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창 19:12-28,2014.03.16.늘찬양교회
북미에서 유적을 탐사하던 답사단이 한 오지에서 광부가 기거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두막집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두개의 해골과 함께 많은 금이 발견되었습니다. 답사단은 왜 두 광부가 그 비싼 금을 모으고 여기서 죽어있는 것일까? 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단원이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이들은 금을 계속 캐는 기쁨에 북쪽에서 일찍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추위가 다가오기 전에 적당량의 금을 갖고 빨리 이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눈보라를 맞았을 땐 식량도 바닥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금이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겠죠!』
지나친 욕심으로 말미암아 하나 뿐인 생명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사건이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으로 가득하여 유황불로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다는 내용을 두 천사가 롯에게 전달하는 내용부터 시작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받으시고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있는 롯의 가정을 구원하시고자 천사를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롯의 가정을 구원시킬 때 한 가지 금기사항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이곳을 떠날 때에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창 19:17)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멸망의 시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롯의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떠나려고 하지를 않자 다급한 두 천사가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강제적으로 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한 산으로 도망가지 않고 가까운 ‘소알’ 성으로 피신하였다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무너짐을 듣고 그만 뒤를 돌아보았다가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는 멸망의 징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 때문에 롯의 아내가 천사의 명령을 거부하고 뒤를 돌아보므로 소금기둥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감사치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16절)
16절에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강권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롯과 그의 식구들을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구출해내었다는 것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성 밖으로 안전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감사가 롯의 아내에게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애굽 땅에서 구출되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먹고 마시는 불편함의 문제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 땅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가 광야에서 멸망당했던 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왜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고 재미가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 안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은혜와 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는 구원의 감격보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그동안 고생고생하며 쌓아놓은 물질 생각이 더 난 것입니다. 어떡해하나 그 안타까운 것을!...... 소돔과 고모라 성에 두고 온 물질에 대한 미련과 욕심 때문에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나와 하나님의 백성 된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기쁨과 감격”을 잊은 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구원의 감격을 잊고 오히려 자신들을 불러낸 천사들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롯의 아내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많고 많은 교회들 중에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늘찬양교회에 우리를 보내어 여러 가지 말 못할 불편함과 고통을 받으며 신앙생활하게 하시는 것일까? 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는 사람도 간혹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 안 있으면 유황불로 사라질 소돔과 고모라 성의 모습을 알지 못한 채 현실만 바라보고 불평하며 감사치 못하는 롯의 아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행동하였다가는 나도 언제 어느 때 구원의 반열에서 낙오자가 되어 소금기둥의 심판을 받을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롯의 아내는 지금 두 사위들과 함께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 밖 ‘소알’성에 사랑하는 남편과 그리고 예쁜 두 딸과 함께 구원의 대열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치 못하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잊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원의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되찾아야 합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늘 찬양함 속에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소금기둥이 되는 저주의 심판에서 벗어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는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소알 이라고 하는 중간 기착 점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20절)
17절에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여기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뜻은 “썩어 없어질 세상 재물이나 명예, 권세 등에 욕심이나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경고이며, “들에 머무르지 말라”고 한 뜻은 “곧 멸망 받을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지 가까이 머물러 있다가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아침 일찍부터 두 천사에 의해 성 밖에 끌려나온 후 이들은 천사의 지시대로 안전한 산으로 도망하기보다는 몇 발짝 걷다가 또 쉬고 또 몇 발짝 걷다가 쉬고 또 쉬고 하면서 겨우 도망 나온 곳이 ‘소알’ 성입니다. 그리고 소알 성을 피난처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두 천사에게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나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20절)며 양해를 청합니다.
여기서 롯은 두 가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의지와 방법으로 살려고 하는 인본주의가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롯이 하나님의 뜻을 의지하며 순종하기 보다는 아내의 의견과 자신의 의지와 방법들을 더 고수하고 주장하며 천사에게 “저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19절) “이는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이 성에 가면 내 생명이 안전하게 보존되리라.”(20절)며 타협점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그 무서운 합리주의이자 인본주의입니다.
롯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보다 자신과 눈에 보이는 육적인 것들을 더 의지하고 있습니다. 롯이 사촌형 아브람과 헤어질 때 아브람은 믿음으로 조카 롯에게 땅의 선택권을 양보했지만 믿음의 눈이 없었던 롯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기름지고 풍성한 소알 땅을 택하여 나갔을 때의 그 모습 그 대로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힘과 의지와 욕심과 혈기를 하나님께 꺾어 드리지 않은 사람은 수십 년 교회를 다녔어도 옛날 그대로입니다. 가치관과 사고관이 좀처럼 바뀌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루빨리 자신의 혈기와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돌아와 모세처럼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② 롯이 소알 성을 완전한 피난처로 여기고 그곳에 머문 것입니다.
