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주일설교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164장)

늘찬양 2011. 3. 18. 15:19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164장)

              롬 7:24-25,2011.03.13.늘찬양교회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의 ‘회개와 용서’의 찬양은 로마서 7장 24-25절을 배경으로 미국 일리노이 주 멘도타 출생의 찬송 작가이자 복음성가 가수로 2천편 이상의 많은 작품을 만든 피터 필립 빌흔(P.P.Bilhorn;1865-1936)이 1907년 작사‧작곡한 찬양입니다.

1절에서는 죄에서 구원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음을 강조, 2절은 구원 받은 성도의 성결한 삶, 3절은 담대하게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의 삶, 4절은 즐거운 천국생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절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1절, 죄에서 구하시려 주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할렐루야 찬송하세

인간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를 범한 이후 죄가 인간에게 들어왔고 그 이후 사단은 죄를 무기로 우리를 열등감, 좌절감, 죄책감으로 올무를 묶어서 사망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처절하게 억압하고, 고통에 처한 존재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종 철학과 사상 종교 윤리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상이나 율법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보혈을 심령에 받아들이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요소가 다 물러나고 희망의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보혈은 부활의 새 생명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소망은 ‘이새의 줄기,’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됩니다. 십자가에 흐르는 그리스도의 피에는 하나님의 사랑·공의의 성품과 인격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는 인간의 죄를 씻어 의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 외에는 ‘더 좋은 소망’이 생기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 외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단절된 다리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는 몸과 피를 내어준 성찬입니다. 자신을 내어준 사랑입니다. 가장 하기 어려운 사랑은 나를 먹으라는 사랑입니다.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스승이 자기 몸을 제자에게 내어 줍니다. 몸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절정은 거기에 있습니다. 자기 몸을 해부케 해서 질병을 고치게 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실 때 자기 몸을 내어 주시면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받아먹으라”(마 26:2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 마시라. 이것은 너희 죄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니라.”(27-28) 사랑의 극치는 자기 피를 나누고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향산 주님 사랑의 극치를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므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친히 달리신 이유는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큼 사랑하셨나 하면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친히 성만찬을 통해 십자가의 찢김을 피 흘림을 증거 하셨으며, 무덤에서 부활하심을 통하여 구원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더욱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던 날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역사가 일어난 이유는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 같은 주님의 보혈의 은혜와 대속의 사랑,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영광을 아는 자들은 그 은혜의 복음에 참여하여 함께 기쁘게 찬송하며 주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찬송가1절)

 

2절 우리를 주께서 구했으니 이전에 행하던 악한일과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온전히 버렸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2절, 주께서 구했으니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과 더러운 모든 죄 온전히 버렸네.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성도들은 자원함으로 성령의 온전함에 이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깨달은 후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과 더러운 모든 죄 온전히 버리고”(찬송가 2절) 말씀과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났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거룩함과 신실함을 좇아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신앙의 영적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즉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은 비신앙적인 모든 것과 영적인 싸움 - 거룩한 싸움을 싸워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인 싸움, 믿음의 선한 싸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우리가 싸워야 할 거룩한 싸움은 하나님의 대적이요, 신앙인의 대적인 악한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적 마귀는 오늘도 배가 고파 울부짖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권고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했던 사단 마귀는 오늘도 믿는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우리를 향하여 입을 벌리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단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리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엡 6:14-17)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찬송가 2절에서는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과,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모습에 대하여 자신의 몸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말하면서 고린도전서 9장 26-2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이로라."

바울은 거룩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내 몸을 쳐서 복종한다"고 말합니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한다.”고 할 때 '친다'는 말은 '눈 아래 부위를 친다'는 뜻으로서 당시 권투 선수들이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얼굴 부위를 계속해서 강타하는 것처럼, 바울은 자신의 육체적인 욕구와 세속적인 이기심을 버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육체적인 욕심과 세속적인 이기심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불교의 고행을 강조하며 수도원의 수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룩한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우리의 옛 사람을 죽이고 성령의 새사람으로 거듭나자는 이야기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들어내기 위하여 ① 악한 마귀와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②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과,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온전히 버리고 주님 십자가 붙들고 담대하게 나가는 십자가 군병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절 나 지금 죄에서 사함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 것 없겠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3절, 죄사함 받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 것 없도다.

