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목회자료

바울과 디모데의 동역

늘찬양 2013. 8. 10. 16:03

동역을 통한 변화(4) 바울과 디모데의 동역

                               빌 2:19~24.2013.08.11.늘찬양교회

 

오늘은 동역을 통한 변화 네 번째 시간으로 ‘바울과 디모데의 동역’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교회에는 많은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안수집사, 서리집사, 권사, 교회학교 교사, 찬양대원, 주방봉사, 예배안내위원, 헌금위원, 차량봉사자 구역목자 등 이런 일꾼들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는 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를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1-2)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교회에 많은 일꾼들이 세워져서 하나님의 일을 더욱더 잘하므로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보 교회에도 일꾼이 필요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가지 못하게 되자 자신을 대신하여 성실하게 일해 줄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두 사람의 일꾼을 빌립보 교회에 추천하여 보내게 됩니다. 이 두 사람 중에 오늘은 바울과 디모데의 동역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말씀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교회에 좋은 일꾼들이 세워지는지 또 목회자와 어떤 마음을 가져야 좋은 동역자의 관계를 유지하며 교회를 부흥시켜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Ⅰ. 뜻을 같이한 일꾼

디모데는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시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습니다(행 16:3). 그런 디모데가 제2차 전도 여행시 에베소의 소동으로 바울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바울을 대신하여 빌립보 지역을 순회(巡廻)하며 심방하였으며(행 19:22),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시 핍박을 피해온 바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 전도에 동참하였습니다(행 20:4).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19-20절 말씀입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보거나... 또 함께 일하다 보면 맨 먼저 걸리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뜻'입니다. '뜻'이라 표현해도 좋고 ‘마음’이라 해도 좋고. ‘의미’라고 해도 좋고, '가치관'이라 표현해도 좋은데 본문에 나타난 대로한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뜻'이 서로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누구보다도 바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가 빌립보에 가서 무슨 결정을 내리든 그것은 바로 바울의 결정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또한 목사와 성도들이 평소에는 협력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막상 어떤 구체적인 일을 진행하다 보면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아서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디모데가 항상 마음이 맞아서 일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바울과 디모데 마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역자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다면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서로가 협력하여 귀한 사역들을 아름답게 펼쳐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구체적으로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내가 왜 이 직분을 받아야 하는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실까? 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 꿈, 비전, 목표, 이런 것들이 하나가 되지 않았거나, 그 뜻을 모르고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좇아 행하다 보니까 이런 불협화음의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가 자신의 귀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 발 앞에 부어드리고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렸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저가 나의 죽음을 준비하였도다.”(요 12:7절)며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300 데나리온 하는 값비싼 향유를 발에 부어 낭비하느냐?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지, 하면서 마리아를 비난했습니다. 성경은 이 같은 유다의 발언에 대하여 “실상은 가난한 자를 생각함이 아니라 저는 도적이라”(요 12:6)고 했습니다. 어떻게 한 상황 하나의 일을 보고 이렇게 다를 수 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자신을 제자로 부르시고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가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주님을 쫓지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아서 나타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본문 20절에 보면 디모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가르쳐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오랫동안 사도 바울을 도와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도 일이지만 항상 사도 바울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눈길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뜻을 따라 함께 동역하며 나가는 일군의 바른 자세입니다. 우리 모두 디모데처럼 주님의 뜻을 좇아 교회의 좋은 일군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Ⅱ.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일꾼

