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8(화) "열왕기하 8:25~29"/ 작성: 김효진
아합이 북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그 오명을 남길 수 있었던 이면에는 그의 아내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아합은 포학하고 욕심이 많았으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약한 구석도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엘리야의 쓴 소리에 나름대로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잔혹하기가 이를 데 없는 여인이었고 아합보다 더 차가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으로 인해 북 이스라엘의 배교는 극에 달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에 아합과 이세벨이 있었다고 하면 남 유다에는 여호람과 아달랴가 있었습니다. 어제 함께 나눈 대로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고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에 의해 남 유다의 왕비가 된 여인이었습니다. 아달랴는 어머니 이세벨의 종교뿐만 아니라 그 잔혹한 성품까지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달랴에 못지않게 여호람 역시 잔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역대하의 기록에는 여호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대하 21:2~4)
여호사밧의 장자였던 여호람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6명이나 되는 자신의 동생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 흔히 있었던 왕위찬탈의 비극을 막기 위해 여호사밧은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한편 여호람의 동생들에게 재물과 성읍을 후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호람은 자신의 동생들을 자신의 정적으로 간주,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호람이 자신의 동생들을 모조리 죽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 아달랴 또한 피의 참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합의 가문을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일으키셨고 예후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이세벨을 차례로 죽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람과 함께 있었던 아하시야 역시 예후의 손에 죽었습니다.
아하시야의 죽음을 전해들은 아달랴는 왕의 씨를 모두 진멸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의 자손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주들이었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두었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왕하 11:1)
여기서 ‘일어났다’는 말은 군사를 일으킬 때 쓰는 말입니다. 아들이 예후의 손에 죽었기에 그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예후를 치고자 했다면 아달랴의 행동은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군사를 일으켜 아들의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아달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2세라 예루살렘에서 1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26절)
이 구절은 열왕기 기자가 왕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문구입니다. 즉 ‘누가 몇 세에 왕위에 올라 어디에서 몇 년 간 통치했다’고 하는 내용으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특이하게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므리의 손녀라는 사실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오므리는 오므리 왕조를 일군 사람으로 아합의 아버지였고 군주로서의 능력은 탁월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던 왕이었습니다.
열왕기 기자가 아하시야를 소개하면서 그의 어머니 아달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달랴가 아하시야의 뒤에서 권력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그 다음 구절이 잘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27절)
여기서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다는 표현은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아합의 사위는 아하시야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여호람이었을 뿐 아니라, ‘사위’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탄’은 ‘사위’, ‘신랑’의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열왕기 기자는 아하시야가 그의 어머니 아달랴로 인해 아합 가문의 사람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아합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28절)
본문에서 아하시야는 북 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연합하여 아람 왕 하사엘과 함께 싸웠습니다. 혼인관계로 맺어진 동맹이기에 양국의 연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놓고 역대기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대하 22:5)
아하시야가 북 이스라엘을 도운 것은 단순한 동맹관계 때문이 아니라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남 유다를 통치하는 왕이기에 앞서 아합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 구절은 이 사실을 더욱 명백히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29절)
아람과의 전쟁에서 요람 왕이 부상을 당하자 아하시야는 직접 이스르엘로 내려가 요람을 문병했습니다. 아하시야는 한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왕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왕이 병중에 있으면 위문사절을 보내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직접 요람 왕을 찾아갔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왕으로서 지켜야 하는 위치를 망각해버린 것입니다.
아하시야의 행동에서 우리는 아하시야의 배후에 있는 아달랴의 전횡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아달랴는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남편 여호람을 부추겨 남 유다를 우상숭배의 길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여호람이 죽자 이제는 아들 아하시야 뒤에서 모든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남편이 병들어 죽고 아들 아하시야마저 예후의 손에 죽자 이미 권력에 눈이 멀어 있던 아달랴는 군사를 일으켜 예후를 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자들을 비롯한 왕의 씨를 모두 진멸하고 스스로왕위에 올랐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하시야 왕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하시야는 그의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철저하게 아합 가문의 사람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지켜야 하는 위치를 망각하고 어머니의 손아귀에 놀아났습니다.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왕으로서 자신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 자리를 분별하지 못했던 철부지요, 어리석은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리석음은 자신의 어머니로 하여금 전횡을 휘두르게 했고 그로 인해 유다는 왕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폭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하시야의 어리석음은 그의 아들들까지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통치되어야 하는 나라가 이제는 이방 여인의 손아귀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인의 나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왕 아하시야 때문이었음을 오늘 본문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부여받은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위해 올바른 분별력을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위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경쟁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을 짓밟고서라도 살아남기 위한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기기 위한 지혜를 구할 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나는 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오늘을 사는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어리석은 아하시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왕의 위치를 망각하고 자신이 있을 필요가 없는 자리에 있다가 허망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한 여인의 손아귀에 놀아나 하나님을 배반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저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 저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주님, 저희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저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의 자리가 어디인지 분별하게 하시고 그 위치에서 충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이웃을 잘 섬기기 위한 지혜를 저희에게 부어주셔서 겸손히 그러나 지혜롭고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북 이스라엘에 아합과 이세벨이 있었다고 하면 남 유다에는 여호람과 아달랴가 있었습니다. 어제 함께 나눈 대로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고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에 의해 남 유다의 왕비가 된 여인이었습니다. 아달랴는 어머니 이세벨의 종교뿐만 아니라 그 잔혹한 성품까지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달랴에 못지않게 여호람 역시 잔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역대하의 기록에는 여호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대하 21:2~4)
여호사밧의 장자였던 여호람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6명이나 되는 자신의 동생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 흔히 있었던 왕위찬탈의 비극을 막기 위해 여호사밧은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한편 여호람의 동생들에게 재물과 성읍을 후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호람은 자신의 동생들을 자신의 정적으로 간주,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호람이 자신의 동생들을 모조리 죽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 아달랴 또한 피의 참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합의 가문을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일으키셨고 예후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이세벨을 차례로 죽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람과 함께 있었던 아하시야 역시 예후의 손에 죽었습니다.
