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거를 통한 변화(2) ◈
왕하 5:1-14,2013.12.08.늘찬양교회
덴마크는 육지보다 바다가 훨씬 높습니다. 그래서 제방을 쌓아서 바닷물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풍차를 돌려서 농사도 짓고 꽃도 재배하여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보니 제방(뚝)은 덴마크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시설물 중에 하나입니다. 한 소년이 어느 날 저녁 제방으로 난 길을 따라서 심부름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길을 걷고 있는 소년에게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막아놓은 뚝 한쪽에서 아주 작은 구멍이 나서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두운 밤이라 그냥 지나 칠 수도 있었지만 그 소년은 그곳을 지나치지 않고서 이것을 어떻게 막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구멍을 막을 만한 적당한 것이 눈에 뜨이지 않자 소년은 급함 김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그 구멍을 막았습니다. 다행히 물은 새지는 않았으나 소년은 이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손가락으로 막았던 그 구멍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니만 이제는 주먹으로 막을 만큼 구멍이 커져 버렸습니다. 소년은 급기야는 자신의 주먹으로 그 구멍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또 얼마 있자 그 구멍이 더 커지더니만 이제는 팔뚝 전체를 집어넣어서 막아야 했습니다. 당황한 그 소년은 마을 사람들에게 제방이 무너진다고 크게 소리를 외치며 도와 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깊은 밤이라 아무도 그 어린 소년의 부르짖음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그 뚝은 어느새 소년 자신의 몸을 던져서 막아야 하는 큰 구멍으로 변했습니다. 북극의 밤은 몹시도 추워서 소년은 밤새 자신의 몸을 통하여 바닷물이 넘쳐 오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에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른 아침 마을에서 어른들이 밤사이에 실종이 된 그 소년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제방에 몸이 끼여서 죽고 난 뒤였던 것입니다. 용기 있는 소년의 주검을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린 소년이 마을 사람 전체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몸으로 무너지려는 제방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년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마을 전체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그 소년은 어두운 밤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그 광경을 전혀 못 본 척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그냥 지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자신의 몸을 바쳐서 무너지려는 구멍을 막았고 그로 인해 마을 사람 전체를 살렸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작은아이의 희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아이의 행동이라 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버리고 공연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 날 자기 자신만을 알고 자기 것만을 챙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을을 살리기 위한 이 어린아이의 희생과 섬김이 정말 대단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희생과 섬김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늘찬양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며 교회성장이라는 책임과 의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저 주일 낮 예배만 참석하여 예배드리고 가는 것만 해도 내 본분과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늘찬양교회의 여러 모습 속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새어 나오듯 고치고 수리해야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그냥 지나치고 계십니까?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늘찬양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새는 부분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힘이지만 뭔가 그 부분을 보완하고자 나름대로 애쓰며 기도하며 헌신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증거의 변화 두 번째로 생각해보고자 하는 내용은 문둥병으로 고생하던 나아만 장군이 깨끗하게 고침을 받고 또 이를 통해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능력과 권세로 함께 하시며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널리 알린 이름 없는 한 작은 소녀의 증거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나아만 장군
나아만 이라는 사람은 아람 나라의 군을 책임지고 있는 군대장관으로서 아람 나라 왕에게는 물론 많은 백성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큰 용사였습니다. 더욱이 아람 나라가 북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선봉장에 나서서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꺾고 전쟁에서 승리한 용사이다 보니 더욱더 그의 지위와 인기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한 가지 어려운 문제가 놓여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나아만은 당시 불치의 병이자 저주받은 병으로 알려진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겉보기에는 화려한 훈장과 제복으로 그의 병이 감추어져 있었으나 옷 속으로는 나병의 병균이 몸을 점령하여 살을 썩힘으로 고름이 흐르고 냄새가 진동할 정도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얼굴도 점차 흉하게 일그러져 보기 흉하게 될 것이고 이내 군복마저 벗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할 불쌍한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군대장관의 직임과 권력을 이용하여 용하다는 의사를 다 불러서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자 애썼으며 더 나아가 몸에 좋다는 약도 다 써보았지만 자신의 질병에는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나아만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고 도움을 주는 아람 왕도 전혀 힘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 온 아내도 자식도 또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 장수와 부하들도, 오랜 세월 마음을 함께 했던 친구들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소생할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로 인해 나아만 장군이 겪고 있을 영적 상태와 마음의 상태를 한번 상상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이 세상에는 나아만 장군처럼 겉모습은 정말 훌륭하고 위대하여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은 갖가지 몹쓸 질병으로 가정문제로 부부문제로 자녀문제로 고통하며 갈등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불쌍하다, 안됐다. 어떡하나 그렇게만 생각할 뿐 그를 향한 어떤 도움이나 위로의 말, 복음의 말을 전하지 않은 채 방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만다행입니다.
