로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다. 어린양들아 두려워 말아라(1-3), 그 이유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1), ‘갈길 인도하시며’(2), ‘언제나 함께하시기’(3)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걸어가리라(후렴)고 고백하고 있는 인도와 보호주제 찬양으로 와이오밍주 샤이엔(Cheyenne) 출생으로 20세기 초 가장 능력 있는 부흥사요 설교가 중의 한 사람인 폴 라더(P.Rader;1879-1938)목사작사작곡하였다. 처음에는 후렴만 발표하였는데, 나중에 1-3절을 추가하였다.

폴 라더(P.Rader) 목사는 시카고에 있는 무디 교회에서 목회하였으며, 1922 시카고 복음 예배당을 짓고 11년간 목회하였다. 그는 수많은 복음 송을 작사, 작곡하였다. 특별히 기독교방송의 개척자로서 시카고 라디오방송에서 매 주일 14시간씩 그리스도교 프로그램을 방송하였다. 그는 이 방송을 WJBT ("Where Jesus Blesses Thousands"․「그리스도께서 청취자에게 복 주시는 곳이라고 불렀다.

 

 

1절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주님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늘의 땅의 모든 권세로

그 양떼들을 항상 지키신다

 

1.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어린 양떼들을 돌보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여호수아와 이사야 그리고 바울이 사명을 받고 주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의 주된 원인은 혼자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개인 혼자서는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탄이 주는 가장 큰 시험은 이제 나 혼자라는 생각을 우리에게 집어넣어 외롭게 하고 지치게 하여 사명이나 계획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도 혼자 있을 때 가장 힘이 들었습니다. 딤후 410~11절에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바울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으면 갔고, 갔고, 갔고를 연발하며 마가를 데려오라고 하였을까요? 이처럼 혼자라는 생각은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불의 사자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나이다.”(왕상 19:4)고 고백을 하였을까요?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어도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도 기도를 많이 해도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이 닥칠 수 있습니다.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심한 우울증에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너무 마음이 상하고 아파서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찬송가 1절의 가사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그 양 떼들을 항상 지키시는 목자 예수님(찬송가 1)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목자 되시는 여호와를 기억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1-6) 찬양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많은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서 깊은 좌절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을 때 그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18:9-10) 위로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우리를 위로해주십니까? 그 이유는 첫째 이사야 533절에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간고와 질고를 당하셨으며, 심지어 십자가에 버린 바 되었습니. 그런 크나큰 버림의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셨던 분이시기에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목자같이 돌보시며 위로하시며 평안으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요한복음 1010-11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주의 어린 양들인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꼴을 얻도록 늘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푸른들 쉴만한 물가 아름다운 초장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과 사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해서도 안 됩니다. 임마누엘 주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며(1:23),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고(8:28), 신상의 전진을 멈추지 맙시다. 마음과 생각을 가다듬고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그 말씀을 따라 준행하는 사람이 됩시다. 자신의 꿈이 곧 하나님의 꿈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찬송가 1절은 거듭 말합니다.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2절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주가 네 갈길 인도하신다

마라의 쓴 물 달게 하신 주

그 동산에서 피 땀 흘리셨네

 

2.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신 주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어 기도하신다.

 

사람은 배가 고플 때는 밥을 먹어야 하, 목이 마를 때는 물을 마셔야 합니다. 더욱이

무더운 여름철에는 목이 마르기 때문에 자주 물을 마셔야 탈수증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 가나안을 향해 3일 길을 걸어갔지만 물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이곳은 수르 광야로 좀처럼 물이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을 유아를 제외한 60만 대군이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여간 큰 고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야 그런대로 참으며 걸을 수 있다. 손 치더라도 갓난아이를 업은 엄마라든지 3-4세 살 된 어린아이들이 광야 3일 길을 물 없이 걷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던 차에 한 곳에서 물을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은 정신없이 물가로 달려가서 물을 마시려 했습니.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물이 얼마나 짜고 쓴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발견한 물인데 그만 그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때 이들이 느꼈던 안타까움과 억울함과 실망감은 대단하였을 것입니다. 이 같은 실망감은 드디어 분노와 원망이 되어 모세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24절에 있는 대로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물을 우리가 어떻게 마실 수가 있겠는가? 당신이라면 마실 수 있겠는가?”하며 따지는 것입니다.

 

3일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홍해의 기적 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출애굽기 15장에 있는 것처럼 홍해의 노래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양하였건만 목마름이라는 고통 앞에 이들은 모세에게 왜 우리를 애굽에서 몰고 나와 이 고생을 시키느냐?”며 원망하고 있습니다.

