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노마드의 삶 (1)
창 12:1-4.2023.02.19.늘찬양교회
오늘부터 ‘천국-노마드’란 제목으로 3주간 연속시리즈로 말씀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노마드(Nomad)는 특정한 방식이나 삶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살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노마드, Nomad)에게서 나온 말입니다. 쉽게 유목주의 노마디즘(Nomadism)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마드는 ‘나그네’ 와는 뜻이 다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순례자를 뜻합니다. 나그네는 분명한 목적지가 없이 이리저리 떠돌지만, 유목민들이 목초지를 찾아 떠나듯이 순례자는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적이 뚜렷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하여 떠나는 사람들의 자세가 바로 노마드의 삶입니다.
Ⅰ. 노마드의 초청장
나그네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천국 시민권자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되 이 땅의 거류민처럼, 정착민처럼, 천국을 이 땅 가운데 분명하게 보이며 살아가는 자가 그게 바로 나그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10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 나그네로 살지만 분명하게 택하신 하나님의 족속이요, 나라요 소유된 백성입니다.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지만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천국시민들입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성도들의 삶의 목표는 오늘을 살아가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통하여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롬 6:2-4)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서 거듭난 새 생명으로 욕심 없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라도 부르시면 따라갈 믿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면 떠났고, 쫓아내라 하면 쫓아냈고, 드리라고 하면 자식까지도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믿음은 타협이 없습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열 명의 처녀들이 신랑의 결혼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그중에 지혜로운 여인 5명 많이 신랑의 잔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5명은 준비가 덜 되어 있었습니다.
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여인 5명을 가르쳐서 미련한 다섯 처녀라고 합니다.
분명한 초청장을 받았으면서도 이들은 신랑이 좀 늦게 온다고 방관했습니다.
세상일들에 대해서 더 누리고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것을 끊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그만 기름과 등을 준비하지 못한 채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면 신앙의 준비는 무엇인가요? 믿음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믿음이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예배드리고, 믿음으로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히 11:6)
창세기 12장부터 22장까지는 아브라함에 대한 사건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을 말할 때 믿음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되길 축복합니다.
Ⅱ. 떠나라
노마드의 핵심은 순종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4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미디안 광야를 떠나 애굽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야곱은 형의 죽임을 피해 밧단아람으로 떠났습니다.
요셉도 형제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보디발 집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경제위기로 사업의 실패로 명예퇴직 등으로 모든 것을 잃은 채 광야로 떠밀려 나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지만 그곳에서 노마드의 삶은 시작됩니다.
노마드의 삶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신앙의 길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떠밀려 세상에 버림받은 몸이 되었지만, 그곳에서 주님을 통해 새로운 창조의 삶, 피조물의 삶이 시작됩니다.
노마드의 삶은 거저 얻는 삶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서 얻어지는 은혜의 강입니다.
유목민의 삶은 거칩니다. 부족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들에게 삶의 여유와 낭만과 운치와 행복이 있습니다. 특별히 그들만이 누리는 자유의 넉넉함이 있습니다.
베풂과 나눔도 있습니다. 유목민들이 어쩌다 나그네를 만나면 어쩌면 그렇게도 반기며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 주는지 기가 막힐 정도의 융숭한 대접을 받습니다. 저들이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사람이 그립고 함께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기쁘기 때문입니다.
노마드의 사람들에게도 이런 여유와 낭만과 풍요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진 것이 없어도 누리는 것이 부족해도 참된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자꾸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보니 베드로처럼 바닷속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우리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부귀영화, 명예, 성공 욕심, 낮은 자존감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노마드의 삶을 살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순간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으로 내 삶이 채워질 때 거기서 누리는 참된 만족과 기쁨이 내 삶을 여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행로가 복되어야 합니다.
자유인이라는 나 홀로 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자연이 공급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듯 하나님의 사람들도 노마드의 삶을 살아갈 때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데로만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천국 노마드의 삶입니다. 즉 정처 없이 꼴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처럼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결코 길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Ⅲ. 노마드의 축복
하나님은 노마드의 삶을 살아간 아브라함에게 어떠한 축복을 베푸셨습니까? (2-3절)
첫째,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2절)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 찌라”(2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희생만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떠날 수 없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믿음으로 떠날 때, 아브라함을 축복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때로는 부담스럽고 손해가 되고, 짐이 되는 것 같지만, 결과에 보면 반드시 축복으로 보상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12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코로나 19, 경제위기 등 갖가지 이유로 원하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걷는 그 길이 힘들고 어려워서 감당하기조차 버거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길을 여시는 여호와(미 2:13), 홍해를 육지처럼 걷게 하시는 여호와(출 14:22), 닫힌 문을 여시는 하나님(요 20:1),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는 하나님(말 4:2)을 만날 때 상황은 역전 될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의 삶, 천국의 노마드의 삶이 전개될 것입니다.
둘째,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3절)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나면 죽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내가 이 직장에서 짤리면, 사업에서 망하면, 교회부목사 직에서 쫓겨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사명도 역사도 기적도 다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실패의 자리, 절망의 자리, 내쫓김의 자리에서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비록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였지만 그곳에서 노마드의 하나님, 천국의 노마드를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방궁 같은 교회건물 속의 높임과 대접이 아니었습니다.
사업에 다시 성공회사 많은 지점을 거느리는 대표의 성공의 역전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와 사막의 훈풍이 몰아치고 밤에는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몰아치지만 그 속에서 누리는 유목민의 여유와 평안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천국-노마드의 축복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노마드의 축복을 알았기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주를 쫓았습니다.”(빌 3:8) “모든 것에 자족함”(빌 4:11)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한 복음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구원함을 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어딜 가나 복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직장이 잘 되고, 동업하는 사람이 잘 돼야 합니다.
좋은 직장을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이 들어감으로 그곳이 좋은 직장으로 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요셉 한 사람 때문에, 애굽 사람들까지 가뭄에서 건짐을 받고 풍요의 복을 받았습니다.
노마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끝없이 성공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땅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까닭에 그 땅이 축복의 땅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잘되고 이웃이 잘되는 것입니다.
이삭을 보십시오! 이삭이 사막에서 우물을 파는데 파는 곳마다 희한하게 물이 솟아났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신 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시 73:28)을 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형통과 은혜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신앙인의 삶은 노마드 유목민의 삶입니다. 십자가 지고 주님만 바라보며 그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갈 때 누려지는 참된 평안과 참된 만족입니다. 노마드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힘에 벅차도록 어두움의 터널도 있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어느새 내 곁에 동반자가 되어 주셨고, 피난처와 바위와 요새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은 나의 전부가 되셨고, 나의 찬양과 영광이 되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가 되듯이 우리는 노마드의 삶에서 천국의 은혜와 능력과 풍요를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이런 귀한 노마드의 삶이 주님으로 인해 여러분의 삶에 큰 축복과 능력이 되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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