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목회자료

물 근원의 변화 - 변화설교(45번째)

늘찬양 2013. 10. 4. 22:45

♣ 물 근원의 변화 ♣

         왕하 2:19-22,2013.10.06.늘찬양교회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물줄기를 따라 도시가 형성되고, 공장이 들어서며, 산업이 활성화되어집니다. 더욱이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물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부산이나 광주를 내려가다 보면 곳곳에 저수지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천수답시절 저수지들은 농사에 큰 몫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렇듯 물이 생활에 중요하고 귀한 것인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여리고 성 안에 물이 있었는데 그 물이 오염이 되고 썩어서 곡식을 익지 못하게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 같은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씨를 뿌리지나 말 것을 힘써 농지를 개간하고 씨를 열심히 비료를 주며 키웠는데 열매를 수확할 즈음에 가서야 뒤늦게 알아서 그동안 수고한 농부의 땀방울이 허사가 되어버린 것을 알고서 땅을 취며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현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이 때 엘리사 선지자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물 근원으로 가서는 그곳에다 소금을 뿌리며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21절)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결과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졌으며 지금도 맑고 시원한 물이 흘러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죽음의 물을 생명의 물로 변화시킨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Ⅰ. 여리고 성의 상황

본문 19절을 보면 그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답다"고 자찬했습니다. 여리고는 사해 북쪽 끝에서 9㎞, 요단강 서쪽 유대 산악 지대로 오르는 8㎞ 지점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루살렘에서는 35㎞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여리고의 현재 명칭은 `엘리하(Er-Riha)`이며, 매우 작은 소도시(小邑)이나, 지난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도시로서 세계 최초의 문명이 여기서 발굴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의 이정표에도 `지구상의 가장 오랜 도시(World`s Oldest City)`라고 적혀있을 정도입니다. 아울러 여리고는 해면(海面)보다 390미터(825피트)나 낮은 저지대로서 열대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물이 넉넉하여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종려나무가 마을을 덮고 있으며, 무화과나무가 길가에 늘어서 있는가 하면, 바나나, 오렌지, 대추, 야자나무들이 무성합니다. 특히 겨울과 봄에는 여러 가지 꽃향기가 진동하는 향기의 마을로서 여리고의 원 뜻이 `방향(芳香)의 성읍(Place of Fragrance)` `종려의 거리 (City of Plamtrees)`로 불렸습니다. 거기다 여리고 뒤편은 모압 산지가 병풍을 두르듯 둘러쳐 있어서 너무나 경치가 좋은 도시입니다.

이렇게 경치가 좋고 여러 과일과 나무의 꽃향기가 가득하다보니 자연히 문화시설이 발달하고 소득이 높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왕이면 경치가 좋고 문화시설이 넉넉하고 소득이 높은 도시에 사는 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리고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대기 및 수질 오염 등이 잇따르고 각종 범죄와 죄악이 난무하는 도시가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 실례를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에 "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前) 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다는 것은 에덴동산처럼 아름답다는 것이고 애굽 땅과 같다는 것은 평야가 넓고 기름지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을 보면 이미 그때 소돔성은 동성애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고 불신과 사치와 향락이 극을 치닫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8장 2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라고 했고 창세기 19장 25절을 보면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경치 좋고 살기 좋고 잘살다가 멸망한 도시였습니다. 이태리의 문화도시였던 `폼페이`도 문명의 극치를 치달으며 향락에 빠졌다가 화산폭발로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호화 유람선이었던 타이타닉호 역시 먹고 마시다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 호는 어떻습니까?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고 떠들다가 IMF라는 구제금융을 받고 말았습니다. 여리고는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Ⅱ. 병들은 여리고의 물

