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406장)
딤후 4:17,2013.09.22.늘찬양교회
후렴의 “족 하네”그러면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바울이 주님께 세 번씩이나 육체에 가시를 없이해 달라고 간구했을 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고후 12;9)는 말씀이다. 성경학자들은 바울의 가시가 그에게 자주 발병한 두통, 안질, 말라리아 혹은 간질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그 가시가 능력 있는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도 제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겸손하게 하시려고 그러시나보다 이해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르게 하려고 더욱 더 기쁜 마음으로 그 약점들을 자랑한다며,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12;10)라고 고백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함께한다는 사실이 고통에서 자유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 찬송은 네로 황제의 박해로 로마에서 두 번째 투옥된 바울이 외롭고 추운 감옥에서 그의 젊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가 처음 변론할 때에, 나에 편에 서서 나를 도와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나를 버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물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주께서 내 곁에 계서서,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 모든 이방사람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구원하셔서, 그분의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딤후 4;16-18) 이렇듯, 모든 것을 감사로 승화시키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사‧작곡은 영국 웨일즈 출신으로 고향에서 두개의 대학을 마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 받은 20C 사람 부루스 에반즈(J.R.Evans)로만 알려져 있다. 첫째, 셋째 단은 ‘낙심’, ‘근심’, ‘괴로움’, 절망, 두려움, ‘번민’, ‘눈물’, ‘환난’, ‘슬픔’ 등 절망적인 가사에 비해, 둘째, 넷째 단은 주께서 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짐을 져주시고, 속삭여 주시고, ‘새 희망’과 ‘용기’를 주시며 ‘주님의 능력’을 주시는 소망의 가사로, 명암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후렴에서 이제 나의 낙심과 근심, 번민, 환난 등이 바울의 고백처럼 내 은혜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은혜와 사랑’의 주제 찬송이다.
1절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 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네
가는 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하며 내 짐을 지시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로운 세상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1절, 가는 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을 때 주님 함께 하사 내 짐을 지시네.
IMF와 글로벌 세계경제 위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취업난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경제침체로 인한 갖가지 후유증이 사회전반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인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을 다하여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인생여정에 고난과 슬픔, 시험과 유혹, 역경과 고통, 낙담과 좌절, 무기력과 비탄 등 인생의 어두운 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해보면 개인적으로 아브라함도 인생의 밤이 있었고 야곱도 이삭도 요셉도 다윗도, 욥도 인생의 밤이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가까이 사귀어 살아가면 결코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인생 누구나 다 육체적인 고통의 밤이 있었습니다. 정신적인 밤이 있었습니다. 물질적인 밤이 있었습니다. 관계적인 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생에서 나쁜 일의 발생을 언제나 막아주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태양이 빛나는 것을 언제나 허락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집어삼키기 위하여 밤과 어두움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에게 어두운 밤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깨닫고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어두운 밤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적으로 충성해도 인생에 고난의 밤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고 그런 인생의 어두운 밤에도 일어서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 때, 가는 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을 때”(찬송가 1절)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며, 주께서 함께 내 짐을 져주신다”(찬송가 1절)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에 이렇게 나를 찾아 주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시 17편 3절에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죄를 범치 아니하리이다.”라고 다윗은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에서 밤중과 같은 시기에 하나님이 그가 있는 곳에 오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버림받았고 고독하다고 느끼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이 밤중에 방문하셨다는 것입니다.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의 축복된 방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사자 부루스 에반즈(J.R.Evans) 역시 후렴에서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로운 세상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라는 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밤에 성부 하나님은 함께하셨습니다. 무덤의 밤에 하나님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류 구원이라는 영광이 있었습니다, 이런 함께 함의 은혜를 아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의 주님, 은혜의 주님, 용서의 주님 사랑의 주님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찾아와 주셨고”(요 8:4),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오셨으며”(마 9:11),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빈 그물뿐인 베드로에게 찾아오셨으며”(눅 5:3),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바울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고전 15:8) 이렇게 어두운 밤을 만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엡 2:22) 그러므로 우리도 인생의 어두운 밤에 하나님이 방문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구원의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갑시다.
시 37편 1-11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브니엘의 역사가 언제 일어났습니까?(창 32:31)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야곱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습니다. 장자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쌍둥이이면서도 차자로 태어났습니다. 형에서를 속이고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은 죄로 인해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뒤에서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기도하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바로 ‘브니엘’(하나님을 대면했다란 뜻)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한계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우리들이 절망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복된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절망적 환경에서도 염려하거나 낙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기를 믿음의 기회로 승리로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성령 안에서 날마다 주님과 함께하므로 아름답게 믿음의 사람으로 지어져가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절 희망이 사라지고 친구 날 버릴 때 주 내게 속삭이며 새 희망 주시네
싸움이 맹렬하여 두려워 떨 때에 승리의 왕이 되신 주 음성 들리네
2절, 싸움이 맹렬하여 두려울 때 승리의 주 음성 들리네.
Ⅰ. 좋은 친구
참된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복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친구, 친구 하지만 친구다운 친구의 우정이 있는 경우는 많지를 않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잠시 좋은 관계를 맺는 것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는 친구가 아닙니다. 나의 이익을 만족시켜 줄 대상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집나간 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할 때에 곁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가진 돈을 다 탕진하자 곁에 있던 친구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흩어졌습니다. 더욱이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눅 15:14).
