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리더십자료

리더를 키워라

늘찬양 2006. 11. 15. 09:45

리더를 키워라
 
박성남  - 
 
  
지금까지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냈는가 생각해 보니 어떻게 가르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청년대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중요한 부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소홀히 됐던 것을 느낄 수 있다. 대학생 사역이 8년, 청년사역이 올해로9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그 17년의 사역경험이 개교회 대학부 지도에 있어서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Ⅰ . 리더는 누구인가
리더는 굉장히 중요하다.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눠보면 첫째, 멀리서 청년 대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운 데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리더의 역할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가까운 모범이 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늘 하는 얘기가, 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시간을 내어달라고 하기가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심각하거나 못 견딜 정도의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기 전에는 여간해선 지도자와 얘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언제든지 오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지도자의 입장에서 하는 얘기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문제까지 도와줄 수 있는, 본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둘째는, 역시 리더는 위임자이기 때문에, 사역자가 모든 것을 잡고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리더들을 통해서 사역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고 상당 부분을 이양할 때 동기부여가 되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지도자는 권위가 있어야 된다. 필자가 지금 비지니스 현장에 있기 때문에 ‘항상 실감나는 말로 장사라는 표현을 쓰는데, 장사를 하려면 우선 먹혀 들어가야만 되는 것이다. 속된 표현이 되겠지만 사역에 있어서 장사가 잘 되려면 권위가 배경이 되어야 한다. 권위가 없게 되면 본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한두 마디 할 때보다 지도자의 한두 마디가 먹혀 들어가고 가슴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도자뿐만 아니라 리더에게 있어서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권위는 역시 모범이 될 때에 거기서부터 위임자로서의 권위가 생기게 된다.
청년 대학부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는 청년 대학부의 리더들의 모습이 어떤가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리더의 모습과 어떤 면을 중요시하는가에 따라서 청년 대학부의 방향이 결정되고, 모범적인 사람이 세워질수록 위임자로서의 권위가 주어지게 된다. 정말 리더가 잘 키워지고 있는가 하는 부분들은 사역자가 잠시 자리를 비워보면 알 수 있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동안, 대학부가 혼란해지고 더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면 리더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히려 자릴 비웠더니 리더들이 더 분발하고 맡겨진 역할에 대해 의욕을 가진다면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셋째로, 리더는 더이상 배울 것이 없고 자기의 배운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부족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리더는 새로운 형태의 배움의 장이다. 전에는 그저 자기혼자서 아무런 책임없이 배웠다고 한다면 이제 리더라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과 함께 알고 있는 것들을 전달하면서, 또한 그 관계 속에서도 책임의식과 함께 철저하게 배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만 정확히 한다면 더 실감나는 배움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자기 혼자 개인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 배울 때에는 동기부여에서도 적극적이지 못하지만 오히려 리더로서 기회가 주어지고 배움이 시작되었을 때에 자기 동기를 발견하고 성경말씀에 더 애착을 가지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필자 자신도 리더라는 역할 가운데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내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들을 때 양심상 가책이 되는 게 많았다.

이처럼 리더의 역할이라는 것은 그저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고 또 그 내용을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고 자책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라는 새로운 형태의 배움의 장을 잘 활용하면 그 사람의 개인 삶에 있어서 굉장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청년부 회장을 맡은이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얘기는 지금 청년부에서 회장을 감당하는 일을 절대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석사과정을 마칠 때 있어서의 정성에 비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임하는가?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기량을 발휘하면서 헌신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아니한 특권이다. 제대로 발휘하게 되면 일생에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개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절대 가볍게 생각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살려 보도록 하라" 최대한능력을 발휘하고 은사를 발휘하게 하는 도전을 주고 필요한 마음의 자세를 나누는 것으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자극이 될 수 있게 이끌어 간다면 진정 살아 있는 교회이다. 더욱 그것이 신앙적인 뿌리를 깊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면 살아 있는 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다.