이러한 여리고 지역에 또 이상한 모습이 오늘 본문 성경에 등장합니다. 19절 하반 절에 "그 여리고 성에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土産)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는 말씀입니다. 농사꾼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병충해가 바로 벼나 토산의 열매들이 과실을 맺지 못하고 추수 전에 낙과(落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리고에 사는 사람들은 토산(土産)의 열매들이 거의 다 익었다가 낙과해 버리는 현상이 태풍이나 목도열병과 같은 병충해 때문이 아니라 물이 좋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양에는 여러 무기질 원소가 섞여있으며 특별히 물속에 포함된 칼륨이라는 무기 원소가 부족하면 식물이 잘 자라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 열매가 완전히 익지 못해서 낙과해 버리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물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많은 나무가 있으면 무엇합니까? 곡식과 나무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이제 막 익어 갈 때가 되면 열매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버리는데 이것이 농사꾼들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물이 좋지 못하다.”고 했는데, 그 ‘좋지 못하다’고 하는 원어의 뜻은 ‘적극적으로 해롭고 악하다.’는 뜻이고, 이 말은 꼭 사람의 심령 속에 그 사람의 본질 성품이 ‘안좋다.’라고 할 때에 나타내는 단어라고 합니다. 똑같은 단어가 창세기 2장 9절과 창세기 6장 5절 그리고 시편 144편 10절에 나오는데 특별히 노아의 심판 직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에서 여기서 ‘악할’, 이 단어가 오늘 여기 ‘물이 좋지 못하다’ 단어하고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물이 좋지 못하다”에서 좋지 못하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악하고 해롭다.’ 라는 뜻으로서 여리고 성의 물이 사람과 토산(土産)에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악하고 해롭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단어는 주로 부패한 사람들의 심성 속에 있는 악한 성품을 나타낼 때에 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속 심령에 있는 악하고 부패한 심령을 나타내는데 쓰이는 단어를 이상하게 이 여리고 성 땅 속의 물에다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의 말씀은 ‘땅의 물에만 적용되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의 심령 속에 깊이 흐르는 물에도, 사람의 심성 속에도 이러한 악한 물이 흐르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어떤 상징적 본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토산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하아레츠’라고 하는데 이는 땅과 거기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소산이란 단순히 땅이 내는 곡식이나 열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땅과 거기 사는 사람, 그리고 짐승을 포함하는 광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병들면 농사가 안됩니다. 물이 썩으면 사람도 짐승도 마실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죽게 됩니다. 그리고 썩은 물은 온갖 전염병균이 발생하는 온상이 되는 것입니다. 모기도 썩은 물에서 서식합니다. 물과 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고 했고 창세기 1장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물과 땅을 동시에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출처 역시 같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4장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결한 한 여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편 다섯을 편력했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은 물 길러 나왔다가 우물가에서 쉬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날 그녀는 거기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생명을 살리는 물이 무엇이며 영원하니 생명의 물이 누구인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을 보면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물이 병들고 썩으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 영혼이 병들고 썩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님을 만나 신속하게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Ⅲ. 물 근원이 썩는 이유

이보다 앞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물이 어떠한 경우 썩는가? 하는 문제를 되짚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수원지에서 끊어지면 썩습니다.

물이 맨 처음에는 수원지로부터 잘 공급을 받아 흘러내릴 때는 조금도 문제가 없습니다. 물도 항상 깨끗하고 맑습니다. 그래서 고기들도 뛰어 놀았고 개천의 나무들도 잘 자랍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풍성한 열매도 맺습니다. 또 어떤 때는 어린이들도 와서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놉니다. 피서 철에는 많은 가족들이 와서 쉬었다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사로 인해서 또는 어떤 외부 환경이나 사람에 의해서 물길이 수원지로부터 끊어졌다고 합시다. 금방 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그래서 이끼고 끼고 물이 썩다보니 냄새가 나고 그 결과 물고기와 주변 나무들도 다 죽습니다. 물론 사람들도 찾아주지 않습니다. 결국 죽은 도랑물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수원지에서 끊어진 물은 썩고 냄새가 나서 죽은 물이 되고 맙니다.

