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목회자료

세리장 삭개오의 변화-(변화설교 50번째)

늘찬양 2013. 11. 6. 20:35

세리장 삭개오의 변화

눅 19:1-10, 2013.11,10.늘찬양교회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죄사함 받고 영생의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은 영혼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영혼 구원받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망하며 절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키 작고 볼품없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세상권력과 물질의 부를 통하여 만회하려다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과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변화되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임을 깨닫고 나 중심의 삶, 성공 중심의 삶에서 나눔과 섬김의 사람으로 바뀐 변화의 모습을 통하여 여러분 삶에도 삭개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미 있고,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Ⅰ. 회심 이전의 삭개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무서 소장이었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약 80리 정도 떨어진 요단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 부강한 도시입니다. 여리고는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일찍부터 향료산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금으로 인한 수입이 괜찮아서 여리고를 비롯한 가버나움과 가이사랴 세 지역에 큰 세무서를 두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중요한 세무서가 바로 여리고에 있는 세무서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세무서장으로 오늘의 주인공 삭개오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삭개오가 당시 누렸던 권력과 부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왜 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미워했고 증오했으며, 사기꾼, 도둑놈 취급했는지도 이해가 갈 것입니다.

당시 세리라는 직업은 매국노와 같았고, 사나운 독사와 같을 정도로 여겨서 “산에는 사자가 있고, 광야에는 독사가 있고, 성내에는 세리가 있다.”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삭개오는 남들이 그렇게도 싫어하고 미워하며 증오하기까지 하는 세리의 역할을 맡아서 일해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삭개오의 개인 콤플렉스와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본문 3절에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삭개오는 보통 사람보다 유난히 더 키가 작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키 작은 콤플렉스로 인하여 어려서부터 많은 친구들로 부터 놀림을 받고 상처를 받으며 소외감과 열등감속에 자라났습니다. 그로인해 삭개오는 자신을 조롱하며 무시하는 주위 사람들에 대하여 그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미움과 증오와 복수심의 칼날을 세워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복수하는 길은 내가 저들보다 더 놓은 지위와 권력과 부를 가지므로 당당해지는 것이다. 이 길 많이 내가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인정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여기고 독한 마음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고 힘쓴 결과 세리가 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세리장의 직책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대로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얻었습니다. 요즘말로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과 뜻을 다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돈은 점차 쌓여만 가고 명예와 권력도 높아져 갔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였고, 고독감과 소외감이 더욱 엄습해왔습니다. 더 나아가 과도한 세금을 걷어 민족에게 어려움을 끼치고 있다는 죄책감도 들면서 삭개오는 더 많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삭개오는 사람의 행복이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에 있지 않고, 세상 성공에 있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Ⅱ. 삭개오의 회심

그러던 어느 날 삭개오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높은 관직에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그 정보를 입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예수님께서 자신과 같이 바닷가에서 세관 업무를 맡아 보고 있던 마태라는 사람을 자신의 제자로 불러 함께 일한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도대체 예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사람들이 멸시하고 죄인시하는 세리들을 제자로 삼았을까?”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도 기회가 되면 예수님을 꼭 한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가던 차에 예수님의 여리고 방문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방문하시는 날 삭개오도 흥분된 마음을 가지고 길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거리에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기 때문에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려면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이미 그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또 한 번 ‘키 작은 콤플렉스’를 느끼고 그냥 돌아서야 하느냐! 아니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예수님을 만나보아야 하느냐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포기하고 뒤돌아서기에는 자신의 공허함과 허전함과 외로움이 너무나 컸습니다. 반증 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호기심과 열망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래서 돌아서지 않고 어떻게든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보아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길옆에 있는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여러분 한번 이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그래도 명색이 세무서장이라는 자가 어린아이들처럼 뽕나무 위로 올라가 원숭이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을...누가 보아도 비웃음을 당할 수 있는 조롱의 자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체면이 밥 먹여 줍니까? 우리는 종종 체면 때문에 일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선 적이 한 두 번씩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아야한다는 절박감, 애절함이 있었기에 사회적인 신분과 지위를 다 벗어던졌습니다. 뽕나무 위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은 삭개오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변화’에 대한 설교를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삭개오와 같은 간절함과 애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체면과 자존심과 열등감으로 고민만 하고 있지 나 자신을 내려놓으려는 용기가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프타임에서 고통당하는 사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염려와 근심 속에 사는 사람, 실패와 낙담에서 고통 하는 이들이 ‘나의 인생의 참 주관자는 오직 주님 밖에는 없다’고 믿고 간절히 주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변화의 역사, 열림의 역사, 형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Ⅲ. 변화된 삭개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뽕나무가 그렇게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뽕나무 곁을 지나시다가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발견하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날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뵙고야 말겠다’는 삭개오의 간절한 영혼의 부르짖음이 예수님께 전달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간절히 찾고 찾기를 갈망하는 자를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렘 29:13, 마7:7-8).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부르시고 만나 주실 때에 놀랍게도 지금까지 쌓여있던 스트레스, 외로움, 소외감, 고독감, 열등감 등 무거운 죄의 짐이 일시에 떨어져 나가고 평강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쁨이 그 마음속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가 뭐라고 놀려대도 무관심해도 괜찮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저들을 도와주고 싶고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삭개오는 비로소 인간 본연의 참된 행복과 삶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삭개오는 더 이상 물질의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장 관심거리인 물질을 이웃 사람을 위해 절반을 내어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양심선언을 했습니다(8절). 이 같은 고백은 이제 더 이상 삭개오가 열등감, 죄책감과 고독감의 포로가 아닌 자유인임을 선언하는 내용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과 이웃과 사람을 품으며 도와주며 사랑하며 살겠다는 헌신의 각오입니다. 이렇듯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돈, 돈, 돈 하면서 물질만 추구하던 인생관이 바뀌고 이웃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하려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그리스도께로 향하고 주의 제자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마 4:20,눅 5:2-8).

