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찬양강해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늘찬양 2012. 7. 21. 17:08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133장)

▶성경 본문: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찬송 묵상: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

▶찬송 요약

1절,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주, 믿고 순종하는 이의 생명 되시는 주

2절, 풍랑이는 바다위로 걸어오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위해 눈물짓고 기도하신 주

3절, 허물 많은 제자 베드로와 의심 많은 도마를 부드러운 사랑으로 품어주신 주

4절, 엠마오로 행하시던 주님 오늘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네

▶찬송가 해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 세상 지나고 변할지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니다.’의 후렴을 부르면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상상하면 무척이나 흥분이 되는 ‘생애’찬양으로 작사자는 캐나다 출생의 목회자요, 교육가이며, 찬송작가로서 172편의 찬송가를 쓴 알버트 벤자민 심프슨(A.B.Simpson;1843-1919) 목사가 1890년 작사하였습니다. 심프슨 목사는 캐나다 토론토 녹스대학을 졸업하고 장로교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뉴욕으로 건너와 병들고 가난한자들을 돕는 목회를 하였다. 특별히 병원전도, 형무소전도, 빈민전도를 통해 ‘기독교도연맹’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찬송 곡은 뉴욕복음교회음악목사로 있으면서 심프슨의 부흥집회에서 찬양으로 섬기며, 많은 찬송가를 만든 제임스 H. 버크(J.H.Burke;1860-1905)가 1890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교회 음악가와. 찬송 인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찬양 플로로그

1절,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주, 믿고 순종하는 이의 생명 되시는 주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변화템포가 빨라져 1년이면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골짜기를 메워 평지를 만듭니다. 제가 스마트폰 갤럭시 Ⅱ 모델을 산지가 6개월도 안되었는데 벌써 갤럭시 Ⅲ 모델이 출시되었습니다. 자동차의 경우도 1년이 멀다

하고 모델이 바뀝니다. 그러나 가장 변화무쌍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변화속도는 그보

다 더 빠릅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철이 들고 나이가 들고 공부를 많이 하고 교회생활의 연륜이 길어지고 이런저런 직분을 맡

을수록 좋은 쪽으로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태도가 신중하고, 언행을 조심하고, 충성을 다

하고, 덕을 세우고, 믿음이 견실해 지는 것은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쁜 쪽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이고 이것저것 맡은 일이 많아질수록 더 경솔해 지고, 말이 많아지고, 인격과 품위를 지킬 줄 모르고, 신앙이 점점 더 악화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쁜 쪽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던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

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동일하시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동일하십니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신이 아닙니다. 변치 않

아야 신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을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들고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이론, 진화론 등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다 세월 따라 변천을 거듭했고 변했습니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

는 변치 않습니다. 예수가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 다는 진리도 변치 않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을 보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했고, 1장 17절을 보면 "나는 처음과 나중이니"라고 했습니다.

왜 동일하십니까? 푯대 되시기 때문입니다(빌 3:14). 아버지와 아들이 소를 끌고 밭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소를 끌고 쟁기로 밭을 가는 밭은 일직선으로 고랑을 잘 팠는데 아들이 파는 고랑은 삐뚤빼뚤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떻게 하였

기에 밭고랑이 이렇게 엉망이냐?“, ”네 저는 나름대로 일직선으로 밭을 갈려고 했는데 결과

가 이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아버지 밭은 어떻게 이렇게 일직선이 된 것입니까?“, ”그래 아빠는 저기 앞에 보이는 나무를 목표로 정하고 소를 몰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직선인 반

면 너는 목표 즉 푯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밭고랑을 일구어도 목표 즉 푯대가 있으면 바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변화가 많고 잘못되는 것은 변하는 세상 진리와 교육에 푯대를 세웠

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되고 형통하기 위해서는 “어저께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거룩한 말

씀과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푯대로 삼고 믿고 순종하며 나갈 때”(찬송가 1절) 우리는 성공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생명 되시는 예수님, 진리 되시는 예수님, 푯대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고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

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성경주석가 마펫(Moffatt)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변치 않는 영원자이기 때문에 예수를 저버리고 다른 신앙의 대상을 구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태초에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세계와 인간을 다스리시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장차 이 세상을 심

판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아무 때든지 영원토록 변함없이“(찬송가 1절)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찬송 예화: - 풍랑-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삶의 명제가 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명제는 예수그리스도로 충족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벳세다 들녘의 무리를 보내는 동안 제자들을 배에 태워 앞서 건너가게 하신 것처럼 주님은 우리가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소원하신다. 추앙받고 영광 받는 일은 누구나 원하지만 거기에는 내일의 희망이 없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야 한다. 틀에 박힌 생활로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성공을 원한다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데 있다. 바다에 풍랑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고난이 있다. 그러나 이 풍랑이 결코 공포의 대상일 수 없는 것은 풍랑 속에 예수가 찾아와 계시기 때문이다.

<참고: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관련 찬송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134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270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8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338장

▶나의 고백 및 적용

① 비움

② 채움

③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