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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090123
제목: 붕괴된 갱도속의 가상현실
본문: 욥22:1-30
오늘 엘리바스의 세 번째 변론이 나오는 부분을 우리가 함께 읽었습니다.
이 말씀, 붕괴된 갱도속의 가상현실. 좀 제목이 복잡한가요?
붕괴된 갱도, 그 안에서 광부가 혼자 머릿속에 그려내는 상상적 가상현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언젠가 영락교회에서 부목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 화요일 날 아침에 남자 분들만을 중심으로 하는 성경공부시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이제 좀 지나서 나중에는 제가 그것을 인도하게 됐습니다마는 그전에는 담임목사님이 하시고 또 외부강사들이 와서 말씀을 하실 때 어느 외부강사목사님께서 아침에 오셔서 화요성경공부인도하시면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지금은 10년이 넘었습니다마는 언제나 제 마음속에 그 필요한, 해당되는 말씀이나, 해당되는 현실이 주어질 때마다 그 예화를 기억하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라 그래요.
갱도가 붕괴가 됐다고 합니다. 강원도겠지요? 탄광이니까.
그래서 너무 심하게 붕괴가 되어서 구조작업이 지연되면서 광부들이 그 갱도 속에 갇혀있으면서 다 죽어갑니다.
그래 도착해보면 다 이제 파내고 해갖고 도착해보면 죽어있고. 도착해보면 죽어있고.
그런데 어느 부분을 파서 광부들을 구출했는데 그곳에 있는 광부들은 살아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래 그 이유를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발견된 곳도 다 광부아저씨들이 돌아가셨는데 그 나중에 발견된 구조작업이 이루어진 그곳에 있는 광부아저씨들은 살아계십니다.
그 이유를 살펴봤더니 그곳에 전화가 있었다는 것이에요. 줄로 연결되어있는 전화가 바깥쪽까지 연결돼있어서 그곳에 갇혀있는 광부아저씨들은 계속 바깥세상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곧 구출작업이 시작이 되었다. 곧 갈 것이다,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음으로 이게 심리적인 것이 육체적인 것에까지 영향을 주고 그래서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것이에요.
뭐 오랜 날이 지나면서 물도 한 모금 못 먹으면 육체적으로도 힘든데 깜깜한 갱도 안에 갇혀서 언제 구조작업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가운데서 하루 24시간을 지낸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요번에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을 하는데 하루 지냈는데 밥을 안 먹으니까요 왜 그렇게 시간이 길고 길고 하루가 긴지 몰라요.
그 긴긴 날을 저는 물이라도 마셨고 대명천지에 답답하면 산책을 하고 예배에 참석하면 집회가 있으니까 같이 따라서 하고 그 뭐 얼마나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시간이 길어요.
그런데 깜깜한 갱도 속에 갇혀서. 이건 절망이지요.
심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죽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통 밝은 세상에다가 내놓고 물과 음식을 안줬을 때보다 깜깜한 갱도에 갇혔을 때, 이때 사람이 훨씬 더 빨리.
그 실험도 있잖아요.
쥐를 독 안에 가둬놓고 빛을 들어오게끔 구멍을 뚫어놨을 때하고 빛이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하고 수명이 현격하게 차이가 있다 그러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화선이 연결돼서 외부로부터의 음성이 들려올 때 그때 바로 생명을 끈질기게 유지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엘리바스의 세 번째 말은 참 객관적인 입장에서, 제 3자 입장에서 봐도 기가 막힐 노릇이에요.
엘리바스가 6절, 7절, 9절에 보면 이젠 아예 욥의 구체적인 범죄행위, 죄인으로서 범한 행위들을 나열합니다.
형제의 물건을 볼모잡고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않고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으며 그렇게 착취한 결과 토지를 받고 존귀한 삶을 살았다. 과부를 빈손으로 보내고 고아의 팔을 꺾었다.
만약에 이렇게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았던 욥이 침 삼킬 동안도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심을 쉬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 욥이 이렇게 살았다면 말이 안 되지요.
그런데 나중에 29장, 31장에 보면 오히려 욥이 이런 나약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29장, 31장등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엘리바스는 이제는 잊지도 않은 이야기를 자기가 지어내는 것이에요.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가상현실을. 전혀 없는 이야기를.
이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이 엘리바스의 논리구조가 어떤 형태로 돼있느냐?
이런 것이에요, 여러분.
죄인에게는 재앙이 내린다. 3단 논법이에요.
욥에게 재앙이 내렸다. 그러므로 욥은 죄인이다.
그렇게 결론 내려놓고 죄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든 생활모습을 다 욥에게 갖다 붙인 겁니다.
이게 지금 단순히 욥을 비난하면서 끝나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이러한 마음가짐과 이러한 태도가 어떤 것을 뜻하느냐 하면요.
