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리더십자료

리더십의 카이로스

늘찬양 2006. 11. 15. 09:09
리더십의 카이로스
김광건   - 
 
미국의 저명한 경영 잡지인 「포춘」(Fortune)지는 지난 2005년 6월호에서 “위대한 결단을 내리기”(How to make great decisions)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미 해병대 장군, 공항 관제사, 법관, 야구 심판, 등반 원정 대장 등 미국의 각 분야에서 리더들이 스스로 고뇌 섞인 결정을 내렸던 때를 회고했다. 특히 “역사를 만든 20개의 결단”(20 that made history)에서는 역사상 주목할 만한 주요 결정들을 소개했다.

질레트라는 면도기 회사가 일회용 면도기를 만들기로 결단했던 때(1903, King Gillette decides to throw away the blades), 포드 자동차가 근로자들에게 당시 파격적인 일당을 지급키로 결단했던 때(1914, Ford offers $5 a day)처럼 하나의 결정으로 인해 조직의 역사가 뒤바뀐 장면들을 소개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한다. 리더에게 이런 때가 있고, 이런 때가 있기에 리더이다. 그리고 이런 때를 ‘결단의 순간’(deciding moment)이라고 한다. 리더십에 있어 중요한 순간인 것이다.

리더에게 반복되는 평상 업무의 시간들도 중요하지만 이런 결단의 순간과 같이 어떤 특별한 사건을 위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간도 있다. 리더들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영적 리더십에서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리더십에 카이로스가 있다
상대성 원리의 가장 큰 공헌은 시간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꾼 데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동일하게 흐른다는 시간의 보편성이 상대성 원리에 의해 깨어지고 객체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이 개인적으로 다르게 경험된다는 것이다(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p.198). 물론 여기서 운동 상태란 물체의 속도를 의미하는데, 운동의 속도에 따라 시간의 흐름도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즉 물리적 시간도 그냥 일방적이고 절대적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어떤 조건에 따라 상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을 상대화할 수 있는 요소가 물리학적으로 ‘속도’라면, 신학적으로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물리학적 차원을 넘어 시간이 상대적 차원에서 경험되기도 하는데, 바로 신학적 시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건적 시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것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이 카이로스는 물리적이지 않고 절대적이지 않으며, 일방적인 시간도 아니다. 이것은 시간의 의미에서 상대적이고 사건 중심적이다. 카이로스는 하나님 안에서의 중요한 계절이고 기회다. 카이로스는 시간의 양보다 시간의 의미와 질을 말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두 가지 중요한 물리학적 요소는 ‘공간’과 ‘시간’이다. 이것은 리더에게는 더 절실하다. 공간과 시간은 각각 리더십의 중요한 장(Leadership field)으로서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리더십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이것은 본고의 주제가 아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위한 특별한 시간도 있다. 여행 중에 모든 지점보다 어떤 지점이 중요하듯, 시간도 리더에게 모든 리더십의 시간보다 어떤 특수한 시간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리더십의 카이로스로 리더로서 부르심에 대한 절정의 순간이다. 이것은 결단의 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심각한 사회적 사건이나 역사적 전환점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리더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다.

리더에게 신비적 카이로스가 찾아온다
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적 카이로스가 리더에게 찾아온다.
평상시에 리더십이 잘 발휘되지 못하다가 어느 상황이 오면 그 리더십이 카리스마적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한 학자의 말에 의하면 모택동의 카리스마적 리더십도 사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 당시 중국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 없었더라면 그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적으로 행사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를 ‘상황적 카리스마’(Situational Charisma)라고 한다. 즉 어떤 시기의 상황이나 사건이 특정 스타일의 리더십을 새롭게 필요로 하는 때가 있다. 이전에 무시되던 리더를 어느 시기엔 군중들이 추대하고 열광하게 된다. 닉슨 전 대통령도 이런 말을 했다. “지도자가 위대해지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위대한 인간, 둘째는 위대한 국가, 셋째는 중대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즉 카이로스적 사건은 리더의 리더십을 극대화한다. 목회적으로 봐도 하나님의 카이로스로 ‘상황적 카리스마’를 세우게 되며 이것으로 리더는 그 교회의 부르심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카이로스 관점에서 제안하는 리더십
카이로스적 시간관을 생각하며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리더십을 제안한다.

