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147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오직 주 영광위하여 욕심 버리며, 교만함 버리며, 면류관 쓰겠네, 몸으로 제물 삼겠네’ 등의 전형적인 대구법을 사용하고 있는 찬송으로 영국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실한 청교도 가정 출신의 아이작 왓츠(I.Watts;1674~1748)목사가 1707년 작사하였다. 아이작 왓츠 목사는 영국 사우샘프턴의 비국교도 집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몸은 허약했으나 천재인 그는, 다섯 살에 라틴어를, 아홉 살에 그리스어를, 열한 살에 프랑스어를, 열세 살에 히브리어를 배워 5개 국어에 통달하였다. 그의 학구열은 불타는듯하여 음악과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왓츠는 1699년 마크레인에서 부목사로 일하는 동안, 600 여 편의 훌륭한 찬송시들을 작사하고, 문법・논리학・교육학・윤리학・심리학・천문학・지리학, 그리고 세 권의 설교집, 29편의 신학 논문 등 52권의 책을 냈다. 시편으로 찬송을 만들다가 기발한 생각을 하였다. 구약 전체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니, 모든 시를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신약으로 응용한 다윗의 시편》이라는 찬송집을 내었다.
찬송 곡은 그레고리안 성가집에 실려 있던 곡조를 미국 메사츄셋츠 주 출생으로 16세 때 성가대 지휘자요 또 음악학교 교사가 되었고 1928년 독학으로 공부하여 미국 최초의 음악박사 학위를 받고 찬송가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로웰 메이슨(L.Mason;1792~1872)이 1824년 편곡한 이 찬송의 곡명은 HAMBURG이다. 1825년에 보스턴에서 출판된 ‘헨델과 하이든 협회 교회성가집’에 발표하였다.
이 찬송에서 특이한 것은 멜로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2도씩 움직이는 순차진행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도레미레미파미레미...” 그리고 이 멜로디에 사용된 음은 ‘도레미파’와 ‘시’, 모두 다섯 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리듬도 사분음표와 이분음표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이 간단한 노래가 많은 고난절, 부활절 용 칸타타에 사용되고, 많은 이들에게 애창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란 고백은 온 천하 보다 귀한 나의 ‘몸’으로 제물 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집니다.
1절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1절,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생각할 때에 세상 헛된 욕심 나 버리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된 것으로서 약속의 성취입니다. 까닭에 예수님께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거역 할 수 없으셨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셔야 했고, 지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자신들이 협력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줄로 알고 자신들의 위업과 업적을 자랑하며 예수님을 희롱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 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마 27:42-43)
뿐만 아니라 관리들도 희롱하기를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눅 23:35) 군인들도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37절) 지나가는 구경꾼들도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막 15:29-30)하였으며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 중에 한 사람도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며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조롱과 핍박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구약의 예언 6가지를 성취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첫째로 쓸개 탄 포도주를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님에게 마시게 하였다는 것(마 27:34-시 69:21), 둘째로 군인들이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눠가졌다는 것은 모두 이미 예언이 되었던 것(35절-시 22:18), 셋째로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쓰인 죄 패(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명패)를 붙인 것(37절), 넷째로 두 강도가 함께 못 박혔다는 것(38, 44절,사 53:12). 다섯 번째로 지나가는 자들로부터 모욕을 받았다는 것(39-40절,시 22:7)과 마지막으로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조롱하였다는 것(41-42절,시 22:8)이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속량해 주시는 구속의 십자가요, 나의 죄를 대신 하여 지신 대속의 십자가이며, 공의의 십자가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공의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께서 너와 나, 우리의 죄를 심판하심에 우리들의 죄를 그냥 넘기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려면 누군가가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헌데 죄 값이 너무 엄청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치룰 수가 없었습니다. 죄 값은 죽음.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로 하여금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요 3:16). 이렇듯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실현하심이며, 증거 하심이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함께 이루심입니다.
