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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090216
제목: 불만제로 프로젝트 원, 투, 쓰리.
본문: 욥36:1-33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불만제로 프로젝트 원, 투, 쓰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모 방송국에서 하는 TV프로그램 중에 불만제로라고 하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내용은 뭐냐 하면요.
일상적으로 우리 하여간 한국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소비자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소비자들이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만이 생겨도 그냥 한낱 투덜거림으로 그냥 끝나버립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포착해서 좀더 적극적이고 안정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이 불만제로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뭐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잖아요.
중고 매트리스, 침대에 그 위에 올려놓는 매트리스를 가져다가 겉으로 새것처럼 만들어갖고 새 매트리스인 것처럼 팔던 그런 장면이 이제 포착이 됐다.
그런 상품을 산 사람이 있을 거 아닙니까?
매트리스를 써보니까 불과 한달 썼는데 푹 꺼져버린단 말입니다. 스프링을 재생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제 그런 소비자의 불만이 들어오면 현장에 찾아가고 카메라로 그걸 찍고 뭐 몰래 찍더라도 찍고 해가지고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수정조치를 유도해내는 것, 이게 불만제로 프로젝트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말합니다.
21C소비자들을 위한 권리대장전이다. 라는 얘기를 해요.
불만이라고 하는 것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에요.
모든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귀한 돈을 주고 구입한 물건에 불만이 있게 될 경우에 그 불만을 다 없앨 수 있는 만족하는 단계까지 이끌어갈 수 있는 대안을 한번 제시해보겠다고 하는 아주 야심만만한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시청자들이 다 소비자 아닙니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일류역사를 통해서 크게 나눠보면 이렇게 인간 속에 생기는 이 불만을 없애려고 하는 프로젝트가 뭐 더 많이 있겠습니다만 세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우선 여러분, 불만이라고 하는 것, 오늘 본문에 아주 중요한 이슈로 등장을 합니다.
엘리후의 말이 계속되는 가운데 오늘 36장에 핵심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그리고 주권적인 섭리,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그런데 어떻게 다스리시냐?
공의로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욥이여 당신이 당한 지금의 처지로 인해서 하나님께 불만을 표현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해라. 왜냐?
우리는 그분의 그 깊고 높으신 지혜를 다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를 우리가 의심해서는 안 되니까.
찬양하라. 하는 얘기를 합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힘들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며 찬양할 것을 촉구합니다.
역시 훈수는 훈수에요.
틀린 말은 아닌데 당장 육체의 거죽이 썩어서 기왓장으로 긁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런 현실, 그런 고통. 자식을 실제로 10명을 잃어버린 고통, 모든 재산을 다 상실한 고통, 친구들에게 전혀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고독함, 아내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버리고 떠난 그러한 외로움. 육체적인 아픔.
육체적인 아픔이 제일 무서운 거 같아요. 사실상. 제일 피부에 와 닿는 거 아닙니까?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훈수는 훈수지요.
그러나 이 엘리후의 훈수 속에 우리가 한번 짚고 넘어가야 될 아주 신앙의 귀중한 포인트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지 말아라.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며 마치 하나님이 뭔가 잘못한 것 같이 불만을 토로하지 말아라. 라고 하는 이 엘리후 말에 담겨있는 신앙적 메시지가 뭘까요, 여러분?
모든 불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조차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내게 주어져있는 현실에 대한 모든 불만, 모든 사람에 대한 불만은 결국 하나님을 고소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왜냐?
하나님이 주권적인 섭리로 이 세상을 다스려 가시기 때문에.
불만의 영적인 의미가 그렇다는 거예요.
모든 내 마음에 갖게 되는 불만은 하나님이 잘못됐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도대체.
하나님, 크게 잘못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 주어지는 사람이나 현실이나 무엇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 너무너무 잘못하셨습니다.
하나님, 형편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있는 이 세상 안에서 불만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고소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게 불만의 영적인 의미에요.
그런데 이 불만이라는 것을 하나님을 모른 채,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 불만을 제로로 만들려고 하는 프로젝트가 인류역사 속에 계속됐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건, 모르는 사람들이건, 그 사람들이 삶을 추진해가는 추진력은 다 어디서 나왔느냐?
불만을 없애는데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만제로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살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런데 이 불만프로젝트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이렇다는 것이에요.
우선 불만이라는 거, 여러분.
이 TV방송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처럼 불만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어디다 포인트를 주고 확인하고 있느냐?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불만이 생기지 않습니까?
일이, 현실이,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불만이 생깁니다.
