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의 리더, 섀클턴
- 김광건 -
평전이라 함은 다른 사람에 의해 씌어진 한 인물의 일대기를 말한다. 흔히 우리는 어릴 적에 위인전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한 인물의 역사적 일생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것은 대개 그 인물의 훌륭한 점만을 극대화한 성공담이었다. 엄청난 두께의 탐험 일대기인 「섀클턴 평전」은 그의 불굴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남극점 최초 정복이라는 야망을 성취하지 못한 채, 다만 끊임없는 도전으로만 점철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섀클턴은 일찍이 바다를 익히고 역사상 최초로 남극점에 영국기를 꽂는 영웅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또다시 남극 탐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섀클턴은 위기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특히 사선에 놓인 부하들을 구조해 냄으로써 영국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많지 않은 나이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일생은 한마디로 무모한 도전의 연속과 한계의 극복이었다.
왜 다시 섀클턴인가
그런데 지금까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섀클턴이라는 인물이 오늘날 갑자기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에 그는 시대적 요구였던 개척자적 영웅들 중에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챔피언의 영예를 얻은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그 당시 존경받던 영웅들의 그룹에 속하고 있었지만, 최고의 업적을 이루는 데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오늘날 다시 부활해 현대 리더들의 탁월한 모델로 재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복잡하고 난해한 현실에서 확실한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평전은 리더십을 위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수많은 리더십 서적들처럼 비현실적인 학습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일생, 그가 그 상황에서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리더십의 경우들을 드라마로 집대성한 근래 보기 드문 리더십에 관한 교훈서다. 다시 말해, 상황 설정이 막연한 가운데 그저 던져주는 남의 리더십 원리가 아니라 섀클턴이라는 실제 인물이 처한 구체적 상황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가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상케 해서 섀클턴이라는 리더의 행동, 언어, 호흡을 우리의 피부 속에 주입하는 것이다.
섀클턴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극한 상황에서의 리더십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특수한 스타일의 리더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만큼 현대 공동체의 정서와 문화 환경 등이 투쟁적이고 극한 상황처럼 살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영적 공동체를 지휘하는 목회 리더들은 남극을 향해 초인적 인내로 나아가는 섀클턴의 특수 리더십을 필수적으로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특히 섀클턴의 평전 전체에 나타나는 불굴의 의지, 목적이 이끄는 삶, 인간에 대한 사랑, 보스라는 강한 자의식 등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중요한 리더십의 조건이기에 오늘날 세상은 다시 그를 주목하는 것이다.
선천적 리더십을 다시 생각한다
섀클턴의 리더십 상황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남극점 정복이라는 목표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전문성, 지식, 기술, 여러 가지 노하우 등은 그 당시 너무나 부족했으며 추구하는 목표도 오늘날 가치로는 많은 의문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리더십 테크놀로지’(technology)는 달랐지만, ‘리더십 피규어’(figure) 즉 인물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물론 섀클턴에게도 최고가 되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계속해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다시 그가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보다 그의 리더로서의 DNA였다. 섀클턴은 평범하고 안락한 생활을 기대하며 남극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돌아오지만, 그 평범하고 안락한 생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어서 다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삶을 살았다. 이것이 리더들이 주목해야 하는 점이다. 흔히 리더가 리더로 되는 것(혹은 되려는 것)은 어떤 상황의 요구, 가치, 소명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리더가 리더로 되는 많은 경우는 그의 기질 때문이다.
섀클턴은 타고난 보스였다. 즉 그는 억지로 만들어진 리더가 아니었다. 저자인 헌트포드는 “그의 기질 속에 매우 신비스러운 리더십이 숨겨져 있었다”(449쪽)라고 말한다. 그의 도전 정신과 타고난 강인함 등이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핏속의 리더십 유전자와 어우러져 일찍이 그를 탐험 리더, 개척자(pioneer)가 되는 길로 몰아갔던 것이다. 그는 피 끓는 아일랜드의 후예였고, 사람들은 그의 리더십 DNA를 직감적으로 알아보았으며, 그는 원치 않았지만 어느새 리더가 되어 있었다. 타고난 신비감, 위엄, 말솜씨, 용모, 의지, 인내력, 배려, 희생 정신, 용기, 낙천성, 명확한 사리 판단, 대범한 위임 그리고 카리스마 등은 그다지 피를 흘리는 투쟁을 거치지 않고서도 그를 평생 리더의 포지션에서 살게 해주었다. 「섀클턴 평전」은 남극의 위기 상황에서 모든 대원들이 절망하고 지쳐있을 때, 그저 섀클턴을 바라보기만 해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고 반복해 기록하고 있다. 그에게는 ‘영웅의 모습’(97쪽)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붙는 리더가 있고 그렇지 않은 리더가 있다. 섀클턴은 전자의 리더였다. 즉 노력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모여드는 리더였던 것이다. 이 평전은 섀클턴과 대조되는 리더, 라이벌인 해군 장교 스콧을 계속해 보여준다. 그는 개인적으로 엘리트 리더였다. 귀족적이고 스마트한 리더였으나 이기적이고 차가웠던 그는 팔로워(follower)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얻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섀클턴은 결점을 갖고 있었지만,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끌어들이고 지배한 리더였다. 이를 필자는 ‘카리스마’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정의상 후천적으로 획득되고 개발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타고난 리더 섀클턴
오늘날 리더십의 패러다임은 주로 후천적 개발론이다. 즉 이것을 행동 이론 (Leadership Behavioral Theory)이라고도 하는데, 누구나 노력하고 교육받으며 이런 행동을 한다면 훌륭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가정이다. 요즘 많이 나오는 리더십 서적, 세미나, 콘퍼런스 등이 같은 맥락에 속한다. 즉 ‘습득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십이 붐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리더가 되는 꿈을 갖고 오늘도 애쓰고 있다. 필자는 이런 패러다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과연 그렇게 애를 쓰면 누구나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가? 필자의 대답은 ‘노’(No)이다. 탁월한 리더십은 타고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역사적 목표를 수행하는 리더십, 개혁을 시도하는 리더십은 대개 선천적 리더십에 의해 이뤄짐을 인정해야 한다.
