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리더십자료

영적 리더십도 문화를 통해서 온다

늘찬양 2006. 11. 15. 09:36

영적 리더십도 문화를 통해서 온다
 
  -김광건  -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토끼가 이끄는 사자들의 군단보다, 차라리 사자가 이끄는 토끼들의 군단을 원한다.”1 그 구성원들이 얼마나 우수하냐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말은 리더가 얼마나 우수한가가 더 중요한 이슈가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세상에서 리더 없이 이뤄지는 일을 그리 많이 보지 못한다. 특히 중요한 일들은 강력한 리더, 탁월한 리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을 많이 본다.

문화마다 선호하는 리더십이 다르다
이전에 경영에서 거듭 고전하던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가 결국 최고경영자 한 사람(Lee Iaccoca)을 바꾸면서 그의 리더십으로 기사회생한 사건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인도의 독립이라는 극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은 간디라는 한 인물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없었다면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 미국의 흑인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이라는 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흑인 인권 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선택된 방법은 그를 암살하는 것이었다. 결국 핵심은 리더였다.
그런데 여기서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리더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공동체와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으면 리더십이 발휘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리더십이 커뮤니케이션을 갖기 위한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이 리더와 공동체가 공유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정치적 상황일 수도 있고 여러 사회적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다음과 같은 것이 가장 타당하게 보인다. 그것은 바로 문화이다.
얼마 전에 국내의 한 인기 여배우가 자살하는 바람에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안타까워했는데, 그 원인은 결국 우울증이었던 모양이다. 필자는 매일 한 라디오의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다룰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우울증의 이슈를 짚어 보기 위해 한 정신과 전문의와 대담한 적이 있다. 그 분은 여러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를 잘 설명해 주었는데 특히 인상에 남는 말이 있다. 곧 우울증에 걸리면 당사자가 그 증상을 호소하는 표현이 문화적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 표현은 대개 ‘나는 우울하다’(I am depressed)라기보다 ‘오늘 기분이 찝찝하다’든가 혹은 ‘의욕이 없다’라는 식이다. 아니면 <황성 옛터>라는 노래가 생각난다든가 하는 방식이다. 정신과적 증상의 표출(communication)도 상당히 문화적으로 이뤄진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즉 리더십은 문화적으로 이뤄지고 문화라는 매개를 통해 행사될 수 있다.
리더십은 문화적이다. 하버드대학의 인류학자인 파이(Pye)는 각각의 문화권에서 그 음악이 다른 리듬과 음색을 갖는 것같이, 리더십의 형태도 각 문화권에서 모두 다르다고 한다.2 즉 리더십은 문화의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여러 문화들 사이에 리더십 유형의 ‘문화적 공통’(cultural universal)과 ‘문화적 차이’(cultural different)가 존재하게 된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리더십 문화는 리더라는 개인을 세운다. 즉 리더라는 한 객체가 필요하고 그 구조를 지향한다. 사실 세계 어느 곳, 어떤 문화권에서도 이런 리더십 구조가 항상 있다. 이것은 리더십의 문화적 공통이다. 그런데 리더십의 행사 방법(민주적, 독재적, 자유방임적)과 선호되는 리더의 이미지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이것은 리더십의 문화적 차이다.