II .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일반 성도들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기본기가 약하다는 것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신앙에 있어서도 기본기인 것 같다. 언제나 모든 삶에 뿌리가 되는 것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재확인되고, 체험과 경험 속에서 다시 한번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그것을 전달해 주는 도전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리더들의 모습이 청년 대학부의 모습이 되고 방향성이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서부터 찾아야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를 문제삼자는 게 아니라, 청년 대학부의 현장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들에게 강조되어지고 있는 그러한 삶을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있는가 점검해야 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고린도후서 5장 15∼19절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어떻게 봐야 될 것인가? 우리의 사명, 본분은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될 것인가라는 세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청년 대학생들에게 더더욱 이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젊었을 때에 기본기가 확실하게 세워지면 나머지 생애에 있어서 훨씬 더 하나님께 유용하게 쓰여지기 때문이다.
첫번째,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이 정의를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사람이다. 덕분에 계속 죄를 지어도 예수님이 도맡아 치르셔서 우리는 구원받았다"라고만 얘기한다면 절반만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감격을 기본으로 해서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결심하는 사람이다. 받은 은혜가 은혜답게 되기 위해선 결심을 해야 하는데,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늘 결단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또 달리 표현한다면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해 살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염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받은 은혜대로 산다는 것은 헌신적으로 살수밖에 없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는 구분될지언정 더 헌신된 그리스도인, 보통 그리스도인, 혼돈스런 그리스도인 등으로 나눠지는 것은 말 자체가 상당한 모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체질개선을 해야 될 것인가? 상당수의 고민이, 주님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자신들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다. 상담을 해주는 데 있어서도 그 고민을 해결해주는 쪽으로 나가지 말고 정말 해볼 만한 고민이라면 더 고민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짐을 더 많이 부가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젓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더 철저하게 재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청년 대학생 리더라 할지라도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 고민하는 것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는데 더 근본적인 부분을 놓고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 주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이 부분은 그의 계획과 성장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서로를 어떻게 봐야 될 것인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기 이전에 또다른 그리스도인에게 먼저 적용하면서 그런 다음에 16절로 묵상하면 좋다. 이것이 바른 순서라 생각된다. 전에는 사람들을 볼 때에 육체대로 이해했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서로를 봐야 한다. 즉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공동체에 걸맞는 인간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인관에 있어서 리더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냐는 것이 공동체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또다른 그리스도인을 향해 새로운 시각으로 소중한 면을 발견해야 되고, 서로의 귀한 면을 격려해 줘야 한다. 소위 엘리트에 해당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특별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교회 공동체는 바깥 세상 공동체와 다르다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쳐 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맺어진 관계이지 바깥에서 알아주는 여러 가지 조건으로 교회에서도 어떤 기대를 하거나 대접을 받고자 하는 심리는 철저하게 재정립시켜 주어야만 한다. 리더를 세울 때에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확하게 채워진 사람을 세워야 한다. 더이상 육체대로서로를 아는 것은 그만둬야 한다. 이전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주님의 형상대로 닳아나가는 많은 진보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소중히 여기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대학생들을 지도할 때 영적인 엘리트로 키워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오만심이 들게 되어, 일단 청년부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을 자꾸 키워내게 되면 결국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이랜드에서도 제일 골치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비신자가 아니라 오히려 크리스챤 회사이기 때문에 들어와서 더 멋진 사명감을 감당키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닌, 이런 회사를 보호막으로 생각하는 크리스찬들이다. 자기가 어딜 가든지 그에게 맞는 자기 기호를 따라 사는 식의 체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회 내에서도 또다른 기득권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우리 교회의 경우 어렵게 어렵게 경쟁을 뚫고 제자훈련반, 사역반 등에서 교육받으면서도, 많은 수는 아니지만 다이아반지 얘기하고 아파트 평수 얘기하고 새로 산 오디오를 운운하는 정신없는 사람들이 더러 있음을 본다. 청년 대학생들도 그렇게 키워내기가 쉽다.

세번째,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라는 부분에서는 화목을 생각하고 싶다. 근본적으로 죄인인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목이 첫번째이지만 그것만 강조해서는 절대 안된다. 어디에서든지 화목을 도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신앙교육을 잘못 하다보면 화목을 이루기는커녕 문제를 가장 날카롭게 파헤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키워낼 우려가 있다.

III. 젊은 날의 소명으로 도전하라
왜 우리를 젊었을 때 불렀을까? 필자는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별 자랑거리가 못되었다. 왜냐하면 아주 특별한 변신이 없고 신통한 얘기거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자라고 사춘기와 청년시절을 신앙 안에서 보냈다는 것이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있어서도 굉장히 좋은 준비가 되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우리는 젊었을 때 불렀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하나님께서 10대에 그리스도인 된 사람, 20대,30대 아니면 70대에 가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로마서 12장 1절의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이 말씀으로 묵상을 해볼 때 제사는 희생제물로서 ,죽어야 드릴 수 있는데 산 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만 가치가 있는 일이며, 우리가 사는 동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 살 날이 훨씬 많다. 이것은 청년 대학생들의 장래와 관계되는 부분이다. 50대, 60대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20대에 부름받은 사람과 똑같이 생각해선 안된다. 더 일찍 부를수록 요구하시는 것은 크다.

요즘 청년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장래문제이다. 그들을 지도할 때 어떤 리더로 키워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부분을 그들의 장래와 연결시켜, 일생이 걸린 감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에 많은 어른들을 보면 일생동안 자신의 문제하나만 가지고 고민하다가 결론도 맺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일생의 감동이 걸린 목표를 가지고 청년 대학생들을 믿음으로, 말씀으로 가르칠 때 앞으로20년 후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사람들을 일찍 불렀다고 생각한다.

