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건 원수뿐이다. 욥16:1-22
오늘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믿을 건 원수뿐이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믿을 건 원수뿐이다. 이런 경우가 극적인 경우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성 속에서도 간혹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몇 번 말씀 드린 영화 기억나는 것, 그만큼 인상적이라.
중국의 한 호족, 그러니까 일정지역을 지배하는 군주를 중심으로 권력을 향한 무수한 암투가 벌어지는 그 현장을 묘사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뭐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근데 그 군주가 믿는 자가 양자가 하나 있었는데 끝까지 충성을 지키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군주인 양부를 독침으로 살해하려 합니다.
근데 독침을 맞고 도망하려고 하는 과정이 있는데, 결국 독침을 맞고 도망가는데 그 때 마침 자객이 들어옵니다. 그 군주를 죽이려고 하는.
그 자객과 독침을 맞은 상태에서 맞닥드리면서 자객에게 자기의 딸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딸을 부탁하는 그 군주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자객이 독침 맞은 군주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가도록 내버려둡니다.
자기를 죽이러 온 자에게 자기의 딸을 맡겨야만했던 그 군주의 심정, 믿을 건 원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들도 양자도 심지어는 아내도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의 딸 하나 있는 것을 원수인 자객에게 맡겨서 자객이 그 딸을 데리고 멀리멀리 갑니다. 안전한 곳으로.
이런 이야기는 또 역시 말씀드린 것 같아요. 근데 주제와 연관이 되니까.
노예선에서 폭동이 일어났어요.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서 미국에 와서 팔아먹는 노예 상인들이 배를 몰고 오는데 어떻게 쇠사슬이 풀리면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백인들을 다 사로잡게 됩니다.
분노한 흑인들이 그 백인들을 다 죽여 버렸어요. 그리고 흑인들도 다 죽게 됩니다.
흑인들은 아무도 아프리카 대륙에 살면서 항해를, 바다에서 배를 모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 배의 현장에서는 폭동을 일으켜서 배 안의 권력을 장악했더라도 믿을 건 원수뿐이었다는 거예요.
백인 노예장사들만이 그 배를 몰아서 자기 본국 아프리카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 원수를 죽여 버린 것이지요.
또 여러분, 한 농부가 나귀가 늙어서 마른 우물에 빠뜨려서 죽이려고 흙을 계속 퍼부었습니다. 나귀가 생각하기에 '야 나는 이 흙에 묻혀서 죽는구나.' 흙은 원수에요.
근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게 아니거든요. 믿을 건 원수밖에 없어요.
떨어지는 흙들을 툭툭 털어 바닥에 깔면서 점점 올라와서 우물위에 불쑥 선겁니다.
농부가 기절했겠지요. 이정도 흙을 덮었으면 죽었으려니 했을 텐데. 믿을 건 원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을 빠뜨린 물은 여러분의 원숩니다.
그러나 물에 빠졌을 때 여러분이 의지할 게 뭐예요? 물밖에 없어요.
물에 기대서 살아나지 않는 한 살아날 방법이 없습니다. 믿을 건 원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을 믿고 척~ 힘을 빼고 누워서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무슨 다른 방법이 있어요?
거기서 원수인 물을 믿지 못하고 힘을 주고 원수와 싸우려고 허우적거리고 난리를 치면 물에 빠져 죽는 것이에요.
물에 빠져 죽기 전에는 물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 물을 믿고 척~ 나를 맡길 수밖에 없어요. 힘을 다 빼고.
맡긴다는 게 힘을 빼야 되는 것 아닙니까? 힘을 주고 나는 너를 못 믿어. 못 믿어 그럽니다. 원수라서. 그러면 물 때문에 죽는 거지요.
여러분 오늘 욥의 참 처절한 심정이 묘사돼 있어요. 어떤 심정이 묘사돼 있느냐?
이 앞에 16: 1-5까지 욥의 심정이 이런 거예요.
야, 이젠 그만하자. 친구들을 향해서. 지금 내 처지를 놓고 너희 말이 옳다 내 말이 옳다 지금 그런 것을 따지고 싶지 않다. 근데 한 가지 서운한 게 있다. 지금 내 처지가 어쨌든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내 마음에 위로가 될 한 마디의 말도 주지를 않느냐.
지금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너희들이 나의 친구라고 하면서 내 마음에 위로 한 조각 허락하지를 않고 있느냐.
그러니까 욥이 지금 필요한 것은 뭐 회개해서 내 죄를 깨달아가지고 회복하고 이런 게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니라 좀 마음 붙일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마음 붙일 곳이.
근데 친구들조차 마음을 붙이게 하지를 않습니다.
정말 아무 것에도 머리털 끝만큼도 마음 붙일 곳이 없게 돼버려요.
욥의 심정이 지금 너무너무 어디다 한번 마음을 붙여져 기대고 조금이라도 이 고통에 짓눌려 있는 마음을 좀 쉬게 하고 싶은데.
이미 자식들은 다 죽었지요, 아내는 욕하고 떠났지요, 친구들이 와서는 계속해서 자극을 하고 요만큼의 마음 붙일 장소도 친구들조차 허락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이유를 욥이 그 다음 6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v7: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v8: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v9: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하나님이 욥의 원수에요. 여러분 원수가 뭐예요?