Ⅱ. 소녀 계집종
그런데 이 나아만의 집에는 북 이스라엘과 전쟁 때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포로로서 신분이 미천하였고 또 나이마저 어리기 때문에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에 살았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아이를 「소녀 계집종」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소녀 계집종은 낯설고 물 설은 아람 땅에 포로로 잡혀 와서 혼자 살아가느라고 얼마나 무서웠고 힘이 들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녀 계집종은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열심과 성실성을 나아만 장군의 아내가 보았고 그래서 그녀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주인이신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으로 인하여 고통하며 슬퍼하는 것을 보았을 때 소녀 계집종은 “감히 우리나라를 치더니만 하나님께 벌을 받아 문둥병이 걸린 것이야 참 잘됐어 샘통이다.”하며 기뻐하며 주인의 병을 나 몰라라 방관하며 저주한 것이 아니고 그 주인을 불쌍히 여겨서 어느 날 안방마님을 찾아뵙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저가 주인님의 병을 고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3절)라고 귀띔을 하였습니다. 나아만의 아내는 소녀 계집종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집종이 평소에 그렇게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하지 않고 늘 꾀만 부렸다면 안방마님은 계집종의 말을 우습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소녀의 말을 들은 즉시 남편이 나아만 장군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나아만 장군은 아내의 말을 전해 듣고서 즉시 왕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저희 집에 있는 계집종의 말을 들으니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종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4절)며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왕은 기쁘게 여기며 은 열 달란트, 금 6천개, 의복 10벌을 하사품으로 주면서 “어서 가서 그 사람을 만나보게 그리고 깨끗하게 고침을 받고 오게”(6절)하며 친서까지 써서 나아만을 이스라엘 나라로 보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의아한 점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나아만의 아내와 나아만 장군 심지어 아람 왕까지 소녀 계집종의 말을 그렇게 단순하게 미천한 소녀 계집종의 말을 믿을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첫째 해답을 선한 마음과 진실함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포로로 잡혀온 소녀 계집종이 아람 주인을 ?선하게?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행한 형편에 처할 때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는 대신 악하게 대하며 삽니다. 사람들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갑니다. 요나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러나 소녀 계집종은 주인을 선하게 대하며 살았습니다. 주인의 집에서 일을 잘 했고 주인을 존경하며 사랑했습니다. 주인을 위하는 선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주인 부부도 그 아이를 믿었고 그 아이에 대하여 많은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마치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주인의 집에서 일을 잘 했고 주인의 신임을 받아 가정 총무로 일했던 것과 같았습니다. 더욱이 소녀 계집종은 나아만을 가리켜?우리 주인?(3절) 즉?자기의 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듯 소녀 계집종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주인이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이 계집아이는 인종을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해서 아람 주인을 귀중히 여기고 섬기며 사랑하는 선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붙잡아가서 노예를 삼은 주인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눅 6:27)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귀중한 일이었습니다(잠 25:21).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사람을 섬기며 사랑하는 선한 마음이 전도의 기초가 됩니다.
