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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090212
제목: 변신 안 되는 영적 병신
본문: 욥34:1-37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변신이 안 되는 영적 병신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체적으로 하등의 장애가 없는 멀쩡한 사람들을 향해서 영적인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그 상태를 그냥 장애인인 것처럼 표현을 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을 나무라실 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 멀쩡히 보는 사람들,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
요즘은 병신이라고 하는 단어가 좀 장애인을 비하해서 쓰는 단어로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는 병이 있는 신체지요. 병이 있는 신체.
그런데 우리는 그냥 변신이 안 되는 영적 병신.
그 뉘앙스를 그대로 영적인 차원으로 갖고 옵니다. 영적인 차원으로.
주님께서 보는 관점. 사지는 멀쩡하지만 주님이 보실 때 팔다리가 하나 없어도, 눈이 하나 없어도, 차라리 죄를 짓고 지옥에 가느니 천국에 가는 게 낫다, 라고 하신 그 주님의 관점에서 영적 차원의 얘기를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 단어에 또 괜히 실족하시지 말기를 바래요. 영적인 차원의 얘기입니다.
변신이 안 되는 영적 병신.
자, 변신이라는 게 여러분 뭡니까?
문자 그대로 몸이 변하는 겁니다.
병신? 몸이 병든 것입니다.
언젠가 저희 집사람의 친구가 함께 대화를 저하고 셋이 함께 대화를 하다가 제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 친구분에게. 좀 변신을 꾀해라. 나이가 좀 들었지만.
그랬더니 그 친구분이 아휴, 변신이 될지 모르겠네. 내 나이에.
그러니까 옆에서 집사람이 있다가 변신하려다 제대로 변신이 안 되면 병신 되니까 차라리 변신하려고 하지도 말아라. 이런 얘기를 하면서 함께 웃었던 적이 있어요.
요즘 영화가에서 회자되는 화젯거리 중에 하나가 2009년도 6월에 개봉되는 영화가 있답니다.
킹콩을 들다. 킹콩을 들다. 그런 영화가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이 조안이라는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래요.
그런데 이 조안이라고 하는 여자가 킹콩을 들다 에서 역도선수 역을 맡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골처녀인데 낫질을 많이 해가지고 낫질로 어깨가 아주 단단하게 아주 여물었고 그리고 타고난 통 허리, 아름다운 여자는 허리가 잘록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역도를 드는 여자는 허리가 통 허리라야 된다고 해요.
그래서 통 허리의 영자로 변신을 합니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찌는 그런 체질이라서 이 여배우가 그 역도선수 영자의 역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고기와 쌀밥으로 이루어진 식단을 중심으로 평소의 2~3배를 먹었다고 합니다.
평소의 2~3배를 먹었을 뿐 아니라 꼭 밤에 잘 때는 라면을 먹고 자고 더부룩한 배로 일어나면 배도 하나도 안 꺼졌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초코파이를 찾아서 몇 개를 먹고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는 계속 컵라면과 과자와 초콜릿을 먹어서 무려 맨 지방살 말고 근육살만 7kg를 늘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까지도 다 깜짝 놀랄 정도로 정말 통 허리가 되고 뭐 그랬다는 후문이 있다 그래요.
여러분, 영화에서 자기가 맡은 배역을 위해서 이런 변신의 노력을 꾀하게 됩니다.
신앙이란 무엇이냐?
실제 삶에서 변신하는 것이에요.
어떤 변신입니까?
실제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맞추어서 변신하는 겁니다.
이 변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신앙인, 이게 병신이에요.
변신이 실제 삶에서 하나님께 맞추어서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신앙의 연륜이 1년, 2년, 10년, 20년, 30년 되는 게 이게 병신이라고요.
그 비하적이고 냉소적인 뉘앙스를 그대로 품고 있는 그 단어, 병신이 바로 그런 신앙인들에게 신앙인도 아니지요, 그러니까.
신앙인의 탈을 쓴 불신앙인이죠.
변신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는 내용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살펴봅니다.
엘리후의 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드디어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엘리후가. 너무 분개한 모양이에요.
7절과 9절을 보면 도를 넘습니다. 감정적으로 치우침이 확연합니다.
전혀 사실무근한 객관성을 결여한 비난을 해댑니다.
욥이 훼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언제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한 훼방을 물마시듯 했습니까?
그런데 하여간 엘리후는 이러한 욥의 잘못, 자기가 느끼는 이런 욥의 잘못을 마치 미국 재판정과 같이 배심원들이 있는 것으로 여겨서 그 배심원들에게 욥의 이 죄악상을 드러냅니다. 그 배심원이 누구냐 하면.