나나 나의 집안이나 나의 나라나 내가 사랑하는 무엇에 손해를 끼치는 자가 원수 아닙니까?
근데 욥에게서 열 자녀를 다 앗아갔어요.
중국영화 같았으면 이 원수를 갚기 위해서 온 가문이 달려들어야 할 판이에요.
아니 그 자녀 열 명을 다가져갔어요. 그리고 재산을 다 몰수했어요. 재산의 100분의 1만 가져가도 원수 아닙니까?
근데 그 재산을 다 몰수해 갔는데 그 장본인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에게 시켰지만 하나님이 시켰으니까. 하나님이 갖고 가신 것으로 욥은 알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면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간다.' 이를 간다는 것이에요.
참 진짜. 그렇지요. 욥에게는 지금 원수가 하나님 자신이셔요.
하나님께 우리가 감히 어떻게 원수라는 명칭을 붙이겠습니까마는 원수가 할 모든 일의 천 배, 만 배, 만만 배의 일을 지금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셨다는 거예요.
근데 묘한 것은 욥은 쓸개도 없고 밸도 없는 사람인지 v18이하에 보면 그렇게 자기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신, 심지어는 친구들조차도 등을 돌리게 하신 그 하나님을
v19: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무슨 말 입니까? 내 증인?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의 하나님을 향한 의로움을 인정할 자는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신 원수의 위치에 서계신 그분 하나님밖에는 없다.
정말 이게 무슨 모순된 고백입니까?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땅에는 티끌만큼의 면적도 욥이 마음에 붙일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돼버렸습니다.
근데 이제 욥은 고백합니다. 그렇게 된 것이 하나님 때문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상한 고백을 합니다.
원수처럼 내게서 그렇게 처참한 현실을 허락하신 그 하나님만이 내가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시다. 라는 걸 고백합니다.
그리고 v20에 보면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물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나이다.'
자 보세요.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귀를 돌리고 있던 야곱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눈을 들고 하나님을 향해 울고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을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눈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각도가 이제야 맞춰집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각도가.
마음의 눈이 하나님을 향하여 각도를 조정하게 됩니다.
왜? 이 땅에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그 무엇에도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드디어 욥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높은 곳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래서 믿을 건 원수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나로 하여금 나의 마음의 시선의 각도를 하나님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네게서 빼앗아가는 원수들, 그 원수들밖에는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이에요.
나에게 다정합니다. 나의 마음에 쏙쏙 들어오게 행동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원수가 아닌 진짜 내가 사랑하고 내 마음을 붙일만한 사람들, 정이 주고받아 지는 그런 사람들, 이 땅위에서 그런 대상들 그런 사람들, 일을 하는데 일이 참 잘됩니다. 사업이 번창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를 다 막아버립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는 분이 아니라 마음의 시선의 각도가 맞으면 하나님은 보여 지는 분이십니다.
지금 욥을 계속 그렇게 각도조절을 하시기 위해서 다 빼앗아 가신 거예요. 다.
듣는 신앙에서 나아가서 보는 신앙으로 발전시키시기 위해서 마귀를 이용해서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 잃고 재산 잃고 아내 잃고 집안이 멸망하고 친구 잃고 건강 잃고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유익인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에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신 것이에요.
이걸 한번 적용을 해봐요.
이 세상에 있는 복을 다 모아놔도 하나님과 저울에 달면 하나님 보고 하나님 갖는 것보다 못한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더 커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각도를 내게 주는 자들이 고마운 자들이에요.
누가 그렇게 내 마음을 이 세상에 붙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를 주느냐? 다 원수들이에요. 원수들.
남편이 그저 아내를 생각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밖에 나가면 멋진 남편, 씩씩한 남편, 제 구실 잘하는 남편, 집에 들어오면 자상한 남편. 그 남편이 어떤 남편? 내 마음을 붙이게 하는 남편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는 시선의 각도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식도요 아주아주 내가 원하는 대로 공부도 잘하고 말썽이라는 건 피우지 않고 생기기는 잘 생겨서 나가면 다 잘생겼다고 칭찬하지요. 데리고 나가면 어깨가 올라가는 거예요. 그 자식 놈을 데리고 나가면.
물어 보면 뭐 일류대학 들어갔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고 모든 걸 다 맞춰주는 그 자식, 그 자식이 그 짜식이에요.
그 놈이 여러분의 시선의 각도를 하나님께 향하지 못하게 막는 놈이라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말썽피우고 무지랭이 같고 못나고 누구한테 대놓고 말하기도 창피한 그 놈, 도저히 그 자식한테는 마음을 붙일 수가 없는 그 놈, 그 놈이 원수요, 그 놈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를 주는 님 입니다. 님.
모범생 자식, 놈이에요. 그놈의 자식.
하여간 이 땅에서 내 마음을 붙일 수 있게 인간적으로 친하고 다정하고 때만 되면 내게 와서 뭘 해주려하고 도와주려고하고. 고런 것들이 다 이 세상에서는 좋은 친구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를 다 뺏는 자들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전혀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 그 사람이 내게 유익을 줍니다.
