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인물강해

헤로디아와 살로메

늘찬양 2011. 4. 16. 00:07

                헤로디아와 살로메

           막 6:22-29,2011.04.17.늘찬양교회

 

오늘은 아버지의 생일날 많은 하객들 앞에서 요염하고도 멋진 춤을 추어서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로부터 “참 잘 했다. 네가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는데 큰 상을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 나라의 반이라도 달라면 너에게 줄 것이니, 너는 무슨 상을 받기를 원하느냐?”(막 6:22-23)는 요구에 어머니 헤로디아와 상의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던 선지자 침(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는 황당한 청원을 하므로 헛된 교만과 과시욕에 빠진 아버지 헤롯 안디바로부터 끝내 침(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생일날 내오게 하므로 기쁨의 생일날이 피의 살인 현장이 되도록 만든 헤로디아와 그 딸 살로메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희대의 살인 현장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헤롯 안디바의 헛된 욕망과 교만에 대하여, 그리고 헤로디아와 그 딸의 무자비한 청원 속에 담긴 복수전을 통하여 잘못된 복수심이 얼마나 무서운 비극을 불러오는가를 깨달아 바른 삶, 행복한 가정,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Ⅰ. 헤롯왕 안디바의 아내 헤로디아

 

헤롯 1세가 유대 분봉왕으로 있던 때에 아기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불러 가만히 아기가 있는 곳을 알아 오라고 했으나 동방박사들은 천사들의 지시를 따라 헤롯에게 돌아가질 않았습니다. 헤롯 1세은 유대 왕이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 위치가 불안한 나머지 그 지경에 태어난 두 살 아래 남자 아이들을 모두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철없는 아이들이 애꿎은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헤롯 1세도 죽고 그의 넷째 부인이 낳은 아들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으로 다섯째 부인이 낳은 헤롯 빌립은 팔레스타인의 외각지대인 이두대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봉하였습니다.

헤로디아는 헤롯 대왕의 아들인 아리스토불로의 딸로서 헤롯왕 빌립과 결혼하여 딸 살로메까지 낳았습니다. 헤로디아는 헤롯 빌립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형인 헤롯 안디바와 불륜에 빠져 남편 빌립과 이혼하고 재혼하였습니다. 헤롯왕 안디바가 자신을 비롯하여 총 10명의 아내를 거느렸음에도 자신의 남편을 차버리고 형의 아내로 들어간 것은 그만큼 헤롯 집안이 아버지 헤롯 대왕 때부터 치정과 복잡한 결혼 관계로 혼란을 빚어 왔던 참으로 음란한 가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더욱이 헤로디아의 흑심은 자신의 남편 빌립이 다스리는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외각으로 성장 가능성과 영토내에서의 영향력이 매우 미약하였지만 ‘아주버님’ 안디바가 있는 갈릴리 지방이 앞으로도 성장가능성이 있고 교통중심지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욕심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 남편을 차버리고 형의 아내로 들어간 것입니다. 헤로디아는 결혼을 자기 유익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즉 개인적인 욕정을 채우기 위해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 남편을 차버렸습니다. 그런 이후에 헤로디아와 헤롯 안디바는 부끄러움을 고사하고 떳떳하게 머리를 쳐들고 다녔으며, 또 공식적인 재혼절차를 밟음으로서 정식부부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불의를 겉으로 잘 포장하기만 하면 진리가 되는 것처럼 자신들의 악행을 감추고자 혼인식을 행한 것입니다. 이처럼 헤로디아는 기회주의자로서 참으로 간교하며 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의로운 심판주이신 하나님은 그 모든 사정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성경 하박국 2장 9-10절에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네가 여러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너로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하였으며

잠언 27장 20절에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9장 6절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셨건만 헤로디아는 만족함이 없는 권력과 정욕에 눈이 먼 나머지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륜의 도덕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사회에 음란문화가 조성되고 윤리도덕이 파괴되었습니다.