지혜자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총명한 자들이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욥의 죄악상을 다 드러내고 고발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욥이 진정으로 죄인이라는 것을 판단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그런 가정적인 가정하에서의 법정을 연상하면서 욥을 지금 비난하고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욥의 잘못을 9절부터 비난한 다음부터 10절부터 30절까지는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라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네가 자꾸, 욥한테 말하는 거예요.
네가 당한 참담한 고난이 아마 하나님이 실수해서 나한테 주어진 것 아니냐? 왜냐?
나는 이런 고난을 받을만한 아무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다, 라고 말하는데 욥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이 엘리후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나님께 오류가 있다는 식으로 너의 말은 귀결되지 않느냐?
네가 얼마나 나쁜 놈이냐? 그러니까?
그러면서 평소에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열거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뭡니까?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불의를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고 이 땅을 다스리신다. 하나님 앞에서 왕도 비루하고 귀인도 악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과 부자가 가난한 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까짓 왕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와 부자가 누릴 수 있는 돈의 권세가 하나님 앞에서는 도토리 키 재기가 아니냐? 아무것도 아니다. 가난한 자와 다를 게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크신 하나님이다.
사람의 길을 다 인도하시고 사람의 걸음걸음마다 감찰하신다. 다 맞는 얘기를 합니다.
어제도 말씀 드렸지만 엘리후의 문제가 뭡니까, 여러분? 엘리후의 문제가.
지금 욥을 오해하고 있는 이유가 나이도 젊은 사람의 이 엘리후라는 사람의 문제가 뭐냐?
실제 삶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맞추어진 변신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욥을 이렇게까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엘리후가 알고 있는 그런 지식에 맞추어진 지식에서 이해되고 있는 그 하나님을 실제 삶에서 인정하고 모셔 들여서 그 하나님에 맞추어진 모습으로 살려면 그 당시로서는 욥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당신자신을 아브라함에게처럼 영광의 하나님으로 드러내지 아니하시고 그냥 말씀을 허락하시고 당신의 뜻을 알려주시면서 듣고 행하게끔 하시도록 욥에게 허락한 그 상황에서 욥이 엘리후가 알고 있는 그런 지식에 따른 그런 하나님과 함께 실제의 삶을 살려면 욥처럼 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엘리후가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왜?
엘리후는 그 지식에 따른 변신이 이루어지지를 않은 것이에요.
예를 들어 봅니다.
자, 하나님은 어떠어떠하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인 걸 알면 어떡하겠다는 겁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분과 함께 살아서 그 천지를 창조하신 분에게 맞추어지는 사람이 돼야 되지 않아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겁니까?
거기에 내가 맞추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만큼 사랑이시다.
여러분, 저는 제 아들 무슨 일이 있어도 못, 못 박아요. 누구를 위해서 못을 박겠습니까? 제가. 미쳤습니까?
어떻게 낳은 아들인데? 17년 만에 낳은 아들인데?
그런데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외아들이셨어요.
그분을 육신을 입게 만드시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드신 다음에 그 영혼의 고통을 아버지로서 보시면서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게 하셨어요. 살점이 다 떨어져나가도록 찢기우고 매 맞아서 막, 그 뭐 인간의 언사로 형용이 안 돼요.
그렇게 하시면서 나를 사랑하셨어요. 그거 알면 뭐해?
그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이 현실에서 실제 삶에서 실제 사업장에서 실제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실제 부모님을 대하면서 그런 하나님께 맞추어진 모습이 될 수 없을 바에야 그 하나님 알면 뭐하냐. 이겁니다.
자, 보세요.
참새 한 마리의 목숨까지도 하루 있다가 없어지는 들풀까지도 생명을 주관하시는 창조주하나님께서 모든 인간, 나의 원수,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나의 모든 가족, 모든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만큼 나를 사랑하시고 그분은 전능하시고 뭐든지 해요. 나를 사랑하는 분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분은 모든 걸 다 아세요. 전지하세요.
자, 이거 알면 뭐해요?
거기에 맞추어져야 되잖아요. 거기에 맞추어서 변신이 일어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조안이라는 여배우가 영화속 영자가 되기 위해서 아침마다 초코파이를 먹고 자동차 타고 가는 중에 컵라면을 먹고 초콜릿을 씹어 먹고 평소의 2~3배가 되는 음식을 먹고 해서 근육의 양만 7kg가 더 살이 찌게 해서 통 허리가 되려고 그 모습이 여러분, 요즘 같이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젊고 예쁜 여배우가 할 짓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까짓 영화 안하고 말지. 차라리.
