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을 통한 변화(12)
에 8:15-17,2013.11.03.늘찬양교회
오늘은 바사 나라 아하수에로 왕의 총리에 있었던 하만이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가 유다인임을 알고 그의 분노를 앙갚음하기 위해 모르드개는 물론 유다 민족을 전멸시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아하수에로 왕을 꼬드겨 유다민족을 죽여도 좋다는 승인을 받아낸 이후 위기에 빠진 유다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모르드개와 에스더 왕후가 협력하여 유다 민족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낸 아름다운 동역에 대하여 증거 하고자 합니다.
Ⅰ.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만남
모르드개는 "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여호야긴)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에 2:6, 왕하 24-25장 참조) 그의 선조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으며 그의 동족들이 3차에 걸쳐 본토 예루살렘으로 귀향할 때에 동참하지 않고 바사 왕국의 수도인 수산에 남은 유다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벨론 땅에 남아서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숫자는 약 70만 명에 달했습니다. 특별히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기스의 증손이며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로서 에스더의 사촌입니다(5절). 그의 이름인 ‘모르드개’는 바벨론식 이름으로서 바벨론의 주신(主神)인 ‘마르독’을 예배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모르드개의 현재 지위는 아하수에로 왕의 궁전 문을 지키는 문지기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에 2:11,19-22절).
에스더는 ‘아름다운 나무’라는 히브리식 이름의 뜻으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 그의 부모와 떨어지게 되었으며 대신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와 함께 기거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도와줌 속에 어렵고 힘든 포로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아름답고 정숙한 미녀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던 중에 바벨론 나라가 멸망하고 바사 즉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등극합니다. 이때 왕이 고레스입니다. 그 뒤로 아하수에로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아하수에로 왕의 교만으로 인해 왕후 와스디가 절개를 지키다가 그만 폐위되는 비극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후 3년(16절, 1:3)이 지나서 아하수에로 왕은 새로운 왕후를 뽑는다는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이 순간을 놓칠 리 없었습니다. 에스더를 멋지게 치장하여 왕후의 후보로 내보냈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로 뽑히게 되었습니다(17절).
Ⅱ. 하만과 모르드개의 만남
모르드개는 성전 문지기 중의 한 사람으로 에스더는 왕후로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바사 제국의 총리로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하수에로 왕 다음으로 자신이 최고로 존귀한 자라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의 공적을 과대평가하여 그 자신보다 영예를 얻기에 더욱 합당한 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하만은 자기의 권위와 세력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교만한 모습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나 이외에 누가 있겠는가? 나처럼 그것을 받을 만한 자가 또 없으리라. 또 그것을 받을 만큼 훌륭한 자는 나 이외에 없으리라."(에 6:6)의 고백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 하만이 지나갈 때마다 모든 대신들은 물론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까지 하만에게 엎드려 절해야했습니다. 만일 절하지 않으면 혼쭐이 났습니다. 그런 하만이 궁궐에 들어가는데 문지기 중에 한 사람인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는 살아계신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절하지 않기로 신앙의 맹세를 하였기 때문입니다(에 3:2). 하만으로부터 혹시나 보복을 당할까봐 동료 신복들이 모르드개에게 자꾸 절하라며 간청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결국 모르드개의 행동이 하만에게 전달되었고 절하지 않는 이유가 유대인들이 믿는 여호와 유일신 신앙 때문인 것을 알고 이참에 모르드개를 비롯하여 수산 성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기로 마음에 작정하였습니다.
