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리더십자료

영적 리더십은 세상 리더십과 다르다

늘찬양 2006. 11. 15. 09:43

영적 리더십은 세상 리더십과 다르다
 
김광건  - 
 
 
지금도 한국 교계에 리더십의 열풍이 불고 있다. 요즘 왜 그렇게 리더십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최근에 영적 리더들에게 리더십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리더십이라는 문제 앞에 우리에게 쉽지 않은 많은 질문들이 있다. 영적 리더십과 세상 리더십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다른 것이라면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우리는 리더십을 어떻게 배워가야 하는가? 즉 영적 리더십의 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리더십의 공통 분모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기독교계에서 리더십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일반 사회와 비즈니스계에서도 리더십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예전에 그는 유명한 저서 「리더십 21가지 불변의 법칙」 등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에 「리더십의 법칙」을 내놓았다. 그의 책은 기독교 리더십 즉 영적 리더십의 원리와 일반 사회에서 리더십의 원리가 서로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그가 제시한 리더십의 원리들은 교계 안팎으로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리더십의 공통된 법칙들이다.
이와 비슷한 원리들을 자주 느낀다. 인간 관계, 비전, 판단력에 있어서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들이 어느 리더십에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 리더들 중에 ‘아, 저 분은 만일 목사가 안 되었다면 세상에서 큰 인물(리더)이 되었겠다’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즉 영적 공동체의 범주 안이건 밖이건(너무 이분화하는 것 같지만), 보편적으로 효과적인 리더십의 공통 분모가 있다. 확실히 리더로 타고난 그릇들은 있다.

기독교 리더십에 관한 의문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 솔직히 따로 드는 생각이 있다. 굳이 기독교인이 아닌 타고난 정치계의 어떤 큰 인물이나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의 조직과 리더십의 대가에게 한 수 배운다면 그게 그것 아닐까, 아니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회도 어차피 사회적 조직으로 분류될 수 있고, 또 주변의 많은 사례들이 특별한 게 아니라 일반 사회 리더십의 이러저런 법칙들로 인해 교회 성장을 이루거나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히딩크 감독이나 GE의 신화적 CEO였던 잭 웰치, 고대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연구한 자료를 영적 공동체 상황에 적용한다면 적지 않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존 맥스웰의 말대로 직관의 법칙, 자석의 법칙, 친밀의 법칙, 위임의 법칙 등 소위 법칙들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괜찮은 영적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배워서 효과적인 리더가 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그 법칙들이나 패러다임들은 모두 좋은 것인데, 도대체 일반 조직과 영적 공동체를 구분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양쪽을 너무 쉽게 넘나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현상은 양자가 가지고 있는 리더십 원리의 공통 분모들이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것을 가져다 쓰고 있다는 뜻이다. 한 쪽과 다른 한 쪽의 리더들에게 공통된 유니폼이 있는가? 아니면 한 쪽이 남의 옷을 입고 있는가? 좋게 보면 그 법칙들이 너무나 탁월해 일반 사회와 영적 공동체를 동시에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치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경우처럼, 성경적 리더십 패러다임이 일반 사회에 적용돼 서로 원리를 공유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어쩌면 영적 공동체가 세속적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즉 그런 원리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유효할 수 있으나, 영적 공동체의 리더십을 위한 근본적이고 특별한 원리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세속적 리더십 원리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 리더십의 세속화(Secularization of Spiritual Leadership)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영적 리더십의 왜곡
많은 부문에서 세속적 리더십과 영적 리더십은 핵심 가치(core values)를 달리 하고 있다. 예를 들면, CEO의 목적은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다른 여러 동기들 즉 사원들의 복지나 행복 지수 향상, 나아가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것 등도 목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업의 리더십의 최고 핵심 가치는 이윤 창출의 극대화이다.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섬기기도 하고 위임하기도 하며 대화도 하면서 리더십의 기술을 발달시켜 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얘기가 다르다. 영적 리더십은 일반 리더십과의 사이에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명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문제는 어느 한 쪽에만 치중하는 데 있다. 양자 사이에 공통점이 있기에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차이점이 있기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리더십을 구해야 한다. 한마디로 균형 감각이 필요한데, 요즘 한 쪽으로 치우치고 있는 경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즉 영적 리더십과 일반 리더십 사이의 공통점만을 향해 나아가면서 우리 고유의 영적 리더십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리더십의 세속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저명한 리더십 교육 기관들에서 하듯이 코치, 목표 수립 과정, 조직 개발, 관리 개발, MBTI 측정, success profiling 등으로 리더십은 좋아지는 모양이다. 또 존 맥스웰의 리더십의 법칙대로, 다소 경영학적 접근으로 영적 리더십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리더십의 5단계’, ‘리더십 계단 오르는 법’ 등으로 분석 접근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먼저 우선 순위를 정하라, 통전성을 가져라, 긍정적 변화를 시도하라, 인간 관계에 힘써라, 성공한 사람들은 타인에게 명확한 질문을 한다’ 등으로 리더십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영적 리더십도 그렇게 해야 하는가이다. 어떤 상식, 지혜, 분석적이고 조합적 접근으로 인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답은 ‘아니오’이다. 일부 문제 해결을 위해 영적 리더십의 전체 정체성을 혼돈해선 안된다. 필자는 이런 서구적 리더십의 접근 방식을 우리의 영적 리더십 상황에 직접 대입하는 것에 회의를 갖고 있다. 이런저런 명언들과 예화들(그것도 주로 사회에서 성공한 유명 인사들의 것), 단편적인 사회·경영 지식들을 갖고 영적 리더십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처칠, 링컨, 칭기즈칸이 어쩌고, 도요타(TOYOTA)가 어떻게 했고…. 아니면 성경의 인물을 선택한 다음에 사회적 분석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에 끼워 맞추는 식이다. 모세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했고 등등이다.

