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인물강해

도르가의 작은 봉사

늘찬양 2011. 6. 15. 23:45

♣ 도르가의 작은 봉사 ♣

행 9:36-43,2011.06.19.늘찬양교회

 

대해라고도 불리는 지중해 아름다운 바닷가에 욥바라고 하는 항구도시가 있습니다. 이 욥바는 인천항과 같은 큰 항구 도시로서 옛 부터 무역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다 보니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욥바에 ‘도르가’ 헬라어로는 `다비다`라고 불리는 여성이 살고 있었습니다.

‘도르가’라는 이름은 날렵하고 우아한 자태를 가진 ‘영양(=산양)?혹은?사슴? `노루‘의 뜻으로서 아마 도르가는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나누어주는 즉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났던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그 바느질 솜씨만큼이나 아름답게 자신의 생을 수놓아 간 사람입니다. 그가 사랑하고 함께 했던 여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세상에서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남편을 일찍 잃은 과부들이었습니다. 다비다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베풀었습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아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오드리 햅번’이라는 영화배우가 있습니다. 그녀는 가냘픈 몸매와 둥근 눈 그리고 밝은 미소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주목을 한 눈에 받았으며, 아울러 세상에서 많은 부(富)와 명성(名聲)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배고파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그녀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드리 햅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오드리 햅번`을 만난 것은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가 아니고 수없이 막을 올리고 내렸던 그녀의 영화에서가 아니라 메마르고 굶주린 땅 아프리카에서였다."

어느 적막한 밤 그녀는 오랜 투병 끝에 고요히 눈을 감았지만 그녀는 짧은 글을 우리의 가슴에 써주고 갔습니다. "당신에게는 또 다른 손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을 도와주기 위한 것입니다."

욥바에 살던 다비다가 바로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Ⅰ. 여제자 도르가의 삶

오늘 본문은 "도르가라 선행(善行)과 구제(救濟)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36절)라는 말씀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행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르가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도르가는 수많은 신약의 여성들 가운데 유일하게 여 제자(헬라어 : 마쎄트리아)로 불리기까지 하면서(행 9:36) 선행과 구제에 힘썼던 여인입니다.

도르가라는 이 여인이 결혼을 했다가 과부가 됐는지 아니면 전혀 시집을 안가고 순수한 처녀로 일평생 주를 위해 헌신한 여자인지는 성경에 분명한 기록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많은 성경학자들이 말하기를 이 도르가라는 여인은 아예 처음부터 ‘처녀로서 한평생을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기로 헌신하겠다고 서원한 여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남편도 없이 혼자서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하였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사도행전 9장 39절에 보니까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 ?의 말씀을 살펴 볼 때, 도르가라는 여인은 ‘삵 바느질’ 일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도르가라는 여인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삵 바느질을 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어서 삵 바느질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도르가’는 가난한 자들과 과부들을 위해 손수 애정 어린 손길로 해어진 옷이 있으면 꿰매어 주고 또 여기 저기 다니면서 천을 얻어다 옷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예쁜 옷을 손수 만들어서 입혀 주었습니다. 또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몸에 꼭 맞게 옷을 고쳐 주기도 하였습니다.

‘도르가’가 만들어준 옷은 그 어떤 일류 재봉사와 제단사가 만든 옷보다도 더 솜씨가 훌륭하고 섬세하였습니다. 그리고 옷을 선물 받은 사람들은 도르가에 대하여 무척 고맙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도르가는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해요.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고 말씀하셨거든요"라고 하며,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도르가의 이 아름다운 행동을 본받아 도르가가 섬기고 있는 교회 성도들도 뜻을 같이하여 도르가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욥바 교회를 중심으로 시작한 사랑의 옷 나누어주기 운동은 지금도 계속되어 이제 전 세계적으로 "도르가 협회"라는 자선단체가 조직되어 이 도르가 협회를 중심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구제품과 구호품 등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 요사이 번지고 있는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과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도, 그리고 바자회 모임도 처음 도르가의 헌신으로부터 출발되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Ⅱ. 교회 봉사와 헌신

우리는 오늘 도르가라는 여인을 통해 크게 도전 받고 깨달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이 어떤 특정인에게만 한정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도르가라는 여인은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닙니다. 또 재주도 많아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은 더 더욱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그가 삶의 한 수단으로 여겼던 ‘삵 바느질 일’ 그것을 가지고 조금도 남에게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작은 일부터 찾아 사랑의 봉사를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 혹시 커튼이 찢어져서 꿰매고 고칠 부분은 없는가, 살펴보다가 그것이 교회에서의 봉사가 되었고, 더 나아가 교회 밖으로 이웃 사람들에게까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게 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헌금도 많이 낼 때까지 잠시 교회를 쉬겠다.” 또는 “그 때 가서야 십일조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가진 것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 없지만 만져지는 것이 없지만 믿음의 눈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부터 감사로부터 시작해야 큰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를 교회 봉사는 많은 물질이 있어야 하고 실력과 학식이 있어야 하며, 아는 것도 많아야 하며, 은사도 많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므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말입니다.

믿음이 부족한 어떤 사람은 “나는 교회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나가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교회 봉사는 피아노 반주나 안내, 헌금 이런 종류의 봉사만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기도 또는 청소 나아가 한 영혼을 위하여 전도하는 것 등 진짜 해야 할 교회 봉사와 헌신에 대하여서는 많은 사람들이 뒷짐 지고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겨자씨와 같은 작은 봉사로부터 시작하여 열심 있는 기도와 전도 그리고 십자가 순교의 길까지 이루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2011년 반환점을 돌아 새롭게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부터 다시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서 주님의 일에 헌신하리라 충성하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의 작은 일에부터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더 큰 은사와 능력과 물질의 축복을 통하여 더 많은 것들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늘찬양교회의 성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작은 일부터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도르가는 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② 삯바느질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몸서 실천하였으며, ③ 바울은 그녀를 여 제자로 인정하였듯이 소유, 지위, 명예, 권세보다 남을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신앙과 인격을 갖춘 섬김의 사람이었으며, ④ 예수 증인의 삶을 살았던 전도의 사람이었습니다.