둘째, 물을 흘러내 보내지 않고 받아드리기만 하면 썩습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두 개의 커다란 호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갈릴리 호수요 또 다른 하나는 사해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늘 푸르고 싱싱한 나무들과 새들과 많은 고기들이 뛰어놀고 있고 더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사해 호수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뚝방에는 나무조차 살지 못하여 그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머드팩하는 사람들만 찾아올 뿐 물과 함께 뛰놀려는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호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갈릴리 호수는 위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요단강 물을 받아서 갈릴리 호수에 담았다가 또 사해 호수 쪽으로 흘러 보내기를 쉬지 않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물이 고이고 썩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호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반면 사해는 끝없이 요단강 물을 위로부터 받아드리고 있지만 내려 보내지 않고 가만히 가두고 있다 보니 수분 증발로 인해 물의 염도가 늘어나 고기와 식물이 살수 없는 죽음의 호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Ⅳ. 변화 받은 물

이번에는 여리고 상황과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찾아가 문제 해결을 부탁하였습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19절 상) 여리고 사람들은 물이 좋지 못하여 토산이 중도에서 떨어지는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나아왔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 선지자와 최종 대면하고 엘리야의 겉옷을 입고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의 갑절을 힘입고 내려왔습니다. 여리고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오직 하나님이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엘리사에게 내어놓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문제들을 어디로 가지고 갑니까?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직접 가지고 나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 땅이 나쁘고 물이 나쁜 것을 가지고 사람이 어떻게 고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나의 병들고 죽어가는 심령의 문제, 부부문제,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교회 부흥의 문제 등을 하나님 앞에 갖고 나와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므로 응답받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0절)

치료하시고 해결하시는 힘은 엘리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 그릇도 아닙니다. 새 그릇에 담긴 소금 때문도 아닙니다. 여리고를 회복하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새 그릇’에 담긴 중요한 영적의미가 있습니다.

1) 우리 자신이 새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더럽혀진 그릇입니다. 저 자신은 물론 여러분도 오염되었습니다. 물질에, 학력에, 자존심, 미움, 원망, 시기, 질투, 열등감, 하기 좋은 말 등에 오염이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의 그릇에 제 아무리 좋고 비싼 소금 즉 말씀을 던져도 전혀 반응도 없고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위로부터 오시는 새 영, 즉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성령의 새 그릇으로 준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문제는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 속에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회복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으십시오. 부르짖으십시오. 그래서 영적 새 그릇으로 나를 만드십시오.

2) 우리 자신이 소금이어야 합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데 쓰입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고, 더러움을 몰아내는데 쓰입니다. 더 나아가 소금은 생명을 소생시키는 특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들어가서, 교인 속에 들어가서 , 가정 속에, 직장 속에 들어가서 녹아지십시오. 그래서 소금의 맛과 향과 특성을 드러내십시오. 그러면 교회는 부흥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녹아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문제입니다.

셋째, 수원지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21 하)

믿음의 수원지가 어디 입니까? 교회입니다. 토산은 마음 밭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길갈 밭, 돌짝 밭, 가시떨기 밭을 말씀으로 기도로 찬양으로 예배로 감사로 갈아야 합니다. 그래서 옥토 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물을 주어야 알곡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결코 믿음의 성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원하고, 목사와의 관계가 서원하고, 교회와의 관계가 서원한데 그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 어디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에녹은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고 죽지 않고 하늘로 올리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삶의 힘과 용기를 얻습니까? 돈입니까? 직장입니까? PC방입니까? 쾌락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고 재미를 느낄지 모르지만 주 안에서 새 그릇으로 바뀌어 진 믿음의 사람들의 영적 수원지는 다시 말해 은혜와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나의 힘과 반석과 산성과 요새, 피할 바위, 능력, 방패,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께 두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물의 근원이 되는 영적 수원지 즉 하나님의 전을 찾아 "나는 무언가 내 속에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고쳐야할 성품이 있습니다. 시기가 있고 교만이 있습니다. 내적인 탐닉의 모습, 육적인 모습이 많습니다. 이 모습 이대로는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사람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 고침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나의 기도제목입니다." 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5년, 10년 신앙생활을 해도 내 속의 병든 물은 그대로 놔두고 겉으로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살아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신앙을 중단한 채 세상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Ⅴ. 말씀으로 물을 변화시키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21절)