『어느 자매가 결혼을 해서 시댁에 들어갔는데 시어머니가 보살이었습니다. 이 시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수유리에 있는 화계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얘야, 내가 불공을 드리러 화계사에 가야 되겠는데 같이 가자"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며느리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며느리는 예수 믿는 처녀로 결혼을 했는데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가자고 하니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때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자동차로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갑니다. 가면서 시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는 가겠지만 저에게 불공을 드리도록 강요하지는 마세요. 제가 감동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시어머니는 불당에 들어가서 부처님에게 절하고 며느리는 마당에 서서 시어머니가 끝날 때까지 "주여, 이 여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는 도저히 불당에 들어가서 절할 수 없는 주님을 모신 몸이오니 이 종의 가는 길을 순탄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보살이지만 보살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모시듯 정성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버이날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님, 부처 믿는 것도 좋고 예수 믿는 것도 좋고 모든 종교는 다 좋은 것입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 모시고 늘 불당에 갔으니까 오늘은 저와 같이 교회에 가시죠." 그때 시어머니가 "그러자, 오늘은 어버이 날이니 교회에 한번 가보자." 하고는 며느리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그 날 목사님은 "부모님을 섬기되 주께 하듯 하라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하늘나라에 잘 간다"라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시어머니가 불당에 오래 다녀봤지만 절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목사님이 항상 저렇게 말씀하시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이보다 더 좋은 말씀도 하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시어머니가 "예수가 부처보다 좋다. 나 오늘부터 불당 안 갈란다." 하고는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둘째 해답은 소녀 계집종의 믿음에 있습니다.
소녀 계집종은 다니엘처럼 비록 이방나라 아람 땅에 붙잡혀 온 보잘 것 없는 포로이며 계집종이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과 민족을 지켜 주시고 좋은 길, 평탄한 길, 아름다운 길, 형통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굳게 믿고 자신의 신앙을 든든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소녀 계집종은 불우한 운명과 고달픈 종의 생활로 인해 얼마든지 현실을 원망하고 자포자기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살아 계시고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분명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명한 신앙의 자세가 소녀 계집종의 삶을 담대하고 힘 있게 하였으며 또 그런 모습이 안방마님과 나아만 장군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해답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람 땅에 널리 알려지기를 소원한 믿음에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소녀 계집종은 하나님을 믿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아람 땅에 널리 알려지기를 소원했습니다. “저가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문둥병을 고치리이다.”(3절) 아람에 포로로 잡혀갔던 소녀 계집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마치 로마 백부장이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던 것처럼 소녀 계집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주인 나아만 장군을 통하여 아람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전능자 하나님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봐 주기를 소망했습니다.
옛날 소년 다윗이 그런 마음을 품었고, 소녀 에스더가 그런 마음을 품었으며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행동했을 때 모두다 하나님이 문제의 위기에서 아픔에서 절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집종의 마음을 귀하게 보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아람 왕이 쉽게 나아만에게 친서와 선물을 내준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아만과 아람 왕 사이에 오고갔을 이야기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먼저 군대장관이 왕에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저 이스라엘 나라에 가면 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 "누가 그러든가" , "우리 집에 포로로 잡혀 온 계집종이 그랬습니다." , "어떻게 계집종의 말만 듣고 갈 수 있겠나. 거기에서 왕의 전갈이라도 왔나" , "아닙니다. 비록 계집종 아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의 말은 지금까지 한 번도 거짓이 없었습니다." , "그런가 하지만 자네가 적지에 들어갔다가 저들의 계략으로 잡히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같겠단 말인가?“, "물론입니다" 이렇듯 계집종의 말 한마디에 안방마님이 들었습니다. 장군이 흔들립니다. 왕이 움직입니다. 국경을 넘어갑니다. 이 같은 역사가 일어난 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간섭이자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여러분 속에 담긴 믿음의 한 말 때문에...우리교회 목사님은 병 고치는 능력이 많으셔 한번 가서 기도 받아봐 무슨 병이든지 고침을 받을 수 있어... 늘찬양교회의 강단은 말씀의 꼴이 풍성해 한번 와서 들어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야... 늘찬양교회에 가면 찬양이 살아있어 은혜가 넘치니까? 찬양예배에 참석하자 하며 믿음으로 권해보십시오...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역사와 기적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Ⅲ. 나아만과 여호람 왕
결국 나아만 장군은 아람 왕이 건네주는 친서와 선물을 받아 가지고 이스라엘 왕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믿음 없는 이스라엘 왕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가 아람 왕의 친서를 받고 옷을 찢으며 말하기를?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7절)하며 낙담했습니다. 전쟁을 다시금 일으키려고 빌미를 찾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여기 두 가지 모습이 선명하게 대조적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어찌 내가 하나님이라도 되느냐?(7절)고 탄식하고 있고 소녀 계집종은?선지자 앞에 서면 고침 받을 수 있다.?(3절)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하나님의 능력은 부인하는 허울 좋은 성도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거대한 교회건물과 많은 성도들의 수를 자랑하는 교회들, 그리고 거창한 직분과 믿음의 연수를 자랑하지만 문제가 다가오면 사람을 찾고 물질을 찾고 심지어 무당을 찾는 허수아비와 같은 신앙인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 늘찬양교회는 교회 크기와 교인 숫자도 작지만 또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되지 아니했지만 소녀 계집종의 믿음을 가지고 이 땅을 변화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Ⅳ. 엘리사와 나아만