갱도에 갇혀있으면서 깜깜한 가운데 자기 혼자 가상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태라서 곧 질식해죽고 멸망하게 되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문제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 혼자 마음대로 상상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엘리바스가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오늘 본문 우리가 읽은 데를 보면요 보세요.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와 다른 현실과 공간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쓰냐 하면.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할 수 있으랴.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구나.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흑암 속에 있고 빽빽한 구름이 가려져있다고 욥,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이 말을 통해서 엘리바스는 자기의 현실을 드러내는 겁니다.
욥이 당한 현실이면에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하나님과 흑암을 중심으로 갈라져있다는 걸 뜻한다는 거예요. 갈라져있다는 걸.
그리고 21절에 보면 엘리바스가 욥에게 말해요.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복이 네게 임하리라. 그래놓고 하는 말이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교훈을 받고 말씀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 사탄 앞에서도 자랑하셨던, 하나님이 자랑하셨던 그 욥을 있지도 않은 죄악을 갖다 붙이고 고아의 팔을 꺾고 과부의 손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형제의 물건을 볼모잡고 하는 잊지도 않은 죄악을 갖다 붙이겠습니까?
그러면 이 엘리바스의 하나님은 다 무슨 하나님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입에서 나오는 교훈과 그 말씀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욥을 향하여 이렇게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엘리바스가 갱도 안에 갇혀있습니다.
흑암 속에 하나님이 묻혀있고. 자기가 묻혀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만큼 하나님이 실제 안 보이는 거예요.
실제 하나님과 어떤 관계도, 어떤 교통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뭐냐?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집을 나갔다. 안 들어오고 있다.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들이 쓰는 소설이 뭐냐?
바로 오늘 엘리바스가 하는 거예요.
이런 일 하고 있지 않을까? 저런 일 하고 있지 않을까?
남편이 늦게 들어옵니다. 연락이 없습니다.
혼자 자기가 모든 가능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아, 오늘 아침에 특별히 머리에 무스를 바를 때 시간이 오래 걸렸어. 오늘 넥타이를 고를 때 별나게 색깔이 화려한 색깔을 골랐어. 그리고 양복을 입으면서 먼지 있는 거 다 좀 털어달라고 나한테 특별히 안 그러던 부탁을 하던데.
아니, 머리에 무스 바르고 화려한 넥타이 매고 양복도 최고 양복을 입고 나갔는데.
맞아,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던 이 사람이 이거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가씨 만나는 거 아니면 이럴 리가 없다. 틀림없어.
오늘 엘리바스가 얘기하는 거예요.
틀림없다. 욥이 분명히 재앙이 임한 걸 보니까 죄인이고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너, 분명히 고아의 팔을 꺾고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냈고 형제들을 착취했다.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다.
나라의 경제가 어떻다.
하여간 정말 그 기자 분들을 한번 잡아다가 좀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금방 부동산이 올라서 뭐 전망이 부동산이 활발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해놓고 그 다음날은 또 부동산이 얼어붙었다, 얘기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실물경제가 침체국면에 10년 내에 최고로 낮아진다. 그러고 올라간다. 그러고.
뭐 오바마대통령은 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롭게 하나가 되서 출발하자 그러고.
뭐를 할 수 있다고 그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다. 뭐를 예측하고 뭐를 말하고.
여러분도 그렇지요?
교회교인들 간에도 그렇지요.
김집사가 어떻고. 박집사하고 최집사하고 만나가지고.
김집사의 뭐 말을 들어보니까 이렇고 저렇고 다.
이게 뭔지 아세요?
깜깜한 흑암의 갱도 속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내가 지어낼 겨를이 없다고요. 내가 상상할 겨를이 없다고요.
하나님은 생각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르는 분이에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빠, 아버지, 부르는 분이에요.
하나님은 생각하고 공부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끼어 안아야 되는 분입니다.
포옹해야 되는 분입니다.
엘리바스가 상상 속에서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에요.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치면서 아무 이야기나 지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갱도에 갇힌 자들이에요.
비유적으로 말하면 욥이 자식이 10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 그 마음위로 자식이라고 하는 흙더미가 덮인 거예요. 붕괴된 것이에요.
재물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 재물 하나하나가 다 마음이 쓰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마음위로 재물이라고 하는 흙더미가 덮인 거라고요.
내 마음이 사랑하고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할 것들, 내가 아까워하는 모든 것들, 그게 다 지금 마음위로 덮여있는 흙더미와 같은 것이에요.
우리 모두가 다 갱도에 갇혀있는 광부들입니다. 왜?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이 내 마음위에 덮여있는 것이니까.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얘기해요.
경제적인 문제, 나라의 현실, 다 내 마음에 내려앉은 흙더미와 같아요.
하나님과 단절돼버린 겁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랬지, 마음을 다해 나라 사랑하고, 마음을 다해 사업 사랑하고, 자식, 가족 사랑합니까?
그건 무너져 내린 거예요.
그런데 욥이 달랐던 것은 전화선이 연결이 돼있었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하잖아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깜깜한 흑암 속에 가려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욥도 못 봅니다. 엘리바스도 못 보고 욥도 못 봐요.
