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悔改)하고 돌아오라.
요엘 2:1-17절, 253.319.360장.&
본 장에는 전장에 이어 계속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황폐와 그 황폐보다 더 무서운
일이 닥칠 것을 설명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재앙 전에 누리던 낙을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아울러 신약시대에 있을 성령 강림 (행2:17-21)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딤후3:15절)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선포를 통해 우리가 받은 구원이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1.심판의 경고입니다.(1-11절) 첫째, 캄캄한 어두움이 임하엿습니다. 2절에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어둡고 캄캄한 이유는 그날이 심판의 날이어서 이미 구원에 대한 소망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구원에 대한 소망이 끊어지기 전 지금 빨리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사55:6).둘째, 날이 새도 빛이 떠오르지 아니하였습니다.
2절에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동이 틀 때 순식간에 산꼭대기에 빛이 퍼지듯 순식간에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이스라엘 백성(百姓)에게 무섭고 신속하게 임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와 같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무섭고도 신속하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식간에 임하게 될 그날을 준비하면서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마24:42-44).
셋째, 땅이 황폐해집니다. 3절에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할 자가 없도다 메뚜기 떼가 시온의 아름다움을 황폐케 하였습니다.
메뚜기의 습격으로 시온 땅에서 자라나던 식물이 불에 타 버리듯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북방왕의 침입(겔38:15, 단11:40)에 관한 사실을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실이 어느 쪽으로 해석되던 지간에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죄악 속에 나날을 보내던 이스라엘이 황폐해진다는 사실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재앙은 순식간에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재앙(災殃)으로 인해 쉽게 사라져 버릴 우리의 소유물(所有物)에 너무 애착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잠23:5). 넷째, 무서운 재앙이 빨리 임할 것을 묘사했습니다. 4절에 그 모양은 말같이 그 달리는 것은 기병(奇兵) 같으며했습니다.
여기 말과 기병은 메뚜기 떼를 상징(象徵)합니다. 메뚜기의 머리는 말의 머리 모습과 비슷하고 메뚜기의 뛰는 모습은 기병의 뛰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메뚜기를 말과 기병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을 휩쓴 메뚜기 떼가 군대와 같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그 당을 정복(征服)하게 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섯째, 적의 내침에 무방비 상태입니다.
6절에 그들의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가 병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초개를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항오를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에졌도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군이 방비가 소홀한 산악 지대로 쳐들어왔던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산악 지대 방비를 소홀히 했던 이유는 험하고 높은 산이니 설마 그곳으로 적군이 쳐들어오겠느냐고 생각하여 안심하다가 큰 불행을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보다 세상이나 자연 조건을 더 믿으면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가 가진 세상적인 조건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는 것을 알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경고입니다.(잠11:28).
여섯째, 성이 순식간에 정복이 됩니다. 7-8절에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같이 성을 더위잡고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되 그 항오를 어기지 아니하며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며 병기를 충돌하고 나아가나 상치 아니하며 이것은 날랜 무사가 순식간(瞬息間)에 성을 정복(征服)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의 재앙은 순식간에 무섭게 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욥34:20). 곱째, 천계까지 이상이 생깁니다. 10절에 그 앞에서 땅이 진동(振動)하며 하늘이 떨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고 했습니다.
재앙(災殃)이 너무나 무섭고도 두렵게 닥쳤기 때문에 그 재앙이 닥쳤던 날은 자연(自然)도 무서워 떨 정도인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도(聖徒)들 앞에는 언제나 재앙이 없어야 하며 여생(餘生)에 평탄한 나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는 곧 주와 동행(同行)하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여덟째, 외침으로 오는 불행을 전하십니다. 11절에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실 때 그들의 적군인 앗수르를 사용하실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이 죄를 짓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그 백성의 적국의 군대라도 사용하셔서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죄를 짓고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원수라도 사용하셔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시5:8).