삭개오에게 이제 하나님의 새 비전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도 못하던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의 축복을 받아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삭개오의 집은 지금 예수님을 맞아 풍성한 잔치를 준비하며 기쁨에 젖어 있습니다. 전에는 돈에 눈이 먼 권력자들이 출입하던 집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의 집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예수께로 돌아오는 선교장소가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삭개오에게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 영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0절에 보면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구원이란 말은 총체적인 의미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영혼의 구원입니다.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많은 것이 변했어도 영혼의 변화가 없다면 그의 변화는 헛된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영적인 변화를 경험했다면 가장 귀한 변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영적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방탕한 자식이 있습니다. 그 자식 때문에 부모의 마음이 늘 아픕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자식이 새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방탕한 자식이 옷을 갈아입었다고 자식이 변했다고 좋아할 부모는 없습니다. 그 자식은 옷만 갈아입은 것이지 새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의 몸은 영혼의 옷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사람들은 육적인 변화가 조금만 있어도 굉장한 변화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방탕한 자식이 옷을 갈아입은 것에 불과합니다. 영적인 변화가 있어야 진짜 변화입니다. 진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영혼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둘째,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나서 엄청난 일을 저지릅니다.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충격적인 결심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돈만을 추구하며 살던 삭개오가 갑자기 돈을 나누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가짜 보석을 두 손 가득히 들고 있던 사람이 진짜 보석을 두 손에 가득히 채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에 있는 것을 놔야 합니다. 삭개오는 영원한 것을 봤기 때문에 유한한 것에 미련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진짜를 봤습니다. 그래서 가짜를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한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를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십시오. 버려야 할 것을 붙잡고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보물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셋째,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돈만을 추구하던 삭개오가 돈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추구했던 부에 대한 욕망을 버립니다. 백성을 착취하던 그가 나눠주는 사람이 됩니다. 진짜 변화는 드러나게 됩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없다면 아직 그가 변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길을 잘못 든 것을 깨닫기만 해도 운전대를 돌려 방향을 바꿉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자신의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사람이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가 진짜 변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넷째, 관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삭개오가 변화되기 전에는 유대인들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원을 받고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자신의 재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되니 유대인들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구원 받은 삭개오에게는 관계의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본래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대신관계, 대인관계, 대물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그런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자신이 변화되면 다른 모든 관계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치 자석의 원리와 같습니다. 자석은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어냅니다. 그런데 극을 바꾸면 서로 당기게 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바뀌기 전에는 서로 밀어내던 대인관계가 내가 바뀌면 서로 잡아당기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렇듯 영적인 변화, 가치관의 변화, 행동의 변화, 관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발견하므로 이런 놀라운 변화의 기쁨과 행복을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맛보며 드러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고 놀랍게 변화되고 회복된 삭개오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여기 삭개오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장하고자 무섭도록 돈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면서 살아온 상처받은 인생이었습니다. 혹시나 여러분 중에 내가 예수 안에 누리는 참된 만족과 행복과 기쁨보다 세상 것을 통해 누리려는 욕구와 욕망이 많으므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일에, 예배드리는 일에, 전도하는 일에 불성실 한다면 뭔가 나 자신도 위장되어진 콤플렉스를 가지고 끝없는 후회감과 열등감, 공허감과 실망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교회에 나와서도 무엇을 끊임없이 소유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끝없이 요구만 하는 반대로 나를 억지로 자랑하고 드러내려고 하는 그런 피곤한 삶, 나약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삭개오의 변화된 첫 모습은 무엇을 소유하려는 삶에서 나누고 함께하려는 삶으로 나 보다 먼저 남을 배려하는 삶의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뵌 후 얻어진 행복감과 구원의 기쁨을 깨닫고 즉시 나눔과 섬김의 자세로 회복되어 예수님과 이웃 사람들을 섬겼듯이 오늘 우리는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 없어질 세상 성공과 돈과 물질욕망을 위하여 살지 말고 참된 행복과 만족과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만을 위하여 나의 모든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공부>

