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인물강해

실로암 소경

늘찬양 2011. 3. 18. 15:21

         실로암 소경

요9:1-12,17,24-34,2011.02.25.늘찬양교회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조한 광야가 넓게 퍼져있다 보니까 작은 바람에도 먼지나 모래가 많이 날려 이로 인한 안과질환 환자들이 다른 환자들에 비해 비교적 많은 것이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소경은 특이하게도 선천적인 소경으로 날 때부터 소경된 자였습니다. 이렇게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생계를 유지 하기위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앉아서 “한 푼 줍쇼?”하며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Ⅰ. 소경을 중심으로 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

 

그때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길을 지나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2절)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3절)고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먼저 나서서 예수님에게 “이 사람의 소경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2절)하고 물은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먼저 나서서 소경에 대해 물은 것이 그 소경에 대한 제자들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 때문일까요? 아니면 어떤 다른 흑심이 숨어있어서 그렇게 한 것일까요?

그 당시 유대인들은 치유가 불가능한 몹쓸 질병(문둥병, 중풍병, 앉은뱅이, 벙어리, 소경)이나 극심한 육체적 고난을 당하는(욥과 그의 가족) 사람들에 대하여 무조건 죄의 결과로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현재의 고통스런 삶이 자신의 죄뿐만이 아니라 조상의 죄와도 관련이 있다고 믿었습니다(출 34:7). 그래서 제자들은 통상적인 생각과 관념을 가지고 예수님께 물은 것입니다.

저는 이 모습을 생각해보면서 지금 제자들이 자신들의 핑계점을 찾아 이 위기를 넘어가고자 먼저 예수님께 소경의 죄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은 제가 전철을 타고 여행을 할 때 구걸하는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나타납니다. 이중에는 소경도 있고 또 정신박약아도 있고 심한 중증장애인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참 불쌍하다’ 하고 생각이 나서 돈 몇 푼을 던져 주려다가도 문득 “아니지 저 사람이 이 돈을 다 갖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 뒤에는 누군가 저 사람들을 조정하는 패거리 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놈들만 수지맞게 해주지 안돼 절대 도와주지 말자.!”하며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구제를 하지 않고 돈 몇 푼을 아낍니다. 불쌍한 마음이 생기면 긍휼함의 모습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이유를 묻지 않고 구제를 해야 하는데 자꾸 합리성을 찾아 나눔의 기회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나의 잘못된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쁜 모습이 지금 제자들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저 소경은 죄인입니다. 그 부모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였거나 아니면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죄를 지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 죄 값의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냥 지나가십시다.” 하는 뜻이 더 많이 내제되어 있는 제자들의 발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같은 제자들의 마음을 예수님은 벌써 읽으시고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3-4절)고 응답하셨습니다.

 

Ⅱ. 소경이 고침을 받아야할 이유

 