2.진정한 회개의 자세를 취할 것을 권고합니다.(12-14절) 첫째, 마음을 찢는 회개의 기도를 할 것을 요구합니다. 기독교는 의식의 종교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도덕적 종교도 아닙니다. 수양의 종교도 아닙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고 사느냐 하는 것에 치중하는 종교요 그 다음에 그 표현으로써 율법의 준수와 의식의 준행이 따르는 것입니다. (1)마음을 찢는다는 말은 지적으로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속함을 받고 중생한 후에도 생활 속에서 죄를 범하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실제로 행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일어난 죄를 놓고 고민합니다. 그럴 때 솔직하게 먼저 죄(罪)를 인정(認定)해야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悔改)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眞實)하게 살아야 합니다. 솔직한 죄 고백(告白)이 있을 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기지 않습니다.
요일서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罪)를 자백(自白)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주님은 약속하신 것입니다.
(2)마음으로 죄를 인정하면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아무런 가책이 없는 성도는 돌짝밭과 같고 화인 맞은 마음과 같습니다. 죄를 범하고 회개(悔改)하지 아니하고 주앞에 나오는 성도는 주님이 외면하십니다.
우리를 주일마다 주의 전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자녀로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러 오지만 동시에 고개를 숙일 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주여 내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하는 죄송한 생각을 같이 하여야 합니다.
베드로는 여지없이 실패했을 때 나는 실패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그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속에 들어가서 통곡했습니다. 욜2:28절에 보면 그런 성도 남여종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성령 충만이 어떻게 옵니까? 마음의 옷을 찢고 회개하는 성도에게 성령 충만이 임하는 것입니다. (3)마음의 옷을 찢음은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범죄를 고백하고 감정적으로 죄에 대해서 슬퍼하고 그 다음에 의지적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돌아온 성도였으나 가룟 유다는 돌아오는데 실패했습니다. 참 회개란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애도의 표현으로 옷을 찢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회개할 때 옷을 찢는 것은 하나님께 내 자신을 적나라하게 모두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형식만 갖추고, 신은 자기의 심중의 죄악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찢어서 그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본 자세입니다. 둘째, 구체적인 회개의 기도를 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좀 더 구체성을 띠어서 나의 죄몫을 하나 하나 열거하면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단순히 주여 그는 죄인입니다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식의 추상적인 죄의 고백은 관념에만 그칠 수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얼마나 심각하고 구체적으로 회개를 했던지 어릴 때 엄마 젖을 먹다가 젖꼭지를 깨물어, 마를 아프게 한 것까지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도 그러한 경지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누구를 얼마 만큼 미워했으며 얼마 만큼 교만했으며 얼마 만큼 남을 비방했으며 어떻게 거짓말을 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일일이 고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우리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요일서1:9절에 죄의 구체적인 자복만이 다시는 동일한 죄를 짖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회적 회개의 기도 운동입니다. 15-16절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했습니다. 사회적 회개란 말이 존재하려면 사회적 죄악이란 말이 성립해야 합니다. 죄는 개인만이 짖는 것이 아니라 사회도 죄를 짖는 다는 뜻입니다. 이 사회 죄는 개개인과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한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죄가 사회에 용납되고 또 그러한 성향이 만연되는 것이 바로 사회적인 죄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죄가 사회에 한번 만연되면 그 피해는 아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러한 사회적인 죄가 만연된 곳에서는 어느 한 개인이 바로 서려고 해도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바로 서려면 엄청난 불이익과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니 만큼 사회 개혁을 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사회 개혁을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인 엄청난 물리력이 필요하며 그 물리력이 생성된다 해도 엄청난 출혈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나마 사회 개혁이 일어나면 다행이지만 그것조차도 되지 않을 때 그 사회가 걸어갈 길은 더욱 좁아져 결국은 파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개인의 죄도 회개해야 하지만 사회적인 회개 운동도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이 피를 흘리지도 않고 또 파멸로도 치닫지도 않는 가장 현명하게 사는 길입니다.
