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리더십자료

한국교회 양육 리더십, 멘토링으로 갱신하라

늘찬양 2006. 11. 15. 09:34

한국교회 양육 리더십, 멘토링으로 갱신하라
 
유종성  - 

 
한국교회 양육 리더십, 멘토링으로 갱신하라

대량생산과 분업화를 풍미해오던 20세기의 경제체제가 21세기를 않두고 다품종 소량생산과 특성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체제를 예고하고 있다. 대량생산의 필수요소인 규격화와 표준화는 집단주의 사회인 우리 풍토에서 한때 사회적인 미덕으로까지 치부되었다. 교육 현장 역시 이같은 사회적인 패러다임 속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왜 멘토링인가
19세기까지만 해도 가정교육이나 서당교육 등 교육 현장에는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인격적 감화와 영향력이 시회적으로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이후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물품처럼 인격적인 영향력이 배제된 채 규격화되고 경쟁적인 모습으로 치달아 왔다.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개인주의는 병세가 악화되었고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개인과 개인 사이에 단절된 들을 타고 죄는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범죄는 갈수록 흉포화되어 가고 지능화되었다. 학원폭력과 가정파괴도 전 세계적으로 심각성을 더해왔다. 개인주의가 극에 달해 있는 미국사회에서 이같은 병폐는 더욱 짙게 나타났고 드디어는 관계중심의 리더십 유형인 멘토링이 그 사회적 대안으로 등장하여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공기를 들이마시고 사는 것처럼 생활 그 자체였던 멘토링은 20세기를 거치면서 특정분야의 사회문화적 전승방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다시 사회적 생존차원의 필요에 의해 21세기의 패러다임은 다시 관계적 영향력을 요구하고 있다.19세기에 공기처럼 가까이 있어서 그중요성에 무감각했던 우리는 20세기 말에서야 공기가희박한 고산지대에서 헐떡이는 것처럼 관계중심의 상호 영향력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21세기를 관계의 시대라고 부른다.

한국교회에 소개된 멘토링 관련 자료들
현재 미국 교계의 경우에도 세속학문 분야에서 멘토링이 유행하는 것에 비해 교회 적용은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멘도링 전도사의 역할을 하는 이들은 달라스신학교의 하워드 헨드럭스, 풀러신학교의 로버트 클린턴, 멘토링 투데의 설립자 밥 빌 등이다.
하워드 헨드릭스는 어릴 때부터의 멘토링 경험을 토대로 대규모남성 경건운동인 ′프라미스 키퍼′운동의 강사로 멘토링의 위력을 전파라고 있다. 그의 책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As IronSharpens Iron,요단출판사)는 지난 1996년 6월에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멘토링에 대해 본격적으로 한국교회에 소개된 첫번째 책이다. 역자가 멘토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스승-제자 관계라고 번역한 것이 초점을 흐리는 느낌은 있으나 멘토링 전반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자신의 멘토리인 아들과의 공저라는 점도 흥미롭다. 지난해 번역된′′사람을 세우는 사람J(StandingTogeer, 도서출판 디모데)은 엘리야와 엘리사사이에 이루어진 멘토링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멘토리인 달라스신학대학원장 찰스 스윈돌 목사가 서문을 썼다. 풀러신학교에서 멘토링을 가르치고 있는 로버트 클린턴 교수의 저서는 아직 한국에 소개된 바 없다.현재 그의 지도 아래 멘토링을 연구하는 한국 학생들이 적지 않으므로 곧 한국에도 그의 저서들이 소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미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박 건 목사(안양청안교회 담임)는 멘토링 세미나를 통해 클린턴 교수의 멘토링 이론을 국내에 접목시키고 있다. 지난해 말 ‘멘토링’(Mentoring,도서출판 디모데)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국내에 알려진 밥 빌은 멘토링 사역에 일생을 걸 만큼 멘토링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와 함께 교과서적으로 멘토링의 원리를 잘 정리하고 있다. 멘토링의 기간이나 범위를 클린턴 교수나 헨드릭스교수에 비해 ‘평생′ ,′한명′ 등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개인적 차원의 멘토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책이나 교회적 적용을 하기에는 응통성이 없어 다소 부담을 준다. 클린턴 교수는 신적 접촉에서 제자훈련자까지 멘토링의 기능을 9가지로 구분하여 범위를 넓힘으로써 교회적 적용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헨드릭 교수의 경우에도 평생이라는 단어보다 ′지속적′ 관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클린턴 교수는 멘토링의 유형 혹은 기능을9단계로 나누고 있다. 관계의 빈도, 능동성 , 집중도의 기준에서 강도가 약한것부터 강한순서로 신적 접촉(D-ivine Contact)-역사적 멘토(Hitohcal Model)-현재적 멘토(Contempora Model)-후원자(Sponsor)-교사(Teacher)-상담UKCounselor)-코치(Coach)-영적 인도UKSpiritual Guide)-제자훈련자(Discipler)의 순으로 구분한다.
신적 접촉에 의한 멘토링은 아주 간헐적 이고 수동적으로 하나심의 개입에 의해 인도를 받는 경우를 말한다. 역사적 멘토는 전기를 읽다가 페스탈로찌나 쉬바이처 등 역사적인물에 감화를 받아 인생에 중요한 결단을 하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정신적 가르침에 영향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현재적 멘토는 현재 살아있는 인물들 가운데 인생, 사역, 직업에 있어서 모델이 될 뿐 아니라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를 말한다. 후원자는 조직 안의 리더로서 보흐자와 안내자의 역할을 해주는 경우를 말한다.
교사는 어떤 특정한 주제에 관해 이해하도록 가르쳐주는 경우에 해당된다. 상담자는 적절한 시기에 자신, 타인, 환경 , 사역에 대해 바른관점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경우를 말한다. 코치는 도전하고 격려하고 동기부여하여 기술을 연마하고 적용해나가도록 돕는 경우를 말한다. 영적 인도자는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칠 질문이나 결정에 대해 통찰력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경우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제자훈련자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도록 세워주는 경우를 말한다. 이처럼 클린턴 교수는 멘토링에 있어서 가장관계의 집중도나 빈도가 강럭한 관계가 제자′훈련 관계라고 본다.