이 말씀 속에는 제자들이 소경을 회피하며 합리성을 찾으려는 마음에 대해 일침을 가하며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이 이런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리고 너희들이 나의 제자가 된 목적도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목적 역시 이 땅의 어두움에 속해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빛의 자녀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라 그런즉 너희는 낮에 속하였고 빛의 자녀이니 세상에 나아가 빛을 비추어라 빛의 열매를 맺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를 부르신 하나님의 참 뜻이니라”며 소경이 고침 받아야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으로, 빛으로, 참 기쁨과 평강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어두움에 속하여 낙심과 절망과 근심의 그늘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의 은혜아래 이끌어 내야 합니다. 안일함과 게으름과 핑계로 그럴듯하게 피해가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길가다 강도만나 자의 참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Ⅲ.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시기 위하여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7절)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소경은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실로암 물로 씻자 깨끗하게 되어 밝은 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영적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첫째는 순종이 기적을 만든다는 원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소경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였기 때문에 시각은 0(제로)이었지만 청각은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소경들이 앞을 보지 못하고 귀로만 듣다보니까 청각 하나만큼은 보통사람의 두배 정도 잘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예수님께 자신의 눈을 고쳐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테테하고 뱉더니만 진흙을 이겨 자기 눈에 바르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7절)할 때에 굉장히 기분이 나빠서 불순종하여 영원히 소경으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귀로서 땅에다 침을 뱉고 흙을 이겨가지고는 자신의 눈에 바르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소경은 절대로 실로암 못에 가는 것을 기분나빠하거나 또는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여 나갔을 때 완전하게 순간적으로 깨끗하게 고침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영적원리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하는 명령이 무척 단순하고 독특하고 개인적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는 단순하고도 독특하게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소경에게 예수님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소경이 직접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과거나 죄를 묻지 아니하셨습니다. 물론 부모의 죄 또한 징책치 아니하시고 그저 단순하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기만 하면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단순합니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의 과거가 어떠했느냐? 그 집안의 부모와 가문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은 아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저 단순하게 “주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6개월씩의 학습과정을 거쳐야 하고 특별한 치료클리닉이 동원되어야 눈을 뜨게 되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복음은 단순합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만 외쳐도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처럼 구원은 단순하고도 개인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 한마디만 믿고 순종하여 나간결과 밝히 눈을 떠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나는 병고칠만한 능력 없다든지, 저 사람은 눈을 뜨거나 병고침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든지” 하는 생각 등으로 어두움에 속한 자를 이끌어내어 병을 고쳐주거나 또는 빛의 자녀로 만드는 전도자의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2-8) 하였듯이 우리는 어두움에 속한 자녀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Ⅴ. 눈이 떠져 보게 된 소경

 

예수님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눈을 뜨게 된 소경은 자신의 보게 됨을 믿는 이웃사람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놀라운 고백을 담대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자신이 전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소경이었으나 지금은 눈을 떠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25절).

눈먼 소경의 답답함에서 해방된 이 사람은 소경으로 있을 때 행하던 걸인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어 행동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얼굴은 성전 문에서 구걸하던 소경인데 행동은 전과 전혀 다르다보니까 이웃 사람들 간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저 사람 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구걸하던 소경이 맞아? 아니 지금은 말짱하게 두 눈을 뜨고 다니잖아 거기다가 저 핸섬해진 모습 좀 봐 전에 구걸하던 소경과 얼굴이 같은 형제가 아닌가?”(8절)하며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두 눈을 뜨게 된 소경은 자기 때문에 이웃사람들끼리 서로 말다툼 하는 것을 보고 “여러분! 제가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였던 소경이 맞습니다. 예수라 하시는 분이 저에게 오셔서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서는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11절)며 사실 그대로를 이웃사람들에게 간증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책잡아 벌주려는 바리새인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아는 것은 내가 전에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은 이렇게 보게 되어 여러분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25절)며 이웃사람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통해 분명하게 보게 되었음을 간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계속하여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16, 26절)며 자꾸 추궁하자 소경은 “당신네들이 이렇게 자세하게 그분에 대해서 알려하는 것을 보니까 당신들이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하느냐?”(27절)며 되묻자 이들은 “너는 그의 제자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28절)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런 티격태격함 속에 소경은 점점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신 분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아 가는데 맨 처음에는「예수」(11절)라 하였고, 두 번째는「선지자」(17절)라 하였고, 세 번째는「하나님으로 부터 보냄을 받은 자」(33절)로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소경은 멀었던 눈을 깨끗하게 치유 받고 단순하게 세상만 바라본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영적 눈까지 환하게 열려져서 자신을 고쳐주신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시아요 선지자요 구원자이심을 신실한 마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 증거가 38절에 “주여 내가 믿나이다.”고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소경은 주님으로부터 영. 육간에 열려지는 은혜의 축복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자로 끝나지 말고 성령 충만을 받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 주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증인의 삶과, 질병에 걸려 고통 하는 자들, 마음으로 시험에 들어 근심과 절망과 낙담에 빠져 헤매는 자들에게 찾아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심어주는 빛의 자녀 낮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Ⅵ. 소경이 받은 은혜

 