3.회개의 성회의 결과입니다.(15-29절) 첫째,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됩니다. 18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서운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벌하셨으나 그들이 회개함을 보셨을 때 그들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앙으로 황폐된 땅을 보시고 그 땅을 침범하였던 적군들을 미워할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회개하고 기도하는 백성들을 한없이 사랑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범죄할 때 심판을 선고했으나 회개했을 때 사유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둘째,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9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했습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인간(人間) 생활(生活)의 필수품입니다.
곡식은 육신의 양식입니다. 포도주는 연회에 필요한 음료수입니다. 기름은 건강과 단장에 필요한 필수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필요(必要)한대로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마6:31절).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의 필요한 대로 채워주심을 믿고 염려 걱정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대적을 물리치신다고 하십니다. 20절에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 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던, 북편군대 대적들을 물리쳐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이 신앙의 생활을 바로 하지 아니하면 대적을 일으켜 징계를 하시지만 신앙에 바른 자세를 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무서운 대적들이 있다고 해도 다 물리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군대가 침략했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의 범죄를 회개하고 당신에게로 돌아오면 그 군대를 물리쳐 주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는 굳은 약속을 통하여 권고하십니다.(수1:9절). 넷째, 땅이 복을 받고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21절이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와 가뭄의 재앙으로 인하여 그 땅의 백성들은 애곡하였습니다. 황폐한 땅으로 인하여 삶의 희망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땅을 회복(回復)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무생물인 땅을 외치신 이유는 당신이 내리신 축복이 무생물인 땅이라도 기뻐할 만큼 놀랍도록 회복시키신 다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여 하나님께 바로 서면 논 밭뿐 아니라 우양의 새끼 다니는 직장까지 복을 받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다섯째, 짐승과 초목이 즐거워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22절에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 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고 보면 그가 경영한 과원이 축복을 받고 즐거워하게 됨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증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이처럼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너희에게 하늘로써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고(행14:17)했습니다. 여섯째, 산물에 축복하사 풍성케 하십니다.
23-24절에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그 백성을 징계하시나, 의 본심은 언제나 그 백성을 기쁘게 하며 즐겁게 하여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황폐한 땅에서 고생하던 백성을 위해 비를 내려 주십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하십니다.
메뚜기 때로 인하여 받은 고통을 횟수대로 풍요의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죄인이라도 하나님께로 바로 돌아오기만 하면, 나님이 그의 자녀에게 축복을 주시므로 기쁨과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괴로움과 질병과 빈곤의 삶이 어디에서 오는 고하니, 하나님을 떠난 죄의 삶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항상 성결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넘치는 축복을 받고 감격의 찬양을 부르며 살아갑니다.
(1)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백성으로 회복시키십니다. 26절에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열려지게 하시고 열려진 마음 은혜받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그들은 이미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그 영혼이 회복이 된 것입니다. (2)영영히 수치를 당치 않는 백성으로 회복시키십니다.
26절에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징계로 인하여 이방에 수치가 되었습니다. 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젠 고아나 과부처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따라서 비록 자기 죄로 인한 상처로 얼룩진 성도라 할지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에게 영영히 수치를 닻이 않게 회복시켜 주시마고 약속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3)함께 하여 주시는 백성으로 회복시킵니다. 27절에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떠나가신다면 그 백성이나 그 나라는 절망입니다.(신31:17절).
때문에 범죄했던 다윗은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시30:7)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면 사랑이 넘치는 교제가 다시 이루어집니다. 기도의 영이 깨어지고 찬송이 깨어나고 말씀의 영이 깨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민족 가운데 함께 계시면 그 민족 또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현재만을 인정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옛날에 저가 이런 믿음으로 봉사하였습니다. 미래에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겠습니다. 하는 말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믿음과 신앙이 어느 수준이냐가 결정됩니다.