제자훈련은 낡을 옷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이 시점의 한국교회에 멘토링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에 대해 이 랜드 사목 방선기 목사는′교회사적인 시각에서 보면 기독교교육이나 제자훈련이나 멘토링이나 다 그 추구하는 목표는 같으나 더 이상 그 이름으로는 본래 추구하려던 이상을 담을수 없는 한계적 개념이되면서 갱신 개념으로 다시 멘토링이 등장하는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양육 원형을 담기에 교회사적 인식면에서 낡아버린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은 가고 다시 그 원형의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켜줄 멘토링이라는 새 부대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기독교교육이 일 대다수라는 관계였고, 제자훈련이 일대 소그룹의 형태였다면 멘토링은 일대일의 관계를 지향한다. 목표는 같을지라도 형태의 변화는 있는 셈이다.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이 퇴조할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이름만 제자훈련으로 걸고 교재중심으로 그룹성경공부를 하다가 제풀에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에 무게에 눌려 허덕이는 교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교회 제자훈련의 대표적인교회인 사랑의교회의 옥한흠 목사는 지난해 한 모임에서 "그동안 제자훈련 세미나에서 훈련받은 목회자가 3천여명에 이르지만 그가운데 훈련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교회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한바 있다.
70년대 전도와 부흥에 이어 8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 붐을 일으켜온 제자훈련은 선교단체에서 교회로 들어왔다. 멘토링을 전공한 박 건 목사는 한국교회의 멘토링 실태를 <앞쪽 그림1>로 설명 한다. 그는 교회안의 모임을 크게 대그룹, 소그룹,일대일 그룹 이렇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대그룹은 예배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다. 전통적으로 한국교회는 모였다 하면 몇 명이 오이든지예배를 드렀다. 요즘에는 예배의 역동성에 따라사람들이 많이 변화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대다수의 예배형태로 보면 변화가 제일 약하게 일어나는 그룹이다.
그 다음은 구역모임 , 성경공부그룹, 친교그룹, 제자훈련 등의 내용으로 진행되는 소그룹이다. 소그룹은대그룹보다 한층 변화가 강하게 일어나는 형태의 모임이다. 마지막으로 멘토링이 지향하는 일대일그룹이다. 멘토링 그룹은 나눌 수 없는 깊은 내면적인 부분까지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모임 형태이다. 이것이 맨業린의 강점이다.

