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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090217
제목: 꺼낸 돌과 남은 돌
본문: 욥37:1-24
오늘 읽은 말씀 중심으로 꺼낸 돌과 남은 돌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어느 상인이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사가 잘 안되자 장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게 됩니다.
그런데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린 돈을 제때에 갚지 못하면서 아주 어려움에 처하게 되요.
그러니까 대부분 고리대금업자가 그런 것처럼 이 못돼먹은 고리대금업자가 와서 빚을 갚지 못하는 상인에게 무엇이 있는가, 돌아보다가 아주 예쁜 외동딸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고리대금업자가 딸에게 나에게 시집을 올 것을 강요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뭐 이 상인은 아버지입장에서 가슴이 찢어지지만 그 옛날 그 풍습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딸이 싫다고 해요.
그러니까 으름장을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딸이 말을 합니다.
정 그렇다면 내가 제안을 하겠다. 어차피 내가 마음에 없는 결혼 해봐야 당신하고 행복하게 살 수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하도록 하자.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제비를 뽑자. 어떻게 무슨 제비를 뽑자는 것이냐?
당신이 상자를 마련하고 그 상자 속에다가 돌 두개를 집어넣어라.
까만 돌과 하얀 돌을 집어넣어라.
그래서 내가 까만 돌을 끄집어내면 당신과 결혼하는 것이고 하얀 돌을 끄집어내면 우리 아버지의 빚을 다 탕감해주는 것으로 제비를 뽑자.
가만히 듣다가 뭐 자기가 손해 볼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게만 한다면 이 예쁜 아가씨가 자기에게 기쁨으로 결혼을 하기로 하겠다, 하니까 아가씨 얻을 마음에 그렇게 하자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상자를 가져오는데 이 못돼먹은 고리대금업자가 그대로 가져올 리가 있겠습니까?
까만 돌을 꺼내면 결혼을 해야 되니까. 흰 돌을 꺼내면 결혼도 못할 뿐만 아니라 탕감까지 해줘야 되니까. 어떻게 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다고 상자 속에다가 까만 돌만 두 개를 집어넣은 겁니다.
그러니까 뭘 집어도 결혼을 할 수밖에 없게 돼있습니다. 돌 두 개 중에서.
상자를 갖고 왔습니다.
아가씨가 돌을 끄집어냈습니다.
이제 펴보면 검은 돌이겠지요. 아가씨가 펴보지도 않고 그 돌을 있는 힘껏 강가에 던져버립니다. 강물에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고리대금업자가 난리가 났습니다.
무슨 짓이냐, 그게?
그러니까 이 아가씨가 하는 말이 돌이 두개고 하나는 검은 돌이고 하나는 흰 돌일 테니까 남은 돌을 보면 내가 무엇을 집었는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남은 돌을 보자.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 남은 돌이 뭡니까?
당연히 탕감하는 돌만 남은 걸 테지요.
검은 돌을 꺼내면 결혼을 하는 거고 흰 돌을 꺼내면 탕감을 하는 건데 남은 돌이 검은 돌이니까 그렇지요?
당연히 흰 돌을 꺼낸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까?
안 그러면 자기가 검은 돌만 두 개를 준비한 거짓말이 탄로 날 테니까.
이 아가씨가 흰 돌을 꺼낸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게 돼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결국 결혼도 못하고 탕감만 하게 되었다, 하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에요.
자, 여러분 여기서 이 정말 이런 얘기가 있었을까 의심스러운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비유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꺼낸 돌을 보지 말자, 하는 것이에요.
속에 남은 돌을 보면서 의미를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의 삶으로 갖고 오면 어떤 얘기가 될까요?
우리의 모든 삶의 현실, 눈에 보이는 현상, 귀에 들리는 이 현상들, 이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 삶을 계획하고 우리 삶을 진단하면서 살지 말자는 겁니다.
그럼 뭐 꺼내지지 않은 돌을 의식하고 그 돌을 우리 인생을 위한 근거로 삼고 살아가자는 것이에요.
꺼낸 돌은 뭐고 남은 돌, 꺼내지지 않고 있는 돌은 뭡니까?
꺼낸 돌, 우리의 현실이라면
꺼내지지 않은 돌은 이 현실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도에요.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보이지 않아요.
꺼내지지 않았기 때문에. 들리지 않아요.
그러나 그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아니하는 숨겨져 있는 하나님마음속의 생각과 마음속의 계획과 의도에 맞추어서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가 당하고 맙니다.
사탄에게 당하고 만다는 것이에요.
고리대금업자에게 당하고 말아요.
꺼낸 돌을 펴서 그걸 보고 내 행동과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려 그러면 결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결정하려 그러면 안 됩니다.