과거에 잘못하였더라도 오늘 회개하고 경건의 삶을 살게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긍휼과 자비로 풍성히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면 죄사함받고 영생복락을 주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엘 2:1-17절, 253.319.360장.&
본 장에는 전장에 이어 계속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황폐와 그 황폐보다 더 무서운
일이 닥칠 것을 설명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재앙 전에 누리던 낙을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아울러 신약시대에 있을 성령 강림 (행2:17-21)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딤후3:15절)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선포를 통해 우리가 받은 구원이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1.심판의 경고입니다.(1-11절) 첫째, 캄캄한 어두움이 임하엿습니다. 2절에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어둡고 캄캄한 이유는 그날이 심판의 날이어서 이미 구원에 대한 소망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구원에 대한 소망이 끊어지기 전 지금 빨리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사55:6).둘째, 날이 새도 빛이 떠오르지 아니하였습니다.
2절에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동이 틀 때 순식간에 산꼭대기에 빛이 퍼지듯 순식간에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이스라엘 백성(百姓)에게 무섭고 신속하게 임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와 같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무섭고도 신속하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식간에 임하게 될 그날을 준비하면서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마24:42-44).
셋째, 땅이 황폐해집니다. 3절에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할 자가 없도다 메뚜기 떼가 시온의 아름다움을 황폐케 하였습니다.
메뚜기의 습격으로 시온 땅에서 자라나던 식물이 불에 타 버리듯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북방왕의 침입(겔38:15, 단11:40)에 관한 사실을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실이 어느 쪽으로 해석되던 지간에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죄악 속에 나날을 보내던 이스라엘이 황폐해진다는 사실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재앙은 순식간에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재앙(災殃)으로 인해 쉽게 사라져 버릴 우리의 소유물(所有物)에 너무 애착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잠23:5). 넷째, 무서운 재앙이 빨리 임할 것을 묘사했습니다. 4절에 그 모양은 말같이 그 달리는 것은 기병(奇兵) 같으며했습니다.
여기 말과 기병은 메뚜기 떼를 상징(象徵)합니다. 메뚜기의 머리는 말의 머리 모습과 비슷하고 메뚜기의 뛰는 모습은 기병의 뛰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메뚜기를 말과 기병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을 휩쓴 메뚜기 떼가 군대와 같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그 당을 정복(征服)하게 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섯째, 적의 내침에 무방비 상태입니다.
6절에 그들의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가 병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초개를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항오를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에졌도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군이 방비가 소홀한 산악 지대로 쳐들어왔던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산악 지대 방비를 소홀히 했던 이유는 험하고 높은 산이니 설마 그곳으로 적군이 쳐들어오겠느냐고 생각하여 안심하다가 큰 불행을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보다 세상이나 자연 조건을 더 믿으면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가 가진 세상적인 조건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는 것을 알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경고입니다.(잠11:28).
여섯째, 성이 순식간에 정복이 됩니다. 7-8절에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같이 성을 더위잡고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되 그 항오를 어기지 아니하며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며 병기를 충돌하고 나아가나 상치 아니하며 이것은 날랜 무사가 순식간(瞬息間)에 성을 정복(征服)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의 재앙은 순식간에 무섭게 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욥34:20). 곱째, 천계까지 이상이 생깁니다. 10절에 그 앞에서 땅이 진동(振動)하며 하늘이 떨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고 했습니다.
재앙(災殃)이 너무나 무섭고도 두렵게 닥쳤기 때문에 그 재앙이 닥쳤던 날은 자연(自然)도 무서워 떨 정도인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도(聖徒)들 앞에는 언제나 재앙이 없어야 하며 여생(餘生)에 평탄한 나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는 곧 주와 동행(同行)하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여덟째, 외침으로 오는 불행을 전하십니다. 11절에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실 때 그들의 적군인 앗수르를 사용하실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이 죄를 짓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그 백성의 적국의 군대라도 사용하셔서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죄를 짓고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원수라도 사용하셔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시5:8).