영적 리더십은 다른 영향력이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아직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한 탓이다. 영적 리더십 상황에 상식적으로 사회과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영적 리더십은 추종자들을 조직의 이윤을 위한 정치, 경제, 사회 혹은 심리학적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다. 리더십에서 리더가 추종자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리더 자신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한마디로 영적 리더는 구성원들을 영적 객체로 봐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영적 리더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그 리더십은 영적 영향력이어야 하고, 영적 구성원들은 영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어떤 영적 결과를 위해 어떤 영적 시도를 행하는 것이다.
나아가 영적 리더십 상황은 일종의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이끄는 것이다. 다른 영적 영향력에 대항하고 하나님의 영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의외의 상황에 처하게 되고 예기치 못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도저히 리더로서 자질이 없는 사람이 엄청난 영적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앞서 말한 그 리더십의 법칙을 모두 갖춘 리더가 끔직한 실패를 가져오기도 한다. 완벽하게 조직 관리를 했는데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너지기도 하고 리더의 범주를 넘어서 갑자기 어떤 부흥의 계절로 들어 갈 수도 있다. 영적 리더들은 테크놀러지를 넘어선 어떤 신비한 힘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영적 리더십을 세상의 잣대로 가늠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기독교 리더십이 간과하는 것들
요즘 주변에 있는 많은 리더십에 관한 책들을 보라. 기독교 리더십이라면서 그들은 일반 사회의 보편적인 원리들을 갖고 나온다. 물론 그들의 말은 상식적 차원에서 모두 맞다. 그러나 그것들을 영적 리더십의 원리로 일반화해선 안된다. 그것은 무서운 세속화이다.
예를 들어보자. 리더십이 1, 2단계를 거쳐 다음 단계로 간다고 치자. 하나님께서 리더를 키우시는 것이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딱딱 맞아 떨어질까? 단계별로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항상 머릿속에 두고 하라는 것인가? 이것은 너무나 단순한 기계적 패러다임에서 온 산물이다. 리더의 성장 과정은 선형적이기보다 더 신비하고 유기적이며 통합적이다.
미국의 성공한 어느 리더가 이런 습관을 갖고 있었고 이런 멋진 말을 했다고 우리도 항상 그런 것에 해당될까? 과연 그것을 일반화할 수 있을까? 유명한 대통령이 그랬다고 자신의 상황 특히 영적 상황에서도 그러할까?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영적 리더에게 사소한 것이고 사소하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
리더십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이다. 정말 항상 그럴까? 불특정 다수를 위한 숨겨진 영적 영향력이 있고, 선지자적 특수 리더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리더는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참 좋은 말인데, 과연 영향을 끼치면 모두 리더들일까? 특히 영적 리더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다간 자칫 리더십에 있어서 기독교적 고유의 윤리적이고 영적인 원리들은 도외시 되고 효율성의 극대화 작업만이 남게 된다. 이런 패러다임에 썩어짐의 원리, 약할 때 강함의 원리, 십자가의 법칙, 거룩한 실패, 희생의 법칙, 핍박 속에서의 승리, 지금 리더십은 망한 것 같으나 이를 토대로 훗날 하나님께서 놀랍게 일으키시는 역사 등이 너무나 간단하게 무시되고 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현세주의이고 성과주의이며 심지어 인본주의이다. 요즘 우리의 머릿속에 무슨 법칙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영적 리더는 그런 공식들을 갖고 일을 잘 수행해 나가는 기능인이 아니다. 우리가 히딩크를 배워서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다.

