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찬양강해

138장 햇빛을 받는 곳마다(52장)- -586번째 찬송강해입니다.

늘찬양 2014. 1. 13. 23:55

뜨근뜨근하게 바로 만들어서 올립니다.

2014년 01월 19일 설교할 내용입니다.

586번째 찬송설교입니다.

138장 햇빛을 받는 곳마다 (52)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72:11)

작사자는 영국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실한 청교도 가정 출신의 아이작 왓츠(I.

Watts;1674~1748)목사가 1719년 작시하였다. 아이작 왓츠 목사는 영국 사우샘프턴의 비국교도 집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몸은 허약했으나 천재인 그는, 다섯 살에 라틴어를, 아홉 살에 그리스어를, 열한 살에 프랑스어를, 열세 살에 히브리어를 배워 5개 국어에 통달하였다. 그의 학구열은 불타는듯하여 음악과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왓츠는 1699년 마크레인에서 부목사로 일하는 동안, 600 여 편의 훌륭한 찬송시들을 작사하고, 문법논리학교육학윤리학심리학천문학지리학, 그리고 세 권의 설교집, 29편의 신학 논문 등 52권의 책을 냈다. 시편으로 찬송을 만들다가 기발한 생각을 하였다. 구약 전체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니, 모든 시를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신약으로 응용한 다윗의 시편이라는 찬송집을 내었다. 찬송 곡은 1793년에 영국의 교회 음악가인 존 헤톤(J.Hatton;1710-1793)시편 찬양모음집에 발표하였다.

1절 햇빛을 받는 곳마다 주 예수 다스리시고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 나라 왕성하리라

1, 햇빛을 받는 곳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그리스도의 통치가 왕성하리라

1. 햇빛을 받는 곳 마다

14511-12절에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는 영광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생각만 해도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고, 빛이 찬란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영광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도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영광이기에 그리스도의 나라도 영광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영광 돌리게 되는 해와 달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처럼 의지를 가지고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변화하신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변화산의 모습은 세상이 아닌 하늘의 모습입니다.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의 옷은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빛이 났습니다. 광채가 찬란했습니다. 모습이 밝았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본 빛은 하나님 나라의 빛이었습니다.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나라의 빛이었습니다. 사울은 그 빛이 너무 밝아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의 빛은 이렇듯 찬란합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리스도가 주인인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찬송가 1절에서는 햇빛을 받는 곳마다 주 예수 다스리시고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 나라 왕성하리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영광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는 이 나라가 영광의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주의 통치

14513절에는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합니까? 그리스도가 영원하니까 영원합니다. 인간은 제한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 나라가 영원합니다. 세상의 나라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바벨론을 보세요. 얼마나 강성했습니까?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망했습니다. 페르시아도 엄청난 국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헬라에게 망했습니다. 헬라도 무서운 힘으로 세상을 지배했지만 로마에 망했습니다. 로마제국도 그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찬란합니까?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망했습니다. 징기스칸의 원나라는 역사상 가장 큰 땅을 가졌다고 하지만 망하고 없습니다. 백두혈통을 자랑하며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정권도 얼마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나라도 영원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맙니다. 오직 주님의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125-26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이심 때문에 그 나라가 영원합니다. 죽지 않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727절에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합니다. 궁극적으로 세상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를 섬기며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들이 사라지고 영원한 주의 나라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535장은 마틴 루터가 스스로 작사 작곡하여 종교개혁이 한참일 때에 힘을 얻었던 찬송입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데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3)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2절 주님을 찬양하면서 간절히 기도드리

그 기도 향기 되어서 주 앞에 상달하도다

2, 주님을 찬양하며 간절히 기도할 때에 아름다운 향기로 주 앞에 상달하리라

바울과 실라가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유럽의 관문인 마게도냐로 방향을 돌려 빌립보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16:9). 이곳에서 자주(紫紬) 장사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서 그곳에서 말씀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할 때에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좇아와서는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17)며 떠드는 바람에 이들의 신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여인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다 못해서 점치는 귀신을 쫓아내어 주므로 그 여종을 자유케 해주었습니다(18). 그랬더니 그 못된 주인들이 자신의 소득원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20절에 있듯이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搖亂)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風俗)을 전한다하며 관원들에게 고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실라는 태형을 많이 맞은 후에 22절에서 24절에 있듯이 빌립보 감옥에 발을 착고에 채워 가두었습니다. 한 밤중이 되었으나 바울과 실라는 매 맞은 부위가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과 실라 두 사람은 서로를 붙잡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도함 속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25절에 한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할렐루야! 두 사람의 기도와 찬미의 향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올라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므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와 찬미는 깊은 옥중이라도 능히 그 옥을 부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옥은 그들의 이런 기도와 찬미를 감당할 수 없어 큰 지진을 일으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지진은 옥문을 부수뜨리고 그들의 발목에 단단히 채인 쇠사슬이 끊겨져 죄수들의 몸이 자유한 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수장과 그의 가족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찬송에는 세 가지 힘이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힘 즉 기도응답이요, 둘째는 가슴을 파고드는 힘 즉 회개와 용서요, 마지막으로 밖으로 뻗어 가는 힘 즉 사명의 힘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양하였더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울과 실라는 채찍질하며 감독하였던 간수장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가족과 함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 사람이 모르는 찬송이 있고 기도의 비밀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왜 내가 고난 중에도 환란 중에도 시련 중에도 찬송하며 기도하는지 절대 모릅니다. 나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기쁨의 샘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이 잘 돌아가야 그 샘에서 기쁨이 솟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이 잘 풀리든 풀리지 않던 상관없이 항상 끊임없이 솟는 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사 찬양하며 범사에 기도하는 생활은 세상 사람과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수준이 높아도 한참 높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상황에 따라 달라지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감정, 처지, 모든 것을 묶어 제사로 주님 앞에 찬양을 드릴 수 있는 늘 찬양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3절 온 세상 모든 사람들 그 사랑 찬송하도다

