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리더십이 문화와 단절하지 않고 적절한 문화의 옷을 입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리더십의 문화적 동화(assimilation)가 지나칠 경우에 자칫 세속화(secularization)로 치닫게 된다. 사실 기독교 사역의 많은 분야에서 과도한 세속화의 유혹을 받고 또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리더십도 세속화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리더십 vs 매니지먼트 우선 가장 큰 영적 리더십의 세속화 과정은 리더의 매니저화(managerization)로 나타난다. 즉 지나친 경영 관리자의 모습으로 변질돼 간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게 뭐가 나쁘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세속화 과정이 리더십의 효율성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지 본질은 아니다. 영적 리더십의 관리자화는 영적 리더십의 고유한 영역을 제거하는 것이다. 즉 세속화의 과정이라는 것은 수단을 본질화하는 데 있다. 영적 리더가 영적 관리자로 되어 가는 것은 효율성에 다소 도움을 줄지 모르나, 본질에 저해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적 리더의 핵심 가치에 대해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영적 지도자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리더의 위치를 확고히 해 주는 효율성인가 아니면 어떤 고유의 핵심 가치인가? 이것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전 교수였던 코터(John Kotter)는 리더십과 매니지먼트를 과감하게 구분하고 있다. 리더십과 매니지먼트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에서 서로 다르다. 리더십은 유효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고, 매니지먼트는 일을 효과적으로 지속하기 위한 어떤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Kotter, 7). 코터에 따르면 리더십과 매니지먼트는 상호 보완적으로 변화와 질서를 모두 발생하는 것이지만, 둘 모두 기능과 형태의 차이로 서로 충돌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너무 강한 리더십은 매니지먼트의 위계 질서를 약화시키며, 반면에 너무 강한 매니지먼트는 리더십에 필요한 위험 감수와 열정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순수한 매니저 타입과 순수한 리더 타입은 서로 충돌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Management Leadership 과제 설정 계획 수립 및 예산 편성 방향 제시 과제 달성을 위한 인간 네트워크 구축 조직화 및 스태핑 적절한 인사 배치 실행 방법 통제와 문제 해결 동기 부여와 격려 결과 예측과 질서도 그리고 기대하는 결과의 성취 가능성을 높이는 것 극적인 변화의 창출과 극도로 필요한 변화의 잠재성을 보유하는 것
표1 매니지먼트(management)와 리더십(leadership)의 비교(Kotter, 6)
즉 매니지먼트는 조직의 유지(maintenance)와 이에 따른 여러 행정적이고 재정적인 과제들의 해결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반면, 리더십은 큰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매니지먼트는 보다 현실적이고 과학적이며 실용적이어야 하고, 리더십은 좀더 감성적이고 몽상적이며 탈문화적이고 인간 마음의 깊은 터치를 요한다. 물론 최고 지도자(top leader)에겐 양자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도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아니 양자는 상호 배타적인 본질이 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고 조화를 이루는 지도자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누구는 매니지먼트적 지도자이고 누구는 리더십적 지도자인 것이다.
