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장 주님 앞에 떨며 서서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합 2:20)
가사가 간단하면서도 곡이 밝고 은혜가 넘쳐서 합창곡으로 불려도 아주 좋다. 4세기 그리스 정교회에서 널리 불리던 찬양으로 제라드 모울트리(G.Moultrie;1829~1885)가 영역하였고, 이를 목원대 총장을 역임한 박봉배(朴奉培;1931~ )목사가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찬송 곡은 프랑스 캐롤 곡으로 1906년 영어찬송가집에 실렸다.
1절 주님 앞에 떨며 서서 세상 생각 버리고
고요하게 머리 숙여 주의 은총 빌어라
하늘 보좌 버리시고 우리 위해 오신 주
1절 하늘보좌 버리시고 오신 주 앞에 고요하게 머리 숙이세
오늘 본문 하박국 2장 20절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는 말씀하고 있으며, 시 11편 4절에서는 “여호와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성전에 계시니 너희는 그 앞에서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우상과 잡신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의 신 앞에서 시끄럽게 떠듭니다. 무당들의 예를 보세요! 내림굿을 받겠다며 요란하게 징을 쳐대며 방울소리를 울리며 덩덩쿵 덩덩쿵 춤을 춥니다. 굿판한번 가면 정말 귀가 찢어질 지경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요란하게 징과 꽹과리를 치고 방울을 흔들어야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고 신을 내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은 잡신을 쫓는 무당들처럼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마 6:5). 그랬다가 주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59장 1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에서는 조용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스가랴 2장 13절에는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40장 34절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7장 2절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10장 4절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은 여호와께서 성전에 계시므로 그의 영광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진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보좌가 진정한 성전입니다. 더불어 꼭 기억해야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며 모든 곳을 두루 살피시기 때문에 온 천하가 하나님의 보좌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 앞의 어전입니다. 바로 내 삶의 터전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어전에서(코람 데오) 사는 자세로 잠잠하게 주의 영광을 구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없도록 3가지 모습을 잘 준비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첫째,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개인 신앙).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로 주님 앞에 서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우리의 행동을 달아 보신다고 하였으며(삼상 2:3,단 5:24-28), 마음을 저울질 하신다고 하셨으며(잠 24:12),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하셨습니다(잠 16:2,21:2). 그러므로 주님 나타나실 때에 점도 없고 흠도 없고 부끄러움과 책망 받을 것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계 16:15,벧후 3:10-14,마 22:11-13,7:22-23)
둘째, 책망 받을 일이 없어야 한다(직분과 사명).
마태복음 25장 26절과 30절에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며 한 달란트 그대로 가지고 온 종을 질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달란트)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더 가지고 온 종과 같이 풍성하게 남기어서 주님께 드림으로 주님으로부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마 25:23).
셋째, 자랑할 것이 있어야 한다(열매).
로마서 15장 17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또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 앞에 자랑하며 내놓을 결과물 즉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6절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말씀하였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되어서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는 부끄러운 모습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믿음. 소망,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만들어서 주님 앞에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절 왕의 왕이 되신 주님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 몸에 나시어서 우리 주가 되셨네
하늘 양식 넘치도록 우리에게 주시네
2절, 왕의 왕 되신 주 사람 몸에 나시어서 우리 주가 되셨네.
‘마리아’라는 이름의 본래 뜻은 ‘괴로움’입니다. 실제로 그녀의 일생은 슬픔과 아픔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고난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첫 번째 고난은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상태였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누가복음 1장 27절입니다.?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 1:28)며 축복의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괴로움의 주인공에게 어찌 이런 인사가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리아는 너무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하며 가슴을 조아립니다. 천사는 다시금 마리아에게 “마리아야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위로하며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며 반문하였습니다. 다시금 천사는?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5-37)고 증거 하였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약혼한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게 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불명예스럽고 위험한 일이 닥쳐 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주의 계집종이오니 나야 어떻게 되든지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주시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눅 1:38)는 고백의 찬양을 하였습니다. 생명을 내건 찬양의 고백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과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믿고 있었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기에 이렇듯 담대하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맡기고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따르겠나이다. 만족하겠나이다.”는 고백의 찬양을 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신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48, 52절)
마리아는 왜 자신을 비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원래 ‘비천한 자’라는 뜻은 가난한자, 압박(눌림)받는 자, 겸손한 자를 가르칩니다. 이 고백을 통해 마리아의 상태에 대하여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녀는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 그녀는 높은 지위도 없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시골처녀입니다. / 그녀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 더구나 그녀는 갈릴리 나사렛동네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 갈릴리이며, 갈릴리 중에서도 더 낙후된 동네가 나사렛동네입니다. 어디 가서 갈릴리 나사렛출신이다 하면 사람들이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소외된 가난한 마을이었습니다. 이렇듯 마리아는 하나님도 사람도 주목할 만한 어떤 것이 없는 비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천한 여인을 하나님이 돌아보셨습니다. 하나님이 돌아보시니까 그 날부터 이 여인의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8). 할렐루야!