문화가 변함에 따라 리더십도 변한다
리더십이 문화적이듯, 영적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영적 리더십의 본질 자체가 문화는 아니지만, 그것이 현장에서 실행될 때 문화의 포장을 통해 리더와 공동체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즉 영적 리더십의 핵심 가치와 메시지는 문화 안에서 전달될 수 있다. 그래서 리더십이 우리의 사역 현장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행사되도록 하는 것이 이른바 ‘리더십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 of leadership)이다. 지금 리더십이 회중들에게 익숙한 문화 속에서 행사되고 있고, 리더도 그들이 선호하고 존경할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즘 한국의 신세대들을 위한 리더는 그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한다. 만일 조선 시대의 서당 훈장이 나타나 회초리를 휘두르며 복종만을 강요한다면 그들에게 리더십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차라리 그들에게 친숙한 연예인이 더 큰 리더십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것은 추종자들이 리더를 따라갈 때 어떤 문화적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흔히 “리더십은 영향력이다”라고 자주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그 영향력이란 다른 말로 하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연설, 대화, 인상, 이미지, 심벌, 문서 등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통해 공동체에 리더십이 행사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문화이다. 어떤 공동체의 문화를 통해 리더의 리더십이 행사되는 것이다.
리더십에서 문화가 중요하다면,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도 중요한 관심사가 돼야 한다. 문화는 변하고 있다. 그리고 리더를 보는 문화도 변한다. 거리감을 느낄수록 리더에게서 카리스마나 권위를 느끼고 추종하던 리더십 문화는 지금 확실히 퇴조하고 있다. 보다 친근하고 민주적이며 많은 자유를 주는 리더를 선호하는 문화로 급격히 이동 중이다. 다시 말해, 업무 지향적 리더(task-oriented leader)에서 관계 지향적 리더(relation-oriented leader)를 더 따르는 문화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권위주의적 리더(authoritarian leader)에서 민주적 리더(democratic leader) 혹은 자유방임적 리더(laissez-faire leader)를 따르는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 성취보다 관계, 지시보다 배려, 권위보다 의미, 이성보다 감성이 공동체에서 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최근에 박정희 신드롬이 다시 일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여러 리더들에게 실망한 탓인지 예전의 독재적인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는 모양이다. 그의 생전의 모습이 간간이 지면이나 TV 화면에 나오는데 확실히 그의 표정, 자태, 음성에서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특히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하던 상황에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곧 하던 연설을 끝까지 마치자, 군중들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리더, 리더십이 다시 등장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즉 각각의 목소리만을 내는 혼란한 사회를 강한 카리스마가 등장해 장악하고 다시 질서를 잡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금 우리 사회에 다시 나타나 나라를 이끌어 간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 당시처럼 강력한 리더로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다. 물론 그는 리더로서 분명히 탁월한 사람이었다. 최고 리더로서 갖춰야 할 여러 장점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상황이나 문화와 소위 코드가 맞았기에 그의 리더십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과 문화가 많이 변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개발도상국의 리더십이다. 이제 그 스타일로 국민 다수의 문화와 맞지 않는다. 어느 학자는 중국의 모택동을 예로 들면서, 성공한 리더로서 두 가지의 결합 즉 리더로서 개인적 카리스마(charisma)와 당시 중국의 상황(situation)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고 한다.3 이것을 ‘상황적 카리스마’(situational charisma)라고 한다. 리더십의 카리스마는 그 상황이나 문화와 맞을 때 효력이 발생한다.

리더십은 감성 문화로 대이동 중이다
앞으로 한국에 적합한 최고 리더의 유형은 더욱 감성에 호소할 수 있고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며 친화력이 강한 스타일이어야 한다. 감성의 문화가 점점 더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리더의 이성적 정책에 의한 호소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직관적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외모, 분위기, 말투, 음성, 이미지 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 요즘 박정희 신드롬은 일부 계층의 막연한 향수이지 현실적 대안은 아니다. 그의 리더십을 작용케 하는 상황과 문화는 이미 지나 갔다. 이제 새로운 형태의 상황적 카리스마가 나와야 한다.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영향력이라고 한다면, 요즘의 문화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대중들이 귀 기울이고 보고 싶어 하며 따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성에 호소하는 사람이다. 리더도 더욱더 감성적 터치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 문화가 된 것이다. 즉 감성의 문화로의 대이동이다.
리더십은 문화이다. 그러므로 리더는 문화를 주목하고 고용하는 프로가 돼야 한다. 그리고 영적 리더십도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영적 핵심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영적 리더도 지혜롭게 당시의 문화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영적 리더십이라는 것이 꼭 광야에서 홍해가 갈라지게 하는 특별하고 신비한 상황에서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영적 리더는 문화적으로 민감해야 한다.

주(註)
1. Bass, Bernard M. 1990. Bass & Stogdill"s Handbook of leadership, New York: The Free Press, 6.
2. Pye, Lucian W. 1985. Asian Power and Politics, 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3. Bernard M. 3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