1. 삭개오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당시 3곳에 세무서가 있었는데 어디 어디에 있었습니까?

여리고는 어떤 특징이 있었습니까? 당시 세리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까?

‘세리’ 세무공무원, ‘여리고, 가버나움, 가이사랴’ 3곳에 세무서가 있었다. 여리고의 세무서장

② 여리고는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일찍부터 향료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그로 인해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드리는 지역이었다.

③ 매국노, 사기꾼, 도적놈 취급을 받고 있었다.

2. 삭개오가 남들이 싫어하는 세리의 장이 되기까지 왜 올라갔는가? 삭개오에게 어떤 상처

와 아픔이 있었는가? 그런데 지위, 명예, 부를 다 얻었지만 행복하였는가?

① 키 작은 콤플렉스로 인하여 어려서부터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이로 인해 마음속에 미움, 증오,

복수심을 키웠으며, 더 놓은 지위와 권력과 부를 가지므로 보상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었다.

②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마음은 허전하였고, 고독감, 소외감이 엄습해왔다. 거기다 죄책감까지 다가왔다.

③ 보상 심리, 강박관념으로 고통 하는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아픔을 살펴서 위로해주자.

3. 삭개오가 회심하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한 결정적인 이유 두 가지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취한 행동을 통해 어떤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까?

① 자신과 같은 직업에 있는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②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간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③ 사람들이 길가에 늘어서자 키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④ 예수님을 만나보고야 말겠다는 절박감, 애통함이 있었기에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다 버리고 뽕나무에 오를

수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런 간절함, 애통함이 없기 때문이다.

4.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는 음성을 듣고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가 보여준 멋진 변화에 대하여 기록하시오.

① 지금까지 쌓여있던 스트레스, 외로움, 소외감, 고독감, 열등감 등 무거운 죄의 짐이 떠나가고 평강과 기쁨

이 밀물처럼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② 돈, 돈, 돈만 추구하며 살던 인생관이 바뀌고 이웃과 사회를 돌아보는 섬김과 나눔의 세계관으로 바뀌었다.

③ 삭개오는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선교장소가 되도록 하였다.

④ 영적인 변화, 가치관의 변화, 행동의 변화, 관계의 변화가 일어났다.

5. 변화된 삭개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도전을 받았습니까? 아직도 자신의 콤플

렉스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체적으로 변화되어져야 할 내 모습은?

① 삭개오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장하고자 무섭도록 돈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면서 살아온 상처받은 인생

이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므로 소유하려는 삶에서 나누고 함께 하려는 삶으로 나보다 남을 배려

하는 삶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② 예수 안에서 누리는 참된 만족과 행복과 기쁨보다 세상 것을 통해 누리려는 욕구와 욕망들을 삭개오처럼 내려놓고 주님의 치유와 회복을 구하며 주님 앞에 나가자 그리하면 참된 만족과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될 것

이다.

③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뵌 후 얻어진 행복감과

구원의 기쁨을 깨닫고 즉시 나눔과 섬김의 자세로 예수님과 이웃을 섬겼듯이 잠깐 있다 없어질 세상 것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생명과 영적기쁨을 구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