7kg찐 다음에 빠질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그러다 안 빠지면 어떡하려고?
그런 변신을 꾀해요. 영자라는 역에 맞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 하늘아버지의 아들과 딸이라는 신분에 맞추려고 뭔 변신이 일어나야지요. 변신이.
10년 기다려, 20년 기다려, 30년 기다려도. 하늘아버지께서 아들 딸 다운 모습으로 변신이 일어나지를 않는 겁니다.
아니, 천지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아버지인데 이 티끌 같은 우주 안에서 티끌 같은 지구위에서 일어나는 이 티끌 같은 문제들 때문에 죽네, 사네, 하고 살아가면서 무슨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모신다는 겁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영적인 병신들이죠. 변신이 안 되는 병신이에요. 인정하세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여러분의 아버지가 하늘아버지시고 그분이 주인이세요.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전체. 여러분이 모르는 아프리카의 주인이시고 여러분이 안 가본 나이아가라폭포의 주인이시고 여러분이 안 가보신 뉴욕의 주인이십니다.
오바마대통령의 목숨을 쥐고 있는 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세요.
그러면 오바마대통령의 목숨을 쥐고 있는 여러분의 아버지의 딸답게, 아들답게, 뭐 변신이 일어나야지, 맞추어져야지.
그거 알면 뭐해? 내 아버지가 천지를 창조하신 걸 알면 뭐해요?
모양은 아버지는커녕 아버지의 아자도 없는 생고아, 이방인의 별 지렁이 같은 모습을 그대로 다 갖고 있어요. 알면 뭐해요? 아버지가 그렇다는 걸.
뭐 맞추어진 변신이 일어나야 될 거 아니에요? 변신이.
이 영적인 병신상태를 어떻게 극복하겠어요? 이거?
전지하시다. 지혜가 무한하시다. 그리고 무소부재하세요.
무소부재 하시다는 것은 내가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국에 있을 때나 미국에 있을 때나 가난한 처지에 있을 때나 부한 처지에 있을 때나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이 지혜가 무한하세요.
지혜가 무한하시다는 얘기는 도대체 지금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욥과 같은 처지에 내가 놓여있다 할지라도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지혜로 그렇게 나를 이끌고 계시는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 지혜로 지금의 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맞추어지는 변신이 일어나야 되잖아요.
그런데 내 지혜를 가지고 따지고 드는 거예요.
하나님, 이게 웬 일입니까? 이러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대학을 떨어지는 게 좋은지, 붙는 게 좋은지, 돈이 벌리는 게 좋은지, 안 벌리는 게 좋은지.
하나님 앞에서 전지하신,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시라면 내가 다 해야 되요. 내가 열심히 살아야 되고 깨달아야 되고 판단해야 되고 분석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아버지로 내 앞에 와계신다면 그에 맞춘 변신이 일어나야 되잖아요?
엘리후가 지금 그런 거예요.
공의의 하나님이다, 무슨 하나님이다, 무슨 하나님이다, 무슨 하나님, 무슨 하나님.
알면 뭐하냐. 이겁니다. 알면 뭐하냐.
제가 엘리후에게 물어봐요. 아마 저보다도 나이가 젊었을 거 같아요.
알면 뭐할래? 엘리후야.
그 아는 대로 현실생활에서 장사할 때, 사업할 때, 자식 키울 때, 남편과 아내 마주보고 대화할 때, 돈 문제 때문에 걱정할 때, 실제 변신이 일어나야지. 그런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진짜 하나님이 여러분 아버지 맞아요?
하나님이 제 아버지 맞을까요, 여러분? 제가 하는 행동과 마음가짐을 보면?
있을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돈 많아가지고 외제차 스포츠카만 타고 다녀도 애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게 분명해요.
저는 그런 아이가 포르쉐를 타고 온 것을 같이 동승해본 적이 있어요.
굉장하더만요.
독일에서. 그것도. 독일하면 여러분 유명한 게 아우토반 아닙니까?
속도제한이 없어요.
220km로 달리는데 그건 차가 아니에요. 비행기지. 그런 차를 타고 다니더라고요.
시내 들어와서 맥도날드 앞에 세웠는데, 햄버거를 먹으려고.
시내가 떠나가요. 부릉 부릉 부릉 소리가 나서.
그런데 고속도로 들어가니까요 소리가 안 나요. 차가.
쉭~ 바람 같이 가요.
그런 차를 타고 다녀요. 아버지 덕분에. 애가 의식이 달라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요.