우리가 양손과 양발로 지은 죄, 생각으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
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물과 피를 다 쏟아내실 정도로 당신의 몸을 희생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아는 자들은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려야 합니다.”(찬송가 1절)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즉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섰듯이 주님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아야 합니다. 더불어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십자가의 사랑을 가족, 친척, 이웃에게 전하는 예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절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힘입어 교만한 맘을 버리네
2절, 교만함 버리고 보혈의 공로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겠네.
찬송가 2절에서는 보혈의 공로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8-19절에 “
이제 여러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여러분의 헛된 생활방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알지만, 은이나 금과 같은 썩어질 것으로 되지 않고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어린 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가리켜 보혈이라고 부르며 보혈의 찬송가도 많이 부릅니다. 268장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왜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가리켜 보혈이라고 부르며, 예수님의 피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일까요?
1. 예수님의 피는 죄 없는 몸에서 흐른 것이기 때문에 보배롭습니다.
죄 없는 그 몸은 하나님이 마련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5절에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이사야 7장14절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장 23절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이 마련하신 몸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죄가 전혀 없으신 분입니다. 죄를 짓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원죄도 없습니다. 그 몸에서 순환되는 피는 한 번도 죄를 짓는데 사용된 일이 없습니다. 그 피는 깨끗하고 보배로운 피 입니다.
2. 예수님의 보혈에는 유월절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날 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을 죽음으로 치실 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른 유대인의 집은 죽음의 천사가 그냥 지나갔습니다. 피를 보고서는 심판을 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5장 7절에는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참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마음에 뿌린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됩니다. 보혈을 뿌림 받은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 됩니다. 그리고 마귀에게서 해방되고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3. 예수님의 보혈은 하늘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줍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보혈을 힘입어 죄인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됩니다. 보혈이 없이는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용기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죄가 드러나 심판받고 저주받을까봐 두렵고 떨리고 고개를 들 수 없는 존재였지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여 용기가 솟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은혜와 복을 간구하기조차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망령된 행실에서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되고 깊이 뿌리박힌 못된 버릇이라도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으면 끊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예수를 믿고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형제가 고백하기를 "목사님 성령 충만의 정반대는 마약중독입니다." 가장 인간을 비참하게 파괴시키는 것이 중독입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다시나오면 하게 되는 것이 마약 중독입니다. 그런데 은혜 받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살게 되니 마약도 끊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 죄를 사하는 능력, 망령된 행실과 죄의 습관을 이기는 능력,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게 하는 담대함을 주는 능력 등 수 많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
3절 못 박힌 손 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3절, 못 박힌 손과 발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 날 위해 쓰셨네.
옛날,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동식물을 지으실 때였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깊은 생각에 잠기신 후 잿빛 털을 가진 조그만 새 한 마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름을 '진홍가슴 새'라고 붙여 주셨습니다. 이 새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저는 온통 잿빛 털을 가지고 잇는데 어찌하여 '진홍가슴 새'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참 사랑을 배우게 될 때. 그 이름에 합당한 깃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진홍가슴 새'의 둥지 근처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사람이 그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던 진홍가슴 새는 그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이던지 그 십자가에 달린 사람에게로 날아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그 사람의 이마에 가시관이 씌어져 있는데 그 가시가 박힌 상처에서 붉은 피가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이 새는 가엾은 사람의 이마로 날아가서 자신의 자그마한 부리로 그 사람의 이마에서 가시를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가 뽑힐 때마다 피가 솟아나서 이 작은 새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새는 지칠 때까지 그 가시들을 뽑다가 안타깝게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몸에 묻은 피가 도무지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목덜미와 가슴에는 핏자국이 남게 되었고,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새가 낳는 새끼들마다 모두 목덜미와 가슴에 선명한 진홍빛을 가진 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빛깔은 모든 진홍 가슴 새의 목과 가슴에 빛나고 있답니다.이 이야기는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라게를뢰프가 쓴 '진홍가슴 새'라는 동화입니다. 진홍가슴 새처럼 여러분의 가슴에도 예수님의 보혈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까?