엘리사 선지자는 왕이 나아만 장군을 두려워하여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겠습니다"(8절)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아만 장군은 계집종이 소개해 준 선지자 엘리사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되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 왕이 말해준 대로 선지자 엘리사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대문 밖으로 친히 나와서 자신을 기쁨으로 맞이해 줄로 알았던 선지자가 마중 나오지도 않았고 심부름하는 하인을 보내어 "너는 가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10절)고 말하였습니다. 이 때 나아만 장군은 무척이나 화가 났습니다. 그 이유는 적어도 왕의 친서를 받아왔고 또 이스라엘 왕의 연락도 있었고 또 가져온 선물꾸러미도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신을 푸대접하며 맞이할 수가 있는가? 하는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1절에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고 그런데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 그 더럽고 좁은 요단강물에 몸을 씻으라니 이런 괘씸한 자가 있는가! 차라리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12절)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였습니다. 나아만 장군을 모시고 있던 종들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주인에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더 큰일을 하라고 했어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물며 씻어 깨끗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13절) “내 아버지여” 종들은 주인을 자신의 아버지로 칭하며 절대로 장군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더 높이며 자신들의 충정을 들어달라며 간청을 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종들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주인을 향하여 이렇게 충성스러울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습니까? 정말 귀한 종들의 모습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든든히 설려면 이런 종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종들의 권고를 좇아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실 때에 완벽한 치료가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나아만의 장군이 몸을 열심히 씻은 것도 아니고 다만 일곱 번 담근 것뿐입니다. 여기서 일곱 번이라는 숫자는 완전 숫자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인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자존심과 더불어 모든 의심과 불순종의 모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을 때에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나아만 장군이 육체적 문둥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영혼의 고침까지 완전하게 받습니다. 그 증거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찾아와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15절)고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17절에 보면 "청컨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고백과 요구는 “지금까지 자신이 섬겨온 신은 잘못된 우상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을 믿습니다.”는 고백과 아울러 내가 아람 땅에 돌아가서도 가져간 이 흙을 땅에 깔고 그 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몸은 비록 아람나라에 있으나 마음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이름 없는 계집종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주인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침 받은 것은 물론 하나님의 복음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디어 아람 땅에도 나아만 장군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믿을 수 있었던 놀라운 기적의 승리는 포로로 잡혀온 소녀 계집종의 작은 믿음의 증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또 분하여 화를 내며 돌아가려는 나아만 장군에게 깨끗함을 받을 수 있도록 생명을 내걸고 직언 해 준 충성스러운 종들의 간절한 호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은 세상의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세상 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하여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큰일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늘찬양교회가 아직도 개척교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속에 늘찬양교회가 큰 역사를 일으키며 부흥의 기적을 이룰 것이다. 비록 나는 가진 것이 없고 성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분명 나를 통해서 늘찬양교회를 부흥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한 몫을 차지하리라는 믿음만 있으면 여러분은 큰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계신 예수님을 우리 주변에서 세상 적인 영화는 누리고 있지만 육체가 후패하여 가는 고달픔, 심령이 약해지는 허무함, 삶에 대한 좌절감, 이로 인해 영혼과 육체가 병들어 죽음으로 끌려가는 나아만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 ?당신의 병을 치료 받고 영혼에 참 기쁨과 만족을 얻기를 원한다면 늘찬양교회를 나오세요!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실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병을 깨끗하게 고쳐 주실 것이요 그러니 하루 빨리 예수를 믿고 구원함의 축복, 병 고침의 축복을 받으세요? 전하는 모습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공부>
1. 나아만 장군은 어떤 인물이며, 또 어떤 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까? 자신의 질병
을 고침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 ① 아람 나라의 군을 책임지고 있는 군대장관으로서 왕과 백성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용사 중에 용사였다. 하지만 당시 불치의 병이자 저주받은 병으로 알려진 문둥병 환자였다.