만일 롯과 그의 가족들이 멀고 험하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안전한 산으로 도망하였다면 이 같은 불상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은 모세와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주의 음성을 들었듯이 주님 품에 안기어 주님과 함께 깊은 영적 교통함 속에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바램입니다.
하지만 롯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들이 밭을 팔아서 받은 돈 모두를 사도들의 발 앞에 놓으면 자신은 무엇을 먹고사는가? 하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물질을 완전히 맡기지 못하고 물질의 일부를 숨겼다가 성령을 속인 죄로 두 사람이 다 죽음을 맞이했던 것처럼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은 잔꾀를 부리며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알 성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그 결과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의 심판을 받아 건물이 무너지고 집들이 태워 없어지며 곳곳에서 ‘사람 살려’소리치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끝내는 롯의 아내가 자기의 집과 재산도 다 타 없어진다는 안타까움에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름에 있어 아직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1:16)을 좇아 살고 있다 보니까? 누가 나에게 “야! 오늘은 교회가지 말고 나하고 산으로 등산 가자”하면 그것을 사탄의 유혹으로 알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기보다는 같이 어울려 세상으로 달려 나가는 것은 물론 누가 나에게 싫은 소리를 조금만 해도 그것이 금방 내 귀에 들어와서 그것으로 마음을 상하고 또 원망하고 불평하여 신앙이 퇴보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실망과 좌절과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산으로 피신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음의 산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소리, 생명의 소리, 은혜의 소리, 감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깨어 기도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제자훈련에 참여해야 합니다. 날마다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최근 들어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많이 발생하여 자녀들과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혼자의 생각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합당한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합니다. 더불어 가족과 함께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까? 그 만큼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보니 힘도 적게 들고 많은 위안도 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매일 5대 감사의 일지를 기록하면서 하루 동안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묵상하는 삶을 살다보니 영적으로도 자신감이 생기고 삶에 기쁨이 넘쳐납니다. 이렇듯 가족은 자주 모여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롬 8:28)을 찾아가는 귀한 가족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그동안 애써 모아놓은 물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롯의 가족 4명 모두가 천사로부터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7절)는 명령을 들었음에도 왜 유독 롯의 아내만 뒤를 돌아다 본 것에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롯의 아내가 남편이나 두 딸보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게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뒤를 돌아다 본 한 가지 명백한 이유는 다른 식구들보다 롯의 아내가 땅에 있는 물질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롯의 아내는 14절에 “정혼(定婚)한 사위들” 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아 곧 두 딸이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음란과 방탕의 도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회에서 다른 집 딸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적잖은 혼수비를 마련하느라 많은 신경과 애를 썼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근검절약 또한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 앉아 계시는 여자 성도님들 대부분이 가정에서 물질을 관리하고 주장하고 계실 줄로 압니다. 그렇다 보니까 가족들 중에서 물질로 인해 어려움 당하고 시험 당하는 일들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롯의 아내도 집안의 가계를 꾸려오면서 입을 것 제대로 입지 않고, 먹을 것 제대로 먹지 않고, 호화스러운 집도 마다하고 고생하면서 근검절약 속에 살아오다 보니까! 이제는 그럭저럭 남부럽지 않게 물질도 모을 수 있었고 이제 두 딸도 남부럽지 않게 시집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가롯 유다가 물질을 관리하다 보니 마리아가 순전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고 발에 입 맞추고 할 때에 이 같은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겨 제재를 가하였고 끝내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듯이 우리 여성들이 물질을 관리하다보니 남자들보다 쉽게 은혜를 받는 반면 쉽게 시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롯의 아내가 열심히 모아놓은 재산과 물질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부족하지만 적지 않은 돈을 모을 수 있었고 두 딸도 시집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기보다는 자신이 애써 절약하고 모아서 된 줄로 아내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억척 맞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기의 열심과 노력으로 삶을 꾸려가기 때문에 교회를 다녀도 십일조를 잘 못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위들도 신앙보다는 사회적인 지명도를 쫓아 선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롯의 사위들이 롯의 심판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혹시나 여러분들도 사위나 며느리를 고를 때 신앙심보다 사회적인 지명도와 학벌과 물질을 더 우선(優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가정파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롯의 실패를 거울삼아 하나님 제일위주의 신앙가정을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후회 없고 화목과 사랑이 넘치는 은혜의 가정,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결국 롯의 아내는 소알 성까지 인도하신 구원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 보다 더 자신이 힘들게 모았던 재산과 가정에 애착을 가짐으로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과 함께 소금기둥이 되는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는 가정, 하늘나라에 최고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가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온 가족이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가정 심판을 상징하는 좋은 영적 교훈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불 심판과 멸망에서 건짐을 받도록 오늘도 주안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하늘나라 영원한 창고에 생명의 귀한 것을 쌓으며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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