저는 햄버거 1, 2불 갖고 벌벌 떠는데 걔는 식사한번 20불, 30불 쓰는 거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보는 세상이 달라져요. 아버지가 좀 돈만 있어도.
그런데 여러분이 진짜 하늘아버지가 여러분의 아버지입니까?
그 하늘아버지가 여러분의 아버지라는 걸 알고 있으면 뭐해?
그 아버지에 맞추어진 아들다운 마음가짐으로, 딸다운 마음가짐으로 변신이 일어나지 않는데 알면 뭐할 겁니까?
제가 독일 갔어요. 독일 유명한 게 조직신학이에요. 조직신학이라는 게 뭐냐?
여러분이 믿고 있는 신앙의 틀을 조직신학이 다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조직 신학자들이 말이 많아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다.
시대에 따라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의식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개념을, 신이라는 개념을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을 해내고 만들어냅니다.
만들어내면 뭐할 건데요?
그 하나님에 맞추어서 아무 변신이 일어나지 않아요. 논문만 나오는 거지.
자식이 요만한 일이 있어도 벌벌벌 떨고 난리가 나요.
여러분, 다윗 보세요.
목동입니다. 목동.
그런데 전쟁터에 갔잖아요? 골리앗이 앞에서 설쳐댑니다.
그 현장에 누가 있습니까?
전쟁에 승리를 좌우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면 선택받은 자로서 변신이 일어나야 되잖아요?
다윗 혼자 변신합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모든 선민이 다 병신으로 남아있습니다. 변신이 안 되는 병신.
변신이 안 되는 병신으로 남아있으니까 골리앗 앞에서 이방인 앞에. 이방인이 누굽니까?
하늘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그 하늘아버지를 모르는 골리앗의 생명까지도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사랑하십니다.
거기에 맞춰 변신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자, 세상이 무섭다, 그래요. 세상이 힘들다, 그래요.
그거 병신이 달밤에 체조하는 거예요. 병신이 꼴값하는 거예요.
하늘아버지가 아버지라며?
그러면서 세상이 힘들다, 그래요?
뭐 그렇게 대단한 일 한다고.
제가 만난 사람 중에 그렇게 대단하고 꼴꼴난 일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거 뭐가 대단하다고.
변신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늘아버지 말만 불렀지 진짜 하늘아버지가 내 옆에 계시는데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소련도, 미국과 함께 세계를 절반으로 갈라먹었던 소련도 하루아침에 없어지게 만드시는, 정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없어지게 만드시는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알기는 잘 알아.
세상을 만드셨지. 하나님이 창조하셨지. 하나님이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주관하시지. 그런데 왜?
내가 죽을 거 같은 건 그렇게 무서워해요?
어마어마한 크기로 사랑하시고 너무너무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나를 지금 데려가시면 어련히 나에게 최고니까 데려가실 테지. 그런데 왜 두려워해요?
알면 뭐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걸 알면 뭐할 거예요?
거기 맞춰서 변신이 일어나지 않는데.
그러니까 병신이라는 거예요.
변신을 할 수도 없으면서 괜히 하나님이름을 거들먹거리니까 병신 아닙니까?
오늘 아침에 병신이라는 말 너무 많이 하는 거 같지요?
아니에요.
일주일을 밤새면서 나 자신에게 병신이라고 말해도 부족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면. 하나님 믿은 다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면 밤새도록 일년 내내 욕을 해도 나를 향해서 나 자신을 향해서 우리 스스로에게 병신이라고 욕을 해도 부족한 병신들이에요.
진짜 하늘아버지가 여러분의 아버지십니까?
그럼 어떤 변신이 일어나야 됩니까?
그런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신 천지를 창조하시고 참새 한 마리의 목숨까지도 주관하시고 왕도 우스우시고 가난한 자도 가난 때문에 별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닌 그런
하나님을 현실에서 모시고 살기 위한 최적의 변신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겁니다.
어디다 대고 내 생각을 들이대요. 어디다 대고 내 감정을 표출해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어디다 대고 내 계획과 내 소원을 막 들이대요?
내 소원, 내 계획, 내 감정까지도 믿지 마세요. 내 감정이 절대적인 겁니까?
내 마음에 안 들면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겁니다. 그것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제 삶에서 내가 맞추어드리면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에요.
무조건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그 모습, 그 변신을 꾀하세요.
내가 뭐 교수건, 학, 박사건, 부자건, 가난하건, 건강하건, 내가 장애인이건, 상관없어요. 상관없어요.
최적의 변신은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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