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밧 과부의 승부수
왕상 17:8-24,2024,03.31.늘찬양교회
오늘은 시돈 땅 사르밧에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던 한 과부의 승부수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그 당시 가장 불행하였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불행하였던지 남은 가루 한 웅큼과 기름 몇 방울을 가지고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하던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르밧 가정에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주셔서 가뭄이 끝나는 그 날까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요술램프의 이야기처럼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는 기적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사이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기하고도 기이한 이적을 통하여 참으로 어려운 경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사르밧 과부의 기름통과 밀가루 통같이 여러분의 재정이 바닥이 나지 않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채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Ⅰ. 시돈에 속한 사르밧 땅으로 가라
이방신들을 섬기는 거짓 예언자들이 판치는 북이스라엘에 불굴의 용기를 가진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등장하여 당시 패역 하기로 소문난 아합왕 앞에 나아가 “당신의 죄 (우상을 섬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雨露)를 내리지 아니하리라.”(왕상 17:1)는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예언대로 가뭄이 계속되자 온 땅에는 마실 물이 없어졌습니다. 아합왕에게 내린 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열왕기상 17장 3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엘리야에게 아합왕과 왕후 이세벨의 죽임을 피하여 요단 동편 ‘그릿 시냇가’로 숨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길르앗을 떠나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으로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며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내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자기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놀랐을 것입니다. 원래 까마귀란 짐승이 그 울음소리만 들어도 재수 없다고 하는 동물입니다. 더욱이 까마귀는 사람이나 동물의 눈을 파먹는 버릇이 있으며 죽은 고기를 좋아하는 잡식성 동물로서 광야에 흔히 있는 새입니다. 그런 까마귀가 자그마치 6개월에서 1년여 동안 엘리야의 생명을 책임진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귀한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붙들고 계시며, 나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으로 깨달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릿 시냇가’의 물도 다 말라버리자 하나님은 다시 엘리야를 일으켜 세워서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9절)고 명령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또다시 순종하는 마음으로 시돈 지방의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원래 ‘사르밧’이란 ‘용광로’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선지자가 언제까지 이렇게 피신하여 숨어다녀야만 하는가? 거기다가 이제는 이방 과부에게까지 빌붙어 얻어먹어야 하는가?’ 하는 최후의 자존심마저 용광로에 불태워 없애버리지 않고서는 순종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속에 있는 여러 혈기와 우월감, 높아지려는 마음, 교만함, 열등감, 자존심 등 이 모든 것들을 버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크신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 모든 것을 성령의 용광로에 불태워 없애버림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듯 엘리야가 겪었던 외로움, 고립감, 좌절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훈련의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는 마지막 자존심까지 다 버리고 순종의 사람이 되어 사르밧 과부를 찾아 먼 길을 떠났습니다.
여러분들 속에 말 못 할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까? 그러나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통해 우리를 훈련하고 계십니다.
Ⅱ. 사르밧 과부의 등장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밧까지 가는 길은 100km가 넘는 먼 길입니다. 더욱이 2,900년 전(前)이라 길이 제대로 나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혹시 길은 있다 할지라도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밧 까지 왕래할 수 있는 큰 도로에는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한 아합의 군사들이 쫙 깔려 있었으므로 쉽게 그 길을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탈옥수 신창원처럼 낮에는 자고 밤에 걸었다든지 아니면 산길로 돌아서 갔다든지 해서 엘리야는 어떻든 무사히 사르밧 땅까지 들어왔습니다.
시돈 땅 사르밧에 도착한 엘리야 아마 지칠 대로 지쳐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옷은 나뭇가지에 걸려 다 헤어지고 흙이 군데군데 묻어 더러워졌을 것입니다. 얼굴은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잠을 자지도 못하여 눈과 배는 석 자나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런 남루한 옷차림에 초췌한 모습을 해서 사르밧 땅을 숨어다니듯이 조심하며 길을 가는데 마침 한 여인이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엘리야는 이제는 살았다 싶었습니다. 엘리야는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여인에게 다가가 우선 마실 물부터 구했습니다.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10절) 사르밧 과부는 외진 들녘에서 낯선 남자의 음성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옷차림과 행색을 보니 마치 동창생을 만난 듯 반가웠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애처롭게 생각하며 물을 뜨러 갑니다.
