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의 비유(比喩)
마 25:14-30절, 399.383.453장.*
오늘이 1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금년 한해도 이제 몇날이 남지 아니했습니다. 가정도 기업체도 국가도 지금은 년말 결산이 한참입니다. 지난 일년동안 얼마의 흑자가 있었고 얼마의 적자가 있었는가를 숫자적으로 결산해서 새해를 설계하게 되는 것입니다.
년말 결산에서 흑자라면 기쁘고 감사(感謝)한 일이지만 적자라면 여러가지 심각(深刻)한 문제(問題)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지난 일년동안 살아온 우리 자신의 신앙을 결산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밝아오는 새해를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결산하는 표준이 되는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최후의 설교로서 예수님 재림 때에 성도들의 신앙을 결산하는,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의견은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시어 승천하심을 염두에 두었고,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긴 것은 오순절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주실 은사를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 그 재능을 따라 일감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받은바 하나님의, 은사를 마치 상업하시는 분들이 장사를 하는 것처럼 부지런히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主人)의 입회 아래 반드시 결산이 있다는 것이 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具體的)으로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를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께서는 우리들에게 달란트를 분배하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본문의 흐름을 보면 마25:1-13절은 열처녀의 비유를 들면서 성도들은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깨어서 사는 삶의 모습을 가르쳤고, 그리고 14-30절까지 이 설교 본문은 사명과 소명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46절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것임을 명쾌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만을 깊이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그 자신의 소유에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고 맡기고 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영적인 은사나 우리의 물질과 재능이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주신 것이며,맡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과 재주와 장기를 개인적으로 사유물(私有物)로 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것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삶의 방향이 결정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온갖 영적인 은사나 육체의 건강이나 모든 재물과 지식들이 자기 것인양 사유화해 버릴 때, 그 재능을 가지고 자기 충족과 자기 영광과 자기 만족을 위해서 헛되이 사용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대로 우리가 가진 것은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란 믿음을 가졌을 때는 우리에게 주어진 온갖 좋은 은사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달란트를 사유화하기 때문에 그 종은 재주와 물질을 죄를 짓는데 허비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머리털 하나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도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내것이 아니고 태양과 달과 별들도 내 것이 아니고, 산도 나무도 풀도 꽃도 내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우리에게 맡겨 위임된 것입니다. 우리는 실상은 빈 손들고 왔다가 빈 손들고 가는 인생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서 숨쉬는 동안 주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요,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꼭같은 분량의 달란트를 주시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차등을 주셨는지는 우리의 관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은 재능, 꼭 같은 은사, 꼭 같은 재물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달란트의 양에 대해서 늘 불만을 늘어 놓습니다. 이 본문에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불만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의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대통령이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습니다. 피아노를 잘 하는 사람이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수학을 반드시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은 말씀을 증거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은 봉사의 은사를 각각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12:6절에 말하기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합니다.