리더십 결핍을 낳는 매니지먼트의 과잉화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조직은 매니지먼트의 과잉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상대적으로 리더십의 결핍 현상을 보인다는 말이다. 이것은 영적 공동체 즉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구조가 더 전문화될수록, 교회 환경이 더 세속화될수록 영적 리더십보다 매니지먼트가 주도적으로 된다. 이에 대해 문제는 없는가? 코터는 계속해 리더십이 부족하고 매니지먼트가 과잉될 때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예측한다. “1)장기적이 아닌 단기적인 목표에 치중하며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리스크를 기피한다. 2)통합과 헌신보다 구성원의 전문화에 치중한다. 3)확장과 감흥보다 견제, 통제, 예측에만 치중한다. 결과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혁신적인 것보다 경직된 상황을 내놓게 된다”(Kotter, 8). 이런 상황은 영적 공동체에서 매우 우려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어떤 영적 상황의 변화와 창조는 매니지먼트의 과잉 상태에서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매니지먼트는 인간 조직에서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영적 리더들이 모두 매니저로 되어 간다면, 누가 그런 인간을 보고 비현실적인 일들을 시도하며 그런 무모하고 비실용적인 목표에 도전한다는 말인가? 차가운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매니지먼트만으로 영적 혁신(spiritual innovation)을 이룰 수 없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비전을 갖고 있는 영적 리더다’라고 자신하지 말라. 오히려 그 비전을 갖는 순간, 그 비전을 성취하겠다는 부담을 갖는 순간에 바로 거기서 리더십은 죽어가고 매니지먼트와 행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리더들은 한 번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일깨워 놓지만, 결국 자신은 매니지먼트와 행정 그리고 단기적 목표의 노예로 되고 만다. 리더십이 작동하려는 순간에 매니지먼트가 주도하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동기 부여와 감흥도 주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 영적 지도자들의 딜레마가 있다. 매니지먼트와 리더십이 의도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은 피할 수 없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변명만 할 게 아니라, 비전과 일상의 조직 행정이 적절히 분리되는 것을 소망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모색하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리더십과 차별되는 ‘매니저십’ 필자는 본고에서 다음의 용어가 보편화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리더십(leadership)과 구분되는 의미로서 매니저십(managership)이 있다. 둘은 모두 지도적 역할이 있으나 지도의 초점과 캐릭터가 서로 다른 사역이다. 그리고 영적 공동체에서도 영적 리더십(spiritual leadership)과 구분되는 영적 매니저십(spiritual managership)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좋다. 즉 영적 리더와 영적 매니저를 구분해 가면서 매니지먼트의 전문성도 기하고 영적 리더십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국 소설 중에 이런 제목이 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저). 정말 오늘날의 많은 영적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영적 지도자들이여,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이것이 사실 영적 리더십의 근간이다. 만일 더 이상 꿈꿀 수 없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며 영적 감동을 줄 수 없다면, 이미 영적 리더십의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만 영적 매니저로 살고 있을 뿐이다. 행정과 매니지먼트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광야에서 변혁과 창조의 기름 부음을 받고 새로운 꿈을 꾼다. 이것이 원래 영적 리더의 모습이다. 비록 매니지먼트의 차원에서 비현실적이라 할지라도 여기서 하나님의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이고 고도의 정보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영적 리더십만으로 조직을 이끌어 나가며 그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깝다. 고도의 매니지먼트의 마인드 없이 조직은 유지되지 않는다. 사실 많은 목회자들은 매일 매일 닥치는 교회 행정과 관리에만도 리더로 사는 것에 급급한 실정이다. 그렇다. 그런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영적 리더십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들은 상황 유지보다 상황 변혁에 목숨을 거는 선지자적 영성을 가져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이 바로 영적 리더십이다. 영적 조직을 포함해 현대 대부분의 조직은 리더십과 매니저십을 한 사람에게 모두 부여하려 든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리더십의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고 지도자인 모세가 중간 지도자들에게 매니지먼트적 사역을 위임하는 장면(출 18:13~27)은 바로 영적 리더십이 매니지먼트십에서 해방되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또한 초대 교회 때, 사도들이 집사들에게 행정적인 것들을 위임하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한 것(행 6:1~7)도 바로 영적 리더십이 매니지먼트십에서 해방되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공해 영적 리더십 구조의 회복을 바라며 필자는 순수한 무공해 영적 리더십 구조의 회복이 영적 공동체의 발전과 쇄신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다. 사실 오늘날 교회들의 무기력 증상이나 관료화 현상은 많은 부분에서 영적 리더십의 매니저화에 기인한다. 영적 지도자가 공동체에 초문화적인 영감(이것은 때로 매우 반경영적일 수 있다)을 불어넣어 주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한마디로 영적 리더는 그렇게 여러 가지 일로 바빠야 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위해, 거기에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공동체와 적절한 거리를 둬야 한다. 달리 말해 매니지먼트와 행정에서 적절히 분리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영적 리더의 지나친 매니저화는 심각한 세속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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