이때 뒤돌아서 가는 여인을 향하여 엘리야가 또 부탁합니다. “물만 아니고 이왕이면 올 때 먹을 것도 좀 가져다주시오.”(11절) 하며 능글맞게 부탁을 합니다.
Ⅲ. 사르밧 과부의 승부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사르밧 과부의 처지가 어떤 상태입니까?
오랫동안 가뭄이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휩쓸고 있어서 시돈 땅 역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사르밧 과부는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어린 자녀까지 데리고 있으므로 많은 양육비와 기타 물질이 필요한 상태인데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서 더는 식량을 조달할 수가 없었으며, 설상가상으로 가진 것마저 다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집안을 뒤져보니까 가루 통 바닥에 한 웅쿰의 가루와 몇 방울의 기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과부가 생각한 것은 남은 가루와 기름을 싹싹 긁어서 떡을 구워 어린 아들과 음식을 해 먹고 내일 아침부터는 배를 쫄쫄 굶으며 죽을 때를 기다리기로 작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떡을 구울 나뭇가지를 주우러 들로 나갔다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난 것입니다.
이 같은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형편과 똑같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IMF 때보다 살기가 더 어렵다는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날마다 실직자와 노숙자가 늘어가고 있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하고 그 방법을 찾아보지만 신통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러분들이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내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까마귀를 통해서 공급해주시고 사르밧 과부에게 다함이 없는 밀가루와 기름을 허락해 주시듯이 때를 따라 일용할 양식으로 여러분들을 채워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같은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받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별 미친놈”이 와서 물을 달라 하더니 이제는 한술 더 떠 떡을 달라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더구나 나는
마지막 음식을 해 먹고 죽을 결심까지 한 절박한 상황이 아닌가?…아마 저 같으면 이때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여보쇼! 지금 이 땅에 몇 년째 가뭄으로 인해 물 구경한 지가 오래입니다. 더욱이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남의 생명을 빼앗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당신이 나에게 생명과 같은 물을 달라하고 음식을 달라하느뇨!... 당신이 물을 찾아 마시든지 음식을 손수 해 먹든지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지금 그럴 힘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오.” 하며 거절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나같이 딱한 사람에게도 물과 음식을 구걸하는 저 사람의 심정은 얼마나 더 고통스럽고 괴로울까!’ 하며 자신의 걱정보다 눈앞에 보인 그 남루한 옷차림의 나그네에게 더 큰 관심과 안타까움을 가졌습니다.
여인은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실대로 나그네에게 말하기로 작정하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지금 떡이 없습니다. 먹을 떡이 없을 뿐 아니라 통에 조금 남은 가루와 병에 조금 남은 기름으로 마지막 떡을 사랑하는 어린 아들과 함께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려고 지금 나뭇가지를 줍던 중이었습니다.”(12절)라고 정직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보아 사르밧 과부는 인품이 자비롭고 관대한 여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야는 다시 과부에게 말합니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집에 들어가서 방금 말한 대로 음식을 준비하십시오 …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 나에게 먼저 한 조각 가져오고 그 후에 아들과 함께 들도록 하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릴 때까지 쌀통에 밀가루나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왕상 17:13-14)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부탁을 듣고 참으로 뻔뻔한 사람이구먼. 어떻게 저렇게 거짓말을 능숙하게 잘할까? “거짓말 그만하시오. 솔직하게 배고프다. 말하면 될 것이지 거기다 하나님의 이름까지 팔아먹는다 말이오 당신의 그 속 보이는 거짓말 때문에라도 나는 더 해 줄 수가 없소”하며 거절할 수도 있었건만 사르밧 과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사르밧 여인은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내가 한 끼 먹고 죽는 것이나 안 먹고 죽는 것이나 똑같다. 이왕이면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일이나 하고 죽자!” 그렇게 생각하고 순종함으로 물과 떡을 만들기 위하여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낌없이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그릇에 부어 떡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순종함에는 선지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도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중요한 거래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승부수를 띄운 것입니다.
