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고원의 발견
-래리 길버트 -
"에베소서 4장"의 지도자가 되는 법
젊은 시절, 나는 한 전광 간판 회사를 경영했었다. 그 당시 나는 성공의 열쇠를 찾기 위하여 다른 경영자들을 연구했었다. 당시 나는 많은 회사들이 설립되고 또 그보다 많은 수의 회사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사실 나는 새로 일어난 기업 중 90퍼센트는 5년내에 사라지는 것을 보아왔다. 나는 대부분의 기업이 망하는 이유가 경영자들이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모집한 인력들과 사용할 수 있는 자료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외 다른 것도 발견해냈다. 즉 성공한 기업들 중 대부분은 그 기업의 설립자가 본래 실현하려 했던 꿈을 성취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 역시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을 이끌고 관리하는 경영자의 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업에서의 성공을 하나의 단순한 리더십 원리로 압축할 수 있다고 단정했다. 즉 "성공은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해 조정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목회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성공은 대부분 그 교회 목사의 리더쉽 역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교회에서 사역하기 위해서 내 기업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긴 후,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기업계에서 얻었던 원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지난후에 나는 세속적인 원리들이 어떻게 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기업에서 유효한 많은 원리들이 교회에서도 똑같이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나는 기업에서의 리더십과 목회에서의 리더십 사이에는 특수한 유사점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리더십은 점진적으로 자라서 최고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리더십이 고원에서 개발된다고 확신한다. 기업가들이나 목사들이 그들의 리더십 역량을 증대시키려면 이 높은 지대 즉 고원에서 개발시켜야 한다.
초기 단계의 기업에서 리더십의 고원은 소유자/경영자, 경영자 그리고 지배인이다. 이것들은 교회에서의 교회 설립자, "에베소 4장"의 목사, 그리고 많은 직원을 채용한 목사라는 세가지 고원으로 비교될 수 있다.
리더십의 고원
고원 1. 기업에서의 리더십의 첫째 고원은 소유자이며 동시에 경영자인 사람이다. 이러한 기업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기업을 세우고 모든 일을 수행한다. 그들은 기업을 소유하고 기업을 경영한다. 그들은 제품을 만들며 모든 회사 기능들을 수행하고 바닥청소를 하고 그릇을 씻는 등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지 해낸다. 소유자겸 경영자는 일반적으로 대단히 불리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는 기업가이다. 교회에서의 이 첫째 고원은 교회의 개척자들이다. 교회 개척자들은 새 교회를 창립하고 작은 회중을 맡는다. 그들은 재정을 관리하고 설교를 준비하며 젊은 층을 이끌고 주일학교를 지도한다. 소유자겸 경영자와 같이 교회 창설자는 해야 될 모든 일들을 수행한다. 과다한 짐들을 맡은 배우자를 제외하면 일을 맡을 다른 사람은 없다.
고원 2. 이 고원에서 기업가와 목사는 그들 스스로 이 모든 일을 더이상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시간은 낭비되고 있다. 그들은 하루가 28시간이기를 바란다. 과로로 탈진된 그들은 그들의 기업이나 목회가 번영하려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업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야한다.
여기에서 기업인들은 종종 중요한 실수를 처지른다. 완전히 고원 2로 나아가기 보다는 어느 정도만 위임하고 그들 자신이 소유자가 된다. 그들은 나머지 필요한 도움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좋은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위임하는 업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력자는 단지 도울 뿐이다. 소유자가 여전히 트럭을 운전한다. 조력자는 그에게 필요한 도구를 가져다 주기 위해 그를 따른다. 사무처리는 여전히 그 소유자가 한다. 조력자는 서기가 하는 기능만으로 그를 보좌할 분이다. 소유자는 단지 여유분의 인력을 가진 것 뿐이다. 아마 소유자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조력자에게 맡겼을 것이다. 주된 책임은 소유자가 지는 것이지 고용된 조력자가 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기업가가 1명을 고용했든지 10명을 고용했든지간에 소유자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기업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 성공은 여전히 그들의 기능주위를 맴돌고 있다. 여기에서 기업가는 조력자를 고용했을 뿐이지 그의 리더쉽 역량이 증대된 것은 아니다.
목사들도 종종 이와 같은 실수를 한다. 그들은 사소한 일들을 맡기기 위해 조력자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은 2명이 일함에도 불구하고 한명이 감당하던 일의 2배를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목사들은 필수적인 제2고원의 교훈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 성장의 잠재력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많은 직원을 두는 것은 시기 상조이다.
기업가는 소유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경영자는 그들과 함께 일할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데도 그들을 위해 일할 사람을 고용한다.
