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에 일어난 변화(2)
눅 1:26-38,2013.12.22.늘찬양교회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성탄에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맞는 이 성탄은 예수의 단순한 생일 축하만은 아닙니다. 원래 우리가 갖는 생일 축하란 한 생명이 이 땅에 탄생하여 한해 한해 무사히 건강하게 성장하였음을 기뻐하면서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을 축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뻐하며 축하하는 그런 요소들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단순한 한 생명의 탄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탄생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 축하는 단순한 축하에 그쳐서는 안 되고 항상 그 의미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기자들이 예수의 탄생 기사를 쓸 때 어떤 유명한 인물의 자서전을 쓰듯 쓴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뜻을 밝히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성탄의 변화 두 번째 시간으로 마리아의 변화, 목자의 변화, 동방박사의 변화로 나누어 함께 생각하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Ⅰ. 마리아의 변화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 나사렛의 한 평범한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가르쳐 "계집종의 비천함"(눅 1:48)이라고 하였습니다. 겸손의 말이지만 ‘만유의 왕, 만유의 주’ 예수님께서 어떤 왕족이나 귀족 여인의 몸을 빌려 오시지 않고, 나사렛 시골 처녀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흔히 어떤 인물의 전기를 쓸 때는 그 생애를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예수님의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로 일부러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평범한 시골 처녀였던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상태로 얼마 있으면 남편 요셉과 정식으로 혼인식을 갖고 부부가 될 텐데 그 이전에 아이를 갖게 되면 요셉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처녀가 아니었다.”는 오해를 받고
정혼한 요셉으로부터 파혼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사회로부터 비난과 놀림의 대상이 되어 돌팔매질을 당해 죽임을 받거나 만에 하나 산다고 해도 그 지역을 떠나야만 하는 운명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지어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
31)고 말하였을 때 마리아의 충격은 대단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두려운 마음에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되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절)며 반문하였습니다. 이때 천사는?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36-37절)고 말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정결한 마음과 더불어 겸손하며 순종할 줄 아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놀라운 인내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요셉은 깊이 평가하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내 태도를 바꾸어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건 순종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이 같은 고백과 순종을 통하여 ‘절대 순명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참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의 생활이나 경험에 맞지 아니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일이라면 또 내가 고통을 당하여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면 기꺼이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릴 수 있는 ‘절대 순명’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종은 마리아의 영혼에 큰 기쁨을 안겨 주었고, 그의 조상 아브라함 적부터 약속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놀라운 축복의 변화가 이 땅에 실현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축복은 마리아가 똑똑해서 잘나서 거룩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예정과 택하심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장 46절 이하에 있는 마리아의 찬가에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고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관습으로는 가장 저주받은 여자일 수밖에 없는 마리아가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 드렸고, 자기야말로 가장 복이 있는 자라고 역전의 노래를 변화의 기쁨을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은 진정 놀라운 순종을 통해 얻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무거운 십자가일지라도 그것을 순종함으로 지는 자에게는 오히려 축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범한 시골 처녀이었지만 놀라운 믿음과 순종심을 가진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십자가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행하려고 예수를 데리고 부모들이 성전에 올라갔을 때 시므온이란 경건한 분이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 2:35). 이 예언은 그대로 적중되어 마리아의 가슴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아픈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의 상처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치료되었고, 성령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이루어진 죄악을 없애시려고 오신 예수는 순종할 줄 아는 여인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셨고, 또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정결한 시골처녀의 순박한 모습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의 변화, 그리고 예수님을 키우고 뒷바라지하다가 십자가에 그 사랑하는 아들이 못 박혀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경험해야 했으며, 뒤이어 부활의 영광된 모습으로 변형된 예수님을 통해 자신이 고백했던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48절)의 축복을 받는 주인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의 축복이 있도록 마리아가 보여준 순명의 정신,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성탄에 일어난 변화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Ⅱ. 목자의 변화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셨던 그 날 밤. 베들레헴 가까운 들판에서 밤새도록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몇 사람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밤이면 가끔 사나운 짐승들이 양떼를 습격하거나 더러는 그 부근을 지나는 대상들이 약탈해 가는 수도 있었기 때문에 목자들은 의례히 온 밤을 새우면서 양떼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 밤에도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너무나 적막하기만 한 밤을 지새우면서 심한 외로움에 싸여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다 식구들과 편안하게 누워서 잠을 자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저 하늘의 뭇별을 위로 삼아 밤을 새워야 하는가?” 더 나아가 “언제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나라를 로마의 압정(壓政)과 핍박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고 복되게 살게 할 것인가?”라는 목마름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장면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이 대낮같이 환해지더니 주의 천군 천사가 빛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목자들은 기절초풍하듯이 그 자리에서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리며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천사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목자들이여,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0-12)고 전하였습니다. 그 순간 목자들은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렇게 대망 하던 메시야가 탄생하셨다니, 이제 새 시대가 열리는구나! 얼마나 놀라운 소식인가?”하며 기뻐하였습니다.