섀클턴은 타고난 리더였다. 우리는 이 평전을 읽으면서 그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에서 그의 리더십을 누구나 그대로 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섀클턴이라는 탁월한 리더를 접해야 하는 이유는 섀클턴과 같은 타고난 리더를 발굴하고 세우기 위함이다. 특히 목회 리더십의 차원에서 누구나 섀클턴과 같은 리더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섀클턴과 같은 리더를 알아보고 키워내는 것도 중요한 사명임을 알아야 한다.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데니스 퍼킨스 저)이라는 책이 이미 출간되어 그의 리더십의 진수를 잘 정리해 두고 있다. 이 책은 ‘극한 상황에서의 리더십 10가지 전략’을 제시하면서 비전, 솔선수범, 낙천성, 정력, 창의성 등을 주장하고 있다. 많이 들어온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일상 상황도 아닌 극한 상황에서 리더십은 아무나 발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개발된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저 한사람은 타고난 리더이다’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대중 지상주의 시대에서 ‘리더십은 많은 부분 타고나는 것이다’라는 말은 외면당하기 쉽다. 그러나 리더십의 중요한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섀클턴의 평전을 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인물의 감상도 괜찮지 않은가?
섀클턴에게서 한 수 배운다면
그래도 리더십 개발론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어떤 리더십을 배울 수 있을까? 필자는 리더십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리더십의 주요 조건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곧 공동체 특성, 커뮤니케이션, 상황이다. 이것들을 렌즈로 해서 그의 리더십을 한 번 평가해 본다.
1. 공동체 특성
우선 그의 공동체는 밀폐된 것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극지방에서 공동체를 이끄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극한 상황에 처할 때 그런 공동체는 폭탄이 되고 만다. 각각의 강한 개성이 표출돼 자칫 통제 불능의 상태로 되기 쉽다. 그때야말로 강력한 보스 기질이 필요하게 되는데, 흔히 평상시에 환영받는 리더십인 자유방임형은 매우 위험하다. 섀클턴은 비권위적이고 호감 있는 리더였지만 조직을 강력하게 장악했다.
2. 커뮤니케이션
섀클턴의 커뮤니케이션은 논리적이기보다 감성적이었던 것 같다. 섀클턴은 대원들의 이해보다 호감을 이끌어냈다. 리더십은 특히 정서적 차원에 있다. 이성적 판단에 의하기보다 리더가 마음에 들어서 따라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섀클턴은 인간미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리더였다.
3. 상황
섀클턴은 솔직히 균형 잡힌 리더는 못되었다. 때로 그는 매우 불안정하고 감정의 기복도 심했던 것 같다. 그리고 관리와 행정적 면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던 리더였다. 그는 오직 위기를 만나 극한 상황에서만 두드러지는 리더십이었다. 우리는 이런 리더여야 하는가?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목회 리더십의 많은 부분은 이런 극한 상황만을 가정한 지나치게 터프한 리더십이어선 곤란하다. 지역 교회에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양들을 이끄는 리더십에 상식적인 면, 즉 관리적이고 행정적인 면이 적절히 보완돼야 한다.
섀클턴에게 한 수를 배운다면 첫째, 리더십의 스타일을 떠나 보스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라. 둘째,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하라. 셋째, 보편적 리더가 돼라. 넷째, 그의 일생에서 보듯이, 리더는 가능한 그 분야에 일찍 뛰어들어라.
그래서 정말 섀클턴이 처했던 것과 같은 험한 리더십 환경에서 한국판 목회자 섀클턴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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