1.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

실로암 소경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불행한 출생이었습니다. 신체적인 결함으로 인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희망과 목표를 상실한 채 길거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여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입니다. 소경이요 거지인 실로암 맹인이 길에서 구걸하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많은 만남 중에 최고의 만남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로암 소경은 우연한 기회였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두 눈을 떠서 보는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만남을 통해 특별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좋은 부모를 만납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납니다. 정다운 친구를 만납니다. 사업을 하다가 신실한 동역자를 만납니다. 최고의 배우자를 만납니다. 이렇듯 온갖 만남의 연속이 우리의 인생살이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런 귀하고 아름다운 만남으로 행복을 누리며 은혜와 기쁨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잘못된 만남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로암 소경은 인생 최고의 만남인 예수님을 통해 육신의 눈과 영혼의 눈을 뜨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귀한 영적 만남과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을 분명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영혼의 눈을 뜨게 합니다. 신령한 눈을 뜨게 되면 부르심의 소망과 하늘 나라에 예비 된 기업의 영광과 날마다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능력의 원천을 발견하게 됩니다(엡 1:17-19). 실로암 소경의 부모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유대인들로부터 출교를 당한다.”(22절)는 사실 앞에서 두려움에 자식이 두 눈을 뜨게 해주신 예수님에 대하여 분명하게 증거 하지 못하고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보시오 그러면 저가 분명하게 답하리이다.”(21절)며 답변을 회피하였습니다. 하지만 실로암 소경은 두 번째 다시 불러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26절)는 질문에 당당하게 “내가 예수라 하는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씼었더니 내가 보게 되었다고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또다시 듣고자 하는 것을 보니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27절)고 대답하였습니다. 실로암 소경은 자신이 두 눈을 뜨는 순간 이미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들도 나처럼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은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지 그의 제자가 아니다.”(28절)며 분노하며 당황하였습니다.

이렇게 실로암 소경은 당당하게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고 그들에게서 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34절).

3.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소경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그 길은 분명 십자가의 길입니다. 넓은 고속도로와 같은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가시밭길과 같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실로암 소경은 그런 고난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다시금 만나서 정식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 간절함 뿐이었습니다. 그런 소경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출교당한 실로암 소경을 예수님께서 다시 만나 주셨습니다. 실로암 소경은 지금 자기 앞에 서계신 분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35절) 즉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실로암 소경은 대답합니다.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6절)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37절)고 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실로암 소경은 순간적으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내가 믿나이다.”(38절)며 절하였습니다.

실로암 소경은 33절에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며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분명 하나님의 아들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신 앞에 나타주신 영광과 기쁨의 은혜를 가늠할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로암 소경에게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39절) 말씀하시며 진정한 영적 눈을 뜬소경을 축하하며

한편으로 율법과 죄악에 눌려 영적 눈을 뜨지 못하는 바리새인들과 세상 사람들을 무서운 불로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Ⅶ.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음으로 보게 된 소경의 기적이 오늘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최대의 메시지는 “너희가 소경이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41절)는 말씀으로 영적으로 소경된 바리새인들을 지적하며 교회 안에서도 입으로 예수를 주라 믿고 시인하며 주일성수도 잘하고 십일조도 지키며 예배생활, 봉사생활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내가 믿은 예수를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까지 진정한 예수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실로암 소경이 성경지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였으나 그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교를 당하는 고난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자신이 예수님의 손길을 통해 보게 된 것과 그리고 이 같은 기적을 행한 사람이 창세 이후로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이 선지자나 메시아가 아니면 그 누구이겠느냐?”(32-33절)며 담대하게 간증하였듯이 더 나아가 출교한 소경을 다시금 만나서 위로해주신 예수님의 은혜 앞에 머리를 숙이고 절하며 “주여 네가 믿나이다.”(38절)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듯이 우리가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감격과 기쁨을 잊어버리지 말고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빛과 소금의 선한행실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날마다 들어냄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푸르고 푸른 성령의 계절 그리스도의 계절이 다가오도록 힘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