이제 시대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면 1970년대만 해도 한국교회는 대그룹중심이었다. 그때 선교단체는소그룹과 멘토렁그룹 중심이었다.80년대 이후90년대에 걸쳐서 제자훈련의 불을 타고 소그룹은 상당히 늘어났다. 그러나 멘토링그룹의 필요성은 아직 제기되지 않고 있다. 박건 목사는 대그룹, 소그룹, 멘토링그룹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교회가 가장 건강한 상태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교회 형태는 2000년대에가서야 한국교회에 일반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나를 열어 예수님 닮은 한 사람을 세우라
현재 한국교회의 일각에서 멘토링사역을 시작하고 있는 이들의 한결같은 강조점은 ′멘토링을 또 하나의 교회 부흥 프로그램(program)으로 인식하지 말고 예수님 을 닮은 한사람을 세우는 관계적 과정(process)으로 인식해 달라′는 것이다. 제자훈련이 목회 처학의 차원으로 자리잡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처럼 멘토링 역시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는 목회철학으로 받아들여야 목회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 멘토링은 형태적으로 일대일의 형태를 지향한다. 그러나 열린 일대일일 것을 요구한다. 한국선교훈련원 원장 이태웅목사는 ′신약적인 멘토링은 속박하거나 추종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호존중하는 가운데 쌍방적인 배움의 관계가 되어야 한톨고 말한다. 선교단체 안에서 이루어져온 일대일 제자훈련은 종종 경직된 일면을 보여왔다. 인생 전영역에 걸쳐 전천후 멘토링을 해 줄수 있는 분은 예수님 한분 뿐이었으며 교회 안의 모든 지체는 서로 멘토링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한 개인은 큐티, 전도, 성경공부등에 있어서 가각의 멘토를 두 수 있다.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멘토링은 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와 회심하는 과정에서부터 그 사람이 성숙하고 헌신하여 주님의 사역자가 되가기 위해 세워가는 방향성을 바로보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멘토리의 상황이 현재 어떤 신앙 상태에 있는지 멘토링이 아주 기초단계부터 구체적으로 필 요한지 아니면 멘토링의 마지막 단계부분만 펄요한지를 파악하여 멘토리의 홀로서기를 위한 상황적 멘토링도 필요하다고.

멘토링은 양육 방법이기보다 양육 태도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목자나 아비의 양육 태도를 한사람에게 집중하여 정성껏 섬기는 것이다. 멘토링의 시각에서 취재하며 다시 살펴본 한국교회의 구석구석에는 실제로 이와 같은 양육 태도로 임하는 멘토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그들이 비록 멘토링의 핵심개념은 이해하고 못한다할지 라도 주일학교 교사 중에도, 구역장 중에도 일대일 성경공부 양육자 중에도 작은 예수들은 있었다. 선교훈련 받으러온 선교후보생들 한 사랄 한 사람을그몇 개월 동안심혈을기울여 돌보시는 목사템 , 어린 두 아이가 있는구역식구를 꼬박꼬박 차로 챙겨 구역 모임에 데려갈 정도로 세심하게살펴주시는 구역장님 , 주일학교에 나온 아이가 형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까지 찾아가 화해시켜주는 교회학교 선생님 등.

이러한 심정으로 양육 사역에 임한다면 멘토링의 목회적 적용은 예수의 사람을 세워가는 양육사역을 더욱 힘있게 펼쳐가는 이 시대의지혜로 쓰임 받을 것이다. 새로 교회에 나온 이들에게 파트너를 붙여 챙겨 주는 새가족부 멘토링 은 교인의 정착률을 높여줄 것이요 구역모임에 속하기를 꺼리는 이들을 위한 관심분야별 멘토링그룹은 보통 출석교인의 1/3정도만 구역모임에 연결되어 있는 건강하지 못한 교회 구조를 개선해줄 것이다.
또한 본격적인 제자훈련 전 단계에 양육과정으로 멘토링과정을 두어 멘토링 차원의 일대일 양육과정을 거치게 하면 제자훈련에서의 탈락율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교회들이 제자훈련에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준비가 부족한 성도들을 성급히 고난도의 제자훈련에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그룹 목회를 통해 멘토링사역을 하고 있는 M교회의 K목사는 ′제자훈련은 70-80년대 프로그램이다. 훈련의 목적은 ′훈련′이 아니라 ′삶이 변하는 것′ 인데 많은 경우에 훈련 프로그램으로는 인간의 본바탕이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 대안으로 함께 마음을 풀어놓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함께 자면서 삶을 나눌 수 있는 목회로의 대전환을 제안 한다. 그럴 때 하나길 나라의 가족임을 인식하고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며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작은 예수로 이 땅을 살아간 그 자리에, 나와의 열린 관계를 통해 세워진 또 한사람이 내게 주셨던 하나결의 비전과 소명을 이어받아 우뚝 서 있다는 상상을 해 보라.그리고 오늘 예수님의 심장으로 나의 양육 태도를 가다듬어보자.

빛과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