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인물강해

[스크랩] 신실한 주의 종 예레미야, (렘20:7-13절),

늘찬양 2008. 3. 30. 20:03
신실한 주의 종 예레미야
렘 20:7-13절, 169.204.493장.&

"예레미야" 하면 우리는 곧 "고독과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떠올립니다. 실제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정을 통하여 누리는 인간적인 행복도 누려보지 못했고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선언하고 회개를 요청하는 등 타협을 거부하는 강직한 예언만을 선포하여,

백성들한테 비난과 박해를 받는 고독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레미야 선지자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함께 그의 사명에 대한 열정에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본문에서도 그는 너무나 열정적이고 담대한 언어로 하나님 앞에 구령의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이르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할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는 고초와 고독들보다도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는 것을 가슴에

사무치도록 답답하여 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약의 예언자 중에서 이사야를 신학적인 사상을 가진 가장 위대한 예언자라고 한다면, 예레미야는 신앙적 체험자로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여호와를 전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가 그 당하는 핍박이나 괴로 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 하면 그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이 뜨거웠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마음 속에 하나님의 강권(强勸)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됨은 어디까지나 타력(他力), 하나님의 힘에 의한 것이고, 자아 의지에 의한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전도한 책임을 강조하면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6)라고 하였고, 또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는 심중에 불붙는 것 같이 사명감이 뜨거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사명감에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사명감이 확실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는 진정으 로 조국을 사랑하고 그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이 바벨론에서 멸망했다고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결과를 보고 운 것이 아니라 원인을 보고 울었습니다.

유대 백성의 영혼이 썩고 부패함을 보고 울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조국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습니다. 슬플 때 우로 기쁠 때웁니다. 자기를 위해서 울고, 자기 가족을 위해서 울고, 사회를 위해 울고, 조국을 위해 인류를 위해 웁니다.

느1:4절에 보면 느헤미야도 조국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의 소식과 예루살렘 거하는 동포의 환난의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지시기 며칠 전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멸망 받을 예루살렘아!" 하시면서 울었습니다. 또한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위해 우리는 여인들을 보시고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올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고독했습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도 듣는 자가 없었고,

오히려 모두 그를 비방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다른 예언자들은 자국의 구원을 위하여 바벨론과 싸우도록 권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유독 렘38:2절에 보면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권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결국 이 말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고 망국 후에 축출되고 또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예레미야의 심정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의 부패를 보았습니다. 완악한 마음과 죄를 보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 쓰심으로 이스라엘을 책벌하시려는 뜻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렘38:2절에 있는 대로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는 것보다는 바벨론에 항복해서 살라"고 했습니다. 모두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예레미야는 불타는 사명의 열심히 있었습니다. 9절에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이것은 예레미야가 육체적인 괴로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포기하려 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선지자의 인간적인 생각은 수치와 조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전파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것이 마음을 눌러 다시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2)수모를 당할 것도 감안했습니다.

11절에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며 나와 함께 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요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를 해하는 자들이 사방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어서 선지자를 지켜 주실 것이며,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예레미야는 확신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시험을 이기게 할 것도 확신했습니다. 12절에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을 감찰하시며 의인을 시험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의인을 수령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시험을 당해 보셨기 때문에 시험 당하는 성도들이 그 시험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그것을 믿기 때문에 말씀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3.예레미야의 갈등과 조롱받은 원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치 못하였 으므로 인하여 이러한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직접이나 간접으로 사회에서 이유 없이 비난이나 조소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로 인해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는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담대한 신앙으로 그 시험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저가 시험이라고 하면 유대의 멸망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북방으로부터 외적의 침략이 있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백성들에게 조롱을 받고 시험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거나 환난이나 핍박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를 위해 친히 고난 당하셨으며 또 우리로 고난을 이기게 하시는 주님을 기억하여 힘을 내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치 못함으로 인하여 이러한 고난을 겪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장이나 사회에서 이유 없이 비난이나 조소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로 인해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는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담대한 신앙으로 시험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하나님께 붙잡힌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 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육체적인 괴로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포기하려 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1)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합니다.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고로" 이 말은 선지자를 해하려는 자들과 조롱하는 자들이 사방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셔서 자신을 지켜 주시리라고 확신하는 내용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나아가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삼상17:45절).