1. 타이밍의 리더십
리더는 리더십의 시간(time)을 타이밍(timing)으로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사실 목회자는 1년 단위로 사는데 1년이란 얼마나 빠르게 가는지 모른다. 신년 예배에서 연말 당회까지 꽉 짜여진 연간 스케줄 속에서 이 일이 끝나면 그 다음의 일로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다보면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의 시간관은 점차 크로노스(chronos)적이 된다. 선형적 시간선상에서 기계적으로 스케줄을 분배해 시간은 관리해야 하는 하나의 물리적 양이 돼 버린다. 즉 숨찬 일정의 소화만이 있고 어떤 의미 있는 영원의 시간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리더는 연말에 한 번 자신의 리더십 역사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 1년 동안 나의 리더십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하며 자신의 카이로스를 찾아보는 것이다. 많은 일들 중에서도 ‘어느 한 순간, 내가 영적 리더로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연결되었던 적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자신이 옛날 하나님께 헌신할 때의 초심이 다시 강하게 일어나진 않았는지, 혹은 어느 주일 예배 시에 더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진 않았는지, 또는 묵상 중에 어느 순간 어떤 중대한 영적 결심을 하게 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니면 언젠가 나라의 큰 사건 속에 자신의 설교 메시지가 회중에게 강한 도전을 주진 안았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이것은 리더로서 공동체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로 이끄는 역할을 한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마치 다른 시간들은 흑백 TV 화면과도 같았다면, 이 순간은 생생한 컬러 TV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말로 리더가 연속적 ‘시간’(time)보다 어떤 의미 있는 ‘타이밍’(timing)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리더십이 더 잘 작용하도록 하는 ‘타이밍의 리더십’(From Time to Timing Leadership)이다.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2. 근본 상태의 리더십
리더십의 특수한 카이로스에는 그 리더십의 평상 상태를 넘어서는 또 다른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아니 이런 특수한 순간에 오히려 영적 리더십의 본질적 상태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퀸(Quinn)이라는 학자는 리더십의 상태를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곧 리더십의 평상 상태(Normal state)와 근본 상태(Fundamental state)다. 평상 상태의 리더십은 현실에 안주하고 외부의 평에 영향을 받으며, 자기 중심적이고 외부와 차단돼 있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반면에 근본 상태의 리더십은 목표 지향적이고 환경과 문화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신의 내면을 지키고 타인 중심적이며 변화를 위해 외부 세계에 열려 있다(Quinn, Robert E. “Moments of Greatness: Entering the Fundamental State of Leadership”, Harvard Business Review. July-August 2005).

그런데 카이로스적 리더십은 이런 리더십의 근본 상태를 요한다. 리더들에게 계속되는 수많은 업무 속에서도 평생에 한 번쯤은 ‘아, 내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이 자리에 있구나’라고 직관적으로, 영적으로 느끼는 때가 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의 카이로스로서 그때는 리더십도 더욱 본질적으로 혁신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의 평상 상태에서 근본 상태로의 전환인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 그 타이밍에 이런 리더십의 본질인 근본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근본 상태의 리더십’(Fundamental state Leadership)이다.

카이로스의 리더십을 발휘한 성경의 사례
누가복음 2장에는 특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이름은 시므온과 안나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인생의 오랜 평상 상태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한 것 같지 않으나, 일생의 어느 한 순간에 그들의 삶이 어느 한 시점에 수렴되면서 그들의 소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카이로스이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보자 이렇게 외친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26~31).

그리고 안나도 이 한 순간에 일생의 절정을 이룬다.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6~38).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카이로스를 말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된 이유가 그것이다. 즉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절정의 한 순간을 맞게 된 것이다. 모르드개는 자기 민족에게 위기의 시간이 오자,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

그렇다. 리더들은 특히 영적 리더들은 어느 시점에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올 것이다. ‘내가 리더가 된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내가 리더가 된 것이 바로 이 사건과 상황을 위함이 아닌지?’ 시므온, 안나, 에스더 그리고 많은 영적 리더들은 그동안 크로노스적 시간의 집적으로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한 시점인 카이로스(‘이제’, ‘이 때에’)에서 그들의 온 생애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영적 리더는 그들의 카이로스에서 그 리더십의 의미를 갖는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적 시간에서 이뤄지는 그들의 리더십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

크로노스보다 카이로스가 더 의미 있다
요즘 서구의 지나친 영향으로 인해 직접적이고 연속적이며 관리적인 시간관이 팽배하고 있다. 그래서 선형적으로 디자인된 시간이 리더들에게 중요해져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리더십의 축적과 업적의 달성 등과 같은 가치가 많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이런 시간관도 중요하다.

그러나 리더의 소명이 어느 한 순간(Moment)을 위해 있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 시간관은 더 중요하다. 즉 인생에는 반드시 ‘더’ 혹은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시점이 있다. 이 순간이 바로 그 리더가 헌신한 이유이다. 이 순간이 바로 그때 본 환상이 이뤄진다. 이 순간을 위해 리더는 죽을 수 있다. 이 순간이 오면 리더는 인생 전부를 거는 결단을 해야 한다. 이 순간이 오면 리더는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 이 순간이 오면 리더는 드디어 외쳐야 한다. 이 순간이 오면 리더는 자기 생명을 바쳐야 한다.

몇 십 년을 리더로서 충성하며 그 시간을 모두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Chronos), 비록 리더로서 시간의 양은 적지만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의 사건적 사명을 완수한 것은 더 의미가 있다(Kairos). 리더의 위치에서 흘러가는 수많은 시간들! 그러나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어느 시간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 더 의미 있고 역사적이다. 한 리더의 삶에서 어떤 한 시간은 그가 리더로 된 이유일 수 있다. 리더의 시간의 의미가 그저 크로노스적으로 한 순간 한 순간 리더십의 행위들의 총합인 누적된 시간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시간 중의 어떤 한 순간, 카이로스의 한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로서의 의미를 잃은 많은 영적 리더들이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것 같은 사역들 속에서 좌절한 많은 리더들이 있다. 그러나 리더는 그 긴 리더십의 시간 중에서 어떤 순간이나 사건을 위해 특히 더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인간의 수명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의미이다. 인간의 물리적 시간보다 역사적 시간이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리더에게도 리더로서의 재직 기간의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순간 그의 리더십의 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