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이 1974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 6개월간 그 곳 수도사들과 동일한 일상의 삶을 살면서 기록한 "제내시 일기"를 읽었습니다. 나의 아침은 그의 일기를 읽는 기쁨으로 풍요로웠습니다. 그 곳 수도사들은 저녁이면 두 편의 시편을 암송하며 하루를 마감한다고 합니다. 시편 4편과 90편입니다. 아름다운 시들입니다. 나도 잠자리에 들기전 시편 4편을 읽고, 아침 기상하자마자 90편을 매일 읽기로 결심해 봅니다. 시편 90편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유한한 나의 모습을 겸허하게 돌아보게 하는 시이며, 나의 유한(有限)성을 알기에 오히려 주어진 지금 이 순간들을 귀히 여기며,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깊은 지혜가 담긴 모세의 시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시편 90: 1-7]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2001년 9월 11일 911의 그 참혹한 이미지 위에 이 시의 구절들이 오버랩 됩니다. 수 천 명 인간의 생명이 문자 그대로 순식간에 스러져 가 버릴 수 있음을 우리 모두가 목격했습니다. 단 몇 분 후에 일어날 일들을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한없이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곤 하지만 결국 우리 인간은 유한하고 허무한 존재임을 그토록 극명(克明)하게 보여주는 이미지가 또 어디 있을까요?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計數)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 11-12]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서 자취도 없이 실종된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그 비극적이고 허망한 죽음이 또한 나의 것일 수 있음을 압니다. 그저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 말고 그들과 내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 미국이 또 다시 일어날지도 모를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불안감, 이젠 미국이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팽배해 있습니다. 언제 내게 죽음이 몰아 닥칠지 모릅니다. 안정감의 상실(Sense of insecurity). 어느 누구도 불안정(uneasiness), 불확실(Uncertainty)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내가 나의 유한함을 직시하고, 나의 종말을 의식하고 사는 겸허함을 이 사건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면, 그것은 또한 얼마나 귀한 일인지요. 이 재난 때문에, 위의 시편기자 처럼 나의 남은 날이 얼마인지를 세어보며, 지금 내게 주어진 오늘이란 날이 아름답게 꽃 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면, 이번 사건으로 죽어간 영령들의 넋이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대가로 우리 남은 사람들이 하늘로부터의 지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18세기 미국 제1차 부흥운동의 주역이며 신학자, 목회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20대의 젊은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종말의식을 가지고 그의 생을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그 결심대로, 삶의 유한성과 일시성을 깨닫고, 영원을 준비하며, 영원 속에서 현재를 조망하며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래 열거한 에드워즈의 결심문들은 종말론적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엿보게 합니다.
"만일 내 생애의 최후 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면 절대로 하지 말자" (결심문 7)
"나는 종종 노인들이 자기가 인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노인이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 때 가서 내가 이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되는 바로 그런 일들을 하자." (결심문 52)
"... 무슨 일을 하려고 하든지 간에 자주 '내 임종의 순간에 이 일이 얼마나 가치 있다고 생각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하자." (1724년 2월 3일)
(백금산 목사가 정리한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에서 재인용함)
우리의 날을 계수(計數)하는 지혜는 에드워즈처럼 철저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다음의 기도문으로 그의 시를 마무리합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your unfailing love)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 . .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시편 90: 14,17]
시인은, 인생의 유한함을 알기에 하나님의 결코 다함이 없는 사랑이 그의 날을 채워주시기를 매일 아침 간구합니다. 하루 하루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충만케 되다 보면, 그 하루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그의 평생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나의 생에 마지막 날인 것처럼, 시인은 정성스레 하나님의 은총을 갈구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그 분의 은총 아래 견고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그의 시를 마무리합니다.
지난 9월, 아침마다 이 시편을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일상 속에 뛰어들다 보면 어느 틈에,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를 망각하게 되므로, 매일 아침 나 자신을 일깨워 주는 마음으로 계속 이 시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글: 이 영순. 2001년 10월. 새벽에 쓰는 편지 제 15신에서
사진: 2010년 7월 Canadian Rocky. Takakkau Falls and Bow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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