2.진정한 회개의 자세를 취할 것을 권고합니다.(12-14절) 첫째, 마음을 찢는 회개의 기도를 할 것을 요구합니다. 기독교는 의식의 종교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도덕적 종교도 아닙니다. 수양의 종교도 아닙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고 사느냐 하는 것에 치중하는 종교요 그 다음에 그 표현으로써 율법의 준수와 의식의 준행이 따르는 것입니다. (1)마음을 찢는다는 말은 지적으로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속함을 받고 중생한 후에도 생활 속에서 죄를 범하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실제로 행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일어난 죄를 놓고 고민합니다. 그럴 때 솔직하게 먼저 죄(罪)를 인정(認定)해야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悔改)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眞實)하게 살아야 합니다. 솔직한 죄 고백(告白)이 있을 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기지 않습니다.
요일서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罪)를 자백(自白)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주님은 약속하신 것입니다.
(2)마음으로 죄를 인정하면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아무런 가책이 없는 성도는 돌짝밭과 같고 화인 맞은 마음과 같습니다. 죄를 범하고 회개(悔改)하지 아니하고 주앞에 나오는 성도는 주님이 외면하십니다.
우리를 주일마다 주의 전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자녀로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러 오지만 동시에 고개를 숙일 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주여 내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하는 죄송한 생각을 같이 하여야 합니다.
베드로는 여지없이 실패했을 때 나는 실패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그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속에 들어가서 통곡했습니다. 욜2:28절에 보면 그런 성도 남여종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성령 충만이 어떻게 옵니까? 마음의 옷을 찢고 회개하는 성도에게 성령 충만이 임하는 것입니다. (3)마음의 옷을 찢음은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범죄를 고백하고 감정적으로 죄에 대해서 슬퍼하고 그 다음에 의지적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돌아온 성도였으나 가룟 유다는 돌아오는데 실패했습니다. 참 회개란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애도의 표현으로 옷을 찢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회개할 때 옷을 찢는 것은 하나님께 내 자신을 적나라하게 모두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형식만 갖추고, 신은 자기의 심중의 죄악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찢어서 그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본 자세입니다. 둘째, 구체적인 회개의 기도를 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좀 더 구체성을 띠어서 나의 죄몫을 하나 하나 열거하면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단순히 주여 그는 죄인입니다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식의 추상적인 죄의 고백은 관념에만 그칠 수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얼마나 심각하고 구체적으로 회개를 했던지 어릴 때 엄마 젖을 먹다가 젖꼭지를 깨물어, 마를 아프게 한 것까지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도 그러한 경지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누구를 얼마 만큼 미워했으며 얼마 만큼 교만했으며 얼마 만큼 남을 비방했으며 어떻게 거짓말을 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일일이 고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우리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요일서1:9절에 죄의 구체적인 자복만이 다시는 동일한 죄를 짖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회적 회개의 기도 운동입니다. 15-16절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했습니다. 사회적 회개란 말이 존재하려면 사회적 죄악이란 말이 성립해야 합니다. 죄는 개인만이 짖는 것이 아니라 사회도 죄를 짖는 다는 뜻입니다. 이 사회 죄는 개개인과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한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죄가 사회에 용납되고 또 그러한 성향이 만연되는 것이 바로 사회적인 죄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죄가 사회에 한번 만연되면 그 피해는 아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러한 사회적인 죄가 만연된 곳에서는 어느 한 개인이 바로 서려고 해도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바로 서려면 엄청난 불이익과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니 만큼 사회 개혁을 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사회 개혁을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인 엄청난 물리력이 필요하며 그 물리력이 생성된다 해도 엄청난 출혈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나마 사회 개혁이 일어나면 다행이지만 그것조차도 되지 않을 때 그 사회가 걸어갈 길은 더욱 좁아져 결국은 파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개인의 죄도 회개해야 하지만 사회적인 회개 운동도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이 피를 흘리지도 않고 또 파멸로도 치닫지도 않는 가장 현명하게 사는 길입니다.