어린이들도 기뻐서 구주를 찬송하도다

3, 온 세상 모든 사람들 그 사랑 찬송할 때에 어린이들도 기뻐서 찬송하리도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참으로 남달리 사랑하셨습니다. 대개 어른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군중집회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귀찮아합니다. 왜냐하면 주위 상관하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고 시끄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정관념들이 당시 유대 어른들에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주의 제자들에게도 이런 잘못된 고정관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달리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13절에 보니까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참으로 평화스런 풍경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느닷없이 아이의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시끄럽게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아마도 아이의 부모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 나섰습니다.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4)며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16)

예수님께서 이처럼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것은, 유대 전통도 있었지만 어린이들에게 작지만 순수한 믿음과 순종의 마음이 있는 것을 보고, 어린이들을 아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고 순수한 마음과 순종의 믿음을 가지지 않고는 주님을 따라 올수가 어린이들을 볼 때 마다 주님의 나라가 이 어린이들 같은 믿음과 순종함 속에 있음을 알고 찬송가 3절에서도 온 세상 모든 사람들 주님의 구원의 은총과 사랑을 어린이들처럼 찬양해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14)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이처럼 사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셨습니다. "샛별 같은 그 보배 면류관에 달려 반짝반짝 빛나게 비치리로다."(찬송 564) 어린이들은 이런 미래의 기대와 축복 속에서 자라갑니다. 하나님나라의 주인으로서 자라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배우며, 따라가며 믿음 안에 성장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절 주 예수 계신 곳마다 그 은혜 충만하도다

곤하고 지친 사람들 주님의 사랑 받도다

4, 곤하고 지친 사람들 주님 사랑받아 그 있는 곳에서 은혜 충만하도다

찬송가 4절에서는 곤하고 지친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다.”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곤하여 지쳐있습니다. 피곤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삶에 지쳐있고 피곤한 사람들 낮고 천한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낮고 천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셨습니다.”(11:28-30). 그러면서 주님은 고린도전서 126절부터 28절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바울을 통해 전하셨을까요? 그것은 29절에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멋있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바로 지혜요, 능력이요, 문벌입니다. 만약 스스로 쓰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쓰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여러분들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들께서 하나님의 일꾼을 사용하는 원리와 영적 은혜를 받았다면 주님의 뜻을 좇아 담대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손과 발을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땀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거대한 배들을 보십시오. 어떻게 그것이 방향을 잡아 목적지로 잘 갈 수 있습니까? 배가 움직일 때 키가 방향을 잡아 목적지로 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배의 키와 같습니다. 배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키가 배의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오직 움직이고 있는 배만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의 핸들을 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처럼 하나님의 인도가 아무리 강하게 역사해도 우리가 움직이는 자동차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인도는 큰 효력이 없게 됩니다.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또한 천하고, 약하고, 없는 존재가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움직이는 배, 움직이는 자동차가 되어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큰 쓰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5절 이 세상 모든 만물아 주 앞에 경배하여라

저 천군 천사 다 함께 주님을 찬송하여라

5, 이 세상 모든 만물들아 천군천사와 함께 주님을 경배하며 찬송하여라

찬송가 5절에서는 이 세상 모든 만물들아 저 천군 천사여 다 함께 주 앞에 나와 주님을 경배하며 찬송하여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나 같이 무능하고 부족하고 천하며 곤하여 피곤하여 지친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19-21)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음의 사람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은 부족하고 무능하지만 전능자 하나님이 나의 주가 되시고 나와 함께 하시기에 나는 오늘도 담대하게 믿음. 소망, 사랑의 꿈을 가지고 달려갑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인생의 꿈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 전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1. 상상하는 자에게 미래가 열립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끝없는 상상력이 나옵니다. 우리는 때로 실패와 시련 속에서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더 깊게, 더 크게, 더 넓게 볼 수 있는 교과서가 됩니다. 세상은 한낱 우리의 상상력을 담은 거대한 화폭입니다 상상력이 하나님의 은혜와 결합되면 복의 근원이 됩니다. 기도의 내용도, 찬양의 내용도, 예배의 내용도 상상력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복에 대한 감격과 상상력이 솟아나야 됩니다. 인간의 정신은 토론장이 아니라 화폭 같이 그림을 그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즉 정신의 화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장래를 그려야 됩니다. 상상력이 인생을 지배하고 상상력이 세계를 지배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의 성령을 의지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붙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감사하라"(3:20).

2.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망하고, 꿈이 있으면 일어납니다. 꿈이 없으면 방자해지지만, 꿈이 있으면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가능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도 이 가능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겨도 계속 전진합니다. 초점을 그리스도에게 맞추십시오. 초점을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날에, 하나님의 역사에 맞추십시오. 이 시대에 우리들이 부딪히는 가장 흔한 유혹은 초점을 흐려 놓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권능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3.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고된 노동일뿐입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반항자만 만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한 꿈은 자기 자신의 신선미와 능력을 북돋아 줍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오늘에서 내일을 볼 뿐 아니라 미래의 시점에서 오늘을 보는 능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피나는 싸움입니다. 꿈을 가진 자만이 뚫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사람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으십시오. 다시 꿈을 가지십시오. 꿈은 한 생명 속에 내재해 있는 모든 힘들을 움직이게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선택의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잡아끄는 힘도 발산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집중력을 가지게 됩니다. 집중력은 인간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합니다. 하나님은 꿈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온전한 평화를 주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