Ⅲ. 도르가의 죽음과 부활

그런데 갑자기 도르가 여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너무 열심히 봉사하다가 그만 병이 들어 죽은 것입니다. 더욱이 그녀의 시체를 거둘 만한 친척이 없었기에 교회는 더더욱 난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도르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온 마을에 알려지자 평소에 그녀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많은 친구와 과부들이 몰려와 그녀의 시체를 닦아주었고 또 입관까지 시켜 주었습니다(행 9:37).

그리고, 교회는 욥바에서 두 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룻다에 베드로 사도가 머무르고 있음을 알고서는 빨리 사람을 보내어 모셔오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베드로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5장 15절에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였을 때, 병든 자가 나았다는 사실과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는(행 3:1-10) 사실들이 그 증거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곧 도착하여 죽은 시체를 뉘어 놓은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곡하고 있던 여자들로부터 도르가라는 여인이 살아생전 행한 선행과 구제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실증적으로 다 내어 보이며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도전 받아야 할 내용은 저와 여러분의 죽음이 어떤 죽음이 되어야 하겠는가? 는 문제입니다. "그 사람 잘 죽었어.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어. 아니 귀찮은 존재였어." 이런 말을 들었다면 그 인생은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은 것입니다. 반대로 “그 사람은 내게 너무나도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나보다 먼저 갈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안타깝다.”하며 아쉬워하며 아파해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마지막 때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비난과 질책과 원망의 소리가 아닌 아쉬움과 격려와 위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오늘 내게 주어진 사람들,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귀중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다비다 여인이 보여주었던 그 많은 사랑과 헌신에 감동하며 또 저렇게 아쉬워하며 안타까워하는 여인들의 애통함을 듣고 다락방에서 사람들을 다 내어보낸 후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온 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치기를 "다비다야 일어나라"(40절)고 명하였습니다. 그 순간 죽었던 다비다(도르가)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베드로는 조용히 다비다를 일으켜 세운 후에 다락방의 문을 열고 욥바의 성도들과 곡하는 여인들과 과부들을 올라오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놀라 다락방으로 올라와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죽은 다비다가 살아서 지금 베드로 선생님과 함께 서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놀라운 부활의 기적을 보고 사도행전 42절에 기록 되어 있듯이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도르가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나사로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도르가를 보고 주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오늘 우리 삶속에 각종 시련과 환란과 역경이 있지만 절망을 영광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삶의 현장에서 일어서는 여러 장면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라는 영적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Ⅳ. 도르가의 헌신적인 삶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역사로 죽음에서 살아난 도르가(다비다) 여인의 흥분과 감격은 어떠했을까요? 상상이 가십니까? 그리고 도르가는 왜 하나님께서 나같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 것일까? 깊이 되물으며 이제 새 생명을 되찾은 내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를 깊이 생각 하였을것입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천국 중심의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되고 이웃 중심의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다비다, 즉, 도르가 여인은 베드로를 통해 다시금 얻은 새 생명 이후 더더욱 주님을 위해 바늘을 쥐고 이 땅의 가난하고, 배고프고,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옷을 지어 주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복음 전하는 일을 죽을 때까지 게을리 하지 않고 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비다를 보는 사람들마다 큰 은혜를 받고 예수님께로 나왔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9절과 11절에 많은 사람들이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듯이 도르가의 모습 그 자체가 은혜요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도르가 역시 전보다 더 성결하고 전보다 더 많은 헌신과 사랑의 사명자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물론 선행과 구제도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로인해 욥바 사람들뿐 아니라 가이사랴 사람들까지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작은 봉사에 대한 예화 하나를 들려드립니다.

『 어느 시골의 총각 선생님이 출근길에 시냇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징검다리를 잘못 밟아 신발과 바지가 물에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때마침 서울에서 올라오신 어머니께서 집에 머물고 계셨다. 그가 어머니에게 되돌아온 이유를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물었다.

"네가 밟았던 잘못 놓인 돌은 바로 놓았느냐?",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무슨 선생이 되겠다고 그러느냐? 얼른 가서 돌을 바로 놓고 오너라. 그리고 옷을 갈아입도록 해라!"

어머니의 말씀이 조금 야속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몇 백 번 생각해도 옳은 말씀이었다. 그는 얼른 가서 잘못 놓인 돌을 바로 놓고 돌아왔다. 이 후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늘 돌을 바로 놓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돌을 바로 놓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고 다른 사람도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리고 내가 한 실수를 다른 사람도 하지 않도록 작은 징검다리를 제대로 놓도록 하자. 』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습니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을 들어서 별과 같이 빛나는 귀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첫째 우리의 삶에 선행과 구제가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봅니다. 둘째 우리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사랑의 슬픔을 남길 수 있는 귀중한 죽음이 될지를 살펴봅니다. 셋째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변화된 삶을 나타내는 삶인지를 살펴봅니다. 나 한 사람의 삶이 먼 데 있는 사람에게까지 복음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와 같은 복된 삶이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되지만 우리들의 의지와 노력과 섬김과 헌신으로 더 아름답게 빛이 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속에 도르가처럼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는 구체적인 선행과 구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삶의 변화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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