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눅 1:26-38 2011.05.08.늘찬양교회
이 시간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제가 가정주간에 특별히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택한 것은 주님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 간에 맺어진 깊은 ‘
필레오적 사랑’의 아름다움을 나누고자 함인데 제 본뜻과는 조금 다르게 말씀을 증거 하게 되어 좀 섭섭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째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도 성경의 자세한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과 둘째는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할 예수의 어머니 상이 카톨릭 즉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너무 신격화(神格化)시켜 놓아버려 깨끗하고 순수해야 할 예수 어머니의 상이 오히려 퇴색화되어 버린 지금…… 어떻게 해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잘 드러날 수 있을까? 하고 무척 고민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천주교의 잘못된 교리를 반박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바른 영적 교리를 통해 우리의 믿음생활이 더 한층 은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Ⅰ. 아기 예수님의 잉태
먼저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기 전까지의 배경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본래 ‘괴로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일생은 실제로 슬픔과 아픔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부모나 형제자매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침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만이 그의 유일한 친족으로 나와 있습니다(눅 1:36). 이렇듯 마리아는 맨 처음 성경에서 유명무실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장 16절에 보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통해 마리아의 등장이 시작됩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을 통해 다윗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으며, 성령님의 특별한 은총을 통해 아기 예수까지 잉태하는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축복은 마리아가 똑똑해서 잘나서 거룩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예정과 택하심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리아 자신의 고백이 담겨진 찬양 시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48절에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사 이제 후로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는 고백을 통해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누가복음 1장 49-50절에 ?하나님의 품성들 즉 그의 능력과 거룩하심과 자비하심?을 언급하고 있으며 누가복음 1장 51-53절에서는?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회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마리아는 겸손과 순종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신앙이 돈독한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원죄가 없기 때문에 아기 예수를 잉태할 수 있었다는 천주교의 교리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만일 이 교리가 맞는다면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심이니라.”(엡 2:8-9)
행위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거룩함과 깨끗함을 따를 수 없는 부족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셔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특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불러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탄생이 필요하시다면 이 자리에 앉으신 여러분 중에서 어느 누구를 택하여 구세주를 이 땅에 보내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는 죄 없고 순전한 사람만이 주님을 섬길 수 있고 주님을 잉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오히려 죄 많고 연약하며 나약한자 불쌍한 자, 가난한 자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외모나 혈통이나 족보에 관계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마리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마리아의 나이가 몇 살 때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정혼을 하고 뒤이어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약혼한 처녀가 순결을 지키지 아니하면 신명기22장23-24절의 규정대로 ‘돌로 쳐 죽이는 규례와 법도’가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지어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마리아는?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되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하며 반문하였습니다. 이때 천사는?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약혼한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게 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불명예스럽고 위험한 일이 닥쳐 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주의 계집종이오니 나야 어떻게 되든지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주시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눅 1:38)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생명을 내건 순종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이 같은 고백과 순종을 통하여 ‘절대 순명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참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의 생활이나 경험에 맞지 아니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일이라면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또 고통을 당하여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릴 수 있는 「절대 순명」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Ⅱ. 요셉의 신앙
그러나 문제는 마리아보다 신랑 될 요셉에게 더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와 한 번도 관계한 일이 없는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불결한 처녀로 생각하고 조용히 헤어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의 천사가 꿈에 현몽하여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마 1:18-25)는 말씀을 듣고 요셉은 다윗의 후손답게 믿음으로 순종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삼았으며 더욱이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는 놀라운 순종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참 신앙의 부부는 물질이나 가문 또는 외모나 겉모양을 중시하여 맺어지기보다는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라보기 때문에 한번 맺어진 부부관계는 영원한 지속력과 단결력이 있습니다.
기분이 좀 상한다고, 좀 섭섭하다고, 몇 번 티격태격 다투었다고 금방 헤어지거나 다투는 모습이 아니라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며 끝까지 사랑하는 부부”(고전 13:7)가 참 신앙의 부부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요셉과 마리아도 그 같은 아름다운 사랑과 정을 나누었던 행복한 부부였음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의 순수한 ‘에로스적인 사랑’에 어떤 신적인 면을 가미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드렸으면 좋겠습니다.
Ⅲ. 마리아의 생애
이번에는 마리아의 생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결혼한 후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정답게 살았습니다. 그때에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영을 내려서 ?다 호적 하라?고 하였습니다. 호적 하라는 말은 본적지에 가서 이름을 등록하라는 것인데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등록시키는 목적은 세금을 매기는 것과 군인을 뽑는 징병을 하기 위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요셉은 유대인이었으므로 총독의 명령을 따라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그 당시 마리아는 출산이 곧 다가오는 때였으므로 무척 힘든 여행길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해보니 여관방마다 사람들로 꽉 차서 방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황한 요셉은 여관주인에게 사정사정하여 마구간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돈 몇 푼을 주고 겨우 마구간에서 밤이슬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다 덮친다는 식으로 그 밤을 못 새우고 구약에서 예언한 대로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말구유 안에 누이며 남들처럼 따뜻하게 못해준 것에 대해 얼마나 마음이 아파했을까요? 그런데 이 아픈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는 죽이라는 유다 헤롯왕의 명령 때문에 급히 밤에 보따리를 싸들고 몰래 성을 빠져 나와 애굽으로 피난 가서 사는 신세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피신하며 또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두려움의 공포를 느꼈을까요?