엘리사는 새 그릇이 이 물을 고쳤다고 하지 않고, 소금이 고쳤다고 하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이 고쳤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모든 능력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확신하고 감사하면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새 그릇이 되고, 소금으로 자신을 녹이며 흘러들어 갈 때,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으로 말씀이 역사할 때에 우리 교회는 죽음이 찾아오지 아니하고, 열매가 중도에 떨어지지 않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병든 심령에 들려질 때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들려질 때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외칠 수 있는 간증이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물의 문제입니다. 즉 내면의 문제입니다. 내 겉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일견 외관상의 모든 모습이 다 사람에게 좋게 보여도 내 속에 결정적인 흠이 있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그 악의 흠, 좋지 못한 결과를 낳게 하는 잘못된 습관과 선입관 등 내가 버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은 악한 행동과 습관들을 고치지 않고서는 결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여리고의 물을 고치기 위해 물의 근원을 찾아 소금을 뿌렸듯이 내 인생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희생과 섬김의 십자가의 도를 찾는 것입니다. 섬김과 순종의 도(道)를 찾는 것입니다. 내 육신이 아무리 멋있고 높은 학문을 가졌다고 해도 내 안에 욕심이 사라지지 못하고 내 의(義)와 혈기가 사라지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나의 영광이요 땅의 영광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영성의 근원으로 나와야 합니다. 모든 방법과 수단을 버려버리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믿음의 소금을 내 심령 안에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여리고의 물을 고치듯이 나를 고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고친 물은 엘리사의 샘(Elisha`s Fountain)으로 명명되어 성지 순례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찾고 있습니다. 마라의 물을 고치시고 여리고의 물을 고치시듯 나의 영적 타락과 나약한 심령을 고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사람을 멋지게 변화시켜 하나님의 큰 영광을 드러내는 생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공부>

1. 여리고 지역에 대하여 아는 대로 설명해 보십시오.

① 여리고는 지구상의 가장 오랜 도시로서 해면보다 390미터나 낮은 저지대로서 열대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② 물이 넉넉하고 평야가 넓게 펼쳐저 있어서 예부터 각종 실과와 꽃나무들이 자라는 종려의 거리로 불렸다.

③ 물이 좋다보니 각종 실과로 문화시설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여리고에 모여 살았다.

2. 여리고 땅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습니까?

① 19절 하반절에 보니 “여리고 성에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② 열심히 씨를 뿌리고 가꾸어온 식물과 과일들이 결실을 하지 못하고 중도에 낙과해 땅에 떨어졌다.

③ 이로 인하여 농부들이 삶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3. 일반적으로 물이 썩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① 지금 한국은 4대강 사업이후 적조 현상과 녹조 현상으로 책임 소재를 가리고자 몸살을 알고 있습니다.

② 수원지에서 물이 끊어지면 썩습니다.

③ 물을 흘러내리지 못하고 받아드리기만 하면 썩습니다.

4. 여리고 사람들이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하였습니

까? 엘리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①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찾아가 문제 해결을 부탁하였습니다.

②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③ 수원지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④ 엘리사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으리라”

고 명령하므로 썩는 물이 변하여 소산을 맺는 물 근원으로 바뀌었다.

5. 그릇과 소금에 담겨있는 영적의미는 무엇입니까?

① 우리 자신이 새 그릇으로 먼저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 새 사람으로 바뀌는 마음의 그릇이 필요하다.

② 우리 자신이 빛과 소금이 되어 섬김과 희생의 모습으로 세상과 삶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

③ 성도가 하나님과의 관계, 목회자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먼저 아름답게 회복되어야한다.

6. 여리고의 물 근원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적교훈은?

① 근본적인 변화의 문제는 내면의 문제이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 속에

예수의 참된 영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썩은 감자처럼 냄새를 내고 만다. 내 속에 있는 좋지 못한 생각과

행동 습관을 고치지 않고는 결코 믿음도 신앙도 도루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② 여리고 사람이 엘리사를 찾았고 엘리사는 물의 근원을 찾아 소금을 뿌렸듯이 내 인생의 근원인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특별히 성령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도록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③ 날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살 수 있도록 말씀의 소금을 내 심령에 뿌려야 한다. 경건의 시간, 묵상과

적용하는 삶을 통하여, 날마다 주님께 기도하는 삶을 통하여 나 자신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