둘째, “긍휼하심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했습니다.”(49-50절)
마리아는 “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큰일을 행하셨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대로 임한다.”고 찬양하였습니다(49-50절). 여기서?큰일을 행하신다.?는 말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대대로 “그의 긍휼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것은 하나님은 모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항상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서 ?큰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 가운데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들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붙드시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는 고백으로 주님께 나가야 합니다.
셋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38, 55절)
본문 55절에서 마리아는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고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할지라. 네 후손이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네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는 네 아비의 하나님이 됨이니라.”는 언약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셨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 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런 능력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마리아에게 선포하였을 때 동정녀(童貞女)의 임신은 이성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37절)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선언할 때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고 고백하였으며, 또 55절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을 분명하게 이루신 하나님께서 처녀의 잉태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고 고백하며 찬양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 이루어 진 것을 믿고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마리아는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다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51절), 주린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자를 공수로 보내시는 분이시라고 찬양했습니다(53절). 이 귀한 고백과 찬양을 통하여 이 땅에 “하늘양식이 넘치도록 부어지는 은혜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찬송가 2절,3절)
끝으로 하나님은 왜 아기 예수님을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그리고 초라하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말구유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들,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 모든 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38년 묵은 중풍병자 같은 자들, 부잣집 대문에서 가장 천대를 받으면서도 음식 부스러기로 연명하였던 거지 나사로, 외진 곳에서 숨어살던 문둥병자들, 그리고 세리와 창기들같이 가장 천한 자들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알렐루야! 알렐루야!”(찬송가 4절) 주께 찬양하며 주님 앞에 나가는 귀한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절 하늘천사 무리지어 행진하며 나가니
영광스런 하늘나라 참된 빛이 퍼지네
마귀 권세 물러가고 밝은 세상 되리라
3절, 하늘천사 무리지어 행진하며 나가니 마귀 권세 물러가네.
찬송가 3절에서는 “하늘천사들이 무리지어 행진하며 나갈 때에 영광스런 하늘나라 참된 빛이 퍼지며 마귀권세 물러가고 밝은 세상 되리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탄에 관하여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는 사탄을 멸하시는 자이시며,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먹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다가와 시험하였습니다.
옛날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한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3절)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4절)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떡이 필요하지만, 떡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통해서 온 몸과 영혼을 강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영광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지극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게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6-7절)고 했습니다. 마귀는 “왜 고통스런 십자가를 지려고 하느냐? 나에게 절 한번만 하면 될 것인데”라고 속삭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은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8절)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쉽게 사탄에 입을 맞추거나 무릎을 꿇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섬기고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고, 사람의 방법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능력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마귀는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9-11절)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 어떤 한 사람이 성전 꼭대기에 올라서더니 수십 길 낭떠러지 기드론 골짜기, 절벽 아래로 떨어졌는데 죽지 아니한다면, 사람들이 그를 메시아로 받아줄 것이라고 하면서 능력에 대한 시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처음과 같이 신명기 6장 16절 말씀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며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3절 말씀에 기록된 대로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한번 떠나간다고 해도 그것으로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틈만 보이면 다가와 미혹하고 시험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말로만 유혹하고 자기의 종으로 삼기 위한 술책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처럼 우리들도 마귀 권세 물리치고 밝은 세상 만들어 영광스런 하늘나라 참된 빛이 퍼지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것처럼 “오늘도 살아있고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무장하고 항상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더불어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하고, 기도하여야 하고, 찬양의 능력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을 통하여 놀라운 세상이 밝은 세상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4절 하늘천사 주님 앞에 엎드려서 절하고
소리 높여 찬송하며 주의 이름 기리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께 찬양합니다
4절, 하늘천사 주님 앞에 엎드려 알렐루야 소리 높여 찬송하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실 때에 아기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한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허다한 천군과 천사”(눅 2:13)라고 묘사함으로써 많은 수의 천군 천사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천군이 천사와 함께 찬양한 내용을 우리가 즐겨 부르는 21세기 찬송가 118장, 125장, 126장 1절의 가사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광나라 천사들아 땅 끝까지 날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주 나심 전하라
경배하세 경배하세 나신 왕께 절하세“ (찬송가 118장)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산과 들이 기뻐서 메아리쳐 울린다.