교회가 필요로 하는 좋은 일군은 무엇보다도 교인들의 사정을 진실하게 생각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19절에 "교인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하며 디모데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사정을 진실히 생각한다.?는 말은 무슨 일이나 사건을 주관적으로 보지 않고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아주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정직한 일꾼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동체를 들여다보면 여러 사람들이 섞여 있는데 그 중에 잘 삐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삐지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체로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사람들로 어떤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보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자주 삐집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물질적인 이해관계로도 서로 간에 앙금이 생기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본문의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한다.?의 깊은 뜻은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을 걱정합니다. 무엇이 부족한지 어려움은 없는지 내가 도와주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식이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아버지는 자식을 걱정합니다. 산정현교회 고당 조만식장로님이 삼일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아버지 조경학은 그가 갇혀 있는 평양 감옥 주위를 날마다 한 바퀴씩 돌면서 아들의 건강을 빌었다고 합니다. 자식의 어려움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나의 어려움으로 삼고,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파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좋기만 합니다.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좋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도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전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돌아온 것이 너무 기쁘고 반가워서 "이는 죽었다가 다시 산아들이요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눅 15:24)이라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다 알아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원망하며 불평하며 곡해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사정을, 너희 어려움을 진실히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자로 디모데를 천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좋은 일군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는 일군이 좋은 일군입니다. 본문 21-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 하였느니라.? 여기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 자기의 일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맨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지만 서서히 시간이 가면서 그 순수한 마음이 식어지고 변질되어지고 타락하여 자기중심, 자신의 욕심으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은 일편단심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디모데는 많은 연단을 거쳐 오면서 그때마다 자식이 아비에게 순종하듯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디모데를 향하여 "빌립보 교인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하며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목사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이 사람은 내 자식처럼 귀하고 소중하며 믿을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 성도들은 목사님을 바라보며 "오직 나의 형편을 바라보며 나와 가정이 잘되기만을 힘쓰고 애쓰는 아버지와 같은 우리 목사님"하며 나타나는 교회는 부흥하지 말래도 부흥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늘찬양교회의 성도와 목사님의 관계가 이런 부자지간의 아름다움 관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Ⅲ. 연단을 통과한 일꾼

본문 22절입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 하였느니라? 디모데가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함께 로마에 있었습니다. 로마는 기독교인들을 무참히 잡아 처형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카타콤베 동굴 속으로 숨었습니다. 그 때 바울은 디모데를 데리고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있었던 증거들이 성경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빌립보서는 로마에서 쓰여진 옥중서신입니다. 그리고 골로새서도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골로새서 1장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골1:1-2) 이같이 바울과 디모데는 같이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로마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당할 즈음이 되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로 알리고 싶어서 편지를 썼습니다. 이것이 빌립보서입니다. 편지를 써서 누구 손에 보낼까? 하고 생각하다가 드디어 디모데를 생각하였습니다. 로마에서 빌립보까지는 걸어서 40일 왕복 80일이 걸리는 곳입니다. 그 곳에 바울은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 내용이 빌립보서 2장 19-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빌 2:19-24)

바울은 디모데를 소개할 때에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는 바라”(빌 2:22)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연단을 받은 복음의 투사였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22절에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전도하다가 로마 옥중에 갇히는 고난을 당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바울은 힘들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바울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9-13절에 빌립보 감옥에 있으면서 겨울이 되니까 외투와 성경을 가지고 오라고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9-13) 이같이 디모데는 바울이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심부름시킨 일군이었습니다. 궂은 일이 있을 때 부탁한 일군이었습니다. 위험한 일이 있을 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무슨 일이든지 시킬 수 있는 바울 곁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같이 디모데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신실한 믿음의 일군이었습니다.

Ⅳ.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가 된 디모데

루스드라 지역에는 디모데 말고도 다른 동년배의 청년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디모데 한 사람만이 선교 동역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나 횡재가 아닙니다. 디모데 자신이 뿌린 씨앗의 열매요 신앙으로 얻은 결과입니다. 단적으로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첫째,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웃에 있는 더베 교회에도 소문이 나서 더베 교우들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당시 시대적 환경은 부모의 이방 결혼이 칭찬받을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지금이야 다문화시대가 되어서 혼혈아들이 인정받고 떳떳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 혼혈아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도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이런 외면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칭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선하고 청결하게 양심적으로 살았느냐? 를 직접적으로 평가해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칭찬과 더불어 좋은 평판을 얻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디모데가 우선적으로 제자가 될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충분합니다. 더욱이 스승인 사도 바울도 그가 믿음 안에 신실하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딤전 1:2)라고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내면에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딤전 1:5, 딤후 1:5)을 갖고 있었습니다. 디모데의 믿음적인 칼라는 거짓이 없고, 순전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속에 흘러내렸던 믿음과 경건과 정성이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디모데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 날, 그는 사도바울이란 좋은 믿음의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동역자와 믿음의 아들로 관계성을 형성하기 까지 발전 된 것은 모두에게 칭찬받을 만한 귀감이 됩니다.