이때 이 TV에서 하는 불만제로 프로젝트는 어디다 악센트를 주고 어디다 초점을 맞추느냐?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내 마음대로.
그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내 마음대로 되게 해주겠다는 것이에요. 내 마음이 원하는 만큼 내 마음이 만족할 만큼 수치가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 이 불만제로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 그렇게 살죠.
신앙인들도 결국 여러분, 어떡합니까?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불만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 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이루어주세요. 이렇게 이루어주세요. 라는 것은 간구, 우리가 소위 말해서 간구한다고 할 때 대부분의 간구가 지금 현실이 만족하지 않으니까 이게 잘못됐다고 판단하니까.
내 마음대로 내가 마음을 먹고 있고 내가 마음이 기준을 정한 그만큼 그만한 수치만큼은 올라가줘야 되겠다. 현실이, 내 아이가, 뭐 내 사업이, 내 건강이, 그래서 그걸 그 차이를 매꾸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죠.
불만이라는 게 바로 거기서 생긴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불만제로 프로젝트 1은 내 마음을 그대로, 고대로, 마음대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 바깥의 환경과 내 바깥의 사람을 내 바깥의 일을 내 마음에 맞추어 바꿔가려고 하는 것이 불만제로 프로젝트 1입니다.
원. 불만제로 프로젝트 원이 바로 내 마음대로 환경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불만제로 프로젝트 투는 뭐냐?
일이 내 마음대로 안돼서 불만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마찬가지로 일이 안되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을 포착을 하는 것이에요.
일이 안되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에 일이 생기는 겁니다.
일이 내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에 불만이 생겼으니까
내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을 죽이라, 이겁니다.
사업이 안됐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업을 잘 해보겠다는 내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불만이 생긴 거니까 내 마음을 먹지 말아라.
그러니까 잘해보겠다, 라는 그런 집착과 그런 집념 없이 사업을 해도 해라.
이게 불만제로 프로젝트 투에요.
대표적인 것이 이런 불만제로 프로젝트 투의 대표가 뭐냐?
불교입니다. 불교.
그러니까 일을 잘하고 싶다. 내 마음대로 일을 잘되게끔 하고 싶다. 라고 할 때 그 내 마음을 죽여라. 왜냐?
일이라고 하는 것 자체, 잘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그 일자체가 내용적으로 보면 無다. 無.
그 속이 텅 빈 虛요, 無다.
그러므로 그거 가져봐야 별거 아니니까 마음을 다스려라.
뭐 정치적으로 높아지고 싶다.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의 발원, 내 마음의 기, 내 마음이 일어나는 것, 일어날 起자. 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죽여라.
그래서 마음에서 잡아버리는 겁니다. 마음을 그렇게 먹지 말아라.
일이 안됐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게 아니다.
아주 참, 기막힌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요?
그럼 여러분, 불만제로 프로젝트 쓰리는 뭘까요? 불만제로 프로젝트 쓰리.
감사입니다. 감사.
이 감사라고 하는 하나의 단어가 현실이 되려면 진정한 감사,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라는 이 마음을 죽이는 겁니다.
그래서 죽이는 방법으로 십자가를 제시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은 자인 것을 고백하게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인 것을 고백하게 하면서 그 십자가에 약속을 담아주신 것이에요.
불교하고 다르지요.
어떤 약속을 담아주십니까?
십자가에서 죽은 자인 것을 고백함을 통하여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죽고 나면서, 다 죽음이 확장되어가면서, 죽음이 깊어지면서,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래 하나님과 자꾸 친해져요. 자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나님과 친해지고 하나님과 깊어지면서 어떤 힘이 생기느냐?
현실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찬송과 감사가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찬송과 감사가 나오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아주아주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심방을 갔습니다. 여자분이에요. 언젠가도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암으로 투병을 하시는 가운데 이제 뭐 죽음이 기정사실화된 상태였습니다. 제가 찾아간 지 한 달 뒤에 돌아가셨으니까.
뼈만 남았어요. 뼈에 가죽이 붙었다는 게 진짜 실감이 납니다.
그래 제가 손을 붙잡고 기도를 하는데 너무 그 처지가 정말 참담하고 측은하기 이를 데 없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울게 됐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기도를 하다가 이제 기도가 끝나고 수건을 꺼내서 이렇게 눈물을 닦고, 제 손수건을 꺼내서. 그 손수건을 이렇게 놓다가 보니까 어떻게 그분이 덮고 있는 얇은 그 이불위에다 놓게 됐어요.