IV.그리스도인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떠해야 하는가
다음으로, 세상과 그리스도인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성경에 세상이란 말은 세가지용어로 쓰여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세력들 총체적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과 자연세계를 통틀어서 말하며, 또 다르게는 중립적인 의미에서 악도 선도 아닌 의미로 쓰여지는 것 같다.그래서 헌신의 방향을 얘기할 때는 자꾸만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식의, 세상과 분리하는 쪽으로 나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 안에서의 인물, 교회 안에서의 역할 정도로 그치는 사람으로 만들게 될 위험성이 있다.
리더를 키울 때 어떤 방향 아래서 가르쳐야 할 것이냐? 하나님이 아직도 세상을 심판하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 가운데서 이루셔야 할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를 키울 때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영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물질 세계 가운데서도 이루셔야 할 관심사가 있으므로 그것을 내 관심사로 받아들여 당당하게 하나님의 일에 드려질 수 있는 안목을 가진 리더로 키워야 한다. 근본적으로 교회가 이땅에 왜 존재하는가? 그것은 세상을 위해서다. 교회의 존재는 결국 교회다운 모습을 통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제대로 키워지는 리더들이 세상에 기여하고 큰 포부를 가슴에 안고 살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은 많이 읽는데 신문 하나도 제대로 보지 않는 리더들을 키워선 안된다.
사회의 심각한 면들을 보면서 그것이 주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제목에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러 부분에 있어서 뒤떨어진 것 중의 하나가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이다. 청년 대학생들에게 그걸 가르쳐야 한다. 올바른 신앙의 가르침이 없이는 환경적으로도 바로 살기 힘들게 된다. 청년 대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해서 교회에 소망을주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나라에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무룻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요즘 청년들에게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환경적으로 핍박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별로 없다. 지금 시대가 그렇다. 그러나 정말 경건하게 믿음대로 살려면 값 지불 없이는 살기 힘든 세대라는 말도 맞는 것 같다. 주어지는 핍박은 없어도 내가 스스로 택하는 고난은 분명히 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려고 한다면, 기여하려고 한다면, 값 지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그걸 청년 대학부 때부터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교회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따른다. 감격과 남 모르는 기쁨 때문인데 어느샌가 주변에서 챙겨주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권위가 서겠는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좀 불편하게 사는 것을 가르치자. 청년들에게도 또한 사역자 자신에게도 그것이 필요하다. 형편이 되어도 예수님 때문에 방 한칸에서 출발하고 전세방에서 사는 걸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 가운데서 뭔가 기여할 수 있는 괜찮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리더를 키울 때 절대 기준을 낮추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 그렇게 되어선 안될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많이 .들어오는 그런 청년 대학부일수록 리더 세우는 것이 대단히 급하다. 그러다 보면, 일단세우고 나서 생각하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뭔가 잘 되어가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구멍이 많이 생긴다. 리더는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 자격없는 사람은 절대 세워서는 안된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때 교인들 수가 어림잡아 1만여 명이 되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사도들과 일곱 집사만이 공식적으로세워진 사람들이다. 1만명이 넘는 교회를 12사도와 일곱 집사 정도가 이끌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집사 한 사람 세울 때, 사도의 할 일을 누구한테 인계해 줄 때, 얼마나 기준을 엄격히 해서 점검하는가. 그렇게 해서 세워진 사람들이기에 권위가 있었다.

오늘날 교회가 결국 무엇에 많이 실패하고 있는가? 리더를 세우는데 실패하고 있다. 기준을 낮춰서는 안된다. 사실,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리더를 세우는 데 좋은 환경이 못된다. 적은 숫자라 할지 라도 거기서부터 차근차근히 가르치면 확실한 리더를 세울 수 있다. 숫자 세기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철저하게 앞으로 3년 뒤를 내다보고 가르치면 그 대학부는 살아난다. 그런데 심지가 없기 때문에 조금 하다가 딴 생각이 들고 무너지기 쉽다. “거만한 사람을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지혜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는 잠언서 9장 8∼9절 말씀이 리더를 세우는 데 굉장히 도전적인 말씀이 된다. 교회에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젊은이들을 키우려 하다보면 관심이 문제아들에게 더 많이 치우치게 될 수가 있다. 그들 뒤치닥거리하다가 진정 키워야 될 사람을 키우지 못하게 된다. 전체적인 양육도 중요하지만 절대 양보해선 안되는 것이 리더를 올바로 키우는 것이다.

잘 배우는 자들에게 더 예리한 가르침과 더 많은 책망을 해야 된다. 잘 하고 있다고 관망만 하지말고 기준을 달리 가져야 한다. 우리가 어떤 값을 치르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인데, 헌신된 리더들 사이에 있어서 서로 격려가 되고 서로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그룹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교회가 자칫 잘못하다 보면 관심사가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처져있는 그룹들을 안으로 집어넣는 데 두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역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되므로 철저하게 리더를 중심해서 지도해야 될 것이다.
청년 대학부를 지도하는 것은 특권이다. 왜냐하면 이들을 지도하려면 사역자 자신이 날로 새롭게 변화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청년 대학생들은 진부한 것을 제일 먼저 느낀다.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