천사의 전언(傳言)이 끝나자, 이번에는 하늘의 찬양대의 노래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 천사들이 하늘에서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평화로다."(눅 2:14)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아마, 그 찬양은 이 세상에서는 감히 들을 수 없는 최고의 화음과 감동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천국에서 이러 한 찬양을 날마다 듣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노래를 잘 못 부르던 분들도 뛰어난 목소리로 천사들과 함께 찬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주목하는 바는 저토록 영광스러운 자리에 어찌하여 저 가난한 목자들이 맨 먼저 초대받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보다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보다 더 많이 배운 사람과 더 똑똑한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가장 비천한 신분이라 할 수 있는 목자들을 찾아 오셔서 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은혜의 중심 첫째에는 목자들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깨어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은 그 소식을 받아 전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밖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말씀만 주시면 당장 달려갈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2-44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다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쓰실 수 있도록 시대를 분별하며 영적으로 항상 깨어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깨어 기름과 등을 준비하고 있던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깨어 준비하고 있던 목자들을 찾아 오셔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두 번째 비밀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찬송에 담아 전하고 하늘로 올라간 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확증하기 위해 목자들은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눅 2:15)고 의논 한 후 즉각적으로 아기 예수를 찾아 떠났습니다. 목자들에게 있어 양떼는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양떼를 들에 남겨두고 아기 예수를 보고자 떠난 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우선순위가 저들에게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기 예수를 만나보고 그 분께 천사의 소식을 전하며 경배의 찬양을 드리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더 소중하고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저들은 양떼들을 들에 남겨두고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대한 우선순위를 두는 일 그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자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아오는 성탄절! 그 어떤 일이 주님을 경배하며 예배하는 일보다 앞서거나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교회에 나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영광 돌리는 귀한 성탄절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을 맞이하는 귀한 변화의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비밀은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것 즉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는 말씀과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14절)인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값비싼 양떼들을 들에 나두고 달려왔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목자들은 왜 이 귀하신 분이 이렇게 구유에 누워 있느냐? 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목자들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 만을 전해주었습니다. 목자들은
오로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의 주로 오심을 알렸습니다. 자신이 듣고 본 일에 대하여 겸손하게 순종하며 전달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목자들은 보잘것없는 양치기에서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경배하는 첫 번째 주인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방문은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여관에 있을 곳이 없어 짐승들의 우리에서 짐승처럼 해산할 수밖에 없었던 이 안타까운 사실 앞에 적지 않은 실망감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요셉과 마리아에게 큰 위로와 기쁨과 힘이 되었습니다.