은사가 다른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할 때 비로소 교회 안에서 신앙의 조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역할과 기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역할과 위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른 은사를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모든 공동체가 진실로 생명 있고 진실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지난 일년동안 우리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나 하는 반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내년에 일할 일꾼들을 임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인 줄 알고 겸손히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일꾼으로 어떤 부서에서 일하든지간에 그 달란트 곧 재능을 100%발휘해서 두배의 결과를 가져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진리는 달란트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촛점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을 늘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적든 많든간에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가를 문제삼습니다. 다섯달란트 맡긴 사람에게는 다섯달란트를 더 요구하고 한달란트받은 자에게는 한달란트만 남겨도 사명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부서 중에 어떤 부서를 맡긴다고 해도 아멘으로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감을 맡길 때는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달란트를 맡긴 하나님은 반드시 결산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한해도 시작과 끝이 있고, 인생도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전도서 3:1절이하에는 천하에는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란트를 맡길 날이 있으면 그것을 결산할 날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개인의 인생 전부의 결산도 있을 것이고, 세상의 종말에 역사의 결산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일년동안 우리에게 맡겨준 달란트를 얼마나 잘 사용했는가를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본문 19절에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할쌔"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을 잘 봐야 하겠습니다. 결산 곧 회계는 우리 스스로의 반성이나 손익계산을 해 보는 것이 아니고 주님 자신이 결산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내 스스로 나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 곧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린다면 역사의 주인이 되신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며 그 분이 우리에게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결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결산이 없는 장사가 어디에 있으며 결산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신앙의 년말 결산이 없다면 되겠습니까? 역사는 되는 대로 굴러가다가 무의미하게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도 되는대로 살다가 되는대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인격적(人格的)인 하나님이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선악을 가리시며,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따라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와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그리고 한달란트 받은 자에게 각각 결산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가령, 오늘 아침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지난 일년동안 살아왔던 신앙을 결산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또는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마25:20절에서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게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종은 두 배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흥미있는 것은 "보소서"라는 떳떳하고 당찬 말입니다. 물론 두달란트 받은 종도 꼭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떳떳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좀 봐주세요 할 정도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최선을 다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작게 받았든 많게 받았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큰 직분이냐 작은 직분이냐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했느냐 못했느냐에 촛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그 주인의 대답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 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 25:21)라고 했습니다. 주인의 흡족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은 자기의 달란트를 최대한 이용해서 최선을 다한 것을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룩한 그것도 사실은 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끔 주를 위해서 큰 일을 한 것 같으나 실상 그것은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록 적은 것을 이루었지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와 축복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양이 적다는 이유로 아무런 정성도 노력도 드리지 않다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심판을 받았고 그 있는 것까지 몰수당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여러분의 지난 일년동안의 결산은 어떠합니까? 적자입니까? 흑자입니까? 만약 적자라면 회개할 일이고 혹자라면 더 많은 일감을 맡을 준비를 하십시오. 하나님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에게는 일감도 주시고 기회도 주시고 은혜도 주십니다.
주님으로부터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더 많은 것을 맡으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 25:14-30절, 399.383.453장.*
오늘이 1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금년 한해도 이제 몇날이 남지 아니했습니다. 가정도 기업체도 국가도 지금은 년말 결산이 한참입니다. 지난 일년동안 얼마의 흑자가 있었고 얼마의 적자가 있었는가를 숫자적으로 결산해서 새해를 설계하게 되는 것입니다.
년말 결산에서 흑자라면 기쁘고 감사(感謝)한 일이지만 적자라면 여러가지 심각(深刻)한 문제(問題)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지난 일년동안 살아온 우리 자신의 신앙을 결산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밝아오는 새해를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결산하는 표준이 되는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최후의 설교로서 예수님 재림 때에 성도들의 신앙을 결산하는,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의견은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시어 승천하심을 염두에 두었고,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긴 것은 오순절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주실 은사를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 그 재능을 따라 일감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받은바 하나님의, 은사를 마치 상업하시는 분들이 장사를 하는 것처럼 부지런히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主人)의 입회 아래 반드시 결산이 있다는 것이 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具體的)으로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를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께서는 우리들에게 달란트를 분배하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본문의 흐름을 보면 마25:1-13절은 열처녀의 비유를 들면서 성도들은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깨어서 사는 삶의 모습을 가르쳤고, 그리고 14-30절까지 이 설교 본문은 사명과 소명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46절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것임을 명쾌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만을 깊이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그 자신의 소유에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고 맡기고 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영적인 은사나 우리의 물질과 재능이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주신 것이며,맡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과 재주와 장기를 개인적으로 사유물(私有物)로 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것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삶의 방향이 결정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온갖 영적인 은사나 육체의 건강이나 모든 재물과 지식들이 자기 것인양 사유화해 버릴 때, 그 재능을 가지고 자기 충족과 자기 영광과 자기 만족을 위해서 헛되이 사용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대로 우리가 가진 것은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란 믿음을 가졌을 때는 우리에게 주어진 온갖 좋은 은사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달란트를 사유화하기 때문에 그 종은 재주와 물질을 죄를 짓는데 허비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머리털 하나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도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내것이 아니고 태양과 달과 별들도 내 것이 아니고, 산도 나무도 풀도 꽃도 내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우리에게 맡겨 위임된 것입니다. 우리는 실상은 빈 손들고 왔다가 빈 손들고 가는 인생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서 숨쉬는 동안 주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요,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꼭같은 분량의 달란트를 주시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차등을 주셨는지는 우리의 관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은 재능, 꼭 같은 은사, 꼭 같은 재물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달란트의 양에 대해서 늘 불만을 늘어 놓습니다. 이 본문에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불만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의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대통령이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습니다. 피아노를 잘 하는 사람이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수학을 반드시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은 말씀을 증거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은 봉사의 은사를 각각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12:6절에 말하기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합니다.