오늘 우리의 상황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극한적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굳게 믿으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친히 그 문제를 해결하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 보여 주실 것입니다. 2)악인의 수욕을 확신했습니다.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요"

선지자는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이 큰 수욕을 당할 것을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성도를 넘어뜨리려 하고 핍박하는 자를 하나님은 넘어뜨리십니다.(시119:78절). 하나님이 의인을 평탄케 인도하심을 알았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선하게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현재의 환경을 벗어날 줄 믿었습니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을 감찰하시며 의인을 시험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의인을 시험의 수렁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모든 어려운 역경에서 건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4)구원을 찬양합니다.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의 생명, 즉 핍박받는 자신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다고 외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미 응답된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한 번 드린 기도는 이미 응답된 것으로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막11:24).

또한 우리는 선지자의 기도를 통하여 순종과 찬양으로 참된 성도가 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찬양은 악인의 형편과 처지를 떠나 모든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할 신성한 의무인 것입니다.(시67:3).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스러운 입술이 되도록 합시다.

5.임박하고 비천한 최후를 본 예레미야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에게 섭리된 하나님의 심판은 그 동안 패역하고 타락한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인내하신 것만큼이나 두렵고 큰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예레미야가 오지 병을 깨뜨려 산산조각을 내어 예언하였던 것처럼 (렘 19:1-13). 남유다 백성들에게 이제 남은 것은 철저한 파멸과 죽음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곧 실현될 바벨론의 침공은 예루살렘 성내를 시체들이 줄비한 죽음과 절망의 땅, 살육의 골짜기로 만들고 그로 인하여 살인적인 기근과 질병마저 있게 될 그곳에 과거의 영화 대신 황폐함만이 남아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증거해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이를 내보았던 예레미야는 주체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동족들의 회개를 촉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로 예레미야처럼 우리가 그 누구도 끄지 못할

뜨거운 구렁의 열정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살후1:8-9절에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계21:8절에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듯해도 그들의 결국이 이처럼 비참하고 불행한 것일진대 진정으로 구원받는 성도라면 영원한 죽음과 멸망을 향해 달음질해 가는 저들을 향해 예레미야가 가졌던 것과 같은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에 힘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6.그들의 영혼의 공허와 불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존귀 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하늘의 여신에게 분향하는 등(렘 19:13) 온갖 타락을 일삼던 동족들에게 무엇으로도 에워질 수 없는 영적인 공허와 불안을 보았습니다.

예레미야의 사역 당시의 선민(選民) 이스라엘은 예레미야를 핍박하여 죽이려고까지 하는 강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난 비참하고 가련한 영혼들이었으며, 예레미야는 이러한 그들의 실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것입니다.

이에 그는 헛된 의지를 버리고 참 생명과 진리와 만족이 되시는 살아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그들에게 외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예수를 믿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인격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고상해 보이고, 부와 명예와 온갖 인생의 좋은 것들을,

다 누리는 사람들을 볼 때 부러워하며 열등 의식을 가져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진정 인생의 승리자요 행복자일까요? 신33:29절에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자 누구뇨?"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병들었어도,

하나님을 모시고 구원받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합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게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귀와 명예를 다 가졌다 해도 하나님을 떠난 영혼은 본질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있고 세상의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삶의 깊은 공허와 허무를 씹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57:20절에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그들의 이러한 실체를 보고 구령의 열정을 불태웠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이렇듯 밝은 영안을 가질 때에 범죄한 영혼들을 향한 구령의 열정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7.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확신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죽음의 위협으로 동족들의 배척과 고로 인한 소외감을 당해도 구령의 열정을 지니게 되었던 또 한 가지 주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레미야 중심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확신과 감격이 넘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감격이야말로 뭇영혼들을 하나님께 인도했던 사역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요, 두드러진 모습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며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실현해 나가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 사는 자라야 하나님께 대하여 무관심한 영혼들의 닫혀 있는 마음도 녹이고, 열 수 있을 만큼 확신 있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이러한 확신과 열정으로 인하여 자신이 알고 믿는 그 귀하신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으면 중심에 불이 붙는 것 같고 골수에 사무친다고 하는 놀라운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실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뜨거운 확신과 감격과 열정을 우리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이 지구상에는 공허하고 곤고한 영혼을 가지고 방황하며 멸망 길로 나아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상한 심령으로 부르시며 그들이 하루속히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 주님이 계신데, 어찌 우리가 안일함과 쾌락에만 빠져.

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무심히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아무쪼록 예레미야처럼 믿지 않은 자들의 비참한 운명이 어떠한 것인가를 가슴깊이 새겨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대한 확신과 뜨거운 열정으로 많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전도의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고전9: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도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가 이 말씀 가운데서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 이와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교는 전도하지 않습니다. 선민이란 특권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방 민족에게 전도하여 나눌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회교에는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코란경을 들고" 하는 무력적인 전도에 힘씁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랑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지상 명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자에게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었습니다. 마28:19,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여 온 세계가 복음화 되는데 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복음의 도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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