성탄절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뮤지컬을 보고 음악제를 해도 그 안에 주인공은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카카오톡이나 카카오스토리 또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주님의 탄생소식을 기뻐 퍼 날라 주님의 오심을 경배 찬양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Ⅲ. 동방박사의 변화
세 번째로 아기 예수를 찾아온 뜻밖의 손님인 동방박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동방박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 동방박사들을?Magi?또는?Wise men?(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별을 연구하면서 그것으로 개인의 운명을 예언하는 예언자 또는 점성술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 저들이 남들이 다 자는 밤중에 일어나 어두운 밤하늘을 밤새 지켜보며 별을 연구하다가 한 이상한별을 발견한 것입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을 본 것입니다. 짙은 어두움으로 억제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이 뚜렷한 징조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랜 점성의 연구로 이 별의 나타남은 분명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탄생할 징조라고 판단한 세 박사들이 예물을 준비하고 이 별을 따라 길을 떠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결단력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행동은 어리석게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들은 주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막연한 징조와 불확실한 미래가 있었지만 메시아를 만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뜨거움을 가지고 위험하고 험난한 여정을 출발하였습니다. 그 거리는 쉽고 가까운 거리가 아니고 멀고도 험한 길로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올 수 없는 그런 길을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께 경배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까지 온 것입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갈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그들의 생애에 메시야를 만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감내하고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들레헴에 이르러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이들의 놀라운 통찰력과 결단력이 이방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예수를 만날 수 있게 된 요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의 오심은 이 역사의 의미를 통찰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동방박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첫 번째 영적교훈은 동방박사처럼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만나보려는 열망이 우리에게 지금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되기 위하여 되찾아야할 마음이 바로 동방박사들의 진리를 향한 열정과 수고로움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너무 쉽고 안일하게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 가는 여정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려하지 않습니다. 너무 환경과 물질에 쉽게 타협하는 현대인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합니다. 성탄절에 동방박사들을 통해 진리를 향한 믿음의 열절을 점검하고 회복하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동방박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두 번째 영적교훈은 참된 경배에는 예물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 11절을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 먼 길을 생명을 바쳐서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하고 나왔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많은 설교가들과 학자들은 이 예물이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들을 내렸습니다. ?황금은 예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내기 위한 예물이요, 유향은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실 것을 의미하며, 몰약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실 인류의 구세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어떤 것을 상징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드린 예물이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잘 얻을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귀한 것을 자신들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남겨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께 경배하기 위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는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가장 귀한 것으로 예물을 드리되 준비하여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배의 능력이 없고 감격과 감사를 잃어 가는 것은 진정한 예물을 마음으로 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탄의 의미를 바로 알고 성탄을 통하여 내 마음속에 평화와 기쁨과 행복이 임하려면 먼저 내가 마리아처럼 순종의 자리로, 목자처럼 깨어 시대를 준비하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의 모습으로 동방박사처럼 메시야를 만나고자 하는 열정과 헌신의 예물을 들고 주님을
예배하며 경배하는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속에 주님의 탄생의 기쁨과 복음의 회복의 은혜가 온 땅위에 가득 증거 되는 역사가 계속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이 귀한 축복의 은혜가 2013년 성탄절에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공부>
1. 마리아가 변화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마리아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적교훈은 무엇입니까?
▶ ①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몸으로 정결함이 생명인데 아이를 잉태하였다는 것은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다.
② 남편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탕녀라는 누명을 쓰고 돌 던짐을 당하여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③ 천사의 음성을 듣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며 고백하는 절대순명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2. 목자가 예수님의 성탄을 알리는 첫 주인공이 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목자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적교훈은 무엇입니까?
▶ ① 목자들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한밤중에도 깨어 일하고 있었다. 소식을 받고 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② 들에 양떼를 남겨두고 떠나므로 물질적 손해를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경배 찬양
하는 것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떠났다.
③ 목자들은 아기 예수님을 찾아 천사들이 전하여준 아기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즉각적으로 전하였다.
④ 자신들이 듣고 본 일에 대하여 겸손하게 순종하며 전달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였다.
3. 동방박사가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기 위하여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무엇입니까?
동방박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적교훈은 무엇입니까?
▶ ① 자신들이 관찰한 큰 별이 메시야 탄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관찰하고 확신하는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
② 메시야를 찾아 떠났지만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과 죽음의 위기가 있었다.
③ 천국 가는 여정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동방박사와 같은 확신과 열정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과 믿음의 열정이 필요하다.
④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준비하여 아기 예수님께 드린 것처럼 하나님께 가장 귀한 예물을 준비하여 드리자.
4.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목자들, 동방박사가 들려주는 성탄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이를 통하여 성탄절에 내가 실천해야할 도전은 무엇입니까?
▶ 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절대순명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결과 만세에 마리아는 복 받은 여인
이 되었다. 마리아처럼 어떤 명령을 주님께서 하시든지 순종하며 헌신할 수 있는 순명의 정신을 갖자.
② 목자들이 깨어 시대를 준비하며 작은 일에 충성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작은 일 큰 일 가리지 말고 내게
주신 사역과 사명의 최고의 것으로 여기고 헌신하며 나갈 때 주님을 만나는 영광이 있게 될 것이다.
③ 동방박사들을 통해 메시야를 만나고자 하는 열정과 헌신의 예물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자기중심
적이고 형식적인 성탄에서 벗어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준비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절호의 기
회로 성탄절을 이용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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