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2장 12절)
이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된 곳이나, 도시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역사적인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더 시대부터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하자 그의 막료인 리시마쿠스(Lysimachus)는 버가모가 천연적 요새에 위치하고 있음을 깨닫고 산의 정상에 성을 쌓고 아크로폴리스를 형성 하였다.
리시마쿠스가 죽자 버가모 왕국이 탄생하였고, 이후 버가모는 로마 시대를 거쳐 비잔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문화와 의학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이곳의 부의 근원는 농업과 은광, 가축, 양털 직조 그리고 글씨 쓰는 양피지 였다.
양피지는 이곳에서 처음 제조 되었으며, 특히 유메네스 2세(B.C. 197~159)에 의하여 창설된 도서관에는 약 20 만권의 책들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신전 건물은 기독교가 국교로 채택된 후 버가모 교회로 사용되었다. (사진)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BC 133년 로마의 속주 아시아의 수도가 된 버가모는 천혜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황제신의 숭배를 거절한 기독교인들에게 대표적인 박해의 장소가 되었던 것을 배경으로 말씀한 것으로,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초대 감독으로 추측 된다. 그러나 속주 아시아의 수도는 후에 세력이 커진 에베소로 옮겨지게 된다.
아스클레피움
주전 4세기에 세워진 병원으로서 그 후 AD 400년대 까지 약 800년간 소아시아에서 의료의 중심지 역활을 하였다. 세계 최초로 정신요법을 중심으로 한 치료 방법을 써서 일광욕, 운동요법, 맨발걷기 요법, 음악요법 등으로 치료 하였다.
지진으로 대파 되었으나 아직도 그 잔해는 그대로 남아 있다.
환자는 이 긴 길을 걸으면서 나는 나을 수 있다는 암시를 받는 고도의 정신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아크로폴리스
SERAPIS를 위한 신전이 남아 있으며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RED HALL에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교회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신전 밑에는 SELINUS 강이 흐르도록 설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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