1. 소년 예수
그러나 몇 년이 안 되어 헤롯왕이 죽게 되자 다시 요셉과 마리아는 정든 나사렛에 돌아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마리아는 맏아들 예수 외에도 야고보를 비롯한 아들 넷과 여러 명의 딸들도 낳았습니다. 특별히 맏아들 예수는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수 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가정은 아침마다 경건한 가정예배를 드렸으며 그로 인해 전에 알지 못했던 성경의 여러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12살 되던 해에 유월절이 되매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소년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율법학자들과 앉아서 말씀을 듣고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가 이렇게 말씀에 심취해 있는 것도 모르고 당연히 자기를 따라 올 줄로 알고 하룻길을 돌아가다가 예수가 없는 것을 아시고 놀란 나머지 허겁지겁 뛰어 성전으로 되돌아와 보니 예수님이 성전에서 율법사들과 말씀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반가와 하며 예수를 꾸중하듯 ?여태 까지 여기에 있으면 어떡하느냐? 난 네가 없어진 줄 알고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아느냐??하자 예수는?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눅 2:49)하며 거꾸로 핀잔을 당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바로 그때 선지자가 하신 말씀이 비로소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예수를 눈여겨보셨던 마리아!.... 그런데 예수의 나이 18세가 되던 해였을까? 남편 요셉이 죽게 되자 어린 나이의 예수는 소년가장이 되어 홀어머니 마리아와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러한 이유로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30세 때 되서야 시작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이 듭니다.
2. 청년예수
예수와 곁에서 오랜 시간을 지켜보았던 마리아는 예수가 보통아이와는 전혀 다른 범상한 인물임을 여러 면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하인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포도주가 없다?고 알렸을 때에 예수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너희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는 명령을 하였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를 알지 못하였다면 이런 요청은 감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때로는 예수님을 의심하고 믿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에 보면 예수님의 친족들 즉 그 모친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공생애 3년 동안 거의 집에는 안 들어 오셨기 때문에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닌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 아들이지마는 또 한편으로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알면서도 예수님 때문에 늘 마음조리며 많은 염려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33세가 되시던 해에 유대인과 로마 병정들에게 끌려가서는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몸은 가죽 채찍으로 맞아 살점이 떨어지고, 온 몸에 피가 수없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끝내는 골고다 십자가에서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고 가슴에 창이 박히는 슬픈 광경을 보셔야만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 십자가에 매어달려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이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하고 다시 어머니에게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요 19:27) 하시며 생전에 다 나누지 못했던 모자간의 사랑을 안타까워하던 예수님과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시체가 되어 내려오기까지 조용히 바라만 보고 계셨던 마리아 그가 내려온 예수님의 시체를 무릎에 안고 오래오래 흐느끼며 통곡하셨던 어머니 마리아! 여인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아픔과 슬픔을 겪은 여성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희생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것이기는 하지만 유난히 마리아의 인생은 처음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아픔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였기에 마리아의 순명의 정신이 없었던들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기에 앉아 계시는 저의 어머님과 아내! .... 어쩌다 저 같은 자식을 낳아서 또 남편을 만나서 새벽에 단잠도 자지 못하고 교회에 나와 졸리는 눈을 억지로 비벼가며 말 같지도 않은 설교를 들어주시는 어머님! 사택이 변변치 못해 두 아이를 나누어서 키워야하는 아내의 모습! 그래도 설교시간에 졸면 안 된다고 호통 치는 아들 목사 앞에 섬칫 놀라 잠을 깨는 홍희표 권사님의 모습을 보며 그저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뿐임을 이 자리를 빌려 용서와 감사를 드립니다.
Ⅳ. 마리아의 마지막 삶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남은 생애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생전에 예수의 뒤를 열심히 쫓았던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따라 다녔습니다. 아마 사도 요한도 아들 예수님처럼 섬기며 쫓았을 것이 분명 합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마리아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마리아가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하였다.?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마 마리아도 베드로처럼 예수의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열심히 복음을 증거 하다가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무덤은 현재 예루살렘에 남아 많은 순례자들의 참배를 받고 있습니다.
결론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일생을 통해 한 많고 파란 많은 여성의 한 일대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마리아의 숭고한 순명의 정신과 함께 요셉의 한없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예수와의 짤막한 만남 속에서 누렸던 행복한 시간들... 지금은 비록 이렇게 살다가 가지만 훗날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다.? 하심을 믿은 이 여인 마리아! ……
이런 아름다운 어머니의 사랑이 천주교에서는 너무 미화되고 과장되어 심지어?마리아 상?까지 만들어 신격화 하다 보니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축소된 것이 아플 뿐입니다. 마리아는 숫처녀로 인생을 살다가 가지도 않았으며 또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교리도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평범한 한 여성이었지만 그녀의 모습은 가정의 달을 맞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숭고한 어머니의 희생정신과 사랑에 깊은 감동을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버이의 사랑에 깊이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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