그러나 욥은 듣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엘리바스는 듣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갱도에 갇힌 광부들과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이야기는 다 지어낸 이야기고 다 가상현실입니다.
아까 그 부인의 경우,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생각을 했어요. 멋지게 하고 나가니까.
그런데 실상이 뭐였냐?
밤에 늦게 들어오지도 않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
오늘 신랑이 속한 부서에서 준비한 프로젝트를 사장님 앞에서 브리핑을 하는데 팀장님이 그 신랑한테 브리핑을 하라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무스를 깨끗하게 바르고 넥타이도 쌈빡하게 어필할 수 있도록 하고 양복도 깨끗하게 입고 나가서 브리핑을 했는데 사장이 박수를 친 겁니다. 잘한다고, 잘했다고. 어쩌면 그렇게 명확하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브리핑을 했냐. 칭찬을 해주니까 그 프로젝트를 그 팀에서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하고 포상금을 줬어요.
그래서 그 포상금을 가지고 그 팀 전체가 가서 자축하는 축하의 파티를 벌이느라고 집에 늦게 들어오게 된 겁니다.
이제 승진의 점수가 쌓여버린 것이에요. 이제 연말이 되면 신랑이 승진하게 됐어요.
그런데 부인은 혼자서 집에서 들어오기만 하면 이제 끝이다. 이 더러운 인간. 이 불결한 인간. 내가 자기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러고 혼자 글을 쓰고 있는 것이에요. 거기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된다고요?
갱도에 갇힌 사람이.
하나님이 흑암 속에서 분리되어있고 전화선 하나 연결된 것이 없이 뭐 하나 밖에 진짜 하나님, 실제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오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 혼자 소설을 쓰고 앉아있는 것이죠.
그러다 결국은 실제로 신랑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 자기를 짓누르고 자기를 억압하고 내가 무슨 죄를 졌기에 신랑한테 이런 배반을 당해야 되느냐고.
그러다가 죽는 거예요. 그냥.
우리가 사는 현실이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실제로는 안 그래요.
실제로는 은총이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은혜 그 자체인데 내가 마음대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왜?
들려오는 전화선 하나 연결돼있지 않으니까.
엘리바스가 지금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다 자기가 만든 가상현실의 이야기에요.
어떻게 이 가상현실을 뛰어넘어서 진짜 하나님에게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진짜 하나님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생각과 내 마음의 모든 소원,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고백해야 되요.
주님의 십자가만이 갱도 속에 갇혀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들리게 하시고 왜냐하면 내 생각이 죽어야 들리는 거예요.
내 생각과 판단이 죽어야 들린다는 건 뭐냐?
지금 돈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내가 판단하잖아요?
아, 이건 안 좋은데 빨리 해결돼야 되는데? 이러고 있는 한 하나님의 음성은 안 들린다는 겁니다.
그 돈 문제 자체에 대해서 완전히 죽어버려야 되요. 죽어버려야 되요.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그래야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들린다는 거예요. 완전히 죽어야.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되어야.
그러기 전에는 다 내 음성이야. 내가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갱도에 갇혀있는 거예요. 갱도에.
질식해죽을 거예요. 그대로 있다가는.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내 앞에 보이고 눈에도. 왜?
갱도에 갇혀있는 그분들 전화로 계속 통화하면서 살고 있었더니 와서 구원해주셔서 광명한 세계를 보지 않습니까?
그러나 전화선도 하나 없어가지고 깜깜한 속에서 제멋대로 상상합니다.
지금 구조대원이 올까? 안 올까? 그러고 24시간, 48시간, 지나다보니 벌써 마음이 죽었고 따라서 몸이 죽어버린 것이죠.
참, 불행한 사고를 그저 비유적으로 얘기하는 거지요.
우리가 마음에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이 세상이 하나님과 나를 끊어놓으려고 쏟아져 내려 붕괴되어왔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래서 우리가 갱도에 갇힌 겁니다.
자식 사랑하지요. 내 건강 사랑하지요.
이게 다 갱도에 갇혀있는 거예요. 지금. 갱도에 갇혀있는 거예요.
하나님과 단절되어버리고 흑암 속에 갇혀버린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에요.
이 세상의 갱도에 갇힌 거지요. 이 세상의 갱도에.
그 속에서 혼자 가상현실에 갇혀서 살지 마시고 특별히 엘리바스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백날, 천 날 불러도 가상현실 속에서의 하나님, 가상현실 속에서의.
남을 정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용도로만.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꿈과 소원을 기도하기 위한 우상적 대상으로만 하나님을 이름을 부르며 섬긴다고 착각하고 있는 갱도에 갇힌 자의 이 불행을 답습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이 나를 죽은 자로 만들어주실 것을 그 약속을 믿으며 기도하시고 그렇게 세상에 대해 철저하게 죽게 될 것을 기다리시고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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