영 - 광을 높이계신 주께, 영 - 광을 높이계신 주께 (찬송가 125장)
“천사 찬송하기를 거룩하신 구주께 영광 돌려보내세 구주오늘 나셨네 크고
작은 나라들 기뻐 화답하여라 영광 받을 왕의 왕 베들레헴에 나신 주
영광 받을 왕의 왕 베들레헴에 나신 주” (찬송가 126장)
성경과 찬송을 통하여 천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메시지로 천사들의 합창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평강으로 사람들 가운데 넘치게 하신다.”는 복음의 핵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영광 없이 땅의 평화를 생각할 수 없고, 땅의 평화 없이는 하늘의 영광도 가리게 되기 때문에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고자 베들레헴 부근에서 한 밤에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서는 "목자들이여,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0-12)고 전하였습니다. 그 순간 목자들은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렇게 대망 하던 메시야가 탄생하셨다니, 이제 새 시대가 열리는구나! 얼마나 놀라운 소식인가?”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전언(傳言)이 끝나자, 이번에는 하늘의 찬양대의 노래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평화로다."(눅 2:14)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아마, 이 찬양은 이 세상에서는 감히 들을 수 없는 최고의 화음과 감동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천국에서 이러 한 찬양을 날마다 듣게 될 것입니다.(할렐루야!) 천국에 가면 노래를 잘 못 부르던 분들도 뛰어난 목소리로 천사들과 함께 찬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시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지방의 악사(樂士)들이 그 집에 모여들어 노래는 것이 상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외양간에서 태어난 아기를 위해서는 아무도 노래를 불러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신 하나님이 온 천군 천사들을 동원하여 최고의 찬양을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첫 번째 성탄은 너무나 찬란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먼 나라에서 온 동방박사들이 아기께 경배하고 너무나 값지고 화려한 선물을 드립니다. 아마, 처음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대단히 낙심하는 마음이었을 줄 압니다. “아니,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자에게는 가는 곳마다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전혀 방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적가운데 화려한 방을 허락하시는 등, 형통한 길을 열어주셔야 마땅하지 않은가? 세상을 구원할 구주라고 하면서 낳을 곳이 없어서 이런 더러운 마구간에 태어나게 하시다니, 가뜩이나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한 것도 너무나 부끄러운데, 이런 비참한 출산을 하게 하시다니,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하며 두 사람은 의심과 회의로 절망감에 싸였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나 호적 하러 온 사람들이 마구간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기 위해 무슨 대단한 구경이나 난 것처럼 수군거리며 떠들 때는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이 찾아와 천군 천사들의 전한 말과 하늘의 찬양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 줄 때…, 이어서 별을 따라 찾아온 귀한 동방박사들이 초라한 구유에 누인 아기에게 엎드려 절하며 전해주는 소식과 선물들,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의 예언을 통해서 요셉과 마리아는 큰 위로와 새 힘을 얻었을 줄로 압니다. 이렇듯 첫 번 성탄의 장소는 너무나 초라했으나 하나님이 친히 베푸신 축하행사로 인해 너무나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맞는 교회와 성도들의 귓가에는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산과 들이 기뻐서 메아리쳐 울린다. 영-광을 높이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계신 주님께” (찬송 125장) 소리쳐 외치는 천군 천사들의 찬양소리가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한 밤중에 양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의 주 나심의 소식을 듣고 경배하며 찬양하였듯이, 동방박사들이 큰 별을 보고 찾아와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려 경배하였듯이 온 마음과 정성을 드려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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