꺼내지지 않은 돌이 보여지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이에요.
꺼내지지 않은 돌을 근거로 행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고 있는 현상은 무조건 마음에서 강물에 집어던지는 겁니다.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자식이 실패했습니다. 취직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했다고 합시다. 대학진학에 실패했다고 합시다.
또 반대로 진학이 잘됐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잘 됐다고 여겨지는 현상이든지 잘 안 됐다고 생각되는 현상이든지 모든 것을 마음에서 집어던져버리셔야 됩니다.
마음이 그것을 붙잡고 있어갖고 그것을 보고 거기서 의미를 찾고 삶의 계획을 그걸 근거로 세워나가다가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바로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찾다가는 반드시 마귀에게 먹히게 되어있습니다. 마귀한테 시집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 이제 드디어 모든 논쟁이 종식되는 그런 마지막 장입니다.
엘리후의 마지막 결론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 엘리후 변론의 37장에 기록되어진 말의 요지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들으라. 들으라.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우리 눈에 보이는 삶의 현실이 주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 눈에 보이고 있는 삶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지혜가 없다. 왜?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현실을 주시는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인도하시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자꾸 말을 하려고 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얘기한다.
욥, 네가 지금 그러고 있지 않냐?
고난과 역경이 주어졌다. 그러면 입을 다물고 하나님 앞에서 들어야 되는데, 들어야 되는데 또 들어야 되는데 넌 자꾸 네가 이야기를 하고 말을 하지 않느냐?
네가 무엇을 안다고.
하나님의 그 기묘하신 능력과 지혜와 그 섭리에 의해서 주어진 너의 삶에 대해서 네가 무엇을 안다고 불평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자꾸 입을 놀리느냐?
입 다물어라.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지혜를 쫓아가기 위하여 귀를 기울일 뿐이다.
이런 얘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욥이 이제까지 그렇게 살았잖아요.
오직 그 하나님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배반할까봐 무서워하면서 가장 두려워한 것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걸 두려워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자식들을 위해서 그렇게 교육시키고 재산과 재물로 인해서 내가 언제 기뻐했느냐?
내가 내 손으로 모아들인 소득이 많아졌음으로 해서 기뻐한 적이 있었느냐?
그렇게 살지 않았다. 집어 던졌다는 겁니다. 마음에서.
일이 잘된다고 해서.
그러다가 욥이 친구들이 와가지고 하도 비난을 하니까 같이 말씨름을 하면서, 말싸움을 하면서 진창에 굴러버린 거예요.
이때 엘리후가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는 겁니다.
자, 이제 조용히 하자.
하나님이 38장에 나타나시는데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예비하는 의미가 들어있는 그런 장입니다.
그리고 욥의 이제까지 인생을 정리해주는 것이에요.
욥에게 그렇게 권고하고 있지만 실제로 욥이 살았던 모습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욥이 그렇게 살았어요.
듣고, 듣고, 듣고 살았습니다.
보이고, 귀에 이 세상적인 차원에서 보이고 들리는 일들을 까보고 그것을 따라가며 살았던 것이 아니에요.
꺼낸 돌을 펴서 보면서 살았던 게 아닙니다.
언제나 보이지 아니하시는 꺼내지지 않은 돌을 보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자기 인생의 방향을 찾고 살았던 사람이 욥입니다.
말씀드렸지만 바로 친구들이 찾아와가지고 자꾸 비난을 하다보니까 거기에 맞서 대응하다 보니 어느덧 말싸움의 진흙더미에 굴러버리고 말았어요.
엘리후가 훈수를 두는 가운데 논리적인 이야기, 신앙의 논리로 정확한 이야기를 가려주면서 하나님이 나타나심을 예비해주고 있습니다.
본장의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란 것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이 나타나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38장 전에 이 37장에서 다시 한번 신앙의 귀한 어떤 교훈을 메시지로 들을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자, 뭡니까?
욥의 이제까지의 인생을 정리해준 말이에요. 엘리후는 그런 의도가 없었지만 엘리후가 욥을 향하여 너, 이렇게 살아야 된다, 라고 하는 그 말을 욥은 그대로 살았어요.
그렇게 산 인생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냐?
들으면서 살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욥의 이제 제 2의 인생이 시작되기 전에 앞서 있었던 인생을 정리해주는 의미가 있다고 봐요.
성공이었다는 거예요. 욥의 인생은.
한 사람의 인생이 욥의 인생처럼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질 때 여러분, 무엇으로 따집니까?
하나님의 지혜로 계획된 길에서 이탈하면 실패요, 하나님의 지혜로 계획되어진 길을 따라가면 성공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성공이고 안 벌면 실패가 아니고 벌거나 안 벌었거나 상관없이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나온 계획, 그게 있을 거 아닙니까?
