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찬양강해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

늘찬양 2023. 11. 26. 21:58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23)

 

 

옛날 중세 교회에서는 교회의 특별한 계절이나 행사 때에는 꼭 성모 마리아 송가(Magnificant)를 빠뜨리지 않고 불렀는데 이 마리아 송가를 부르기 전이나 부른 후에 교송 또는 전송이라고 하는 짧은 구절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주로 불렀던 교송이 단 한 자로 된 !-(O!)"라는 찬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사는 너무 단순하고 지루하기 때문에 점차 !”라는 가사 뒤에 하나님을 상징하는 (아도나이), 지혜, 이새의 뿌리, 다윗의 열쇠, 임마누엘등의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바꾸어 부르다가 어떤 교송 시인이 매 절 끝에 임마누엘 이란 후렴을 붙여서 찬송가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영국 런던 태생의 언어학자요 성직자로서 고대어로 된 찬송가 및 신앙 서적을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하여 고대 교회사 및 찬송가 이해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존 메이슨 닐(J.M.Neale;1818-1866)박사가 19세기경 라틴어로 번역하여 세상에 발표하게 된 것이다.

 

찬송 곡은 12세기 로마 카톨릭에서 사용되던 중세 교회의 그레고리오 성가의 곡조를 1856년 영국의 성직자이며 찬송 작가인 토머스 헬모어(T.Helmore;1811~1890)찬송모음집에 현재와 같은 곡으로 편곡하여 'Veni Emmanuel'(임마누엘 오소서)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였다.

 

우리는 이 찬송가에서 두 가지의 특징을 살펴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첫째 아직도 구약 예언의 성취인 메시아의 출현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유대 교회의 노래라는 점과 둘째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하나님에 대한 여러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확신과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104 곧 오소서 임마누엘의 찬송가에 실려진 재림의 주에 대한 호칭을 세 가지로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 첫째가 임마누엘'입니다(1:23).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로서 곧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축복이심을 암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지혜의 주'라는 단어입니다(고전 1:24). 여기서 지혜 도구적 지식(knowhow)이나 학식(knowledge)이 아니라 삶의 참된 의미와 목표를 밝혀 주는 궁극적 도리이며 나아가 지혜의 근본이신 예수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셋째는 소망의 주님이라는 단어입니다(딤전 1:1).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영원한 희망과 생명을 심어줄 참 소망의 구주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1절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 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1절은 애굽의 포로 생활에서 해방을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이 세상에서 참 만족과 기쁨을 얻지 못하고 하늘의 기쁨을 구하며 기다리는 믿음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주님으로 곧 오셔서 이 모든 삶의 고난과 슬픔에서 우리를 구원시켜 달라는 내용의 찬송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의 포로생활로 인해 지치고 고달파 있을 때 여호와 하나

님께 자신들을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부르짖음이 출애굽기 39하나님께서 들으셨고 또 애굽 사람들의 학대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기적적으로 구출해 내신 것을 출애굽

의 전 사역을 통해 분명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

론 나라에 포로가 되어 70년 이상의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능자

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메데. 바사 나라를 일으

켜 주셔서 저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당하고 신음하고 있을 때 이

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용히 살피고 계셨다는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고난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뼈아픈 현실을 하나하나 보고계셨고, 그들의 탄식과 간구하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계셨으며, 그 모든 아픔을 익히 알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3중적 관심은 하나님께서 한시도 그의 백성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셨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을 도우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실로 변치 않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그 백성에 대한 영원, 불변한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는 해방의 사건입니다.