 

                Ⅱ. 헤로디아의 적개심과 복수심

 

자고로 남성은 여성을 조심해야 한다는 선인들의 말을 무시하고 헤롯 안디바는 육신의 정욕과 자신의 교만함에 빠져서 제수를 아내로 빼앗고 또 아내의 요구라면 그것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다 들어주는 그런 공처가이었습니다. 하지만 헤로디아는 무한한 욕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 여자이었기 때문에 헤롯 안디바는 헤로디아에게 많은 시달림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커다란 문제가 터졌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생일날 기념석상에서 아주 끔찍한 살인 사건이 자신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인 침(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헤로디아와 헤롯 안디바가 저지른 불륜에 대하여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막 6:18)고 강하게 책망을 하였습니다. 헤로디아와 헤롯 안디바가 불륜을 행하고 잘못된 혼인식을 하였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막강 권력 앞에서 그 누구도 이들의 악행을 비난할 수 없었는데 침(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과감하게 책망하고 나선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은 사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더 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침(세)례 요한은 목숨을 내놓고 이들의 불륜과 잘못된 결혼을 지적하였습니다.

그 순간 헤로디아와 헤롯 안디바는 회개하며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자신들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행위로 여기고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저를 죽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침(세)례 요한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영적지도자로 선지자로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 것을 아는 고로 헤롯 안디바는 헤로디아가 “당장에 그를 죽여 없애야 편히 살 수 있다.”고 분노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옥에 가두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헤로디아는 침(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어떡하든 침(세)례 요한을 죽여야만 내 직성이 풀릴 것이다.”며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침(세)례 요한을 죽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헤로디아가 침(세)례 요한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게 됩니다. 그것은 남편 헤롯 안디바가 자신의 생일날에 대신들과 천부장들 그리고 갈릴리의 귀인들을 초청했습니다. 연회 석상에 마련된 술과 각종 호화음식으로 모두들 흥겨워하고 취해 있을때 마침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연회석 가운데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음란적인 춤을 추며 헤롯과 함께 동석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헤롯 안디바 역시 자신의 멋진 딸이 많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자 은근히 자랑하고픈 마음에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7절) 술과 흥에 취한 상태에서 그는 매우 어리석은 말을 내 뱉은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마가복음을 보면 "또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막 6:23)고 맹세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는 취중에 어리석은 약속을 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헤로디아가 절대로 놀칠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 딸 살로메를 향하여 손을 흔들며 내게로 오라고 손짓했을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저가 나가서 그 어미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고 묻는 장면을 통해서 그런 상황을 능히 짐작해볼수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딸 살로메에게 “침(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24절)고 명령하였습니다. 살로메는 급히 왕에게 돌아가서 “침(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25절)고 청원하게 됩니다. 이렇듯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조차도 음란과 보복심의 미끼로서, 정치적인 수단으로서 이용하는 악행을 저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맺어져야할 순수한 애정관계를 자신의 정욕을 채우고 보복을 위한 중간 대리자로 사용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를 통해 헤로디아가 얼마나 분노와 정욕과 적개심의 노예가 되어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소원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22-23절)고 호언장담한 헤롯 안디바는 술자리에서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무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였던 것 같소 다른 것은 몰라도 침(세)례 요한의 머리 많은 안 되오! 그러니 애야 다른 것을 부탁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건만 안디바는 헤로디아의 따가운 눈총과 아울러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생일 참석자들이 나의 권위를 무시하고 나를 힘없는 지도자로 인식할 것이다. <저가 얼마나 무능했기에 전에도 아내를 둘씩이나 잃도록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였지 않았느냐?>며 수군거릴지도 모른다.”는 자격지심에 자신의 양심이 허락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택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하여 감옥에 갇혀있던 침(세)례 요한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연회석상의 노리갯감으로 순교의 제물이 되어 소반위에 머리가 담기고 말았습니다. 흥겨운 파티장에 피비린내가 덮었습니다. 요한이 목이 베어져 쟁반에 담겨 온 것입니다. 붉은 핏방울이 쟁반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입을 벌려 저주를 퍼 부을 것 같은 목이 담긴 쟁반이 살로메에게 주어졌고, 살로메는 이 쟁반을 받아서 헤로디아에게 주었습니다. 헤로디아는 멋진 파티복이 핏방울로 얼룩졌지만 개의치 않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침(세)례 요한의 목이 담긴 쟁판을 들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이와 같은 헤로디아의 악행은 이스라엘 7대왕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악행과 맘먹습니다. 이세벨은 포도원을 강탈하기 위해 남편 아합 왕의 힘을 빌려 죄 없는 나봇을 죽이게 했습니다. 그런 반면 헤로디아는 자신의 적개심과 분노의 보복심을 채우기 위해 딸과 남편의 힘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선지자 침(세)례 요한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Ⅲ. 침(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