 

지도자 모세는 이러한 백성들의 원망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사 저 나뭇가지를 취하여 물에 던지라 그리하면 그 쓰고 짠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리라(25). 이 명령을 쫓아 모세가 나무를 주워 던지니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온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물을 마시고 목마름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큰 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가 문제해결을 위하여 기도하였듯이 예수님도 인류의 죄를 해결하므로 그 속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도록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습니다. 그 산에는 감람나무가 많아서 감람산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달빛은 동산 숲속에 스며들고, 산새들의 울음소리도 그쳤지만 예수님께는 참으로 비통한 밤이었습니다.

 

열 한 사람의 제자가 모두 예수님 마음을 알만했고, 또 알아야만 하였으나 한 사람도 예수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겟세마네를 향하여 같이 발길을 옮기면서도 그들은 그들대로의 단꿈을 가졌고, 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으면 예수님께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너무 고독하셨습니다. 동산 아래에 여덟 제자를 기다리게 하시고 그래도 그중에 가장 가깝게 지내시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을 데리시고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세 사람 역시 주님의 심정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친히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26:38) 말씀하셨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사시다가 인류를 위하여 가시는 마지막 길에 동행할 사람은 고사하고 그의 마음을 이해할 사람마저 한 사람도 없는 예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민을 모르고는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십자가의 복음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9) 기도하신 이후 마라의 쓴 물에 던져진 나뭇조각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던지셨습니다. 그 결과 마라의 쓴 물이 단물로 바뀌었듯이 인류의 죄도 사함을 받고 영생함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줌으로 생명의 길을 여신 예수님께서 인류를 향하여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겪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과 시련의 환난이 다가올 때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듯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신 주님께 나가면 우리의 가는 길이 평탄케 될 것이요(14:27). 잔잔한 강같이 될 것입니다.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사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듯이(78:14, 26:9) 주님께서 저 천국 문 이르러 주님 보좌 우편에 (16:19, 8:1) 앉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오직 믿음으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주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백성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주님 언제나 함께 하신다

고난과 역경 환난 중에도

능력의 주님 너를 지키신다

오직 믿음 믿음으로 두려움 없으리 오직 믿음

오직 믿음 믿음으로 두려움 없으리 오직 믿음

 

3, 고난과 역경 환난 중에서도 능력의 주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사 지켜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이후 약속의 땅 가나안 땅까지 가는 동안 저들은 먹을 걱정, 입을 걱정, 마실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옷도 신발도 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60만 대군 속에는 연약한 아이들과 엄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 땅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의지하고 바라며 믿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419절 말씀에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을 지키면서 그들을 대신하여 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격당하면서도 밝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두움을 걸어간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밤길에도 불기둥이 저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라는 하나님의 파라솔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군하는 머리 위에 떠서 저들을 덥지 않도록 지켜 주었습니. 이스라엘을 밝은 길로 인도하던 불기둥은 원수가 추격할 때 뜨거워서 못 오게 막아주십니다. 전진하다 쉴 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던 구름 기둥은 멀리서도 열방들이 바라보고 두려워 떨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불기둥과 구름 기둥 안에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두려워하였겠습니까?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있으면 문제 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지금같이 어려운 경제위기 속에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더불어 말씀과 찬양과 기도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있을 때 서로 껴안고 기도하며 찬양하므로 감옥에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지고 간수장과 그의 가족이 예수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16:25-26).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잡아 일으켜 걷게 하고 뛰게 하였습니다(3:6-8).

 

우리 속에 이런 기적의 역사가 계속될 수 있는 영적 비결은 내 속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살아 역사할 때 가능합니다. 특별히 고난과 역경과 환난 중에도 능력의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늘찬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고난과 역경과 환난 속에서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과 역경과 환란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다시 시작하는 힘’(전병욱 목사)의 책에...

 

고난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만든다.

동시에 고난의 풀무불은 좋은 것은 하나도 해하지 못하고

오직 나를 묶고 있는 결박의 끈만 태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바닥체험은 나쁜 것을 다 태우는 정화작용이 있다.

바닥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지금 다시 시작하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한 바닥은 끝이 아닌 다시 일어서는 터닝포인트(전환점)입니다.

우리의 뜻과 생각대로 걸어왔던 인생의 전반전을 지나 하나님과의 동행을 시작하는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삶이 바닥을 치고 모든 희망의 빛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때,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지나온 날들의 은혜를 반추해 보십시오.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바닥까지 당신의 손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

찬송가 3절에서는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주님 언제나 함께 하신다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인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만 붙들면 됩니다. 주님 사랑만 붙들면 승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