아하시야의 죽음을 전해들은 아달랴는 왕의 씨를 모두 진멸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의 자손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주들이었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두었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왕하 11:1)
여기서 ‘일어났다’는 말은 군사를 일으킬 때 쓰는 말입니다. 아들이 예후의 손에 죽었기에 그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예후를 치고자 했다면 아달랴의 행동은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군사를 일으켜 아들의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아달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2세라 예루살렘에서 1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26절)
이 구절은 열왕기 기자가 왕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문구입니다. 즉 ‘누가 몇 세에 왕위에 올라 어디에서 몇 년 간 통치했다’고 하는 내용으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특이하게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므리의 손녀라는 사실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오므리는 오므리 왕조를 일군 사람으로 아합의 아버지였고 군주로서의 능력은 탁월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던 왕이었습니다.
열왕기 기자가 아하시야를 소개하면서 그의 어머니 아달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달랴가 아하시야의 뒤에서 권력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그 다음 구절이 잘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27절)
여기서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다는 표현은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아합의 사위는 아하시야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여호람이었을 뿐 아니라, ‘사위’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탄’은 ‘사위’, ‘신랑’의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열왕기 기자는 아하시야가 그의 어머니 아달랴로 인해 아합 가문의 사람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아합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28절)
본문에서 아하시야는 북 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연합하여 아람 왕 하사엘과 함께 싸웠습니다. 혼인관계로 맺어진 동맹이기에 양국의 연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놓고 역대기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대하 22:5)
아하시야가 북 이스라엘을 도운 것은 단순한 동맹관계 때문이 아니라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남 유다를 통치하는 왕이기에 앞서 아합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 구절은 이 사실을 더욱 명백히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29절)
아람과의 전쟁에서 요람 왕이 부상을 당하자 아하시야는 직접 이스르엘로 내려가 요람을 문병했습니다. 아하시야는 한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왕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왕이 병중에 있으면 위문사절을 보내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직접 요람 왕을 찾아갔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왕으로서 지켜야 하는 위치를 망각해버린 것입니다.
아하시야의 행동에서 우리는 아하시야의 배후에 있는 아달랴의 전횡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아달랴는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남편 여호람을 부추겨 남 유다를 우상숭배의 길로 몰아넣었을 뿐 아니라 여호람이 죽자 이제는 아들 아하시야 뒤에서 모든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남편이 병들어 죽고 아들 아하시야마저 예후의 손에 죽자 이미 권력에 눈이 멀어 있던 아달랴는 군사를 일으켜 예후를 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자들을 비롯한 왕의 씨를 모두 진멸하고 스스로왕위에 올랐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하시야 왕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하시야는 그의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철저하게 아합 가문의 사람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지켜야 하는 위치를 망각하고 어머니의 손아귀에 놀아났습니다.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왕으로서 자신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 자리를 분별하지 못했던 철부지요, 어리석은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리석음은 자신의 어머니로 하여금 전횡을 휘두르게 했고 그로 인해 유다는 왕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폭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하시야의 어리석음은 그의 아들들까지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통치되어야 하는 나라가 이제는 이방 여인의 손아귀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인의 나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왕 아하시야 때문이었음을 오늘 본문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부여받은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위해 올바른 분별력을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위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경쟁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을 짓밟고서라도 살아남기 위한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기기 위한 지혜를 구할 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나는 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오늘을 사는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어리석은 아하시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왕의 위치를 망각하고 자신이 있을 필요가 없는 자리에 있다가 허망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한 여인의 손아귀에 놀아나 하나님을 배반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저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 저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주님, 저희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저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의 자리가 어디인지 분별하게 하시고 그 위치에서 충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이웃을 잘 섬기기 위한 지혜를 저희에게 부어주셔서 겸손히 그러나 지혜롭고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출처 : 마머세평
글쓴이 : 마머세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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