 

헤롯 안디바는 침(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이후 늘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잠을 자다가 놀라서 깨어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매일 식은땀으로 이불을 적셨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헤롯 안디바가 예수님이라는 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과 이적을 행하신다는 말을 듣고서는 마태복음 14장 2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는 침(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 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더욱이 누가복음에서는 자신이 죽인 요한이 살아나지 않고야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렇듯 헤롯 안디바는 자신이 죽인 침(세)례 요한이 살아 돌아와 예수 안에서 역사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점은 당시 분봉왕으로서 남자이었던 헤롯 안디바도 꿈에도 나타나는 선지자 침(세)례 요한으로 고통을 당했는데 심지어 직접적으로 침(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 헤로디아의 영적, 육적 심리상태는 어떠했을까요? 정말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정말 그녀는 세상의 최고 악처로 뽑히기에 충분합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헤롯 안디바 보다도 더 고통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술이나 마약을 하지 않은 면 제 정신에 잠을 못 이루었을 것입니다. 보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히 갑니다. 그리고 그 끝은 비참한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파스칼은 “하나님께서는 길을 알 수 있도록 캄캄한 밤하늘에는 별을 주셨고, 우리의 가슴에는 양심을 주셨다.” 말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것이 양심입니다. 죄를 지으면 두렵고, 불의를 행하면 떨립니다. 양심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살 수 있어도 양심의 소리에는 귀를 막을 수 없습니다. 양심의 소리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9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말씀하고 계시듯이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통하여 우리 속에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 그리고 그 딸 살로메는 수많은 회개의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침(세)례 요한의 질책을 받고 확실하게 돌아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복수의 화살로 바꾸어 대 살인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이런 예화가 생각납니다.

한 어머니가 5살짜리 외아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동네에 나와서 개구쟁이 친구들에게 얻어맞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얻어맞고 울면서 집으로 들어오면 그 집에서는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골목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이 녀석아, 넌

바보같이 매일 매만 맞고 다니냐! 당장 나가! 나가서 때리고 들어 와! 다시는 매 맞고 들어 와서 울면 가만 놓아두지 않을 테야! 얼른 나가서 때리고 와!"

귀한 아들이 친구에게 얻어맞고 우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생각할 어머니는 아무도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참 중요합니다. 이왕 친구와 싸워서 얻어맞은 것도 속이 상하는데 엄마에게까지 얻어맞으며 야단맞을 때 어린 마음은 얼마나 비참해지겠습니까? 그리고 그 마음속에 어떤 쓴 뿌리가 생기겠습니까?

그럴 때에는 먼저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어머나, 우리 똘이가 얼마나 아프겠니? 가엾어라" 하면서 엄마는 일단 아들을 꼭 안아 주고 눈물을 씻어 주며 아픈 곳을 만져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조용히 위로해 줍니다. "똘이야! 그래도 넌 참 훌륭했어. 네가 끝까지 친구를 때

리지 않고 참은 건 아주 훌륭한 행동이야. 남을 아프게 하는 일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란다

. 우리 그 친구를 용서해 주자."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복수심과 원망을 사랑으로 녹여주고 오히려 용서해 줌으로써 진정한 승자가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빠와 다투고 나면 끝까지 말을 안 하면서 요리조리 골탕을 먹이며 복수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나 우리 집에 조금 손해를 끼친 이웃 사람을 향해 미움과 원망을 품고 적대시 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인간의 모든 한계를 초월한 온유

함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할 만큼' 온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이며 이 세상도 바로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의 말씀입니다.

헤로디아와 그 딸 살로메 그리고 헤롯 안디바 모두가 악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어떤 충고나 양심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다보니 제수씨와 결혼한 남편 헤롯 안디바, 아주버님과 결혼한 아내 헤로디아, 어머니의 살인적 요구에 그대로 순종한 딸 살로메의 모습, 이들은 함께 모략하여 가정의 질서를 무너뜨렸으며, 사회의 질서를 혼란시켰고, 진리와 정의의 질서를 왜곡하였으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염치와 절제조차도 무시한 채 자기 욕정이 허락하는 대로 자기 육체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한 최악의 가족공동체였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교만과 쾌락의 정욕과 복수심의 노예, 대리만족의 노예로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삶, 경건한 삶, 예배하는 삶,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