'런던 타임즈'가 "친구란 무엇인가?"라는 말의 정의를 현상 모집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 세 가지를 뽑아서 상을 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버릴 때, 그 때에 찾아와 주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너무 괴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할 때에 그 말없는 말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내가 기쁜 마음을 가지고 만나면 기쁜 마음이 배가되고 더해지며 내가 고통스러울 때 만나면 고통이 반으로 감해지는 사람이 친구이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잠언 17장 17절에서도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좋은 친구가 되기를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우정을 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친구와의 우정을 잘 쌓는 것입니까? 먼저 예수님과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한 방법 두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살전 5:17).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만... 혹은 매일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과의 깊은 영적 은혜와 만남은 크고 작은 일이든 삶의 어떤 현장이든 그 속에서 기도로 삶의 모든 경험을 주님과 나눌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는지... 항상 주님께 그 뜻을 묻고 행동할 때 우리는 삶에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우리가 쇼핑을 할 때나 운전을 할 때, 혹은 무슨 일을 하거나...하루의 일과를 수행할 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수 1:8, 시 1:1-2).
묵상이란, 하루 종일 그 분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묵상이란 조용하게 떠들지 않고 그 말씀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본래 묵상이라는 뜻은 크게 외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말씀을 크게 낭독했습니다. "이것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라는 각오로서 크게 외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묵상입니다. 오늘 우리는 크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그 말씀을 행함으로 옮겨 실천해야겠다는 굳은 결의와 다짐을 가지며... 그 말씀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고 이끌어 가시도록 계속해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Ⅱ. 승리의 왕
고난과 슬픔, 시험과 유혹, 역경과 고통, 낙담과 좌절, 무기력과 비탄 등 인생의 어두운 밤이 다가왔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찬송가 2절의 둘째 소절에 “싸움이 맹렬하여 두려워 떨 때에 승리의 왕이 되신 주 음성 들리네...”하며 ‘주님의 음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힘써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 머릿속에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겔 37:3).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억류 중이었습니다. 절망, 좌절, 낙심, 한숨뿐이며 아무런 희망조차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면 살았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 37:3)라고 묻습니다. 그것은 “너의 머릿속에 꿈이 있느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실 때 등용하시는 1관문은 그 사람의 꿈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에 아브라함은 100세에 소망도 없고 자기 부인도 생리적으로 끝났지만 아브라함에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히 너희 것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꿈이 있는 사람에게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소망적이고 희망적인 것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꿈과 비전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둘째, 마음속에 영적인 고백을 해야 합니다(겔37:14).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겔 37:1) 하나님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고 하나님의 신이 그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이 권능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길 축원합니다.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하고...”(14절) 하나님의 신이 내 맘에 가득할 때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성령님의 역사가 동반되지 않으면 환상과 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죄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되지 않지만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는 될 줄 믿습니다.
셋째, 행동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겔 37:7,10).
기러기를 보면 V자로 날아갑니다. 지도자 기러기를 중심으로 일치되어 날아갑니다. 이렇게 날아갈 때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를 데리고 전쟁터로 나갈 때 병사들이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삿 7:18)고 외쳤습니다. 300명의 군사를 보면 소망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을 붙잡고 나갔을 때 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도 모세의 피곤한 손을 아론과 훌이 받쳐 줬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 4:9)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12절) 삼겹줄의 신앙이란,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 37:10)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일어날 때 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3절 번민이 가득차고 눈물이 흐를 때 주 나의 곁에 오사 위로해 주시네
환난이 닥쳐와서 어려움 당할 때 주님의 능력 입어 원수를 이기네
3절, 주 나의 곁에 오사 용기를 주시니 원수를 이기네.
찬송가 3절에 “번민이 가득차고 눈물이 흐를 때...환난이 닥쳐와서 어려움 당할 때...”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장면과 가장 연관되는 인물 중에 욥이 있습니다. 욥의 이름 뜻 역시 ‘울부짖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욥은 그의 이름대로 사단의 시험으로 가진 모든 재물과 10자녀를 모두 잃고 질병까지 걸렸으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서 위대한 승리를 했습니다. ‘욥’은 의롭고 선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시련을 당하여 고난을 받고 끝까지 인내하여 승리함으로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욥과 같은 시련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욥처럼 “주의 곁에 오사 위로해 주시며, 주의 능력을 힘입어 원수를 이기는...”(찬송가 3절) 승리의 역사가 있기를 갈망하며 구체적으로 욥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욥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첫째,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신앙적 한계와 무지함을 절감하고 과거 자신의 무지함과 교만함을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훌륭한 인격자는 항상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나 때문이다’ 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은 위대한 승리자입니다.
둘째, 순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욥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인정할 정도로 순전한 믿음을 가진 자였습니다. 약삭빠른 사람이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순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승리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되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셋째, 끝까지 인내했기 때문입니다(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욥은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고 믿음으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환경을 잘 인내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할 때 승리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 받을 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욥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욥은 극심한 어려움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원망한다고 그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욥이 이와 같이 엄청난 시련을 극복하고 승리했을 때 ①정금의 신앙으로 무장하게 되었습니다. ②기도의 열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③하나님께서 물질을 배나 더 주셨고, 열 자녀를 다시 주셨습니다. ④건강과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갑절의 복과 건강과 장수의 복을 받는 위대한 승리자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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