Ⅲ. 죽음의 위기를 맞은 유대인
하만은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죽이기 위해서는 먼저 왕의 마음을 사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가서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사 땅에는 한 민족이 각 도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저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율법이 있어서 왕이 어떤 법령을 내려도 자신들의 법을 지키고 왕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므로 저들을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오니 조서를 내려 유다 백성들을 진멸하소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340,000kg)를 받치겠다.”(에 3:8-9)고 약속 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연간 세액이 은 15,000kg이라는 것에 비하면 상상키 어려운 금액의 헌물입니다. 하만이 이런 거액을 상납하겠다고 떠벌린 것은 아마도 유다인 들에게서 강제로 탈취하여 바칠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 같습니다. 어떻든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간청을 기쁘게 여기며 자신의 인장반지(왕의 도장)를 빼어 주면서 하만의 뜻대로 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만은 관리들을 불러 제비를 뽑아 택일을 정했는데 그날이 아달월(12월) 13일로 결정되었습니다. 하만은 왕의 이름으로 “12월 13일 하루 동안에 유다인의 노인, 아이, 부녀 할 것 없이 모두 죽이고 재산을 탈취하라”(에 3:13)는 조서(詔書)를 각 도(都)의 말로 써서 왕의 반지로 인(印)을 찍고 역졸들에게 붙여 애굽에서 인도까지에 이르는 127각 도에 공고하게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유다인들이 목을 놓고 울었습니다. 금식하며 통곡했습니다.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사람이 수다했습니다. 모르드개도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재를 무릅쓰고 대궐 문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모르드개의 경우 자신 때문에 온 유다 민족이 죽음을 당하여야 한다는 사실 앞에 망연자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하만 뒤에 숨어있는 음부의 권세와 사탄의 세력을 알면서 이를 용납할 수는 없었습니다.
Ⅳ.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연합
1.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
삼촌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재를 무릅쓰고 대궐 문 앞에서 대성통곡 했습니다. 유대인들 역시 금식하며 애곡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시녀와 내시를 통해 에스더의 귀에 들려졌습니다. 에스더는 급히 의복을 보내어 모르드개의 베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려 했으나 듣지 않고 의복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무슨 연고인지 자세히 알아보고 오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만이 유다인을 죽이려고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를 바쳤다는 것과 왕이 유다인을 멸하라고 수산 궁에 내린 조서 초본을 에스더에게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당부하기를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의 생존을 위해 간절히 구하라!”(에 4:8)고 부탁을 했습니다.
에스더는 소식을 듣고 난색을 표명했습니다. 왕의 신복이나 각 도 백성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왕의 부름이 없이 왕 앞에 나아가면 사형감이라는 것과 자신이 왕 앞에 나아가지 못한지가 벌써 30일이나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네가 왕궁에 있다고 해서 홀로 화를 면하리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라. 네가 만일 입을 다물고 잠잠하면 유다인은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네 아비 집은 망한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에 14:13-14)며 에스더의 결단을 요구하였습니다.
2.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이 전해졌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해 금식하되 밤 낮 3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로 시녀로 더불어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16절) 며 일사각오의 자세로 왕 앞에 나아가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결단한 한 사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 한국을 일본의 사슬에서 구한 것은 수만 명이 죽음을 통해 구한 것이 아닙니다. 불과 몇몇 사람이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일사각오를 결의하고 나갔을 때 일본은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입니다. 에스더가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민족을 위해 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고 모르드개가 말했을 때 에스더는 도전을 받았고 또 그렇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는 시녀와 함께 밤낮 사흘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도 밤낮 사흘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오직 유다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사흘이 지난 후에 에스더는 왕후의 예복을 입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왕은 금홀을 내밀어 에스더 왕후의 방문을 기쁨으로 맞이해 주었고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왕과 하만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할 수 있었습니다. 왕과 하만은 왕후의 궁실에 초대되어 맛있는 식사와 아울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왕도 보답으로 “자신에게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으니 말하라”(에 5:3)며 에스더에게 말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내일 한 번 더 왕과 하만을 위하여 잔치를 준비하겠사오니 참석하시면 그때 가서야 말씀을 드리겠다”(에 5:4)며 답변을 미루었습니다.
