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를 통해서 먼저 자신의 모든 부분들이 주님의 시각으로 바르게 고침을 받고 난 이후에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관상기도의 장점은 우리가 전혀 기도하지 않아도 주님과 깊은 기도로 이끌려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 명상이라고 하는 관상은 우리가 주님 앞에서 잠잠함을 배우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영적으로 탈진하여 더 이상 기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천사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산에 이르러 동굴 속에서 기도할 때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되었지요. 한 차례 천둥치고 지축이 뒤흔들리는 것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도 주님과의 친밀함을 누리지 못하다가 아주 고요한 기다림 속에서 세미한 주의 음성을 듣게 되었듯이 기다림 속에서 주님과의 친밀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기도할 수 없을 정도의 영적 탈진이나 압박을 받고 있는 경우, 다만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잠잠히 기다림으로써 주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주님에게 집중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정신을 온전히 주님에게만 집중하기 위해서 그 기술을 개발하고 익혀야 하는 선행조건들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들이 개발되어 있는 것입니다. 앞의 글 명상원의 위험을 아십니까라는 글에서 다룬 여러 가지 방법들은 정신을 집중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입니다. 특히 몸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분들에게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영적 스트레칭이 필요합니다.
몸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정신의 압박을 내려놓기 위해서 여러 가지 관상기술을 자신에게 맞게 적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묵상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을 이완시키고 분주한 생각을 한 곳으로 모으며, 부드러운 가루를 만지거나 꽃 향기를 맡음으로서 감정이 이완되고 긴장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주님의 임재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마치 긴장이 풀리면 몸이 나른해지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주의 팔 안에서 녹아드는 것 같은 포근함과 나른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주님에 대한 관심과 집중의 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세속적 명상은 아무런 생각 없이 모든 것을 방임하는 것이지만, 관상기도는 주님에게 향한 시선은 고정시키고 그 안에서 긴장을 풀고 정신과 몸을 온전히 주님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몸과 정신이 한없이 가벼워지면서 마치 잠결에 빠져드는 것 같고, 감기약을 먹어서 나른해지는 것 같은 이완작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한 부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생각이 어떤 통로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아주 단순해지고 순수해지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황홀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며, 몸이 완전히 이완되어 전혀 움직일 수 없이 되어 꼼짝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며, 자비로운 주님의 손길이 자신을 어루만지는 것 같은 선명한 느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강력한 기운에 휩싸여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강렬한 기쁨으로 인해서 그 기분을 주체할 수 없어서 지금 당장에 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분들은 자신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지요. 이런 경우 그 행위를 통해서 우리 내면에 있는 온갖 찌꺼기들이 몸밖으로 배출되거나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품을 계속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행동은 우리 몸과 영을 치유하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때로는 온몸이 뜨거워지고, 반대로 아주 서늘해집니다. 몸이 공중으로 가볍게 떠오르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너무나 실감이 나서 진짜로 몸이 떠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간혹 영의 육체 이탈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속 사람이 자신의 몸을 벗어나 자신을 내려다보거나 어떤 장소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향기가 진동하기도 하고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강력한 진동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주의 임재하심에 대한 신호이며, 본질은 아닙니다. 주님이 이런 현상을 동반하면서 자신의 몸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런 임재를 통해서 주님이 의도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능력이 임하기도 하고, 은사를 받기도 하며, 병이 고침을 받기도 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가운데 주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주의 계시하심은 예언에서 다루었습니다만, 인도하심이나 지도하심이나 계시하심 등 여러 가지 내용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지도하심의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위로와 권면은 주님의 말씀의 대표적인 내용입니다. 상한 심정과 영적 압박이 많은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듣게 되지요. 이 때 가장 많이 듣는 내용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평범한 내용이지만 주님으로부터 직접 듣게되면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용기와 소망을 얻게 하는 말씀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책망의 말씀도 듣게 됩니다. 말씀을 파악하는 요령에 대한 내용은 하나님의 음성듣기에서 다루었습니다.
관상기도는 여러 가지 별칭으로 불립니다. '깊은 기도', '임재 기도', '침묵 기도', '기다림의 기도', '명상 기도', '초월 기도', '집중 기도' 등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는 것은 관상 기도가 그 만큼 다양한 효과와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은 주님의 임재에 대한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주님의 깊은 곳에 이르는 길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깊은 기도인데 집중기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호흡기도에서 호흡이 일시적으로 멎으면서 가사 상태에 들어가는 것과 흡사하게 생각이 온전히 사라지면서 무의식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이 어떤 힘에 의해서 완전히 묶이면서 어두운 공간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과 같은 강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오로지 보이는 것 뿐이며, 생각도 느낌도 모두 사라집니다. 아주 어두운 흑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블랙 홀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우주 속을 한없이 흘러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멈추고 그곳에서 다양한 영적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바울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내용들을 보거나 듣게 됩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내용들인데 이런 영적 경험을 하고 나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애착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주를 위해서 온 몸을 바칠 자세가 나오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은 우리의 결단에 긍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우리의 헌신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 하더라도 날마다 이런 경험들을 새롭게 다시 되새기면서 의지를 세워야 하는 노력은 우리의 몫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고 영적 침체를 가져오는 사건들을 마주치면서 우리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럴 때마다 주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새롭게 되세기면서 다시금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관상기도를 통해서 날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주님으로부터 자신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교정 받아야 합니다. 계시가 없으면 우리는 방자하게 제멋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좋아 보일지라도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행동하는 일체는 죄입니다. 주님의 허락하심이 없는 일체의 선한 행위마저도 죄인 것입니다. 웃사가 넘어지는 법궤를 만짐으로써 그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웃사의 선한 행위도 말씀 앞에서는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관상기도는 기다림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기다림에 있습니다. 약속을 기다리는 것은 주님의 신실함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조급함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본성에 대한 거부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한 이스라엘이 그 결과 치르게 된 대가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성경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 가운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차이입니다. 약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것이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약속은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약속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반드시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은 기다림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약속을 받았다는 것은 기다림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다리는 요령입니다. 교회는 기다림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약속을 다 함께 기다리는 것이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다림의 주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경험하고 배워야 하는 본질적인 공과입니다.
우리는 이 어려운 공과를 관상기도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기다림은 약속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통로입니다. 훌륭한 기다림은 훌륭한 약속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를 성취하게 합니다. 인내는 소망을 만들어내고 그 소망이 우리의 삶을 경건하고 풍성하게 만듭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망합니다. 자신이 주님에게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만큼 가엾은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에게서 아무런 약속도 받지 못한 맹맹한 사람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합니다. 날마다 그저 살아갈 뿐입니다. 돈벌고 쓰고 먹고 즐기고 할 뿐입니다. 가슴 설레는 기대도 없고, 가슴 아픈 갈등도 없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는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런 일로 인해서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지각없이 도살장에 끌려갈 짐승들의 삶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관상기도를 아는 사람은 기다림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아는 사람입니다. 기다림을 배우고 그 기다림은 소망 즉 비전을 만들어내며, 이로써 자신이 주님 앞에서 한 사람의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장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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