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도르가의 승부수

늘찬양 2022. 5. 28. 18:28
5주가 있는 주간에는 승부수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도르가의 승부수
행 9:36-43,2022.05.29.늘찬양교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전쟁터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총을 들고 적을 죽이기보다는 전쟁 폐허 속에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WP에 따르면 ‘세이브 우크라이나’(Save Ukraine), ‘숨은 영웅’ 자원봉사자들과 같은 자원봉사 단체들은 전장에 남아있는 노약자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서부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언제 어디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전장에 남겨진 노약자를 매일 구출하고 대피시키며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자가 남겨진 노약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세이브 우크라이나의 활동가 ‘샤샤’는 “때로는 몇 시간을 운전해 돌아다녀도 구조 대상자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면서 “어떨 때는 입소문을 통해 구조 대상자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주 볼로디미리우카의 한 외딴 마을에서 몇 주 전 뇌졸중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걷지 못하는 72세 고령의 여성이 소파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
목숨을 건 우크라이나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르가의 승부수’라는 말씀으로 5월 승부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Ⅰ. 여제자 도르가의 삶
오늘 본문은 " 도르가라 선행(善行)과 구제(救濟)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36절)라는 말씀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행실부터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르가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도르가는 수많은 신약의 여성들 가운데 유일하게 여 제자(헬라어 : 마쎄트리아)로 불리기까지 하면서(행 9:36) 선행과 구제에 힘썼던 여인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도르가`는 처음부터 "처녀로서 한평생을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기로 헌신하겠다고 서원한 여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남편도 없이 혼자서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하였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행 9:39에 보니까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 ?의 말씀을 살펴볼 때, 도르가는 `삵 바느질` 일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르가` 여인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삵 바느질을 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삵 바느질`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도르가`가 만들어준 옷은 그 어떤 일류 재봉사와 제단사가 만든 옷보다도 더 솜씨가 훌륭하고 섬세하였습니다. 그리고 옷을 선물 받은 사람들은 도르가에 대하여 무척 고맙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도르가는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해요.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고 말씀하셨거든요"라고 하며,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Ⅱ. 이근 전 대위
저는 한국판 도르가 여인과 비교되는 인물로 이근 전 대위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근 전 대위는 지난 3월,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겠다며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전쟁 도중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고자 지난 27일(금) 아침 귀국하였습니다. 1주일간 자가 격리 후 여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에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도르가 여인과 이근 전 대위의 공통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달란트인 바느질과 전투경험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많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끼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고민하였다는 점과 고민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지만, 바느질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옷을 수선함으로 도움을 주었으며, 전투경험을 살려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땅에서 몰아내는 일에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전쟁물자와 물질을 후원하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싶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죽음을 각오하고 출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불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이 치료 가능한 상처만 입고 돌아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입니다.
어떻든 도르가 여인과 이근 전 대위 두 사람 똑같이 남을 돕다가 죽음의 위험을 겪었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도르가 여인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찬과 위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의 도움과 베드로의 기도로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근 전 대위는 비난의 화살과 더불어 감옥과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든 것일까?
먼저 이근 전 대위의 제목은 분명하다. “평화를 수호하고자 한 개인의 신념에 의한 범법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내가 이근 대위 같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나도 우크라이나에 가서 싸울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 같다. 이근 대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맞는 경험과 재주가 있다. 싸우러 간 것이 아니라는 이근대위의 말에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본다. 이근대위가 감옥에 가야 하는가? 여론조사를 해봐라. 이근은 죽을 가능성이 많았으나 부상만 입고 조국에 왔다. 저런 영웅을 감옥에 보내야 하는가. 나는 이근대위에 찬사를 보내며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댓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가 진행될지는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Ⅲ. 도르가의 죽음과 부활
그런데 갑자기 ‘도르가’ 여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너무 열심히 봉사하다가 그만 병이 들어 죽은 것입니다. 더욱이 그녀의 시체를 거둘 만한 친척이 없었기에 교회는 더더욱 난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도르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온 마을에 알려지자 평소에 그녀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많은 친구와 과부들이 몰려와 그녀의 시체를 닦아주었고 또 입관까지 시켜 주었습니다(행 9:37).
그리고, 교회는 욥바에서 두 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룻다에 베드로 사도가 머무르고 있음을 알고서는 빨리 사람을 보내어 모셔오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베드로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행 5:15에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었을 때, 병든 자가 나았다는 사실과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는(행 3:1-10) 사실들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도르가의 부활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사도가 누구를 살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의 믿음이 거기까지 이르렀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러면 왜 사도를 초청했을까요? 이들이 원한 것은 사도의 위로였습니다. 특히 다비다(도르가) 같이 착하고 선한 일에 열성적인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 어떤 해석이 필요합니다. 왜 하나님은 악하고 남에게 피해만 주는 사람은 살려두시고, 꼭 필요한 사람을 데려가실까요? 사랑하는 성도의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듣고 싶었습니다.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은 물론, 온 성도들을 위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목회자로부터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내 삶에서 목사님은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목사님이 여러분 곁에 있습니까? 결혼에, 장례에, 특별한 행사에, 주의 종을 부르셨습니까? 다비다가 속한 교인들은 베드로 사도를 부르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가장 먼저 주의 종을 청한 것! 그것이 다비다가 속한 욥바 교인들이 행한 가장 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그 말씀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연락을 받고 도르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많은 여인이 다비다가 살아생전 자신들에게 행한 선행과 구제에 대하여 베드로에게 낱낱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실증적으로 다 내어 보이며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다락방에서 다 내려보낸 후 홀로 무릎을 꿇고 눈물의 기도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런 후에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40절)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다비다(도르가)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Ⅳ. 결 론
도르가의 작은 헌신과 섬김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께 돌아오게 하였고 또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렸던 도르가! 그 첫 출발이 작은 삯바느질에서 시작되었던 것을 기억하며, 또한 이근 전 대위의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귀한 한 알의 밀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적으로 도르가는 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② 삯 바느질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③ 바울은 그녀를 여 제자로 인정하였듯이 소유, 지위, 명예, 권세보다 남을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신앙과 인격을 갖춘 섬김의 사람이었으며, ④ 예수 증인의 삶을 살았던 전도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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