그 계획을 이탈하지 않고 잘 따라갔다면 그러면 성공이고 아니면 실패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아침에 어떻게 하나님의 그 꺼내지 않은 돌, 남아있는 돌, 그 돌을 보면서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해나갈 수 있겠는가?
꺼낸 돌을 보지 말자. 주어진 현상에 좌우되지 말고 꺼내지 않은 돌을 보면서 삶의 방향을 잡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라는 거 한번 생각해보고 마치도록 하지요.
여러분, 우선 우리 마음이 현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현상에서 빠져나올 때 그 꺼낸 돌을 보지 않는 거예요. 현상에서 마음이 빠져나와야 되니까. 빠져나와야 되는데 그 빠져나올 때 제일 먼저 내 마음속에 확인해야 될 일이 뭡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 점을 잊지 말고.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꺼낸 돌이 흰 색이건, 검은 색이건, 그 어떤 색이든지 간에 그걸 보고 쫓아가지 말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돈을 많이 주시면, 하나님이 우리 자식들 잘되게 해주시면, 하나님이 나를 건강하게 인도해주시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업을 안 되게 하고 어려움을 주시면 하나님이 나를 안 사랑하시는 것 내지는 돈을 많이 주고 사업이 잘되게 하는 옆집의 A집사보다 덜 사랑하시는 것 같은.
이런 거 없다는 거예요.
아브라함과 여러분 자신 중에서 하나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실까요? 하나님이.
똑같이 사랑하세요.
사도바울과 여러분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실까요?
똑같이 사랑하세요.
문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정도로 깊이 믿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해도 사랑은 쌍방간에 상호작용이 있어야지 사랑이 사랑 되는 것이죠.
내가 사랑주어본들 무슨 소용 있습니까? 받지를 않는데.
그러니까 어느 정도로 깊이 믿느냐 이거에요.
사업이 실패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어요.
그런데 자식까지 망하는 모습이 보이니까 그 선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돈 많이 버니까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대요.
그러면 돌아가신 이병철씨 그리고 정주영씨는 어땠을까요?
하나님이 사랑하셨을까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하셨겠네요? 그렇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선택도 되지 않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분들이. 그 속사정은 우리가 모르니까.
그리고 돌아가셨어요.
우리나라의 1, 2등의 재벌로 사시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분들을 사랑하신 걸까요? 나보다 더 사랑하신 겁니까?
아니잖아요. 그거 아니잖아요.
어디까지 사랑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꺼낸 돌을 보고 결정하는 거예요. 꺼낸 돌을 보고.
꺼낸 돌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요만큼밖에 사랑 안 해.
그러니까 주님이 주기도문에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하는 글귀를 집어넣으신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그 무한한 지혜로 우리를 이끄시다 보면 도저히 우리의 지혜와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소원과 우리의 계획, 이런 것 가지고는 포착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시험에 드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게 맞아?
그러니까 이 세상적인 꺼낸 돌의 모양이 너무너무 험악하면 험악할수록 그걸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받아들이는 거예요.
아무 문제도 없다. 아무 고통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무슨 수로 깊이 받아들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자,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얘기했어요. 왜?
세리와 창기들은 그 당시 예수님시절에 세리, 창기, 자기 자신들이 봐도 사회적 기준으로 봐서 밑바닥에서 밑바닥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의 그 험악한 인생길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니까 얼마나 깊이깊이 받아들여야 됩니까?
저 밑바닥에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까지 임했다고 믿으니까 그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까지 내려가겠습니까?
아니, 밑바닥인생이 자기까지도 사랑한다고 믿으니까.
그러나 바리새인들, 위에 올라가있어요.
날 사랑하신다. 날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 기준이 1mm밖에 안돼요. 내려올 데가 없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로 실제사랑이 내려와 담길 그릇이 없다는 겁니다. 담길 그릇이.
그러니까 눈에 보이고 있는 이 현실 앞에서 흔들리지 말자는 것이에요. 흔들리지 말자.
그걸 보고 하나님사랑 결정해갖고는 안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보시면 되요.
무조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최선으로 이끌려가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된다는 것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려면, 무조건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려면, 눈에 보이고 있는 꺼낸 돌에 대한 내 입장이 무조건 죽어야 되요.
그러니까 꺼낸 돌을 안 봐야 되요. 안 봐야 돼. 그냥 집어던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잘될 때도 속아요.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사랑의 표현인 줄 알고. 그렇게 되는 것만이.
또 못될 때는 그것이 하나님사랑이 아닌 줄 알고 또 속아요.