Ⅳ. 다함이 없는 밀가루와 기름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서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에 통을 열어보자 정말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가득 차 있었고 기름통에도 기름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밀가루와 기름의 채워짐의 역사는 가뭄이 끝나는 그 날까지 은혜와 기적으로 계속되어 나타났습니다. (왕상 17:16) 이리하여 사르밧 과부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있던 시기에 가루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않는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처럼 자신의 이성과 의지와 자존심을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나갈 때 까마귀의 기적과 밀가루와 기름병의 기적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응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가서 뚜껑을 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기름병을 기울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말고, 돈도 말고, 우상도 말고, 주의 종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내 말로 믿고 그대로 삶에 실천하는 순종의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다운 승부수의 믿음입니다.
더 나아가 사르밧 과부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의 종을 신실하게 대접하였듯이 여러분들도 교회 목사님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공궤하며 섬기기를 원합니다. 물질이 어려우면 드리던 십일조도 중단하고 심지어는 아무도 모르는 큰 교회에 나가 편히 신앙생활 하려는 그런 잘못된 유혹을 뿌리치고 사르밧 과부처럼 순종하며 섬길 때 여러분의 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Ⅴ. 과부 아들의 회생
사르밧 과부는 매일 매일 쏟아지는 밀가루와 기름으로 인해 아무 걱정 없이 편히 살아가고 있을 때 갑작스레 슬픈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둘도 없는 과부의 외아들이 갑자기 병이 들어 앓아눕더니만 그만 숨을 거두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사르밧 과부는 그동안 아름답게 인도하시고 풍요롭게 먹이시고 넉넉하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린 채 감사치도 아니하고 자신의 욕심과 기분을 따라 살아온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닌가? 싶어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께 엎드려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곡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엘리야 선지자를 찾아가 급히 부탁하였습니다.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왕상 17:18)며 원망의 화살을 쏟아부었습니다.
이에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소리쳐 부르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는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과부의 집에 재앙을 내리사 아이를 죽이려 하십니까?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바라건대 이 아이의 혼에 다시 생명의 호흡이 돌아오게 하옵소서”(왕상 17:20-21) 이렇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아이에게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어 주셔서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엘리야는 아이를 안아 사르밧 과부에게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이 이렇게 살아났습니다.”(왕상 17:23)
아이가 살아났음을 본 사르밧 과부는 그제야 엎드리며 말하기를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알았습니다.”(왕상 17:24절)며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고백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와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산 생명의 말씀임을 찬양함을 통하여 이방 시돈 땅에 하나님의 복음이 힘차게 울려 퍼지는 결과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섬김에 있어 자신의 전부를 드려 하나님을 섬기려 하기 보다는 지적인 양식으로만 채우려고 하는 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평소에 남을 생각하고 도우며 대접하려는 마음과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하는 마음 때문에 비가 내리는 그 순간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끓어지지 않는 풍요로움의 축복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적 풍요로움에 젖은 나머지 영혼에 대한 양식과 영적 체험을 멀리하며 살아갔습니다. 점차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관심도 식어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를 통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영적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축복만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도 함께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의 축복과 아울러 삶에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생명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온 땅 위에 전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게 하므로 다시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베풀어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 그리고 영적인 생명에 대한 귀중함을 잊지 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사르밧 땅에 임한 가난과 기근과 가뭄과 질병보다 더한 고통과 아픔이 고물가, 고이자, 고환율의 글로벌 위기와 함께 우리를 포위하며 장악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엘리야의 순종과 사르밧 과부의 승부수 즉 섬김의 순종을 본받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주의 백성이 될 때 까마귀의 기적과 다함이 없는 밀가루와 기름의 축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님이 함께 하시므로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전도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이 같은 기적과 축복을 맛보지 못하고 어려움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직도 삶에 궁색함을 변명하며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종과 이웃을 대접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모습은 아직도 내 안에 내가 있어 내 지식, 내 의지, 내 혈기, 내 방법을 가지고 세상을 꾸려나가려고 하므로 완전 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렇듯 겉치레의 신앙에 끝나지 아니하고 살아 생명력 있는 능력의 생활, 복음 전도의 생활,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려고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고물가, 고이자, 고환율의 심각한 경제 위기를 통해 믿음의 승부수를 던짐으로 이런 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밀가루와 기름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부활처럼 우리의 삶이 2024년 부활절을 맞아 회복되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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