주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은 우리를 너무나 슬프게 합니다. 주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은 조롱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만일에 저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려고만 했다면 짚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씌웠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주님에게 고통을 주려고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씌웠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갈대로 머리에 씌운 가시면류관을 쳤습니다. 그로인해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 이마와 얼굴을 붉게 적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로만 군병들은 주님에게 채찍질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저들에게 맞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끄러운 죄악과 수치를 덮으시고, 영원한 제사장으로써 우리에게 사죄의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 이러한 모욕과 수모를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반역죄, 전쟁터에서 이탈한 죄, 해적, 암살, 소요죄 등을 범한 자들을 벌하는 사형 틀입니다. 십자가형이 선고되면, 먼저 죄수에게 채찍질을 하고, 죄수로 하여금 형장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한 후, 형장에 이르면 죄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굶어 죽기까지 내버려두던가, 못을 박아 죽이기도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특히 유대 나라처럼 날씨가 더운 지방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열대 지방의 열기와, 못 박힌 상처에서의 출혈로 온 몸에 열이 나는데, 몸의 당김과 갈증으로 열은 더 심해 간다고 합니다. 거친 못에 찔린 상처는 부풀어 오르고, 찢어진 힘줄과 신경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더해 간다고 합니다. 머리와 위장의 동맥은 출혈되어 무서운 두통이 따르며, 정신은 공포로 혼미해지고, 온 몸에 일어나는 경련은 상처를 더 크게 찢어 놓으니, 실제로 죽기 전에 벌써 여러 차례 죽음을 맛보다가, 마지막에는 피와 물이 다 쏟아져 기운이 진하여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 사람들은 십자가 형벌은커녕, '십자가'라는 단어까지도 그들의 생각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4절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
놀라우신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4절, 그 어떤 것으로도 주 은혜 못 갚아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짐은 내가 죄인임을 밝힘이요, 동시에 내가 죄 사함 받았음을 간증함이며,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짐은 내가 기독교인임을 증명하는 생활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못함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음이요 성령 충만치 못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며,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자기 십자가를 짐입니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아니 지면 내가 이 땅에서 실제로 가질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축복만 강조하고 십자가를 지는 훈련을 시키지 않음입니다. 이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애,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최고의 사랑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자가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의 하나님을 알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 독생자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을 먼저 알고, 믿고, 그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기독교인은 기복종교를 좇는 이기주의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려고 십자가를 찾아다니는 섬김과 희생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왜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세계적인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가 있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음악인이라고 칭송을 받던 그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쓰려졌습니다.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을 맡아 열정을 다하여 연습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은 백혈병이라는 죽음의 선고였습니다. 그러나 호세 카레라스는 절망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복음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붙잡았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충성하겠다."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골수 이식 수술과 힘든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찬송과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적같이 새 생명을 얻은 그는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자신을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팔아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의 공연 수익금은 모두 이곳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다. 나는 백혈병과의 싸움을 통해서 나보다 남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호세 카레라스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변화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이 증거 될 때 사람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붙잡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그리할 때 우리의 인생은 활기가 있고 능력이 넘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지성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는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며 믿음의 대상이며 믿을 때만 강하게 역사 합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영화도 영화관에서만 감동을 받고 생활과 전혀 무관하다면 나와는 관계가 없는 영화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만 알고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간다면 십자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찬송가 4절의 가사에 기록된 것처럼 “주님으로부터 받은 십자가 구원의 은혜와 사랑 다 못 갚겠네, 놀라우신 사랑 받은 나 몸으
로 제물 삼겠네!” 찬양하며 섬김과 순종의 행동으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부활의 능력으로 이어졌듯이 여러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믿기만 하면 십자가의 능력은 삶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변화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 > 찬양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3장 자비로 그 몸 찢기시고 (0) | 2014.04.14 |
---|---|
604번째- 156장 머리에 가시관 붉은 피 흐르는(고난주간 찬송입니다.) (0) | 2014.04.08 |
157장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기도- 찬양강해 602번째 곡 (0) | 2014.03.31 |
155장 - 십자가를 지고 -찬양강해 601번째 곡 (0) | 2014.03.28 |
163장 할렐루야 할렐루야 - 찬양강해 600번째 완성 곡입니다. (0) | 2014.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