② 나아만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얼굴도 점차 흉하게 일그러져 보기 흉하게 될 것이고 이내 군복마저 벗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차 사라져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할 불쌍한 운명이었다.
③ 군대장관의 직임과 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의사의 처방과 진료를 받아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둘러보아도
소생할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2. 나아만 장군이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없었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듭니까?
▶ ① 장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왕,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동료 장군,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와 자식
, 목숨을 던져 희생할 줄 아는 병사, 친구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였다.
②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겉모습은 정말 훌륭하고 위대하여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갖가지 몹쓸 질병과 가정문제, 부부문제 등으로 고민하며 갈등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③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 복음을 통해 참 생명을 얻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전해주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니 보고도 무관심하다는 말이 옳다.
3. 나아만 장군의 집에 포로로 잡혀 와서 집안일을 돕는 미천한 소녀 계집종이 나아만 장군 이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참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 ① “감히 우리나라를 치더니만 하나님께 벌을 받은 거야 거참 잘됐어 샘통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죽음을 고대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녀 계집종은 하나님의 운행하심과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주관하심아래 이루어졌다고 믿었습니다.
②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으로 받아드린 소녀 계집종은 주인의 문둥병을 보고 불쌍히 여기며 돕고자 하는 순수
한 마음과 더불어 저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하는 영적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4. 나아만 장군과 그 아내는 계집종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무엇이 이 소녀의 간언을 충언으로 받아드릴 수 있도록 했을까요?
▶ ① 소녀 계집종의 간언을 들은 장군의 아내는 즉시 장군에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아만 장군은 이 말을 듣고 왕에게 선지자 앞에 나아가 병 고침을 받고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였다.
② 첫째, 소녀 계집종의 선한 마음과 진실한 행동이 그녀의 말을 신뢰하게 하였다.
둘째,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나아만 장군에게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한 인도하심으로 믿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이 아람 땅에 널리 알려지기를 소원한 믿음이 소녀 계집종에게 있었다.
5. 믿음 없었던 북이스라엘 여호람 왕은 나아만 장군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 ①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내게 나병을 고쳐 달라 하느냐? 이를 빌미로 또 전
쟁을 하거나 또 다른 술수를 쓰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원망하며 분노하였다.
②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 상실한 교회와 성도들을 보는 것 같다. 말로만 주여! 외치는
자가 아니라 소녀 계집종처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산 믿음이 필요하다.
6.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들어갔다가 나오므로 깨끗하게 되기까지 또 다른 누
구의 간언이 있었습니까? 이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영적교훈을 도전 받습니까?
▶ ① 자신을 마중 나오지도 아니하고 종을 시켜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한 엘리사 선지자에 대한 괘씸죄와 자존감의 상처로 아람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시중들던 아람 나라의 종들이 만류하며 주인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그 결과 요단 강물에 몸을 씻고 병이 나음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
② 소녀 계집종과 아람 나라의 신하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저들이 갖고 있던 주인
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이 결국 주인의 병을 고침 받게 하였다. 내가 믿는 주님에 대해서 “나의 주, 나의 하
나님“으로 믿고 있다면 그 분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를 찾아서 전하며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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