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음악치료사반/찬양강해

성가대원 삶 자체가 예배가 되라

늘찬양 2006. 11. 10. 09:18

성가대원 삶 자체가 예배가 되라

 

1. 성가대는 예배하는 회중을 대표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


(* 예배학에서는 예배자들을 구분하는 용어로 성가대와 회중을 사용한다. 즉 성가대 이외의 예배자들을 회중이라고 칭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참여한 회중들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찬양하는 역할을 성가대는 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최고의 경배를 받으셔야 할 분이시다.
성가대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와 수준있는 음악으로 어우러진 최상의 찬양을 예배를 대표해서 그 분께 드려야 한다.

사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회중이나 성가대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그러나 회중들은 대부분의 경우 성숙한 수준에 이른 준비된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따라서 성가대가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성가대의 찬양은 성가대원들에 의해서 하나님께 드려진다. 그러나 그 찬양은 성가대원들의 찬양만이 아니고 회중들이 함께 드려야 할 찬양을 성가대가 대표해서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성가대가 대표해서 드리는 것은 최상의 음악으로서의 찬양을 드리려는 회중들의 마음의 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표성이 인정될만한 좋은 음악으로의 찬양을 준비해서 드리지 못한다면 성가대의 존재에 대하여 크게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가대의 존폐를 외치는 어떤 사람들의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즈음 적지 않은 교회의 성가대들이 시간이 없고 바쁘다는 이유로, 충분한 연습도 없이 예배에서 찬양을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이런 경우들을 당연시 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노력해야 한다. 서론에서도 언급했지만 성가대가 있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고 만족해 해서는 안된다. 성가대는 성가대의 목적에 맞게 존재해야만 한다.


2. 성가대는 예배 중 회중 찬송을 인도하고 도와준다.


회중 찬송이란 예배에 참석한 회중들이 함께 부르는 찬송을 의미하는데, 이 회중 찬송의 목적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무리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이다.

둘째,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접근하게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예배하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게 하거나 회개하는 심령이 되게 한다는 의미이다.

세째,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케 한다. 실망과 근심으로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며, 육신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입게 한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지만 하나님은 회중 찬송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회중 찬송의 목적은 예배와 신앙 성장에 매우 유익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회중들 중에는 회중 찬송의 목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있다.
그 이유는 평소의 삶이 예배의 삶이 아니었거나, 교회에 오기 싫은 것을 억지로 왔거나, 부르는 찬송을 모르거나, 노래부르는 일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부르는 찬송에는 힘이 없고 음악적으로도 저질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회중 찬송의 목적을 성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성가대의 두번째 목적은 예배 중 회중 찬송을 인도하고 도와주는 것으로,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르는 찬송가를 음악적으로 바르게 이끌고 나가야 한다.

빠르기(tempo), 음정(interval), 리듬(rhythm), 곡의 종류에 따른 음악적 표현(musical expression)들이 성가대에 의해서 정확하게 제시 됨으로 회중들은 훨씬 찬송의 기쁨을 느끼며 찬양하게 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가대의 찬송부르는 태도가 남달라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가대, 회중 찬송에 대한 소명을 가진 성가대의 찬송 인도와 도움 때문에, 찬송의 힘을 잃은 회중들이 힘을 얻어 회중 찬송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성공하는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며 찬송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3. 성가대원의 평소의 삶이 예배의 삶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평소의 삶이 예배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성가대원의 삶이 예배의 삶이어야 할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당연하다. 예배를 대표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막중한 책임을 생각해 볼 때, 성가대원들은 구별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평소의 삶이 예배의 삶으로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은 성가대원의 찬양은 의미가 없다.

공 예배 시간에만 점잖게 예배하는 모습으로는 예배의 감격을 체험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배를 대표해서 찬양을 드려야 하는 성가대원의 태도는 더더욱 아니다. 성가대원들의 거룩한 산 제물로서의 끊임없는 영적 예배(로마서 12장 1-2절)는 생명력 있는 예배와 찬양이 되게 하는 일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된다.

구약의 성가대를 통해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성가대원들을 레위 지파 중에서 세웠다(역대상 6장 31-48절). 그리고 그들을 성전 중심의 생활과 특히 구별된 생활들을 통해서 성가대의 직무를 수행케 하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평소의 삶이 성전 중심의 생활과 예배의 삶을 살아온 성가대를 통하여 나라와 백성들을 구하는 일에 앞장 서게 하셨다(역대하 20장 21-22절).
이렇게 구약에서 성가대를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날의 성가대를 위해서도 그 정신과 사역을 계승시키시며 성가대의 직무를 주신 것이다.


4. 음악에 대한 연구와 찬양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성가대의 목적 중 하나가 최상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림에 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들이 많은 경우에 잘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또는 은혜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믿음으로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구원을 얻는 것이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처럼 기독교 신앙에서는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며 가르치신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리스도인다운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윤리적인 면 뿐만 아니라 지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은 날마다 더욱 그리스도인 되기를 강하게 촉구하신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선을 다함으로 날마다 성장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성가대의 찬양은 음악적으로 잘 준비되고 표현된 수준있는 찬양을 드리도록 많은 애를 써야 한다. 예배하는 회중을 대표해서 드리는 입장, 회중 찬송을 도와주고 인도하는 입장, 문화 창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입장 등을 생각할 때, 성가대원들은 음악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성가대원들이 음악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거나, 성가 연습을 소홀히 해서 자기 파트가 틀리고 음악적 표현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엄청난 실수에 해당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실수 뿐만 아니라 회중들의 실수이며 예배를 실수하게 한 것이다.

만일 성가대원이 음악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고 무관심하거나, 성가 연습을 소홀히 한다면 그런 대원은 성가대석에 앉아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서는 그런 대원이 많이 있는 성가대는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연습을 충실히 하지 않은 대원들을 포함해서 성가대원이 많은 것 보다도, 적더라도 충실히 연습에 참석한 성가대원으로 찬양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훨씬 성가대의 목적에 합당할 것이다(이 부분에서는 반드시 수준있는 음악인들만 성가대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현재보다 늘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희와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 팔십 팔인이라.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무론하고 일례로 제비뽑아 직임을 얻었으니'(역대상 25장 1-8절 중 7-8절)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에서는 레위인들 중에서 찬송하는 성가대를 뽑을 때는 이미 음악에 익숙한 자나 문외한,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를 구분하지 않고 제비뽑아서 각자 직임을 맡겼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에는 문외한이었고 배우는 자들이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가대원은 뽑힘을 받을 때는 문외한일 수 있고, 배우는 자일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익숙한 자가 되어야만 한다.
성가대원들의 이러한 성장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최고의 찬양으로 준비하여 드리는 일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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