그랬더니 그 여자집사님께서 목사님, 수건 좀 치워주세요. 예? 그랬더니 무거워요. 그러시는 거예요. 그 수건이 무겁다는 거예요.
그래 내가 야, 사람이 기진해버리니까 수건이 무거운 거예요. 손수건이. 손수건이. 세수수건도 아니고 손수건이.
그래 제가 그때 깨달은 게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무겁잖아요. 그러면 현실이 진짜 무거운 것이라서 무겁게 느낄까요?
아니면 나의 죄가 암 같이 번져가지고 손수건에 해당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무겁게 느끼고 있을까요, 지금?
여러분의 아버지가 천지를 지으신 분이신데 이 우주공간 안에서 지구는 티끌 중에 티끌입니다. 이 채플실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티끌 같은 먼지보다도 더 작은 거예요.
채플실이라는 크기 안에서 이 먼지가 차지하는 그 비, 그 비율과 우주 안에서 지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치면 지구가 더 작은 거예요.
그런데 그 지구 안에서 또 티끌 같은 우리 삶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그런데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내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나 자신이 하나님이 된 자리에서 이 세상을 보면 손수건 하나도 무거운 거예요.
내 마음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돼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암입니다. 암. 이게 암이에요.
그러니까 끊임없는 걱정과 끊임없는 불만을 갖게 만드는 것이에요.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면서 내 마음대로 하려는 이 마음이 죽어버려요.
그러면 천지를 지으신 아버지께서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내 안에 들어오세요.
그럴 때 그 무한하신 능력과 그 무한하신 지혜로 내 삶을 이끌어갈 때 정말 고난처럼 보이고 역경처럼 보이는 일이 주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손수건에 불과하다는 것이에요.
찬송을 하고 감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약의 사람들이 달라요. 신약의 사람들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아버지, 성령하나님을 마음에 성전이 되어서 모시고 살아갈 때에 초대교인들처럼 역경을 많이 당한 사람들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역경처럼 보였을 뿐이지 고난처럼 보였을 뿐이지 계속 그들은 찬송하고 찬양하면서 순교의 자리에서 죽어가고 사자밥이 되었고 불에 타서 죽었고 그렇게 죽어갔던 것이에요.
찬양하며 그 자기가 탄압받아가지고 박해받아가지고 온 가족이 다 몰살당하는 현실, 그런 것이 현실로 주어지고 있는데 거기서 찬양하며 감사했던 이유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내 마음대로 내 소원대로라는 것이 죽어버리고 하나님마음대로 이끌어 가는 이 세상 속에 주어진 이 박해를 그대로 감사와 찬양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손수건 하나에 불과하니까. 손수건 하나에 불과하니까.
그래 여러분, 이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고 불가에서처럼 내 마음대로만 죽이려고 하는 그것이 또 뭐냐?
또 하나의 나가 서있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하려는 그 나가 잘못됐다고 보고 있고 그 나를 포기하고 체념하려는 또 다른 나가 있는 거예요. 또 다른 나가.
그러나 기독교의 십자가가 말하는 게 뭐예요?
약속이 담겨진 사건이에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너희 안으로 들어가겠다. 라는 약속이 담겨져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대로 되게 하려는 모든 이 마음의 뿌리를 다 죽은 것으로 인정해버리는 겁니다.
그럴 때 내 마음 안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시면서 정말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과 감사가 나올 수 있는 그런 강인한 영적체질의 사람들로 바뀌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교회 안에서 요즘 문제가 뭐예요?
불만제로 프로젝트 원을 강조하고, 강조하고, 강조합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게 있느냐?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기도하고 구하고 긍정하고, 긍정하고 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불만제로 프로젝트 원에 매달려 있는 것이에요.
불만제로 프로젝트 쓰리. 십자가사건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이고 감사로 귀결되는 프로젝트, 이것만이 구원받은 자들의 불만제로 프로젝트인 것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셔야 되요, 여러분. 기도.
말씀을 지금 들었지 않습니까? 그러면 기도하셔야 되요.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세요.
내 마음에서 죽게 되어질 수 있는 시간, 진짜 세상에 대해서 내 마음이 죽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들어오실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드리시기 바래요.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성령님이 충만하게 내 안에 임재하시면 불만제로가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에요.
불만제로.
오늘 하루 불만제로 프로젝트 원, 이거 자체가 없어져야 됩니다.
불만제로 프로젝트 투. 이것은 이방인들이 만들어낸 프로젝트에요.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감사의 자리까지 나가서 이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불만제로 프로젝트 쓰리를 체질화시키는 하루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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