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맥추 감사로 드리는 예배

늘찬양 2014. 7. 5. 17:48

맥추 감사로 드리는 예배

50:14-15,22-23,2014.07.06

 

오늘은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출애굽기 2316절에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향하여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첫 열매를 거두고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맥추절 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때로 오순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그 이유는 마가 다락방에 약속하신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단순히 첫 열매를 거둔 것을 감사하는 것만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성령님을 부어주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왜 맥추절의 절기를 지키라고 강조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지나온 과거를 기억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도록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절기를 통하여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돌이켜 보면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thank)의 어원은 'think'입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감사 또 감사뿐입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자매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자서는 거동 할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비록 건강은 없어도, 가진 지식은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시가 있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주간에만 주의 고난을 기억하는 자여, 주 죽으심 언제나 기억하라.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자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쁠 때만 기뻐하는 자여, 항상 기뻐하라.”

 

우리의 감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 감사절조차도 진정한 감사를 올려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세가 되면 감사를 잃어버린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삶, 그것은 가장 불행한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세의 징조를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는 불행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 가정, 교회는 불행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감사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날마다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50편은 다윗 시대 찬양 대장이었던 <아삽>이라는 분이 쓴 시입니다. 이 시의 핵심주제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초청하십니다(1-5).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택하신 자들이 누구입니까? 제사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은 자들이 행해야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함께 14-15절 말씀을 읽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께 오직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감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배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창조와 구속의 은총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여주시고,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창조해 주신 은총을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죄를 사해주시며,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하신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읽은 23절에도 해답이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니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 속에 감사가 있으십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 목사님! 감사할게 있어야 감사하죠? 세월호 사고 이후 내 삶은 이렇게 힘들어졌고 어려워졌는데요? 또 하는 일마다 엉망인데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진정한 감사는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의 감사는 그 조건이 사라지면 다시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천후 감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박국 317-19절에 나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3:17-19)

 

내가 수고하고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주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

나를 구원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힘의 근원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자를 하나님은 암사슴 같이 높여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감사함으로 예배드릴 때 주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감사함으로 예배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감사함으로 예배드릴 때 주님은 환난 날에도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화롭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반년의 시작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축복의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으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이요 절규입니다. 나는 예배를 통해서 너와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잊어버렸느냐고 물으십니다.

계속해서 너희가 나를 무시하고 배은망덕하면 너희를 찢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렸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동생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가인의 예배와 아벨의 예배의 차이는 제물이 아닙니다. 믿음이 기준입니다. 가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형식적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믿음과 순종의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상한 심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만함으로 드리는 예배,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는 예배는 원치 않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감사가 왜 우리의 삶에 기적과 행복을 만들어 줄까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진정 나의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50:7). 파스칼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 불행한 사람,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 - 괴로운 사람, 하나님을 만난사람 -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과 구별되는 것은 감사의 표현에서 나타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습니까?

하물며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아픔과 상처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왜 내게만 이런 상처와 아픔이 있냐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내게 주신 아픔의 상처를 끌어안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 속에 진정한 예배가 있고, 그 속에 진정한 주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찬송가 438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작사한 버틀러(C. F. Butler)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그는 높은 산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친 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초막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형편과 조건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삽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 것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떨어졌든지 아예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전에,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감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술에서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환경 가운에서도 감사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감사를 합니다.

 

새문안교회를 섬기시다가 소천하신 김동익 목사님의 감동적인 기도문이 있습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깊이 깨달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평은 불행의 뿌리이고, 감사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 불평하면 누구의 사람이 될까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됩니다. 불평의 배후에는 사탄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제는 불평과 원망을 끊어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아멘!

 

항상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 감사의 예배와 예물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불평하는 자에게는 불평으로 갚아주시고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로 갚아 주십니다. 감사는 행복해지는 연습이고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에게 행복한 삶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을 모든 환난에서 구해주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예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십시오. 그리고 이어질 하반기 동안에도 더 풍성하게 채워주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다 같이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1560) 찬양 드립니.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신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 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 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 다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 다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