내 마음에 들고 나에게 잘하는 사람은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을 향하는 시선의 각도를 빼앗아 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유형은 내게서 뭘 빼앗아가고 내 마음에 안 들고 하는 원수는 아니지마는 하나님으로 충만해 있는 자, 그를 보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 이렇게 두 가지 종류밖에는 유익이 되는 자가 없어요.
그래서 주님께서 자식이 원수라고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말 잘 듣는 자식이 진짜 고차원의 원수고.
자상한 남편, 능력 있는 남편이 대단한 원수, 진짜배기 원수라는 겁니다.
뭐 바람피우고 문제 일으키고 돈 못 벌고 맨 날 제구실 못하는 남편, 도저히 그 남편에겐 마음을 붙일 수가 없어요. 그 남편이 우리의 시선을 남편에게 쏠릴 것만큼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각도를 조정하게 해주는 원수요 믿을만한 자라는 거예요. 차라리.
왜? 하나님을 나에게 볼 수 있고 갖게 하는 자세를 갖춰주는 도움이 되는 자들이니까요.
거지 나사로는 왜 구원을 받고 부자는 왜 구원을 못 받았겠어요?
그 뭐 학자들의 논의가 분분해요. 그러나 분분할 게 하나도 없어요. 난 그 학자들이 하나님을 못 봤기 때문에 그렇게 의견이 분분하다고 봐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자는 뭐 거지 나사로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나?
그런 억지. 정말 기독교의 신학의 신자도 모르는 그런 말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래서 간 거예요? 거지 나사로가 왜 간 겁니까? 거지 나사로란 말이 무슨 뜻이냐면
나사로란 뜻이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다.' 란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마음 붙일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내가 마음 붙이게 되어 있다. 왜? 내가 거지니까.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하늘나라 올라간 거예요.
근데 부자는 왜 못 올라갔습니까? 부자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어요.
왜 못 올라가요? 마음 붙일 곳이 너무 많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어요.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지옥 간 거예요.
그러니까 모범생 자식 놈이 그놈이, 그놈이 여러분한테 위험한 놈이에요.
그 놈한테 마음 붙이게 되니까. 훌륭한 남편, 고 님이 그게 진짜 위험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내게 못하는 남편 고마워하세요. 내게 잘하는 남편 경계하세요.
내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자식, 그 놈이 진짜 무서운 놈인 것 아세요.
여러분에게서 하나님 빼앗아 갑니다.
말썽피우는 놈 도저히 자식 기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게 하는 그 놈, 그 놈이 효잡니다.
사업, 지지리 안 되지요? 그 사업체가 여러분을 살려줍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붙이게 하니까.
자 잘되는 사업 위험합니다. 안되던 일이 풀렸습니까? 그때 경계하세요. 조심하세요.
또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분명히 멀어져요, 여러분.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을 걸요?
일이 잘되면 반드시 말씀과 멀어지고 바쁘니까.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가 뚝뚝 아래로 떨어지고. 반드시 그럴 거예요.
일이 잘되면 반드시 그게 진짜 원수예요. 일이 안될 때 얘기하잖아요.
'이 원수 같은 사업체 이걸 내가 어떡하면 좋을까.' 어떡하면 좋기는. 마음만 떼면, 거기에 마음 쓰지 말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를 조정하시면 돼요.
여러분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옆에 많이 보여요? 감사하세요.
그들에게 마음 붙이지 않는 바람에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가 잡히는 것입니다.
자식? 오늘부터는 말썽피우는 놈에게 계란 프라이 한 개 더 해주세요.
너무너무 말 잘 듣고 우등생인 놈에게는 간장하고 생 밥만 줘요. 그놈 경계해야 됩니다.
믿을 건 원수뿐입니다. 원수? 이 땅에서 내가 마음 붙일 만한 모든 여지를 다 빼앗아가고 허락하지 않는 원수들.
그들이 내게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를 주고, 그 하나님 가지면 이 지구를 다 가진 것보다 더 큰 복락이요,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욥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간 하나님을 욥이 원수라는 감히 붙이지 못할 이름을 붙입니다마는
바로 그 원수의 위치에 서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욥은 눈을 돌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붙이기 위하여 마음을 재조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원수의 자리에 서계신 나의 하나님.
오직 하나님에게만 내 마음을 붙이기를 원합니다. 당신만이 나의 중보자시요, 당신만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증인이십니다. 하나님 보고 싶습니다. 라는 마음이 벌써 욥에게서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원수가 진짜 원수인 줄로만 압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원수는 내게서 내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아가는 자들이요 내 마음이 붙일만하다고 느껴질 만큼 내게 잘하고 내게 다정하고 내 마음에 들고 내 뜻대로 되어지는 그 상황과 그런 대상과 그런 사람들이 내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시선의 각도를 빼앗아가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 땅에서 내 마음이 붙일 곳이 없게 만드는 원수들이야말로 내 하나님 내 아버지 나의 사랑 나의 남편 되시는 우리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를 허락 하신다는 사실 꼭 기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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