둘째,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이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여행하였습니다. 누구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멀고도 험한 선교여행을 자원하여 달려갔습니다. 그 길은 영광스러운 길이었지만 힘든 길이었습니다.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함께 가자”고 한다고 해도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를 데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마가는 가겠다고 해도 그렇게 반대했던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루스드라와 갈라디아, 그리고 베뢰아를 갈 때 바울은 디모데를 데리고 갑니다(행 16:4).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디모데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이때부터 바울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신실한 아들, 믿음 안에서 참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들이란 하나란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믿음이 바울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만한 신실함이 바울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아들처럼 100% 신뢰가 가는 사람으로 어디든지 함께 가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교회에 유익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4절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바울은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를 세웠으며, 그 교회를 디모데에게 기쁨으로 맡겼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맡아 사역할 신실한 사역자로 디모데를 선정하였습니다. 디모데의 사역은 바울 사도 자신이 하는 바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분신처럼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 사이에 고대 율법의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되자 새로운 이방인들이 교회에 더 많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할례의 문제가 잘 해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디모데는 몸이 약합니다. 내성적입니다. 나이도 어립니다(대략 21살). 건강과 힘이 지배하던 사회, 가문과 연륜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던 시대에 그 어느 것도 갖지 못한 디모데는 무익한 존재로 역사에서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초대 교회들이 불같이 성장하는 그 현장의 한 복판에 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었고 도미디안 황제시대 때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라틴 교회에서는 디모데의 순교를 기념하여 1월 24일을 희랍교회는 1월 22일로 순교기념일로 제정하여 지킨다고 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코뚜레’라는 말을 아십니까? 코뚜레란 쇠코뚜레의 준말로서 소의 코를 꿰뚫고 그 코에 끼는 고리 모양의 나무를 코뚜레라고 하는데 이 코뚜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한 어미 암소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새로 태어난 두 송아지(성도)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한동안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집도 커지고 제법 일할 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주인은 제법 커진 이 송아지들의 코에 코뚜레를 끼우려 하였습니다. 그때 두 송아지 중 먼저 태어난 맏이 송아지가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한테는 코뚜레를 제발 꿰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때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 네가 알아서 일한다고? 만일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망아지가 되고 말텐데?" "아닙니다!! 주인님, 코뚜레를 해야만 일 할 수 있다는 것은 옛날 생각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제가 코뚜레를 하지 않아도 일을 곱절로 하는 것을 해 보이겠습니다." 할 수 없이 주인은 "그러면 일단 그렇게 해 보자." 하면서 마지못해 승낙했습니다.

그리고는 둘째 송아지 코에만 코뚜레를 했습니다. 그러자 코뚜레를 하지 않은 맏이 송아지는 자발적으로 멍에도 메고 쟁기를 끌었습니다. 뭔가 일이 잘 되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니 코뚜레를 한 동생 송아지도.. 형을 따라 열심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형님 송아지가 갑자기 잔꾀가 떠올랐습니다. "난 코뚜레가 없으니... 자유로운 몸이야. 스스로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어.... 암!!" 그러면서.. 슬슬 농땡이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들켜 가끔 주인이 화를 내면... 주인에게 뒷발질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이상하게도 소가 두 마리가 일하지 않고 한 마리만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한 마리는 코뚜레를 한 작은 소였는데, 혼자서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주인의 친구가 물었습니다.

"여보, 자네, 그 코뚜레 안한 큰 송아지는 오늘 왜 안나왔나?" "응, 어디 보냈어...." "어디로?" "도살장으로!" 도살장으로 보내었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주님 주신 멍에를 메는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코뚜레 안하고 편하게 부담 없이 내 맘대로 나갈 때 영성이 사라집니다. 은혜가 떠납니다. 주인에게 뒷발질하며 대항합니다. 축복이 어떻게 임합니까?

성도 여러분! 디모데와 같은 좋은 일군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뜻을 아는 일군, 사정을 잘 아는 일군, 연단도 잘 받는 일군,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확신하는 일군 이런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