고유한 영적 정체성을 아는 리더
이런 리더십의 상식적이고 사회과학적인 패러다임에 대해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성공한 리더란 누구인가’, ‘무엇이 성공적인 리더십인가’ 여기서부터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 시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책들에 속지 말라. 무리를 많이 모은 리더만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늘 인기가 있는 리더만고 아니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리더만도 아니다. 성공한 영적 리더란 누구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지금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판단 영역이다. 하나님에게 선호되는 영적 리더는 무리를 많이 모은 리더만도 아니라 적절한 무리를 모은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항상 인기가 있는 리더만도 아니라 돌팔매를 맞는 리더일 수도 있다.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리더만도 아니라 그 시대에 하나님의 가장 적절한 메시지를 전한 리더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리더십의 공해에서 자잘한 테크닉들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의 ‘고유한 영적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주 좋은 스승을 만났다. 헨리 블랙커비라는 목사님으로, 그는 영적 리더십의 차별성에 대해 잘 짚어내고 있다.
“리더십 관련 서적들이 넘쳐난다. 여기에 굳이 우리 소리를 보태려는 것은 리더십에 관한 중대한 진리들이 간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 세상 리더와 영적 리더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후자엔 세상에 없는 차원이 존재한다. … 영적 리더가 세상의 방법을 따르면 어느 정도 성공할 수는 있으나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지는 못한다.”(7)
“목사는 성공한 풋볼 코치의 리더십을 공부하며 ‘동일한 원리가 교회를 이끄는 데도 효과적일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많은 영적 리더들이 세상적 접근을 수용하곤 한다. … 이렇게 세상의 리더십 방법론을 흡수하는 현상은 교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개혁인가? 서글픈 유행인가? 성경적 원리는 무엇인가?”(22)
물론 리더십에는 일정한 기술이 개입되지만 궁극적으로 리더십이란 행위보다 존재와 관련된 것이다(48, 「영적 리더십」, 두란노).

다시 말해 지금 우리의 영적 리더십의 상황은 영적 리더십이라는 특수한 패러다임을 위한 차별화된 영적 원리가 주도하기보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세속적 리더십 패러다임(물론 이것이 윤리적으로 전부 나쁜 것은 아니지만)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괜찮은 원리들을 보고 ‘이런 것도 있었나’하고 감탄하면서 사회에서 빌려오고 있다. 이런 경향이 지나칠 경우, 자칫 영적 리더십의 세속화로 이어지게 되고 우리의 핵심 가치가 약화 내지 상실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속화라는 것이 항상 윤리적인 차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속화는 세계관 차원에서 발생해 영적 공동체의 고유한 기능과 소명에 혼란을 일으킨다.

성숙한 리더십을 향해
이제 우리는 영적 리더십의 세속화를 심각히 고민할 때가 되었다. 이것은 리더십의 열풍을 한차례 치르고 성숙해 가면서 영적 리더의 정체성을 다시 찾는 과정이다. 우리의 영적 리더는 남의 옷을 입고 있지는 않는가? 영적 리더십은 뭔가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