3.회개의 성회의 결과입니다.(15-29절) 첫째,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됩니다. 18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서운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벌하셨으나 그들이 회개함을 보셨을 때 그들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앙으로 황폐된 땅을 보시고 그 땅을 침범하였던 적군들을 미워할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회개하고 기도하는 백성들을 한없이 사랑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범죄할 때 심판을 선고했으나 회개했을 때 사유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둘째,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9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했습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인간(人間) 생활(生活)의 필수품입니다.
곡식은 육신의 양식입니다. 포도주는 연회에 필요한 음료수입니다. 기름은 건강과 단장에 필요한 필수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필요(必要)한대로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마6:31절).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의 필요한 대로 채워주심을 믿고 염려 걱정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대적을 물리치신다고 하십니다. 20절에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 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던, 북편군대 대적들을 물리쳐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이 신앙의 생활을 바로 하지 아니하면 대적을 일으켜 징계를 하시지만 신앙에 바른 자세를 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무서운 대적들이 있다고 해도 다 물리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군대가 침략했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의 범죄를 회개하고 당신에게로 돌아오면 그 군대를 물리쳐 주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는 굳은 약속을 통하여 권고하십니다.(수1:9절). 넷째, 땅이 복을 받고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21절이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와 가뭄의 재앙으로 인하여 그 땅의 백성들은 애곡하였습니다. 황폐한 땅으로 인하여 삶의 희망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땅을 회복(回復)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무생물인 땅을 외치신 이유는 당신이 내리신 축복이 무생물인 땅이라도 기뻐할 만큼 놀랍도록 회복시키신 다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여 하나님께 바로 서면 논 밭뿐 아니라 우양의 새끼 다니는 직장까지 복을 받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다섯째, 짐승과 초목이 즐거워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22절에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 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고 보면 그가 경영한 과원이 축복을 받고 즐거워하게 됨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증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이처럼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너희에게 하늘로써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고(행14:17)했습니다. 여섯째, 산물에 축복하사 풍성케 하십니다.
23-24절에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그 백성을 징계하시나, 의 본심은 언제나 그 백성을 기쁘게 하며 즐겁게 하여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황폐한 땅에서 고생하던 백성을 위해 비를 내려 주십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하십니다.
메뚜기 때로 인하여 받은 고통을 횟수대로 풍요의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죄인이라도 하나님께로 바로 돌아오기만 하면, 나님이 그의 자녀에게 축복을 주시므로 기쁨과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괴로움과 질병과 빈곤의 삶이 어디에서 오는 고하니, 하나님을 떠난 죄의 삶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항상 성결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넘치는 축복을 받고 감격의 찬양을 부르며 살아갑니다.
(1)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백성으로 회복시키십니다. 26절에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열려지게 하시고 열려진 마음 은혜받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그들은 이미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그 영혼이 회복이 된 것입니다. (2)영영히 수치를 당치 않는 백성으로 회복시키십니다.
26절에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징계로 인하여 이방에 수치가 되었습니다. 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젠 고아나 과부처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따라서 비록 자기 죄로 인한 상처로 얼룩진 성도라 할지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에게 영영히 수치를 닻이 않게 회복시켜 주시마고 약속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3)함께 하여 주시는 백성으로 회복시킵니다. 27절에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떠나가신다면 그 백성이나 그 나라는 절망입니다.(신31:17절).
때문에 범죄했던 다윗은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시30:7)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면 사랑이 넘치는 교제가 다시 이루어집니다. 기도의 영이 깨어지고 찬송이 깨어나고 말씀의 영이 깨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민족 가운데 함께 계시면 그 민족 또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현재만을 인정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옛날에 저가 이런 믿음으로 봉사하였습니다. 미래에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겠습니다. 하는 말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믿음과 신앙이 어느 수준이냐가 결정됩니다.
과거에 잘못하였더라도 오늘 회개하고 경건의 삶을 살게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긍휼과 자비로 풍성히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면 죄사함받고 영생복락을 주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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