3. 높임을 받는 모르드개
왕은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왕후가 자꾸 말을 내일로 미루는가? 그것이 궁금하여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은 신하를 불러 궁중 역대 일기를 읽게 하였습니다. 왕은 그 신하의 읽는 소리를 듣는 가운데 자신을 모반하려던 음모를 저지한 모르드개에 관한 기록을 발견하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그 동안 감추어져 있던 모르드개의 선행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를 무론하고 반역을 꾀하는 것은 극악한 죄에 해당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반역 음모를 저지시킨 자에게는 큰 상이 수여되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선행을 발견한 왕은 신하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었느냐고 물었습니다(에 6:3). 이에 그 신하는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왕은 모르드개에게 적절한 보상책을 간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하만을 불렀습니다. 이때 하만은 왕에게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이기 위한 허락을 구하기 위해 뜰에 와 있었습니다. 왕은 하만에게 “내가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이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6절)고 물었습니다. 이에 하만은 그 사람이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왕복과 왕의 말, 왕관을 입혀서 성중 거리에 다녀야 한다”(8-9)고 하였습니다. 하만의 말을 들은 왕은 하만의 말대로 모르드개에게 이 일을 시행토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이려던 하만은 오히려 모르드개를 말에 태우고 다니면서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9절)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마치 다윗의 고백이 연상됩니다. 원수 앞에 상을 베푸는 것과 같습니다.
Ⅴ. 승리의 부림절
에스더가 하만과 함께 두 번째 잔치에 참석한 아하수에로 왕에게 하만의 계략을 밝힙니다. 왕후 에스더는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에 7:3-4)라고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 민족을 죽이려는 그 자가 바로 저기 서 있는 하만입니다.”(6절)며 하만을 가리켰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일어나서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 잠시 생각에 몰두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석한 하만은 달랐습니다. 낯빛이 푸르게 변하며 에스더의 발에 엎드려 “목숨만은 살려주십쇼?”하고 애걸복걸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왕궁 후원으로 잠시 피하였다가 돌아온 왕이 보고서는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려고 하는구나?”(8절)며 질책하자 즉시 하인들이 하만의 얼굴을 보자기로 쌓았습니다. 마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보자기를 뒤집어쓰는 모습과 똑 같습니다.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고자 준비했던 사형 틀에 자신이 달려 죽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10절).
그날 왕은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었고,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주었으며, 모르드개로 하여금 하만의 지위에 앉게 하였고, “유대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며...유대인을 해하려 했던 자들은 모두 살해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도록 하라...”는 조서를 써서...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127도의 전국에 부쳐 전하도록 명하였습니다(에 8:5,9).더불어 유대인을 학살하려던 12월 13일에 수산성에서 하만의 자손을 포함하여 500명을 살육하고, 그 다음날 다시 300명을 죽였으며...전국적으로는 75,000명을 죽였습니다(에 9:16).
상황이 완전히 바뀐 유대인들은 원수를 죽인 것을 기쁘게 생각하여 아달월, 즉 12월 14일과 15일을 잔치를 베풀고 서로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고받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부림절로 선포하였습니다(26절).
에스더 9장 22절을 보십시오! 부림절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위기가 변해서 기회가 되었습니다. 몰살당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를 만났는데 그것이 원수 갚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는 항상 기회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 큰일을 합니다. 불안이 변하여 평안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주의 백성들은 부림절의 소망가운데 사는 삶입니다.
Ⅵ.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
1. 모르드개에게서 배우는 교훈
모르드개를 통해 깨닫는 최고의 영적교훈은 ‘신앙의 절개’입니다. 사람의 권세보다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믿음이 모르드개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교회를 다니는 성도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겪는 어려움과 고통이 많다보니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교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드개와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며 삶에 현장에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로 인해서 때로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불변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의를 심은 자는 의를 거두게 되고, 악을 심은 자는 악을 거두게 됩니다(갈 6:7).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고후 6:7). 따라서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복음을 열심히 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던 유다 민족들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고 세움을 받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이 같은 기적의 중심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물론 “죽으면 죽으리라”(에 4:16)는 절대 신앙의 고백이었지만 이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기까지 ‘믿음으로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합심으로 금식하고 부르짖어 기도했던 기도의 희생과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지만 기도함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막 9:29)는 영적 교훈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3. 부림절의 소망
이 시대에는 언제나 하만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세상에 살고 있는 성도는 동일한 핍박을 받게 됩니다.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그런 가운데서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이 실현될 것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믿으십시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슬퍼하고 우는 성도의 삶은 기쁨과 웃음을 예약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부림절의 교훈이고 축복입니다. 이와 같은 소망이 없으면 여러분, 지금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믿음을 버리게 됩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는 축복을
받기까지 오늘도 기도로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범사에 감사 찬양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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