출애굽기 19장 5-6절에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베드로전서 2장 9-10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 두 말씀 중에 핵심 단어는 “하나님의 소유,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라 한 것은 언약 속에서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하나님께 특별히 보배로운 민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 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잘 받들어 섬기며 다른 모든 민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의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는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 한 것은 위의 그런 일들을 감당하기 위하여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어 따로 불러 세우심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속에 있는 백성이 어떠해야 하며 또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만방에 알리기 위한 표본으로 택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이 언약은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이스라엘이 된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언약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서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대 승리의 역사 뒤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순종과 믿음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

워하지 말라...”(민 14:9) 이렇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속에 여호와를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이 이런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해방을 맞았지만 5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6.25(남침)라는 비극적 전쟁을 겪고 가난과 굶주림과 독재 하에서 신음했던 백성들이 오늘 세계가 놀라고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성장의 배경 뒤에는 신앙인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기도의 힘으로 나 자신의 거룩함과 자유함의 복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를 복음화 하는 일에 우리가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북한이 복음화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진정한 통일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어제 일본에 8.8의 강진과 쓰나미로 인해 공식 확인된 사망자수가 413명, 실종자수는 784명, 부상자는 1,128명이라고 전했습니다. 일본 NHK 방송은 최소 630명이 숨지고 725명이 실종된 것으로 각각 집계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땅에 지진 피해가 없었던 것은 그 만큼 우리가 해야 할 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켜주시고 평화와 안정감을 가지고 있을 때 힘을 모아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서도 힘들고 어려울 때에 주님을 간절히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상시 주님을 가까이하며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을 버리고 거룩한 백성으로 “오직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차지한 것처럼”(수 1:6)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원수 마귀를 정복하고 믿음으로 북한이 완전 복음화 되는 날까지 힘써 믿음으로 달려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에 예수의 손목을 굳게 잡고

영원히 즐거운 천국에서 주 함께 살겠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4절, 이 세상 떠날 때에 예수의 손목을 굳게 잡고 영원히 천국에서 주와 함께 살리라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좇지 않고 다른 것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아닌 어떤 사상이나 사람을 좇아가느라고 예수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좇아가기에 바빠서 예수님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는 유행을 좇아 사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또 어떤 이는 세상의 쾌락을 좇기에 바빠서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무엇을 지향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합니다. 인생에 있어 참으로 목표가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표는 바로 삶에 대한 가치의 표현입니다. 그 목적을 가변적인 것, 상대적인 것에 두는 사람이 있고 본질적인 것, 절대적인 것에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좇는데 언제나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명예를 얻고 돈을 벌고 권력을 쥐고,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파생적으로 은혜로 주어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영원하지도 않고 잠시 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구원 주, 메시야,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좇는데 인생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어느 때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가난할 때도 부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건강할 때도 잘될 때도 잘못될 때도 목표는 오직 하나 예수님을 좇으면 그것이 성공이고 그것이 형통이며 그것이 복인 것입니다. 제자는 오직 주님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가신 길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경우든 주님만을 쫓아야 하겠다고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를 때 나를 따르라고 불렀습니다. 전심전력하여 끊임없이 계속해서 좇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제자 된 본분입니다.

예수님을 좇으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는 삶을 살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겸손하신 것처럼 겸손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온유하신 것처럼 온유한 삶을 흉내 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기심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마음을 다해 섬기는 삶을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갈 때 천국이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정말로 변화된 증거를 사람들이 알아보고 존경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가치 있는 삶으로 존귀하게 바뀌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좇으려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본받아 따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서 하시던 사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악한 마귀, 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를 삼아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훈련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을 좇아서 우리는 주님이 남겨 두신 거룩한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복된 사역에 예수님의 뒤를 이어 감당하며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맺으신 열매를 본받아 따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따라가면 좋아 보여도 종국에는 후회와 허무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면 결국에는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상과 보람과 감격스런 칭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좇아가다보면 참된 평안과 안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 만족을 주는 영생의 꼴이 가득한 푸른 초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생수 샘물이 넘쳐 흐르는 잔잔한 시냇가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을 유혹하는 헛된 것, 위험한 것, 거짓된 것을 따르던 삶에서 돌이켜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겠노라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앞에서 인도하시는 예수님만을 따르는 복된 삶을 시작하므로 헛된 방황을 종식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