 

같은 돌 보심의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서 영원토록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고로 코로나19 이후 제2IMF와 같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로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에 봉착해 있는 성도들이 많은데 그런 위기에 빠졌다 할지라도 너무 자신을 질책하거나 시대를 원망하여, 환경을 탓하여, 실의와 좌절과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환난과 역경이 다가올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므로 포로 생활에서 건짐을 받고 구원함을 얻었던 것처럼 참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 이름 앞에 우리의 문제를 아뢰고 해결함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다가오는 23년 성탄절을 맞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소원을 아뢰며 능력과 회복을 구

하는 은혜의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회복, 기도의 회복, 전도의 회복, 감사의 회복, 찬양의 회복, 부흥의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

! 우리를 도와주소서 우리를 건져주옵소서 환난 중에라도 우리를 잊지 마시고 진노 중

에라도 우리를 건져주옵소서! 우리를 죄악에서 멸망에서라도 건져주옵소서! 외치며 매어 달리는 귀한 성탄의 모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2절 곧 오소서 지혜의 주 온 만물 질서 주시고

참 진리의 길 보이사 갈 길을 인도하소서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2절은 이 땅에서는 참 만족과 참 평안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지혜의 주, 영광의 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 평안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보이사 바른길 가게 하소서 하며 임마누엘, 성령의 주님을 기다리는 내용의 찬송시입니다.

 

요사이 사람들의 주 관심은 어떻게 하면 돈을 쉽게 남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경제가 좀 나아지는 현상이 보이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증권투자에 손을 댔습니다. 아파트 영끌족이 탄생했습니다. 자기 돈이 없으면 그만두지 그 비싼 은행돈까지 끌어들여 투자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3고 현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은행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그 높은 이자율을 감당치 못하여 강도와 절도범으로 변하여 은행과 상점을 털다가 잡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극약을 먹고 자살하는 예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많은 사람이 구조조정의 여파로 직장을 잃은 채 좌절과 절망감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 있는 자들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해외여행 등으로 흥청망청 돈을 쓰며 쾌락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땅에도 메시야 구주 예수 탄생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로마의 제국에 기생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때, 별을 연구하던 동방의 박사들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큰 별이 나타나서 나를 따라오라 손짓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지라 저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여 큰 별이 인도하는 곳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별이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는 능력의 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동방박사들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인생의 단 한 번 최고 축복의 기회인 메시야를 볼 수 있는 은혜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의 백성이 된 결과 귀한 예물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크리스마스 성탄 예배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19로 인한 거리 두기도 사라졌기 때문에 교회마다 성탄절 뮤지컬 준비, 거리 전도 등 다양한 성탄절 프로그램들이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바라기는 성탄절이 자신들의 축제장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처럼 성탄절에 귀한 선물을 가지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찾아가서 양말을 나누어주며, 추운 겨울 독거노인들이 따뜻하게 지내시라고 연탄 선물을 가지고 찾아가는 전도의 장으로 섬김의 장으로 23년 성탄절이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3절 곧 오소서 소망의 주 만백성 한 맘 이루어

시기와 분쟁 없애고 참 평화 채워주소서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아멘

 

 

3절은 임마누엘의 주님과 지혜의 주 소망의 주님이 이 땅에 곧 임하사 시기와 분쟁을 없애주시고 우리에게 참 평화를 내려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일에 만백성이 한마음 되어 오늘도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주를 찬양하는 백성 되게 하옵소서!” 하는 내용이 담긴 찬송시 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에 이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4일간의 휴전으로 하마스에 붙잡혀간 인질 13명이 석방되고 포로수용되어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풀려 가자지구로 돌아갔습니다.

 

이 땅에 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시기와 욕심 때문입니다. 시기는 미움과 분쟁을 가져옵니다. 삶에서 기쁨과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 마음속에 미움을 품고 있으면 소화가 안 되고 잠이 오지 않고 심장이 뛰고 불안해집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시기 질투로 인해서 엄청나게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것은 평화의 왕 소망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실 대속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앞장서서 행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져서 로마 관원들을 매수하여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렇듯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히면 앞뒤를 분간하지 못합니다. 시기 질투가 있으면 들리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다윗을 질투하였던 사울의 종말이 어떠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기는 자신도 망하고 타인도 힘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를 버려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와 분쟁에서 자유함을 얻읍시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때 시기와 질투와 분쟁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반갑고 좋은 것은 세상의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흰 눈이 다 하얗게 덮어 가려주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감사한 것은 시기와 분쟁을 없애고 참 평화와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겨울에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 주님으로 오셔서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7-19)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성탄의 기쁨을 우리 모두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19:38) 외치며 주님 오심을 기뻐 찬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