은사가 다른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할 때 비로소 교회 안에서 신앙의 조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역할과 기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역할과 위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른 은사를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모든 공동체가 진실로 생명 있고 진실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지난 일년동안 우리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나 하는 반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내년에 일할 일꾼들을 임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인 줄 알고 겸손히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일꾼으로 어떤 부서에서 일하든지간에 그 달란트 곧 재능을 100%발휘해서 두배의 결과를 가져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진리는 달란트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촛점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을 늘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적든 많든간에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가를 문제삼습니다. 다섯달란트 맡긴 사람에게는 다섯달란트를 더 요구하고 한달란트받은 자에게는 한달란트만 남겨도 사명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부서 중에 어떤 부서를 맡긴다고 해도 아멘으로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감을 맡길 때는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달란트를 맡긴 하나님은 반드시 결산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한해도 시작과 끝이 있고, 인생도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전도서 3:1절이하에는 천하에는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란트를 맡길 날이 있으면 그것을 결산할 날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개인의 인생 전부의 결산도 있을 것이고, 세상의 종말에 역사의 결산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일년동안 우리에게 맡겨준 달란트를 얼마나 잘 사용했는가를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본문 19절에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할쌔"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을 잘 봐야 하겠습니다. 결산 곧 회계는 우리 스스로의 반성이나 손익계산을 해 보는 것이 아니고 주님 자신이 결산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내 스스로 나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 곧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린다면 역사의 주인이 되신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며 그 분이 우리에게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결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결산이 없는 장사가 어디에 있으며 결산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신앙의 년말 결산이 없다면 되겠습니까? 역사는 되는 대로 굴러가다가 무의미하게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도 되는대로 살다가 되는대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인격적(人格的)인 하나님이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선악을 가리시며,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따라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와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그리고 한달란트 받은 자에게 각각 결산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가령, 오늘 아침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지난 일년동안 살아왔던 신앙을 결산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또는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마25:20절에서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게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종은 두 배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흥미있는 것은 "보소서"라는 떳떳하고 당찬 말입니다. 물론 두달란트 받은 종도 꼭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떳떳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좀 봐주세요 할 정도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최선을 다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은사를 작게 받았든 많게 받았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큰 직분이냐 작은 직분이냐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했느냐 못했느냐에 촛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그 주인의 대답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 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 25:21)라고 했습니다. 주인의 흡족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은 자기의 달란트를 최대한 이용해서 최선을 다한 것을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룩한 그것도 사실은 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끔 주를 위해서 큰 일을 한 것 같으나 실상 그것은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록 적은 것을 이루었지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와 축복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양이 적다는 이유로 아무런 정성도 노력도 드리지 않다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심판을 받았고 그 있는 것까지 몰수당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여러분의 지난 일년동안의 결산은 어떠합니까? 적자입니까? 흑자입니까? 만약 적자라면 회개할 일이고 혹자라면 더 많은 일감을 맡을 준비를 하십시오. 하나님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에게는 일감도 주시고 기회도 주시고 은혜도 주십니다.
주님으로부터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더 많은 것을 맡으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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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 >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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