그러니까 잘될 때도 못될 때도 하여간 마음에서 현상, 이 꺼낸 돌은 집어던지세요.
그리고 꺼내지 않은 돌을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돈 많이 주시고 하나님이 손을 이렇게 모으고 계시는 게 보일 거예요.
야, 내가 돈을 줘도 이제 쟤가 이거 걱정이다. 걱정.
이 돈 때문에 또 쟤가 심령이 썩어가겠네. 그저 세상에 그냥 마음대로 살이 부등부등 찌는 거예요. 마음이.
어떻게 살이 쪄요?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이것도 갖고 다 가져요. 다 가져.
마음이 살이 부등부등 쪄요.
벌벌벌 떨고 계시는 하나님이 안 보이세요? 돈 많이 버신 분들.
그리고 두 번째에요.
지혜를 따라가려면 첫 번째 뭐라고요?
무조건 하나님사랑을 믿어야 되요. 그러려면 집어던져야 되요. 집어던져. 뭐?
보이는 현상을. 잘되건 못되건.
세상기준으로 잘되는 것도 집어던지고 못되는 것도 집어던지는데 그 집어던지는 길이 뭡니까?
십자가사건이라는 거예요.
잘될 때도 십자가에서 죽어버려요. 그걸로 기뻐하지 마세요.
욥이 뭐라 그래요?
내 손으로 얻어 들인 재산으로 말미암아 내가 기뻐한 적이 있었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무조건 인생의 일중에 인생의 사건 중에 해야 될 과제 중에 우선으로 삼으세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뭐예요?
말씀을 듣는 거, 그 시간이 하나님만나는 시간이에요.
기도하는 시간, 그 시간이 하나님만나는 시간이에요.
그 다음에 집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에요.
성도가 함께 모여서 모이기를 힘쓰면서 하는 이 예배드리고 말씀을 서로 나누고 하는 시간, 그래서 성수 주일하라, 성수 주일하라, 그러잖아요.
성수주일이 절대적으로 맞는 진리입니다. 주일을 지켜야 되요.
그런데 전제가 있어요.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동안에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체험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서의 교회에서 예배를 위해 성수주일 하는 건 백번, 천 번 옳습니다.
그런데 봉사부장으로서 교육부장으로서 당회원으로서 재정담당 장로님으로서 교회 가서 회의하고 뭐하고 하느라고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니라 교회라고 하는 조직을 위한 조직의 멤버가 돼있다. 그 성수주일은 망하는 성수주일입니다. 그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놓고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성수주일을 얘기해야지요. 목사님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니라 교회라는 조직에 일을 만나게 해놓고는 성수주일 하라 그러면 그 교인들 영혼을 어떡하겠다는 겁니까?
저는 확신해요.
주일날 회의 안 해도 얼마든지 교회 이끌어갈 수 있어요.
평일 날 당회하고 평일 날 부서회의 하고 그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주일날은 예배만 드려요. 예배만 드려. 딴 거 하지 말고.
뭐 그렇게 주일날 행사가 많고 회의가 많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지요. 성수주일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하여간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만나는 일을 이 세상에서 결혼식보다 아이들 입학보다 더 큰 문제로 삼아보세요.
반드시 영적인 의미에서의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인생.
그것이 바로 꺼내지 않은 돌,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그 지혜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이에요.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서 벌어진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고 우리 식으로 판단해갖고는 절대 하나님의 속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올바르게 쫓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십자가 붙잡고 주어지는 현상의 돌은 다 냇물에 버리는 겁니다.
그걸 보고 판단하고 그걸 보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붙잡노라 보면 진짜 하나님의 사랑이 실감이 되고 느껴질 것이에요.
그 하나님의 사랑 느끼시면서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신 하나님, 어찌하든지 내가 만나야 되겠다. 이 만남의 사건을 하루 삶에서 1순위로 놓는 겁니다.
무조건 기도시간은 확보하는 겁니다.
기도시간을 빠그라뜨리면서 바이어를 만나야 될 일이 생겼다.
그럼 바이어 안 만나요. 그 바이어 만나지 말고 그 거래, 포기하세요. 포기하세요.
기도보다 더 중요한 거래는 없습니다.
거래라는 말이 맞지 않습니다마는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고 하는 사건보다 더 우선적이고 더 급박하고 더 절대적인 게 없어요.
요걸 fix해 놓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하루 중 fix해 놓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안돼. 애인이 만나자 그래도 안 되고 별의 별 지진이 일어나도 안 되고 그런 마음가지고 내가 하나님을 만나야 돼. 이 마음 있으면 지진이 벌어지다가도 붙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알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그 사랑과 그 지혜로 이끌려져가는 내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지혜에서 비롯된 계획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으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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