이와같이 목사는 자신의 직무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함"(엡 4:12)을 인정하는 "에베소서 4장"의 목사가 되어야 한다. 기업가는 유일하게 고용할 직원을 선택을 할수 있을 뿐이지만 에베소서 4장의 목사들은 이용가능한 평신도들을 활용할 수 있다. 목사들은 평신도들이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그들을 훈련시킨다. 목사들이 효과적으로 평신도들을 훈련시키면서 목사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인력을 자기 교회가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교인들이 사역을 감당하게 될 때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게 된다(13절). 에베소 4장의 목사들은 오직 그들 스스로 훈련시키는 일을 유지할수 없을 정도로 교회가 커졌을 때에 직원을 고용한다. 목사들이 교회개척자인 단계에서 많은 직원을 두게 되는 단계로 직접 넘어가게 될때는 성경적인 인력을 개발시켜야 하는 필수적인 단계를 놓치게 된다. 그들은 봉사의 일을 할 지도권을 개발시켰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에베소서 4장을 빠뜨렸던 것이다.
넓이와 깊이
에베소서 4장 11∼12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2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첫번째 해석은 사도와 선지자, 목사와 교사를 다음의 3가지의 일을 하도록 교회에 주셨다는 것이다. 즉 1) 성도를 온전케 하며 2)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와"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사이에 쉼표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목사는 모든 일을 하는 교회 개척자로서 그들의 사역을 시작한다. 그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 결국 그들은 교회가 성장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논리상 필연적으로 해야 할 일 즉 직원을 고용한다. 직원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돕는다. 사역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깊이가 심화된 것은 아니다.
두번째 해석은 성도가 봉사의 일을 온전히 하도록 하기 위하여 목사를 주신 것이다. (첫번째 해석과는 달리 1과 2사이에 쉼표가 없음. 원본에는 쉼표가 없었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쉼표가 없었음에 동의한다) 목사들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봉사의 일을 하도록 이들을 온전케 하며 세운다. 이 해석에 의하면 목사의 일은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봉사의 일을 할 직원을 이끄는 것도 아니다. 바로 목사의 일은 평신도들이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필요한 일들을 하도록 그들을 온전케 하며 준비시키며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의 목사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맡겨지고 그들이 돌보아야 할 사람들의 은사와 재능과 능력을 관리할 청지기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교회에서 봉사의 일을 하도록하는 분명한 의도로 이러한 은사들을 주셨으므로 에베소서 4장의 목사들은 그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은사들을 개발시키는 일과 이 은사들이 활용될 수 있는 봉사의 영역들을 제공하도록 힘써야 한다.
목사 혼자 봉사의 모든 일을 감당하는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성장은 목사의 기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목사의 기능 주위에서만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의 목사가 있는 교회는 무한히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에베소서 4장의 목사들은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도록 그들로부터 도움을 이끌어내며 그들을 무장시킨다. 결국에 가서는 목사들 스스로 모든 평신도들을 봉사하도록 훈련시키고 관리할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다음 고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두적인 일꾼들
고원 3. 기업인들의 다음 단계는 지배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지배인과 경영자는 그들이 사람들을 관리한다는 면에서 비슷한 직무를 갖는다. 이들은 연구하고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한다. 이들은 이들 아래에 있는 관리자들을 관리함으로써 이들의 조직을 관리하고 관리자들은 인력을 관리한다. 주된 차이점은 경영자는 그가 위임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영자는 피고용인에게 "이것, 저것을 하십시요. 당신이 이 일을 마쳤을 때 내가 확인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일은 피고용인이 하지만 경영자는 여전히 그 일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또한 잘 성취되었는지 돌아볼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배인은 관리자에게 "관리자, 당신이 이 일을 하십시요. 당신은 이 분야에 대하여 책임이 있읍니다"라고 말한다. 즉 지배인은 업무와 책임을 위임한다.
교회 지도자에게 있어서 이런 단계는 많은 직원을 둔 목사이다. 많은 직원을 둔 목사는 그의 직원에게 책임을 위임한다. 그러면 그 직원은 인력-회중-을 이끌어 나간다. 목사가 직원에게 "이것은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목사는 차례대로 그 직원이 평신도들을 훈련시키고 그 업무를 평신도에게 위임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많은 직원을 두게되는 단계의 목사들은 리더십의 고원을 효과적으로 통과하여왔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그들의 평신도들을 훈련시키고 위임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 되면 이들 목사들이 고용한 직원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 성도를 무장시키는"목사들의 모범을 따를 수 있게 된다.
목사들이 이 수준의 리더십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이들이 있는 교회들은 그 넓이와 깊이에 있어서 성장하는 것을 보장받게 된다. 이들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독특한 영적 은사들을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이를 발전시키게 되고 봉사에 있어서 이 은사들을 사용함으로 성취감도 느끼게 된다. 또한 이들 목사들과 직원들은 그들 자신들이 모든 일을 시도하는데서 초래하는 열광적인 활동들과 힘의 소모를 피할수 있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교회가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엡 4:15-16) 자라게 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래리 길버트/버지니아주의 린치버그에 있는 교회성장협회(CGI : Church Growth Institute)의 이사이다. 이 글은 CGI이 발간된 "팀 사역 : 영적은사와 평신도 사역에 대한 안내"라는 그의 책에서 발췌, 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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